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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와 5·5 플랜
2년 후면 40여 년의 직장을 마무리하고 퇴직할 예정이다. 퇴직 후 다가올 삶을 생각하면 가끔 나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두려움이나 불안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삶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퇴직 이후 내 삶은 단순히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닌 세월이 지날수록 쌓아 올린 성벽처럼 든든하고 원숙하게 준비를 하고 있어 조금의 두려움이나 걱정은 없다.
요즘 ‘구구 팔팔 이삼 사’라는 말이 유행한다. 즉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다 4일 만에 죽자.’라는 말이다. 현대 사회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화 시대를 맞이해 충분한 영향 섭취와 의학 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대폭 늘어나 ‘백세시대’라고 한다. 물론 이런 고령화 사회가 되어 고령 인구 증가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고령자가 겪는 고통 즉 4 苦인 빈고, 병고, 고독고, 무위고의 증가로 국가의 부담으로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하고 있다. 이런 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인간의 생명이 백세시대라 할지라도 그 삶은 즐거움과 축복이 아니라 외로움과 빈곤을 수반한 고통의 삶이 될 것이다.
며칠 전 국내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일본의 금융청 발표로 일본 사회가 들끓고 있다고 한다. 즉 ‘노후자금 2,000만 엔 보고서’다. 해당 보고서에 의하면 만 65세 남성과 만 60세 여성 부부가 앞으로 직업 없이 살아 갈 경우 공적 연금 외 추가로 2,000만 엔(원화 추산 2억 원)의 저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는 정부가 스스로 연금 정책의 실패를 증명한 셈이라며, 아베 정권에 거센 비판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아무리 현대 국가가 복지를 지향하더라도 국가에서 개인의 삶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물론 영국의 경제학자 베버리지(W. Beveridge)의 말처럼 국민 모두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의 책임 아래에서 골고루 복지가 보장되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면, 이는 모든 인류가 지향하는 복지 국가에 대한 희망 사항이지만 현실은 아직 요원하다.
아무리 백세시대를 맞이하더라도 삶의 요소인 가족, 인적 네트워크, 건강, 취미에 대한 사전 철저한 준비를 하지 못한다면 일정 부분 국가의 지원만으로 행복한 백세시대의 삶을 보장할 수 없다. 앞에서 말한 노년의 4 苦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노후에 대한 준비는 퇴임이 임박해 준비해서는 이미 늦다, 따라서 20∼30세부터 자기 삶의 목표 달성과 자아실현을 위해 철저한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퇴직 후 노후에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메슬로의 인간 욕구 5단계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의 욕구를 통해 자아실현”이 된다고 말하였다. 또한, 성공적인 노후는 즐거움, 후회 없기, 죽음 대면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런 교과서적인 원론적인 원칙이 아니라 진심으로 백세시대를 맞이한 노후설계란 무엇일까? 또 나는 이에 대한 대비를 어떻게 하고 있으며 어떤 준비를 할까?
내가 계획한 5·5플랜은 다소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고, 다소 추상적인 계획이라는 사람도 많겠지만, 노후에 이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전혀 터무니없는 계획이 아니다. 아니, 나는 그렇게 준비 중이다. 물론 이러한 계획도 지력, 심력, 체력이 밑바탕이 되고 부부, 가족, 자녀 간의 리스크 없다는 가정에서만 이상적인 계획이다. 즉 가족이 거주하는 5억 대 집, 집 이외 여가나 작은 노동력을 허비할 수 있는 5억 대 부동산, 크게 아프거나 갑자기 큰 지출이 생긴 것을 대비하여 5억 대 여유 자금(매월 4백만 원 이상의 연금 등 정기적인 수익이 보장된다면 금액을 하향해도 된다), 그리고 5억 대 취미 환가 자산(그림, 도자기, 난, 수석 등)과 필요다면 언제든지 조건 없이 5억 정도 빌릴 수 있을 인적 네트워크이다. 물론 이는 수도권이 아닌 기타 시, 도나 중, 소도시에 거주자라면 개별 사안마다 조금씩 하향 조정해도 무방하다.
성공적인 노후는 이런 물질적인 조건 이외도 현실을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고는 물론이요, 자신에 대한 성찰과 반성 생활과 여러 위험 요소에 대한 적절한 대책, 적당한 일과 여가의 균형은 필수이며, 지속적인 인적 네트워크 관리는 물론 사회에 대한 봉사활동과 남에 대한 배려심도 절대적인 조건이라 하겠다.
하루하루 삶이 자신의 인생 전체를 만들어 간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을 이루는 것과 같다. 오늘 이 순간은 내일을 만들어 가는 원천이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은 강물과 같아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따라서 내 노후는 그 누가 아닌 나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다. 내가 만든 세상이야말로 이상향이다.
하지만 내 소망은 아무리 지금이 백세시대이고 확실한 노후가 보장되고 대책이 세워졌다 하더라도 백세까지 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나는 산수(傘壽) 즉 80세 된 해. 하늘이 풍경으로 길을 열고, 미석산방 앞 섬단풍 마지막 이파리가 미풍을 타고 마당에 눕는 11월 세 번째 주 수요일, 탁자 위에는 막 퇴고를 끝낸 열네 번째 시집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다른 한쪽에는 먹다가 만 백세주 반병이 어지럽게 춤추며, 산방 옆 개울물이 강물처럼 굽이치는 날. 비록 찬란한 生은 아니었지만,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한 뼘 노을 속에 풍덩 빠져 마지막 길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