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무드라와 칼라다나의 눈길이 하늘과 초원이 맞닿은 곡선을 따라가다가 아스라이 보이는 갈색 늑대를 발견한다.
외로운 늑대는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독수리가 하늘 높이 미끌어진다. 두 사람의 정신도 비상하면서 캐라코름의 유적지를 벗어나 초원을 달려간다. 에르친과 울람바야르는 광막한 풍경 속에 찍힌 점 하나도 놓치지 않는 관찰력으로 게르를 찾아냈다.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서. 게르 주인장에게 ‘센베노(안녕하세요?)’를 교환하고, 안으로 들어가 앉는다.
자기네들끼리 코담배(흐륵)을 서로 권하고 나서, 주인장 부인 ‘돌고르’ 아주머니가 수태차를 한 사발씩 따라준다. 몽골의 밤이 어둠에 물들어 간다. 난로에 소똥을 피우며 저녁을 먹고 마유주(아이락)을 주거니 받거니 얼근히 취하게 마신다.
<게르(Ger)>
울람바야르 아저씨가 흐미 창(唱)을 하고 주인장은 독수리 춤을 춘다. 주인장 ‘다시쩨외그이’는 젊었을 때 씨름선수였기에 독수리 춤을 출 줄 안다. 게르 밖 하늘에는 밤송이나 사과만큼 굵은 별들이 반짝인다. 물에 젖은 화선지에 먹물이 번져가듯 별 주위로 빛이 번져나가 푸른 허공이 별빛으로 목욕을 하는 듯. 어떤 별들은 빛을 물 흘리듯 뚝뚝 떨군다. 고호의 그림에 나오는 소용돌이치는 별들도 보인다. 몽골의 푸른 밤하늘은 별들의 천국이다. 칼라무드라와 칼라다나는 손을 하늘로 뻗쳐 별빛을 받는다.
자나두와 캐라코름의 흔적은 없을지언정 두 도시의 하늘을 덮었던 밤하늘 별빛은 그대로 손에 담긴다.
주인공의 두 발은 무한으로 연장된 땅을 밟고 있으니, 무한과 무한 사이의 틈새를 이어주는 유한이 바로 인생이다.
‘바야를라(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주인장에게 해주니, ‘다라 올찌(또 만나요)’라고 응대한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에게나 하는 말, 침묵이 말을 압도하고, 허무가 존재를 먹어버리는 초원에서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일이기에.
랜드크루저가 달린다. 길은 있어도 없다. 길을 간 흔적이 없으므로, 길을 만들어서 간다. 다만 방향만 감지하고 갈뿐이다. 고비사막으로 들어섰다. 여기에서는 여우가 천천히 걸어 사라진 곳에서 어린 왕자가 나타날 수도 없고 장미도 피어날 수도 없다. 모래바람은 모든 것을 바스라뜨려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 장구한 시간동안 모래알 끼리 서로 부딪히다가 먼지가 되어 펄펄 날린다. 가루먼지가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회오리를 일으키면서 공간속으로 퍼져나간다.
누런 모래 바람, 황사(黃砂)다. 황사 바람이 모래밭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땅 위에 놓인 물건을 무엇이든지 집어던지고 박살을 내버려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내 팽개쳐버린다. 사막의 정령이 광폭한 구토를 해대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모래먼지를 토해내어 하늘로 날려 보낸다. 먼지구름을 타고 중국본토로 한반도로 일본까지 날아가 공기를 혼탁하게 하고 흙먼지의 비(토우,土雨, sand raining)를 내린다. 황사가 일면 온 천지가 누런 안개에 휩싸여 여행자를 어디가 어디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감각을 잃게 하여 망연자실하게 만든다. 그때는 그 자리에 죽은 듯이 엎드려 바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한다. 일행이 탄 랜드크루즈가 아지 못하는 사이에 거대한 붉은 모래폭풍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차가 흔들 흔들 거리며 바람에 들어 올려져 공중으로 붕 뜬다. 모래바람에 휘말린 거다. 천지가 캄캄하여 지척을 분간 못하겠다. 어리둥절 하는 사이 차가 추락한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네 사람을 태운 차가 땅으로 툭 떨어지면 차체가 짜부러지면서 사람들이 그 충격으로 다칠 터인데. 그런데 차가 마치 나비가 날듯이 살살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왜 그럴까? 광폭한 모래폭풍에 당연히 날아오르거나 옆으로 뒤집히는 것이 정상일 텐데. 땅 밑으로 꺼지다니 이건 무슨 조화인가? 다행히도 자유낙하가 아니고 종이비행기처럼 천천히 떨어진다. 중력이 끌어당기는 자유낙하라면 떨어져 바닥에 부딪히는 충격으로 두 사람은 살아남지 못할 텐데. 사뿐한 소프트 랜딩(soft landing, 연착륙)이다.
반중력 현상(anti-gravity)인가? 지구위의 모든 물체는 지구 중심을 향하여 자유낙하 하기 마련인데, 지구 중심을 향해 끌어당겨지는 힘을 중력(gravity)라고 하는 데, 특이한 지형 구조상 어떤 미지의 힘이 작용하여 중력의 작용이 제로가 되는 공간이 생겨날 수 있다. 이런 경우 반중력이 형성된다. 이는 시공간의 만곡으로 말미암아 한 시공세계와 다른 시공세계 사이를 연결해주는 웜홀(wormhole, 벌레구멍)에서 나타날 수가 있다. 말하자면 고비사막의 한 지역이 바로 반중력이 적용되는 공간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바로 이 웜홀에 빠져든 것이다.
<우주공간에 생겨난 웜홀(wormhole)>
랜드크루저는 천천히 땅 속으로 떨어진다. 깊은 심연으로 속으로, 한 점 빛이 스며들지 않아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런데 홀연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툭 트인 지하세계가 펼쳐진다. 보름달이 뜬 것 같은 은은한 조명아래 저 아래로 작은 도시만한 공간이 펼쳐진다. 온화한 공기와 청명한 기운이 느껴진다. 거주하는 인간이나 건물이나 시가지는 없고 다만 푸르게 펼쳐진 초원만 시야에 가득하다. 거칠 것 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초원 한 가운데 세워진 우윳빛으로 빛나는 거대한 대리석 장방형 건축물은 무엇일까?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에르친과 울람바야르를 찾았다. 모래폭풍 속에 휘말릴 때 가이드 두 사람은 차에서 튕겨 나갔기 때문에 실종되지는 않았나 걱정했는데. 두 사람은 조금 떨어진 지점으로 착지하여 있다. 네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무사함을 확인하고는, 기적 같은 일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일단 차 안에서 이동에 필요한 품목을 챙겨 개인별로 휴대하고 지하세계를 탐사하러 나섰다. 네 사람은 먼저 거대한 장방형의 건축물을 향해 걸어갔다. 네 사람이 두 팔을 벌리고 맞잡아도 그 건축물의 세로를 감당하지 못한다. 양 쪽 두 면은 정사각형이고 다른 양쪽 면은 직사각형인 직육면체의 단순한 대리석 건축인데. 직사각형으로 보이는 면은 대충 봐도 황금비율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울람바야르가 건축물의 중앙에 황금으로 써진 문자를 발견해냈다.
‘아, 몽고의 위대한 아버지시여. <세계의 주인 징기스칸 여기에 잠들다>라고 써진 것을 보니 여기가 당신의 무덤이십니다그려.’ 에르친이 미친 듯이 소리친다. ‘야호, 우리가 징기스칸의 영면처를 발견했다!’
두 사람이 자세히 보니 몽골 알파벳(Mongol bicig)가 위에서 아래로 써져 있다.
천고의 비밀이었던 징기스칸의 무덤이 여기에 있었구나. 영원한 수수께끼가 여기서 풀리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