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과오를 또 반복할 셈인가!
“잠깐 교장실로 오시겠어요?”
지난 2월 1일, 교장 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1학년 담임교사에 1학년 부장교사를 희망했지만 학교를 위해서 ‘생활안전부장’을 해 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업무라 고민을 해 보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나왔다. 교실로 돌아와 2023학년도 업무분장표를 살펴보았다.
안 전 생 활 부 | 기획 및 총괄 | 000 | ♣ 안전생활부 총괄, 인성교육·안전교육·학교폭력예방교육·생명존중 및 자살예방 교육 ♣ 아동학대 및 가정폭력예방교육 등 법정의무예방교육 총괄, 교권보호위원회 ♣ 학교폭력업무, 학교폭력전담기구 운영, 학생생활규정, 교원안심번호 ♣ 학교보안관 업무, 학교재난대피훈련, 민방위훈련, 안전강사 채용·관리, 방역도우미 채용·관리 |
학생안전 인권 | 000 | ♣ 노인교통 및 하교도우미, 녹색어머니회, 학생인권교육 ♣ 안전점검의 날 안전교육, 안전체험관 관리 |
전문 상담사 | 000 | ♣ Wee클래스운영, 학생상담 및 행정업무, 학생정서행동특성검사, 인터넷스마트폰이용습관진단조사 ♣ 외부상담기관 연계, 학교폭력관련 업무지원(즉시분리, 조치결과 상담교육 등)또래상담, 상담관련 업무 |
보건 | 000 | ♣ 감염병 예방(코로나19 방역활동, 건강상태자가진단),보건교육·보건수업(5G 17차시), 보건교육실관리 ♣ 양성평등교육, 성교육, 비만 및 흡연 예방교육, 약물오남용 예방교육, 학교성고충위원회 운영 ♣ 대기오염(미세먼지,오존,실내공기질측정 공문 및 보고), 아리수(물)관리, 교내소독 및 위생관리, 심폐소생술교육, 교직원 건강검진안내 ♣ 학생신체발달상황, neis건강기록부(자가진단)관리, 학생 건강(구강)검사 및 별도검사 |
영양 | 000 | ♣ 식생활 및 영양교육, 영양상담 운영, 급식실 운영 및 관리업무 전반, 학생 식당 관리, 위생·안전 관련 교육, 급식모니터링회 운영 |
교직 경력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보건교사와 영양교사, 전문상담사의 일까지 총괄해야 한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하나하나 새롭게 배워가면서 해야 할 일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업무들이 생겨난 근원에는 수많은 사회적 요구를 법령 제정을 학교에 부과하고 강제해 온 역사가 있다. 여러 고민 끝에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무래도 생활안전부장은 어려울 거 같습니다. 제가 1학년 부장을 희망한 이유는 작년에 5학년을 하면서 초기에 모니터링이 되지 않아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로 5학년이 된 아이들이 각 반에 2-3명씩 있는 것을 보고 1학년 때 제대로 모니터링을 하고 지원 방안을 찾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내가, 왜?
이렇게 써서 보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학교 인사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2023년에 적용할 규정을 합의하기 위해 1월 25일부터 1월 28일까지 3일 동안 교사회의를 하며 조율했다. 희망하는 학년이 경합일 경우의 학년 배정 기준, 보직교사로 학년 업무를 총괄하는 학년부장 배정 기준, 보직교사로 학교행정 관련 업무를 총괄하는 특수부장 배정기준, 보직교사 희망자가 없을 경우의 배정 기준 등이 핵심이다.
그 규정에 따라 2022년 이 학교에 처음 부임한 나는 학년 배정 점수 0점으로 어느 누구도 희망하지 않는 학년의 담임을 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게 되었고, 그 점수 덕분에 희망하는 학년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희망하지 않는 교사에게 다른 보직이나 학년을 권할 수는 있지만 실제 배정은 점수에 맞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장이 갑질 신고를 당하기도 한다.
점수가 낮아 어느 누구도 희망하지 않는 기피 학년에, 규정에 따라 배정되어야 했던 교사 두 명은 휴직원을 냈다. 학교 구성원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너무나 당혹스러웠다. 그 결과, 빈자리는 올해 전입한 세 명의 교사에게 그 학년이 배정되었다. 어느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이다.
규정과 점수에 따라 정량적으로 평가되는 공정한 사회
그렇게 학교는 철저히 규정과 점수에 따르는 공정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혹시나 마음이 약해서 교장의 권유에 부장을 하다가 몸과 마음이 함께 망가지는 교사도 있고, 점수에 따라 정해진 순번이 오면 휴직을 하거나 병가를 쓰는 식으로 회피하는 교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점수에 연연한다. 그래서 거의 모든 학교의 기피 학년은 희망자가 아닌 낮은 점수의 전입교사로 채워진다. 이것이 점수에 따른 공정이고, 한 해 고생하면 다음 해는 그 점수로 원하는 학년에 갈 가능성이 생기니 공정한 것이다. 그 이면에는 그만큼 철학과 전문성이 더 절실히 요구되는 학년 운영이 산으로 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경험적 사실이 도사리고 있다.
점수에 따른 공정이 이렇게 학교 인사 시스템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 즈음부터다. 그렇다고 10년 전 시스템이 좋았을 리는 만무하다. 정실인사, 학교장 전횡이 만연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여러 맥락, 교사 세대의 변화, 신자유주의의 극단화 등이 있지만 교원 정책 내에서는 교원평가와 교원성과상여금을 꼽을 수밖에 없다. 교원평가와 성과급이 도입된지 20년이 넘었다.
성과급이 도입된 초기에는 전체 교원 연봉 총액의 일정 비율을 떼어 성과급을 주는 것이니 호봉에 따라 등급을 산정하자는 것이 일반적인 논리였다. 거대한 반납 투쟁으로 몇 백억의 장학기금이 마련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서는 ‘호봉에 따른 성과급 지급’을 전면 금지하고 그런 지급 기준을 만든 학교에 대해 감사를 벌이며 학교 현장을 압박했다. 그에 따라 학교 현장은 지급 받은 성과급을 다시 균등 분배해서 똑같이 나누거나 돌아가며 성과급을 받는 순환 등급제 같은 묘안으로 대응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균등 분배를 부정한 방법이라고 규정을 바꾸며 최대 해임까지 가능하도록 교원 징계 양정표를 바꾸었다.
그 후 학교 현장의 성과급은 완전히 다른 기류를 타고 흘러갔다. 성과급이 없던 시절을 살았던 거부 투쟁 세대와 이후 교직에 입문한 세대는 확연히 달랐다. 일한만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교육행정 업무’를 많이 하는 보직교사들에게, 그리고 기피 학년인 6학년을 담임하는 교사들에게 높은 등급을 주는 것으로 정량 평가 지표들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성과급 정량 평가 지표가 만들어지니 그럼 어떤 업무에 보다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하는지, 6학년 말고 다른 학년 점수는 어떻게 되는지, 특수•보건•영양 교사들의 점수는 어떻게 배정해야 하는지 등으로 난타전이 벌어졌다. 우리학교가 3일에 거쳐 합의한 ‘인사규정’안에는 그런 정량평가 지표에 대한 합의도 포함되어 있다.
호봉에 따라 성과급을 주던 방식이 교육행정 업무를 많이 하는 교사에게 주는 것으로 바뀌자, 누군가 힘든 업무를 하면 ‘그래서 성과급 S 받잖아’로 변질되었다. 일한 만큼 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돈을 더 많이 받는 만큼 일을 더 해야 한다는 논리로 전환되었고, 그 일은 늘기만 하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그러니 교사들은 보직교사를 기피하게 되고 결국 ‘인사 규정’에 따른 점수로 학년을 배정하고, 보직교사를 배정한다. 그게 공정이다.
정량적 공정이 낳는 소외 현상, 기피학년
교사들의 희망을 1순위에 놓되 경합인 경우 점수에 따라 공정하게 학년을 배정하게 될 경우 ‘기피 학년’에는 전입 교사나 학년 점수가 낮은 교사가 배정된다. ‘기피 학년’은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 있는데 이유는 그 학교 내에서 상대적인 기준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가르치기 힘든 학년이 기피학년이었다면 요즘은 소통하기 힘든 학부모가 있는 학년으로 바뀌고 있다.
문제는 그런 학년일수록 대화와 소통, 협력과 참여를 중심에 두고 학생과 학부모를 만나야 하는데 ‘점수에 따라 억지 배정’된 교사들은 그럴 여유나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녀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상습적으로 민원을 넣거나 불만을 터트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설령 그런 시도를 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최근의 경향은 다수의 학부모에 의한 ‘담임 교체’ 요구를 넘어 개인화된 학부모의 ‘아동학대’ 신고로 이어지고 있다.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학부모들의 ‘담임교체’ 요구는 담임교사의 폭언이나 폭력에 대한 다수 학부모들의 정당한 대응이었다. 학교에 남아 있던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가 학부모들의 요구로 정리되었던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집단적인 ‘담임교체’ 요구는 거의 사라지고 개별적인 ‘아동학대’ 신고가 늘고 있다. 물리적․신체적 ‘학대’를 넘어 정서적 학대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학교 현장에 투사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는 있지만 학교 현장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게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
(사진은 참교육학부모회 펌)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개인의 요구와 이해가 다원화된 시대에 하나의 정답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숙의와 합의의 과정이 필요한데 그럴 기류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5월 23일 국회에서는 교육활동 보호 국회포럼이 열렸다. 교총은 “고의 중과실 없는 생활지도 아동학대(형사 책임) 면책”을, 교사노조연맹 “정당한 교육활동의 아동학대 면책”을 주장했다. 이에 학부모•시민 단체는 “교사의 아동학대 면책 법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리적으로 보았을 때 이태규 의원의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아동학대 면책”이라는 요구는 위헌적 요소가 있다. 아동학대인데 면책을 받겠다는 모순적 주장이다. ‘고의•중과실 없는, 정당한 교육활동’이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그렇다. ‘아동학대’로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아동학대 판정 중에서도 1.5%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을 때 그 화살은 어디로 돌아갈까! 짐작만 해봐도 아찔하다. “아동학대 면책 법안” 요구로 선동하기 전에 법리적으로 적합한 워딩을 찾아야 한다. 학부모 단체는 20년 전 성과상여금과 교원평가 도입에서 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위기 학생 뒤에는 위기 가정이 있고, 위기 가정 뒤에는 위기 사회가 있다는 사실만은 꼭 기억해야 한다. 지금의 사회적 위기는 위기 가정을 양산하고, 위기 가정에서 아동의 위기가 파생한다.
주저리 주저리 글이 길어졌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이야기는 6월 3일,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에서 진행될 월례포럼에서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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