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6:10-15, 은혜를 잊지 말라. 19.11.27, 박홍섭 목사
전자제품을 사면 사용설명서가 따라옵니다. 신명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이라는 어마어마한 기업을 주시면서 함께 주신 사용설명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가나안에 대한 설명과 사용방법이 적혀있고 주의사항과 경고사항도 있습니다.
10-11절은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이라는 기업에 대한 설명입니다.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해서 배불리 먹게 하신다고 합니다. 애굽에 있을 때나 광야에 있을 때는 생각도 못한 기업입니다.
12-14절은 무엇일까요?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너는 조심하라고 하는 주의사항입니다. 15절은 만약에 주의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경고입니다. 너희 중에 계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진노하사 너를 지면에서 멸절시키실까 두려워하노라.
오늘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가나안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앞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설명했는데 여기서는 어떻게 설명합니까? 네가 들어가서 얻는 땅과 거기서 누리는 모든 것이 너희가 획득한 것이 아니라 네가 준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바로의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 나올 때 자신들의 힘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나올 능력도 없고 자격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10가지 재앙과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통해 애굽의 신들을 심판하시고 바로를 무릎 꿇리시고 홍해를 갈라 종으로 신음하던 그들을 인도해내셨습니다. 광야를 마른 땅같이 지내오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반석에서 생수를 내셨으며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특별한 언약을 맺어서 이들의 하나님이 되어주셨습니다.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격파하시고 그 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가나안 땅에도 들어가게 하시어 짓지 아니한 집, 채우지 아니한 물건, 파지 않은 우물,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모두 하나님이 다 해주셨다고 합니다. 네가 한 것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세상이라는 무대를 믿음으로 살 때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것은 다 잊어도 이것만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명기 내내 강조되는 것이 그 땅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라는 명령인데 이 명령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입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여기까지 인도했고 앞으로도 은혜로 책임질 것이니 너희는 나의 말을 들어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자의 책임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주변은 모두 하나님을 떠나 자기 힘으로 자기 인생을 책임지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힘과 머리와 능력 안에서 성공과 실패가 있고 그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집니다. 잘하면 자기가 잘해서 성공했고 못하면 자신이 못해서 실패합니다. 여기에 속한 인생은 서로가 서로를 경쟁해야 하며 반드시 이겨서 자기지분을 확보해서 절대로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과 가치관으로 삽니다.
얼마 전에 중고차 허위딜러에게 사기당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거짓매물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놓고 그 차를 사러 오는 고객들을 속여서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차를 팔아 한 달에 천만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입니다. 남들이야 피 눈물을 흘리던 말 던 자신만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조금도 마음아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규제하고 엄중하게 벌주는 법이 없다는 게 참 안타깝죠. 속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떠야 하고 속이려고 마음을 독하게 무장하는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이런 인생들 틈바구니 속에서 하나님께서 불러서 언약을 맺으시고 자기 백성 삼아주신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혀 다른 생각과 가치관으로 존재합니다. 나라는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지 못한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며 나의 보호자이다. 내 인생의 목적은 성공하는 것이 아니고 부자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는 자의 아름답고 존귀함을 드러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들은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지만 그분의 뜻에 어긋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해치고 아프게 하면서까지 열심히 살아서는 안 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삽니다. 그것이 십계명과 그에 따른 율법에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라는 당부와 주의와 경고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잊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다고 하는 것들이 만족하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자신을 위하여 우상을 만듭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의 지계 표를 옮기면서까지 자신의 배를 불리는 것을 허용해 줄 수 있는 다른 신을 섬깁니다. 아니면 여호와를 그런 신으로 바꾸어서 섬겨 하나님께서 질투와 진노를 발하는 자리까지 가게 됩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은혜를 잊고 자기 힘으로 사는 경우가 생길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듯이 “네게 주는 땅에는 니가 일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큰 건축한 아름다운 성읍을 주게 하시고 니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고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나무와 감람나무를 얻게 하시고.” 이런 말씀 하실 때는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그냥 주시는 걸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원주민들이 버티고 있는 땅입니다. 그 사람들 비워놓고 빈 집에 들어가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보다 힘 있어 보이고 모든 면에 우월하게 보이는 원주민들이 강력하게 버티고 있는 땅을 들어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가나안의 방식대로 싸우지 않고 어떻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오른 손과 얼굴빛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편 44편에 보면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열방이 사는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다, 해놓고 거기서 번성케 하셨는데, 3절에 보면 저희가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저희 팔이 저희를 구원함도 아니라고 합니다. 오직 주의 오른손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다고 고백하고 노래하는 것이 다 몰아내놓고 빈 땅에 들어가게 하지 않고 싸움을 통해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문제는 그렇게 원주민과 싸우면서 어 하나님, 약속하고는 다르지 않습니까? 빈 땅이 아니지 않습니까? 라는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내가 싸우고 내가 이겨서 그 땅을 차지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혹 지금 우리는 우리의 오늘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의 지혜와 노력과 열심과 땀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지금까지 지내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감사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정말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고 고백한다면 나의 삶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 대할 때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들이 이 하나님의 사랑에 의존되어 있는 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입술로만 은혜를 말하지 않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은혜의 태도를 보여줘야 합니다. 곧 그들이 압제당하고 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셨던 것처럼, 그들 또한 다른 압제당하는 자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 은혜를 잊지 않고 다른 신을 좇지 않는 신앙입니다.
말씀을 맺을까요? 잊어야 할 것은 잊지 않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잘 잊는 존재가 인생입니다. 우리의 죄 성이 하나님의 은혜마저도 잊게 만듭니다. 때로는 가진 것과 젊음과 연륜과 배운 것과 내게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게 만들지만 늘 기도와 말씀묵상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에 합당한 모습을 보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