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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젠테이션 스피치 스크랩 스티브잡스 프리젠테이션 스킬
사자후 추천 0 조회 201 13.04.25 10: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최근에 스티브잡스 프리젠테이션 스킬과 관련된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동영상자료도 보내드리오니 참고하십시요.
현시대에 빠른변화에 대응하는 리더의 역할을 주목하시면 좋겠습니다.
한주간도 좋은시간 되십시요.

스티브잡스 프리젠테이션 스킬
(Steve Jobs Presentation Skills)

1. 주제를 정하라 
    Set the theme

2. 내용에 대한 열정을 나타내라
    Demonstrate enthusiasm

3. 전체의 틀을 제시하라
    Provide an outline

4.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라
    Make numbers meaningful

5. 잊지못할 순간을 연출하라
    Try for an unforgettable moment

6. 슬라이드는 눈에 띄게 만들라
    Create visual slides

7. 쇼를 하라
    Give them a show

8. 작은 실수에 당황하지 말라
    Do not sweat the small stuff

9. 이득면을 강조하고 팔아라
    Sell the benefit

10. 수많은 반복 예행연습을 하라
    Rehearse, Rehearse, Rehearse, ...

[출처] 스티브잡스 프리젠테이션 스킬

 

 

The decade of Steve

How Apple's imperious, brilliant CEO transformed American business.

By Adam Lashinsky, editor at large
Last Updated: November 5, 2009: 8:13 AM ET

(Fortune magazine) -- 매력적인 기업인 이야기라면 이정도가 되어야 하잖을까. 젊은 창립자가 1980년대 자기 회사에서 쫓겨나 1990년대에 되돌아오고, 그 다음 10년간 두 번의 죽을 고비와, 한 번의 증권 스캔들, 항상 끼어드는 경쟁제품들을 이겨냈다. 그리고 가끔은 불쾌한 태도가 네 가지 분야 산업의 중심 태도가 되었고, 매번 억만장자가 되기도 하였으며, 실리콘밸리에서 제일 가치 높은 회사의 CEO가 되기도 하였다. 

너무나 현실감이 떨어지지 않는가? 아마 그러하실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진짜 이력이 그러하다. 그가 손대는 것마다 드리우는 충격도 거대하다. 

지난 10년간은 오로지 잡스의 10년이었다. 이 간단한 문장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다. 거의 1년간, 그의 업적에 대한 리뷰가 나오기만 해도, 그것이 고별사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돌아왔다. 

"one more thing"의 신호는 이제 그의 것이 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반기 6개월의 병가기간 동안 그는 간이식 수술을 받았다. 이제 그는 다시금 34,000명의 강력한 군대를 호령하고 있다. 강력하고 창조적이며, 비밀스럽고 겁나며 오만한 조직이다. 물론 이윤도 내고 있다. 잡스와 그의 동무, 스티브 워즈니악이 1976년, 애플을 세운 이후로 언제나 그래왔다.

그는 젊었을 적부터, 자신에게 최고를 붙여왔다. 그는 이제 54세이다. 그가 이룬 것을 목록만 만들어 보아도, 그가 어째서 올 10년간의 최고 CEO 자리에 올랐는지 알기 충분하다. 지난 10년간만해도 그는 시장 세 군대를 급격히, 그리고 매력적으로 바꾸어왔다. 음악과 영화, 그리고 휴대폰이다. 그의 오리지날 산업인 컴퓨팅도 자라나기만 하였다.

한 산업 되만들기를 하나만 하더라도, 그 사람의 업적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잡스는 4건이다. 들어본 바 없다. 잠시 생각해 보자. 헨리 드는 자동차 산업의 진로를 바꿔버렸다. 팬암(PanAm)의 주안 트립프(Juan Trippe)은 국제 항공을 만들어냈다. 콘라드 힐튼(Conrad Hilton)은 미국 호텔을 세계화시켜놓았다. 위 사례를 보면, 이 세 명의 거장들은 이전까지 아무도 지배하지 못하였던 시장 하나를 재정의 내렸다. 잡스는 이미 존재하던 혼란스런 상황의 시장에 집중하여, 그 산업을 뒤바꿔놓았다. 

그는 전세계적인 지명도를 지닌, 흔치않은 사업가이며, U2의 보노(Bono)와 친구이기도 하다. (그의 변덕과 편애는 워낙 유명해서, 심슨스에서 패러디하기도 하였다.) 애플의 연간 실적 보고서나 전문지를 절대로 보지 않는 소비자들은 잡스의 디자인 취향과 우아한 소매점, 제품 외로 벗어난 광고접근을 두고 말하기를 즐긴다. 

그가 쇼맨쉽을 가졌으며, 타고난 사업가이자, 그 유명한 현실왜곡의 장을 만들어낸 마술사, 완벽주의의 폭군이라는 지적도 종종 나온다. 물론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잡스 전설을 묘사할 때 들어가는 말들이다. 

온갖 기사 작성자와 디자이너, 음악가들과 어울려다니는 잡스라서, 그가 반기업적인 매력을 지녔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실수하지 않기 바란다. 잡스는 정말 사업가이다. 소비자 연구에 관심을 갖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는 소비자들이 사게 될 제품만 만든다.

그는 선지자가 맞다. 하지만 그 배경은 든든한 현실이기도 하다. 애플의 여러가지 경영 방식과 시장 접근을 자세히 조사해보라. 친구인 오라클의 CEO, 엘리슨(Larry Ellison)에 따르면 잡스는 돈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가 애플에 열심인 것이야 본능적이다. 이해할만하다. 애플은 그의 첫사랑이다. 쫓겨났음에도 다시 찾아갈 정도다. 덕분에 그는 쿨함과 세상을 바꾸는 힘, 모두에게 있어서 중개자가 될 수 있었다. 

재무 성과를 보면 애플과 잡스에게 탄성밖에 안나온다. 2000년 당시 애플 시가는 50억 달러 정도였다. 업계를 뒤흔들 "디지탈 라이프스타일" 전략이 나오기 직전이다. 당시 이 전략을 이해한 비판가들은 거의 없었다. 애플의 현재 시가는 1,700억 달러이다. 구글보다 약간 더 가치가 높다. 

당시는 애플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점유율도 당시는 감소추세였으며 현금 누출도 심해서, 부도 가능성도 거론되었다. 그랬던 애플의 현재 현금보유고는 340억 달러이며, 라이벌인 델을 추월하였다. 오늘날 미국내 매킨토시의 PC 시장점유율은 9%로 올라섰지만, 이제는 시장점유율이 점차 중요해지지 않고 있다. 

9개 국가에 있는 275개 소매점에, 미국내 MP3 플레이어 시장점유율 73%, 휴대폰이 나올 때 특히 드러난, 혁신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리더쉽. 이 모든 것이 애플과 그 CEO 덕분이다. 이제 누구도 애플을 패배자라 말하지 않는다. 

2006년 디즈니는 잡스가 영양분을 공급하고 통제해온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를 인수한다. 75억 달러에 달하는 인수로, 잡스는 디즈니의 이사 자리를 얻게 되고, 디즈니 내 최대 주주가 되기도 한다. 애플과 디즈니 시가로 따져볼 때 그의 총재산은 50억 달러 정도이다. 스타급 중역들은 잡스 외에도 많지만, 잡스와 비교할 만한 사람은 없다.

잡스가 애플로 돌아왔을 때, 그가 해결해야 할 난관은 대단히 많았다. 골리앗과 같은 역할은 물론, 다윗과 같은 영악함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 자신이 일으킨 스마트폰과 같은 곳에서의 경쟁은 어떨까? 개인용 컴퓨터는 상대적 중요성이 이제 떨어져가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그의 계승자는 어떨까? 그럴 만한 조직을 그가 꾸려냈을까? 최근 10년처럼, 향후 10년도 그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을까?

스티브의 "10년"은 실질적으로 1997년에 시작하였다. 회사에서 쫓겨난지 13년만에 애플로 되돌아왔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소박한, 자그마한 투자가 있었고, 애플 제품라인은 거의 4 종류의 컴퓨터로 줄어들었다. 그 다음 해부터 스티브의 체제가 시작되었다. 잡스는 새로운 경영팀 고용을 완수하였고, 이 중 상당수는 전 회사인 넥스트에서 데려왔다. 이들은 잡스가 거의 10년간 데리고 있었던 핵심인사들이었다. 

잡스의 복귀 이후에 나온 첫 번째 매킨토시가 아이맥이었다. 올인원 컴퓨터와 모니터는 애플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었다. 급격한 가격 인하와 함께 이뤄진 비싼 아이맥의 성공으로, 잡스는 현금보유를 쌓을 수 있었다. 애플의 대차대조표를 우선 고친 다음, 잡스는 대형 투자를 준비하였다. 그런 투자가 있다면 정말 통찰력 있는 움직임이랄 수 있겠다.

잡스는 제일 상황이 안좋았을 때의 애플을 안정적으로, 아예 성층권으로 훌쩍 올려놓을 기반을 마련하였다. 2000년, 애플은 9월 분기발표 때의 재무목표를 채우지 못하였다. 그에 따라 주가가 계속 하락을 거듭하여 오늘날 가격으로 7달러 수준까지 떨어졌었다. 하지만 이 때의 잡스는 애플의 원기회복의 핵심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2001년, 세계시장이 침체에 들어가자, 애플은 1월, 아이튠스 뮤직 소프트웨어를, 3월에는 맥오에스텐 운영체제를, 5월에는 첫 번째 소매점을, 11월에는 첫 아이포드(5GB 용량으로서 천 곡 정도를 담을 수 있었다)를 선보였다.

이런 중요한 이벤트에 대해, 시장이 재빠르게 응답하지는 않았다. 아이튠스는 그저 음악을 재생시키는 소프트웨어로서 맥에 들어가 있고, 아직 음악을 파는 온라인스토어는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새 운영체제 또한 인상적이기는 하되, 틈새시장용 제품이었고, 아이포드는 기존 MP3 플레이어 시장에 진입한 호화로운 플레이어였을 따름이다.

애플 주가가 허덕이면서, 애플에 대한 인수 루머도 때때로 흘러나왔다. 전혀 보도가 되지 않은 것도 있다. 새로이 결성된 매각 그룹 Silver Lake Partners에게 애플을 넘길 것을, 잡스는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었다. 애플 매각이라면 큰 뉴스거리가 될만했으나, 그 협상에 정통한 사람들에 따르면, 결국 이 안건을 철회시킨 장본인도 잡스였다.

그런데 애플을 인수하겠다는 심각한 제안이 두 번째로 또 나왔다. 1997년, 잡스의 친구인 엘리슨(후에 애플 이사가 된다)이 잡스의 경영을 지속시킨다는 가정 하에 애플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형성을 시작한 것이다. 최근 엘리슨의 인터뷰에 따르면 잡스는 그러한 가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자기가 돈벌려고 애플에 복귀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었다. 엘리슨의 말이다. "잡스가 내게 말했어요. 도덕적인 명분이 많이 있어야 않겠냐. 그래야 결정을 보다 쉽고 우아하게 내릴 수 있다면서 말이죠."

잡스의 복귀에 관심을 기울인 이들을 위해, 잡스는 애플의 궤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2002년 초, 타임지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이다. "다른 제품군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느니, 차라리 소니와 경쟁하겠습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를 모두 갖고 있는 회사는 우리 애플 뿐입니다. 사용감에 대한 완전한 책임을 질 수 있죠. 다른 회사들은 못하는 일입니다."

잡스는 대중이 결국 애플로 돌아오리라 확신했었다. 다만 예술가와 학생들로 구성된 충실한 매킨토시 사용자들만이 아니어야 했다. 오늘날 애플에 너무나 긴밀히 통합되어 있는 애플이 직접 운영하는 스토어는 한 때 현금지출만 일으킨다는 비판도 받았었다. 전임 애플 중역이자 Intuit의 사장이고 애플 이사진인 빌 캠벨(Bill Campbell)의 말이다. 

"불안해 하는 이사진들을 갖고 이뤄낸 것이죠. 소비자들이 원한다는 사실을 그는 알았어요." 더 놀라운 내용이 있다. 당시 애플스토어를 뭘로 채울지 고민한 흔적이다. 잡스는 어떻게 채울지를 알았다.

잡스는 애플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냈다. 애플과 함께 온오프로 여러 해동안 일한 Chiat/Day의 전임 크리에이티브 부장인 켄 시걸(Ken Segall)의 말이다. "설마 CEO까지 관여하랴 싶은 일 세세한 부분에 모두 그가 관여했습니다. 아이콘처럼 된 'Think Different' 캠페인도 그가 주문했었죠." 이 때는 애플의 신제품이 소개도 되기 전이었다. 광고팀에도 소개를 안시켜주었고 말이다. 시걸의 말이다. "가령 잡스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네 번째 단락의 세 번째 단어가 맞지 않아요.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싶으실 것입니다.'"

큰 그림은 물론 작은 그림도 파악하는 경영법이야말로 잡스의 특징이다. 애플에 복귀한 직후, 잡스는 컴퓨터 업계에서 애플을 차별화시켜줄 것은 찬란한 디자인임을 깨달았다. 델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인텔과 같은 성공한 기업들의 디자인은 시시했다. 제품-디자인 컨설턴트 기업인 Ideo의 CEO인 팀 브라운(Tim Brown)의 말이다. 그의 새로운 책 "Change by Design"에서 그가 한 말이다. "'제게 차세대 아이포드를 주세요.'라 말한 클라이언트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소리로 '제게 차세대 스티브 잡스를 주세요.'라 말하는 디자이너들도 거의 부지기수이다."

잡스는 또한 타이밍의 귀재이기도 하다. 애플이 아이튠스로 진입하기 전, 음반업계는 고유의 디지탈-음반 판매를 계속 실패했었다. 반면 애플은 음악 구매의 장으로서, 아이튠스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잡스는 아이튠스를 맥에서만 작동하도록 하는 것으로, 음반사들과 협상을 맺었다. 2002년 당시 맥의 개인용 컴퓨터 시장점유율은 낮은 한 자리 대였다. 아이튠스가 윈도용으로 나와서 거의 모든 PC시장으로 확대될 때까지, 맥의 낮은 시장점유율은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파괴적인 패러다임 변동보다 실험을 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Appetite for Self-Destruction"이라는 새 책이 있다. Rolling Stone의 필자인 노퍼(Steve Knopper)가 쓴 책으로서, 음반산업의 악랄함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Universal Music의 수장인 더그 모리스(Doug Morris)가 한 말이 있다. "맥으로, 그것도 1년만에 애플이 어떻게 음반사업을 망쳐놓을 수 있는지 난 이해 못했소." 노퍼의 글이다. "이걸 왜 하면 안되었을까? 당시 스티브 잡스가 다가왔을 때, 잡스는 최후의 수단이었다. 상황을 알아차릴 정도로 그는 영민했을 따름이다. 잡스는 터프하게 행동했지만, 최근 아티스트들과 계약협상을 하는 거대음반사 변호사보다 더 터프하지는 않다."

잡스의 주요 사업 수단은 메시지의 완벽화이다. 그는 발표하게 될 애플에 관한 내용을 한 줄 한 줄, 계속 리허설한다. 잡스 외에 주어진 주제에 대해 발표할 수 있는 중역은 소수일 뿐이다.

잡스식 접근방법의 핵심은 그와 애플이 무엇을 말하느냐, 그리고 무엇을 말하지 않느냐에 대한 깊은 숙고이다. 하버드대학교 교수인 여피(David Yoffie)는 2007년, 아이폰을 발표한 뒤, 판매에 이르는 기간동안 전혀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을 흥분하게 만들어서, 무료 광고효과를 4억 달러 정도 받았다고 추측했다. 

잡스 자신이 과도한 노출을 신중하게 피한다. 제품을 홍보할 때에만 말하기를 선호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2004년 당시의 암 수술조차 밝히지 않았다. 수술 후, 직원 전체 메일이라는 형식만으로 밝혔을 뿐이다. 전략적인 알림이었던 셈이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병가도 직원 서한 형식으로 세상에 알렸다. 잡스 자신이나, 애플 사람 모두 추가적인 코멘트를 하지는 않았다.

애플 내 언론홍보팀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말을 할 수 없다. 이 팀은 잡스에게 직속으로 보고를 하는 팀이다. 애플은 이 기사를 위해 잡스가 인터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거절을 하였지만 다른 이들이 잡스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은 허용하였다. 물론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거절하였다.

이러한 비밀주의 때문에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들이 골머리를 썩힌다. 이들은 잡스처럼 중요한 CEO의 건강문제라면, 더 확실히 밝혀야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잡스는 애플의 전임 CFO와 법무실장을 스캔들에 휩싸이게 만든, 스톡옵션 백데이팅에 대해서도 침묵하였다.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애플이 옵션 행사일을 조정해서, 보다 더 이윤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사실을 잡스도 알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잡스는 백데이팅에 대해 사과를 하였으며, 이에 대해 "전혀 애플다운 일이 아닙니다(completely out of character for Apple)"라 하였다.

잡스는 재무와 메시지, 협상, 디자인 그 이상을 관리한다. 한 때 컴퓨터 업계의 무서운 아이가 이제는 유례없이 강력한 회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최근의 병가를 보면, 스티브 잡스도 인간일 따름이다. 그가 혹시 죽게 된다면 애플은 잡스 없이 어느 정도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Apple's future.

스티브 잡스가 공공석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지난 9월, 잡스는 애플의 한 중역 이름을 대며, 그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하였다. 그의 이름은 애플의 수석경영자인 팀 쿡이었다.

새로운 아이포드를 소개하는 이벤트에서 잡스는 우선 언론 종사자와 분석가들, 애플 개발자들에게 자신이 "자동차 사고로 죽은 20대의 간 기증자가 기증한" 간을 갖고있다 발표하였다. 그러고나서 그는 쿡에게 감사를 표하고, 자신이 없을 때에도 애플을 유능하게 관리한 다른 경영진들에게도 감사를 표하였다. 쿡도 맨 앞줄에서, 팔까지 높게 올리며 열렬한 환영을 표하였다.

잡스가 복귀하자, 쿡이나 다른 누군가 잡스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일단 사그라들었다. 한 전임 애플 중역의 말이다. "애플에서 위계질서는, 스티브가 누구를 부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잡스께서 말씀하시기를'이 엄청난 가치를 갖죠."

계승에 관한 얘기를 싫어하기로 유명한 CEO인 래리 엘리슨은 자기 친구이기도 한 잡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를 교체할 수가 없어요. 그 자체가 엄청난 브랜드입니다. 엄청난 제품이기도 하죠. 그가 떠날 때마다 건강하게 은퇴하기를 바란답니다. 지중해에서 요트라도 몰기 바라죠. 물론 애플이 그를 엄청나게 그리워하게 되겠지. 애플은 소비자용 제품 회사에요. 제품 사이클이 무척 빠르단 말입니다."

잡스가 경영진들을 자기 없이도 잘 하도록 계속 가르쳐왔다는 신호도 있다. 애플 경영팀과 접촉하는 이의 말이다. "스티브처럼 생각하는 법을 계속, 완전히 훈련받아왔어요. 이 때문에 6개월이 그리 부드럽게 흘러갔겠죠. 누구나 비전제시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스티브라면 이렇게 했겠지.'"

사실 잡스의 영향력은 애플을 넘어선다. 레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최근 New Yorker지에 잡스가 자기들의 영웅이라 말했다. 제프 베조스(Jeff Bezos)가 아마존에서 킨들 2를 선보였을 때, 잡스가 이를 질투했음도 분명하다. 벤처자본가이자 넷스케이프를 공동창립했던 마크 안드레센(Marc Andreessen)은 모험자본가들에게 잡스가 했던 말을 가끔 일깨운다고 말했다. "첫 번째 제품을 선보일 때 꼭 생각하세요. '스티브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향후 10년동안도 잡스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양하게 던져볼 것이다. 시가 1,500억 달러 어치가 넘는 회사를 만들고, 영화와 통신사, 음악, 컴퓨팅(그리고 세상에 소매점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알렸다)을 전환시켜낸 자신이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비밀주의와 쇼에 대한 취향, 그리고 검증된 그의 영특함을 볼 때, 준비가 되었을 때에만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 그 정도로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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