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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4일. 이탈리아 전역이 인터넷 거북이 지역이다. 게다가 숙소나 마리나는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 많다. 쇼핑몰에서도 무료 wifi가 실낱같이 되다 안 되다가 반복된다. 한국에서는 몇 분이면 끝날 일이, 여기서는 하루 밤새도록 또는 아예 불가능이다. 동영상 촬영한 것을 한동안 보내지 못하고 있다. 속 터지는 일이다. 이번 항해에서 가장 불편하고 힘든 일 중의 하나다. 로밍 데이터를 쓰면 며칠이면 다 사용하니까, 무료 wifi 찾아 삼만 리다.
어제, 자주 가는 카페 앞에서 잠깐 도둑 Wifi를 쓰고, 오후에 제대로 Wifi를 쓰러 들어갔다. 에스프레소 한 잔(1.2유로) 을 시키고 당당히 Wifi를 사용하려니 헉! 연결이 되지 않는다. 카페 주인에게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에스프레소만 마시고, 몇 칸 떨어진 다른 카페로 갔다. 역시 가장 값싼 에스프레소를 시키고, 두근두근 Wifi를 연결하려니 안 된다. 이 건물, 또는 이 동네 전체의 문제인 것 같다. Wifi 찾다가 커피중독 되겠네. 이 동네 사람들에겐 흔한 일인 듯, 일상에 전념하고 있다. 그간 여러 번 지나가며 보았지만 카페에서는 음식이나 음료를 마시며 수다를 떨지, 한국처럼 핸드폰에 고개를 처박은 사람을 보기 힘들다. 이탈리아 문화가 인터넷을 늦게 보급시키는지, 늦은 인터넷이 이탈리아 문화를 유지 시키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나는 항해정보, 기상예보를 반드시 확인해야만 하는 선장이다. 아내와 아이 유모차를 끌고 오트란토 성벽과 해변의 카페를 돌아다니며 Wifi 제공 카페를 찾다 포기했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여름 한철 장사만 한다. 철지난 바닷가 분위기다. 가게의 20% 정도만 열었다. 아마 6월부터는 성업이겠지. 깔끔하게 포기 하고 기막히게 아름다운 야경을 즐기며 사진만 찍었다. 아무렇게 찍어도 모두 작품이다. 리나는 이탈리아 아기들과 함께 미끄럼틀을 타고 놀았다. 그러나 미끄럼틀 위에 올라 겁을 먹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순식간에 계단을 오르고 위에 올라 라이언킹처럼 포효! 하고 선채로 미끄러져 내린다. 혹여 앞으로 구를까봐 아빠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아이의 손을 잡는다. 뭔 18개월짜리가 미끄럼틀을 이리 과격하게 타나! Wifi가 안 되는 덕에 오트란토 성곽 주변의 야경을 구경하고,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한 참을 놀았다. 잠깐 이탈리아식으로 사는 거다,
저녁엔 아내가 돼지고기 볶음을 해주었다. 얼마 되지 않는 한국 양념으로 가지 볶음, 파가 많이 들어간 양배추 김치 등 다양한 반찬을 만든다. 내가 보기엔 요리 마술사다. 이탈리아에서 한국 요리라니, 거의 기적을 보고 있다. 파스타와 파스타 양념은 한동안 구석에서 찬밥이다. 한국 요리 재료가 다 떨어지면 (고추장, 된장, 간장 등) 그때서야 느지막이 등판하지 않을까 싶네.
선배 선장님이 서비스 배터리는 새것으로 갈아 버리고, AIS 기능이 되는 무전기(em-trak A100 AIS Class A Transceiver) 를 갖추라고 추천해 주셨다.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그동안 배의 구조적, 기능적 부분만 챙기느라 미처 확인을 못했다. 전에 다른 배를 타고 필리핀 항해 때 보니, 레이더 플로터에 다른 배들의 명칭, 종류, 행선지 등이 다 나와서 편리하게 이용한 적이 있었다. 어떤 배가 너무 가까우면 그 배를 호출해 항로에 관해 대화가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잊고 있었다. 여하튼 여기 이탈리아에서 구할 수 있을까? 시애틀 사는 여동생에서 웨스트 마린으로 쫒아가 그 물건을 구해서 국제항공우편으로 보낼 수 있는지 확인 부탁했다. 그게 더 빠를 수도 있겠다. ‘오빠 이걸 영국에서 만드는데 이젠 미국이 수입을 안 한대. 미국에서 수입 중단한 이유가 FBI 하고 문제가 발생해서라는데...’ 참 쉬운 일 하나 없네. 어쨌든 미국과 한국, 로마 등에 도움을 요청한다. 뭔가 방법이 있겠지.
아침에 20리터 말 통 3개에 경유를 넣었다. 이탈리아 라이프는 늘 의외의 곳에서 어렵다. 예를 들면 배에 기름을 넣다가도 100단위로 딱 떨어지면 기름 넣기를 멈추고 반드시 물어본다. 110유로 120유로 넣으면 가득 차는데, 그들은 꼭 멈춘다. 어떤 징크스가 있는 걸까? 산살보에서도 오트란토에서도 그랬다. 몇 번 더 넣어 달라고 하다가, 나도 이젠 100단위에서 그들이 멈추면 오케이 해버린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에 따라야지. 그래서 20리터 3개에 60리터가 아니라 100유로 어치 55.8 리터만 받아 왔다.
또 필요한 것을 구하기 정말 어렵다. 한국에서는 근처 마트나 철물점에만 가도 쉽게 구하는 것들. 젓가락, 배터리 같은 것들이다. 또 볼트 너트 같은 것도 그렇다. 배에 한두 가지 작은 볼트가 필요하다. 기술자 무스카텔로와 로미오에게 보여주고 볼트를 채워달라고 하니 안 된단다. 스텐이 아니라서, 란다. 배에 쓰는 철물은 스텐이 맞지만 일단 끼워놓고 한국 가서 교체하면 될 것 아닌가? 그래도 안 된단다. 의외의 곳에서 완강하다. 나도 더 말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원칙 같은 것이 있나보다. 한국인의 속도와 돌관 정신은 통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하고 한국인은 빠르게 적응하고 이탈리아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느껴진다. 국지적인 곳에서 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오전에 무스카텔로를 만나 배터리 교환을 부탁할거다. 이번엔 안 된다고 해도 그냥 바꿔달라고 요구해야지. 나는 안전한 항해를 원한다. 라는 내 결심은 금방 무너졌다. 일단 바르타 90 12v 190ah 205유로짜리가 없다. 여기 마린 샾에서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185ah 짜리인데 가격이 480유로. 두 배다. 그냥 아무 자동차 배터리 전문점에 가는 게 낫겠다. 어차피 일반 트럭 배터린데. 그래서 관리인 파브리치오에게 갔다.
여기에 자동차 배터리 전문 가게가 있나?
있다. 20Km 밖에.
어이구, 택시를 탈 수 있나?
비쌀텐데? 내 친구 택시 번호를 알려줄게.
그럼 렌터카를 빌릴 수 있나?
있다. 20Km 밖에.
큰일이네.
어떤 배터리를 원하나?
12V DC 190Ah 트럭 배터리다.
잠깐만.
파브리치오가 여기저기 확인하고 내게 전화번호를 하나 건넨다.
배터리 가게야 여기에 연락해봐
오 고마워.
재빨리 전화를 해보니 영어를 단 한마디도 못한다. 낭패다. 돌아보니 파브리치오가 저 멀리 일하러 간다. 파브리치오! 나는 다급하게 큰 소리를 그를 불러 전화를 바꿔준다. 뭐라 뭐라 열심히 떠든다.
여기에 12V DC 190Ah 는 없대.
저런!
전부 200Ah 짜리라는데?
그럼 더 좋지! 가격은?
한 개에 190유로래.
왓! 만세닷 2개 주문해줘.
오케이 현금이지? 한 시간~ 두 시간 있으면 온대.
고마워, 파브리치오!
이렇게 용량이 충분한 새 배터리를 샀다. 트럭용 배터리라 한 개 무게가 35키로는 나가는 것 같다, 혼자 끙끙대며 배안으로 끌어 들이고 간신히 교체를 했다. 중간에 배터리 단자 볼트가 부러졌다. 가까운 마린샾에 가서 0.5 유로 주고 새로 샀다. 배의 전원을 켜니 잘 켜지고, 시동도 잘 걸린다. 문제없다. 낡은 배터리는 시동 걸면 바로 100% 뜨고 시동 끄면 바로 70%로 떨어진다. 인버터로 전자레인지 쓰면 인버터가 다운 된다. 새 배터리는 시동 걸면 1%씩 올라가고 인버터와 전자레인지로 피자 한 판을 다 데워도 끄떡없다. 30분가량 시동을 걸어 두자 마침내 100%가 된다. 좋다. 배에 시동을 걸고 기주할 때는 인버터 전기를 써도 된다, 그래도 아주 조금만 쓰자. 뭐든 무리하면 안 된다. 살살 하자.
이제 남은 문제는 레이마린 C80 Beep 알람 소리와 AIS 기능이다. 로마의 브로커 파브리치오는, 제일 가까운 레이마린 대리점이 그리스의 D-Marin Gouvia Marina 에 있단다. 항로를 보니 83.8 마일, 16시간, 디젤 사용량 32리터 거리다. 하루도 안 걸린다. 일단 Electromar Marine Electronics 에 메일을 보내 놓는다. C80의 알람 Beep 음과 AIS – ECU 작업 시간과 비용이다. 마리나 계류 비용과 물, 전기, Wifi 사용 여부도 같이 질문한다. 만약 긍정적인 답변이 오면 바로 출발할거다. 일단 구글링은 Raymarine c80 AIS – ECU가 1,250유로(170만 원 이상)로 나온다. 그렇게 조치해 놓고 그리스에 계신 지인 분께 그리스 마리나에 대한 질의를 드린다. 일단 그리스는 부가세 24%라고 한다. 환급도 안 된단다. 그래서 모든 물건이 엄청나게 비싸다고 하신다. 안 좋은 소식이다. 그런데 지금 캐나다에 잠시 가 계신다고 해서 그럼 em-trak A100 AIS Class A Transceiver를 구매 하실 수 있는지 여쭈었더니 캐나다도 단종 되었다고 하신다. 따로 방법이 없다. 만약 AIS – ECU 가 지나치게 비싸면 굳이 할 생각이 사라진다. 있으면 더 좋지만 없다고 항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오후에 잠시 시내로 나가 카페에 들렀다. 물론 에스프레소 한 잔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의도다. 그러나 3시가 되자 인터넷이 끊긴다. 곁의 카페로 가니 인터넷이 된다. 35M 속도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시키니 5.5유로다. 30분을 기다려도 175M 짜리 파일 하나를 못 올린다. 에잇! 하고 포기하고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성곽 구경에 나선다. 성루에 올라가니 오트란토 마리나가 다 보인다. 경치는 끝내준다. 사진을 찍고 여행자의 자세로 돌아선다. 천천히 돌아오다 아까 마린 샾에 들렀다. 볼보펜타 D2-75C 엔진의 오일필터와 엔진 벨트를 물어본다. 엔진 벨트는 없고 오일필터는 22유로 + tax 다. 오일필터만 2개 사니 무려 71,933원. 돈이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가치 없다.
혹시 싶어서 근처 고속인터넷 카페가 없니? 하고 물으니 왜냐고 묻는다. 나는 다음 항구도 검색해야 하고 일기예보도 봐야 하는데 인터넷 때문에 골치다. 하니까, 그럼 여기 마린샾 인터넷을 쓰란다. 건물 주변이 다되고, 퇴근 후에도 인터넷 켜 둔단다. 빙고!!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이따가 저녁 먹고 컴퓨터 들고 여기 쭈그리고 앉아 영상 파일을 좀 전송해 봐야 겠다. 속도가 괜찮으면 내일 오전에도 일찍 나와 데이터를 보내야지. 참 인터넷 거지가 따로 없네. 내 삶을 이탈리아식으로 바꿔야하나? 참.
그리스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린다. 가서 레이마린 C-80 Beep 음이라도 수리되면 좋겠다. 소망이 점점 작아지고 줄어든다. 그런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