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武 4편..한국의 화포와 화학무기
아들아, 한국의 武..네번째 이야기는 한국의 화포 등 화약무기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인류의 문명을 획기적으로 바꾼 4대 발명품이란게 있단다.
그것은 나침반, 제지술, 인쇄술 그리고 화약(火藥)이지.
대완구와 비격진천뢰
화약은 중국에서 최초로 발명되었는데, 불이 붙고, 그리고 폭발을 일으키며, 그 위력이
강하여 곧 군사용으로 활용되기 시작했지. 최초 발명한 중국에서는 화약제조 기술을
일급비밀로 취급하여, 타국에 기술이 노출되지 않도록 극도로 경계했었단다.
고려 말에..우리도 화약 제조를 위해 어떤 재료가 있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단다.
하지만 화약의 핵심인 염초(焰硝)를 어떻게 추출해 내는가, 그 염초와 목탄, 유황을
얼마나 혼합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지.
처음엔 그저 중국에서 불꽃놀이용으로 수입해와서 즐기는 정도로만 생각했었단다.
다른 사람들이 겨우 그런 정도로 생각할 때, 그 화약을 남다른 시선으로 봤던 한 사람이
있었어. 그는 화약의 가치를 알아봤고, 우리 독자적인 화약제조술의 필요성을 알았고
우리 손으로 화약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공들여 연구했단다.
화약기술 최초 국내개발자, 최무선(1325~1375)
그분이 고려 말의 과학자이자 군인이었던 최무선(崔茂宣, 1325~1395)선생이었지.
최무선 선생께서 화약의 가치에 주목하고 화약제조술을 개발하려던 이유는 다름아닌
왜구(倭寇) 때문이었어.
그가 살았던 고려 말 수시로 쳐들어와 약탈, 방화, 살인과 납치..
온갖 나쁜 짓은 다하며 고려를 괴롭히던 그들을 막기 위한 무기를 얻기 위함이었고,
그럼으로써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평안케 하려는 뜻이었지.
고려사의 기록에 보면 1373년쯤에 최무선은 화살과 화통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점이 그가 화약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던 때인 것 같아.
1377년에는 본격적으로 화약을 제조하고 화약무기를 개발하는 화통도감의 설치를
건의하고 주도했단다.
이런 그의 노력은 1380년 지금의 군산 앞바다인 진포에서 왜선 5백척을 화포로 모조리
불태우는 대승으로 실현되었지. 진포대첩에는 최무선 선생도 참전하여 그 위력을 직접
확인하였단다. 그리고 그의 기술은 아들인 최해산(崔海山)이 이어받아 화약제조술을
발전시켜 나갔단다.
우리의 화약무기는 어떻게 발전하여 나갔을까.
먼저 고려말에 등장한 주화(走火)를 아느냐? 화살 아래에 죽통(竹筒)을 달고 화약을
채워넣고 심지에 불을 붙이면 화약의 힘으로 불을 뿜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날아가는
무기였단다. 달릴 走에 불 火를 쓰지. 주화(走火)
신기전과 화차
그리고 아들아 너도 잘아는 신기전(神機箭)이 나오고, 화차(火車)가 등장해.
신기전은 앞에서 얘기한 주화를 개량한 무기로 세종대왕때인 1448년에 개발했단다.
한마디로 말해, 신기전은 당대 최고의 로켓형 무기이고 현재로 말한다면 다련장 로켓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련장 로켓 (한국군 천무)
화약통을 달고 스스로 추진체가 되어 날아가는 신기전 수십기를 탑재한 발사체를
수레에 실은 장치를 화차(火車)라 부른단다.
이 화차는 조선시대 동안 수차례 개량되는데 특히 주목할 것은 문종대왕이 개량한
문종화차와 7년 조일전쟁 때 행주대첩 등에서 활약하며 유명해진 변이중이 개발한
화차이지. 수십발, 1백발에 달하는 신기전이 불을 뿜으며 동시에 발사되어 거의 1km를
날아가 쏟아진다면..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겠느냐.
문종대왕은 그분이 화차를 무려 7백대나 만들어 전국에 배치했었단다.
세자시절부터 세종대왕을 보좌하고, 측우기 개발과 화차개량, 병서편찬에 이르기까지
민생과 국방에 문종대왕의 헌신과 공적이 참으로 큰데, 세상 사람들이 그걸 잘 몰라주니
아빠는 늘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단다.
신기전 화차와 천지현황 총통
아들아, 이번에 소개할 화약무기는 너도 많이 봐서 익숙할 것이다.
진주성에서도 보고 통영 가서 거북선이나 판옥선에서도 봤지.
천, 지, 현, 황자총통이란다. 화포의 크기에 따라 큰 순서대로 천자문의 앞글자를 따서
이름했지. 7년 조일전쟁 때 우리의 주력 화기로 활약했었지.
특히 가장 큰 천지총통의 경우 대장군전이란 거대한 철심을 두르고 쇠로 된 날개를
가진 나무화살을 발사할 수 있는데 사거리가 거의 1200m에 달했어.
이 큰 나무화살이 날아가 왜의 함선이나 공성무기를 파괴해 버렸지.
대장군전
조선의 각종 총통 들 (대장군전과 장군전 장착)
승자총통
그리고 승자총통이라고 있었는데 7년 조일전쟁 때 왜군에게 조총이 있었다면,
우리에게 조총같은 무기가 승자총통이었어.
물론, 조총에 비해 사거리나 위력, 정확도가 뒤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승자총통의
존재는 큰 의미가 있었단다.
진주대첩 때도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미리 제작해둔 이 총통들의 활약이 대단했었지.
그리고 빠뜨리면 섭섭해할 조선의 비밀무기가 하나 있단다.
7년 조일전쟁 때 왜군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린 대단한 무기지.
이름은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라고 해.
날아가서 때리고 하늘을 뒤흔드는 우뢰란 뜻이야. 한마디로 말해 화포로 발사하는
세계 최초의 시한폭탄이라 할 수 있는데..
군기시의 화포장 이장손(李長孫)이란 분이 개발했단다.
비격진천뢰 철구와 부속품들
큰 쇠로 된 둥근 공 속에 화약을 채우고, 또 날카로운 쇳조각을 가득 채워 넣지.
비격진천뢰의 철구에는 뇌관 역할을 하는 구멍이 있고 거기에 발화장치인 죽통을
넣으면 되지. 죽통에 비밀이 하나 있단다.
죽통에는 도화선인 약선을 감는 나선형의 목곡이 있는데 필요에 따라 다섯번을 감거나
열번을 감을 수도 있었던 거야..이게 바로 시한폭탄의 시간조절 장치란다.
비격진천뢰의 원리
대완구에 비격진천뢰를 넣고 발사하면 이게 적진 속으로 굴러들어가 시간이 되면
쾅 하고 터지면서 비격진천뢰 속의 수십, 수백의 철조각이 사방으로 튀며 넓은 범위내의
적군을 한번에 살상하며 쓸어버리지. 그 위력과 참혹함이 상상을 초월했단다.
비격진천뢰는 경상좌병사 박진 장군이 7년 조일전쟁이 한창때이던 1592년 9월 8일
경주읍성을 수복하는 전투에서 첫선을 보였는데..
왜군이 이 비격진천뢰의 위력에 질려서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었단다.
이후로 전국 곳곳에서 비격진천뢰는 조선의 비밀무기로 왜군을 괴롭히며 최고의 무기로
명성을 떨치게 돼.
7년 조일전쟁 중에 파병된 명군에 의해, 그리고 이후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또 벨테브레나 하멜같은 외인들의 기술을 전수받아 수많은 화포를 개발하고 보유하게
되었지. 대표적인 것이 홍이포(紅夷砲), 호준포 같은 것이었어.
이 화포들이 또 2백여년 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운요호 사건 때에도 그대로 우리의
주력 화포로 활약하게 되는데..이 시점에서는 우리의 화포는 2백년 동안 제자리걸음,
서양의 화포는 눈부신 발전을 통해 사거리와 파괴력, 정확도까지 압도하여 우리가
상대가 되지 못하여 큰 피해를 입었단다.
아들아 너는 그때 그 역사의 현장과 우리의 화포를 강화도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갑곶진에서 봤었다. 그때의 기억을 한번 되살려 보려무나.
강화 광성보의 조선군 화포들(홍이포, 중포, 소포)
우리의 화약기술 개발은 우리를 괴롭히던 외적의 침입을 막음으로써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평안케 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는 다른 나라와는 다르게 침략이나 정복 목적으로 무기를 개발한 것이 아니었다.
대단하지 않느냐.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냐.
아들아, 또한 화약기술과 무기의 발전은 곧 우리 과학기술의 성장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강력한 외적에 맞서 승리를 가져다 주었던 원동력이었단다.
아빠는 말이다. 우리나라가 강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미국이나 중국 같은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나라,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개발하지만, 그 목적이 우리 조상들께서 그러하셨듯이..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지키려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작성자:방랑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