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 나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돼서 우리 집에 왔다고 한다. 그러니 친부모와 헤어지던 때를 기억할 수 없다. 그럼에도 문득 문득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통과하는 순간이 있다. 버려진 강아지를 볼 때, 혼자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볼 때, 덩그러니 떨어진 낙엽을 볼 때도 그렇다. 아마 내 어딘가에 헤어짐의 슬픈 기억이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한강이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슬퍼해야 할지 모르는 슬픔, 생각할수록 화나고 서운한 슬픔.(20)
‘나는 애완용 아이가 아니라고요!’
속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우렁차서 귀가 터질 것 같았다. 아빠는 속을 많이 썩였다면서도 사랑해 주면서, 나는 꼭 예쁜 짓을 해야만 사랑해 주는 걸까. 엄마 아빠에게는 착한 딸이 돼야 하니까, 할머니한테만큼은 조금 못된 손녀딸이 되면 안 될까.
“주먹 꼭 쥔 폼이 한 대 치겄다. 위디 겁나서 말 쪼까 허겄냐? 저러니 주서다 키울 필요가 없다니께…….”(중략)
“나도 모르게 데리고 오셨잖아요. 나하고 상의해서 데리고 온 거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마음속으로만 외치던 말을 기어이 입으로 하고 말았다. 멍청하게 눈물까지 나와 버렸다.(62-64)
갈라진 벽을 모두 고치자 해마가 내 가슴으로 쏙 들어왔다.
“이제는 맘대로 나갔다 들어왔다 하네.”
밉지만 할 수 없다. 그냥 데리고 있을 수밖에.
나는 해마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손잡이에 머리를 기대고 계단에 앉았다. 해마는 내 가슴에서 나왔고, 나는 엄마 가슴에서 나왔다. 그렇게 미웠던 엄마가……보고 싶다. 자꾸 잠이 온다.(111)
【단상】 1인칭 시점으로 하늘이가 화자다. 공개입양에 대한 내용이다. 하늘이는 남부럽지 않은 집에 입양이 되었으나 엄마가 밉고 거북하다. 하늘이는 상냥한 엄마보다 투덜거리는 할머니가 편하다.
하늘이의 갈등은 점점 고조되어간다. 하늘이가 만들고 있는 종이 마을은 하늘이의 도피처다. 남이 보는 게 싫은 나만의 공간인데 그 피난처마저 허락도 없이 보여주는 상황이 되었다. 자신은 애완용으로 키워지는 듯한 느낌이다. 공고히 담을 쌓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상징적인 은유와 표현들이 등장한다. 이제 하늘이는 성장통을 겪으며 한 단계 성숙해나간다. 입양에 대해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동생도 생기게 되었고 가슴속에 사는 해마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알아간다. 입양에 관한 청소년 소설로 《훌훌/문경민/문학동네/2022》이 아주 매운 맛이라면 이 책은 순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