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상담을 하다 보면 스펙이 목메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취업준비생 뿐만 아니라 그 가족 등 일반인들도 스펙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일반 기업에 취업할 때는 스펙이 중요하지만 공공기관 취업에서는, 적어도 내 생각엔, 스펙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채용 환경이 변화하면서 스펙의 정의 내지 무게 중심도 자격증 취득과 사회적 경험으로 이동돼버렸다. 하지만 많은 지원자들이 여전히 스펙의 중요성에 대해 과신하는 것 같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스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스펙에 너무 목맬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즉, 좀 더 입체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가령 학점이 높다고 토익 점수가 900점대라고 인턴 경험이 많다고 그 사람을 우대해줄까? 그런 것은 우대사항이 아니라 그저 밑바탕에 깔리는 기본에 불과하다. 너무 낮지만 않으면 대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채용과정을 접하면서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 차이가 꽤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핵심이 바로 스펙 과신 내지 스펙에 대한 착각이다. 동가홍상이라고 이왕이면 스펙이 높을수록 좋겠지만 최근 채용 환경의 매커니즘이 고스펙자를 우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스펙에만 너무 목을 맬 필요는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펙이 합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자.
수년 전 한 공기업에 엄청나게 많은 수험생이 지원하자 필기시험을 볼 수 있는 필기시험 대상 인원을 토익 점수 10배수로 자른 적이 있다. 필기시험을 모두 볼 수 없기에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필기시험 대상자, 즉 서류통과자를 정한 셈이다. 이런 경우라면 토익점수가 대단히 중요하다. 자칫 필기시험을 치룰 자격조차 없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내 기억으로는 토익 컷이 920점이다 925점이다 해서 이야기가 많았었다.
입사지원 시 영어점수를 일정 점수 이상을 요구할 경우 그 점수만 넘으면 회사에서 영어가지고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나 역시 공공기관에 취업할 때 자격 조건이 700점 이상이었고, 700점에서 조금 넘는 점수로 합격했다. 즉, 자격 조건만 통과하면 점수가 높다고 가점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700점 미만자가 지원하면 서류에서 탈락을 시키지만 700점 넘는 지원자가 많다고 해서 고득점자 순으로 서류전형의 합격자를 정하지도 않는다. 토익 점수는 900점 넘어도 막상 말을 시켜보면 외국인과 대화를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회사에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대화가능여부와 실전 영어, 그리고 수험 영어는 완전히 다름을. 입사 영어점수를 크게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이 대다수 채용관계자의 생각이기도 하다.
학벌도 과거에 스카이 대학을 우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최근에는 학벌이 어느 수준만 되면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 합격자의 출신 대학을 봐도 특정대학에 몰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여러 대학에서 골고루 입사한다. 특정한 경향성이 없는 셈이다. 그러니 학벌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더욱이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면서 출신 학교를 가지고 당락을 결정하는 일은 없어졌다고 보면 된다.
최근 NCS와 블라인드 채용이 공공기관의 기본채용의 기조가 되면서 서류전형의 벽은 낮아지는 추세다. 따라서 스펙에 대한 스트레스는 그만 잊자. 그 시간에 지원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은 당연히 기본이고, 여기에 플러스알파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는 것을 권한다. 가령 산업안전기사가 있다면 여기에 산업위생기사를 따면 취업에 성공할 확률이 대단히 높아진다.
내가 전형위원으로 들어가서 가장 신뢰하지 않는 것이 한자능력, 컴퓨터 활용능력, 국사시험 점수다. 한자는 기본적으로 쓸 일이 없고, 한자가 필요한 직종은 업무를 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다. 마치 회사에서 특허담당자를 뽑는데, 채용담당자에게 ‘특허 업무를 하지 않은 백지 상태의 직원을 선발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한 내 당시 발언과 다르지 않다. 어설프게 아는 지원자보다는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스펀지처럼 쭉쭉 지식을 습득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모든 업무는 들어와서 어차파 다시 배워야 한다. 회사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제발 한자능력, 컴퓨터 활용능력, 국사시험 점수니 하는 자격증은 그다지 필요 없으니 그걸 공부할 시간에 차라리 기사 자격증을 하나 더 따도록 노력하라. 민간협회에서 하는 자격증도 회사에서 그다지 알아주지 않는다. 최근 면접에서 어느 지원자가 처음 들어보는 자격증을 서류전형 시 적어놓고 면접관이 뭐냐고 질문하자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그다지 어필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직무 관련성이다. 특히 이공계 준비생은 관련 전공의 자격증이 있으면 매우 유리하다. 토목 전공자가 토목기사도 없으면 누가 뽑으려고 하겠는가? 자격증 있는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많은 지원자들이 가장 착각하는 것이 인턴경험이다. 맛보기 차원에서 경험하는 수준이 인턴인데 마치 그 회사에서 제대로 근무한 것처럼 말하는 수험생들이 있다. 회사에서는 인턴으로 몇 달 일한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공공기관 경험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