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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샬롬(제18일. 2026.4.2.목)
삿6:11-24 *찬송:412장
오늘은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샬롬’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평강’이라는 뜻입니다. 샬롬은 평강이나 평화라고 번역합니다. 평강은 우리의 삶에 가장 본질적인 축복입니다. 평강은 우리의 삶의 즐거움이며, 소망의 삶으로 우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한들, 평강이 없다면 가장 불행한 인생을 살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삶에 기쁨과 소망이 없고 절망스럽습니까? 여호와의 평강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이 평안하십니까? 감사하십시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삶의 환경이 평안이 없고,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평안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평강이 없는 이스라엘과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 찾아가심으로 그들에게 살롬이 시작되었듯이, 오늘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진정한 만족과 평안 곧 ‘살롬’을 누리는 성도가 되셔서 마음에 평강이 찾아오시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사람은 평화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밤새 안녕하지 못한 날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음 놓고 평안하게 잠을 자지 못하는 세월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때문에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이 수많은 전쟁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남쪽에서 애굽의 세력이 강해지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이스라엘을 쳤고, 북쪽에서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 등이 힘이 강해지면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지배를 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러한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끊임없이 전쟁을 겪어야만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단어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아마 그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만장일치로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샬롬’그들에게 가장 낯익은 단어, 그러면서도 엄청나게 신비한 단어, 그들의 모든 꿈과 이상을 포함하고 있는 소중한 단어가 ‘샬롬’이라는 이 한 단어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사로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기 때문에 택하신 자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압제자의 손에서 고통당하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11절에 기드온은 7년동안 미디안 사람이 두려워서 포도주틀에서 밀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12절‘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13절에 기드온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왜 이스라엘이 이 모든일이 일어났느냐고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14절‘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16절‘내가 반드시 너와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사 승리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샬롬을 찾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여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둘러싸여 위축되고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살아갑니다. 그로 인해 무력감에 시달리고 패배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과 환경적인 상황속에서 신음하는 현대인들에게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떤 말씀을 들려주고 계실까요? 여호수아 이후 사울이 왕이 될 때까지 이스라엘은 사사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사사는 왕이 아닙니다. 하지만 사사는 군사적, 정치적 지도자로서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사람들입니다. 사사라는 말이 가진 뜻은 ‘쇼-페-트/재판한다, 다스린다, 구원한다’인데, 사사는 주로 구조자의 성격이 강합니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사사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주변 나라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백성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사사는 왕처럼 영구적인 지도자가 아니고 필요에 따라 활약하는 지도자입니다. 온 이스라엘을 다스린 사사도 있지만 대개 한 부족이나 지역을 다스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기드온은 그 중 그래도 유명한 사사입니다. 기드온 하면 3백 용사가 생각납니다. 기드온이 사사로 부름 받은 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한 때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7년간 붙였습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얼마나 이스라엘을 힘들게 했든지 그들의 학정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구멍과 굴과 산성을 만들고 숨어 살았습니다. 너무 고통이 심하자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었다는 말씀은 그들이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았다는 뜻입니다. 기드온이 발견한 하나님, 그분이 바로 ‘여호와 샬롬’ 평강의 하나님입니다. 상주감리교회 특별새벽기도회에 참여한 성도여러분에게 ‘여호와 샬롬’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드온이 사사로 부름 받았을 때 이스라엘의 상황은 참담함 그 자체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고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긴채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돌아 온 것은 비참한 현실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전을 위해 동굴속에 숨어 지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애써 씨를 뿌리면 적들이 쳐들어와서 밭과 농작물을 다 망쳐 놓는 것이었습니다. 기껏 키워 놓은 가축도 다 약탈당해 남아 나는 것이 없었습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사람들이 쳐들어와서 너무 핍박하므로, 산 속으로 피신하여 살았습니다. 파종 단계부터 쑥대밭을 만들었습니다(3,4).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않았고, 양, 소, 나귀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단 한 순간도 평강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떠나서는 참 평강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말렉이 쳐들어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합니다. 이것은 광야에 버려진 양과 같습니다. 살 가망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전쟁과 난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늘 두려움이 따라 다닙니다. 건강에도 문제가 생기고,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인간관계에서도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볼 땐 만족함이 없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이스라엘의 모습은 절망입니다. 상주감리교회 특새에 참여한 성도여러분들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샬롬이 아니라 절망입니까? 위기입니까?
2.샬롬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입니다. (시 23편)
이 세상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완전하거나 정말 만족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꽃이 참 아름답지만 자꾸 보면 그게 그겁니다. 제주도에 가면 여미지 식물원이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식물과 꽃들로 가득합니다. 옛날에 한번 가본적이 있는데 첨에는 눈이 휘둥그러집니다. 근데 자꾸 보니까 돈이 아깝더라구요. 그래서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들과 제주도 투어할 때에는 여미지 식물원은 안갔습니다. 이 세상 것으로는 참 만족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 미약한 군대도 갖고 있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구할만한 용맹스런 장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상황이 좋아지리라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 몰래 숨어서 그 날 먹을 양식을 위해 포도주틀에서 밀이삭을 조금씩 타작하고 있는 겁장이 소년을 향해 하나님이 큰 용사여! 하고 부르시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기드온은 약한 가문인 므낫세 지파중에서 가장 약한 집안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집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처럼 작은 자가 어떻게 그렇게 어렵고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고 큰 용사란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기드온을 택한 것입니다. 현재의 기드온은 아무런 특별한 점도 없고 오히려 겁장이고 약한자이며 침체된 사람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은 아직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보시고 ‘큰 용사여’ 하고 부르신 것입니다. 다시말해 ‘너는 결코 작지 않다. 너는 시시하게 끝날 인생이 아니다. 반드시 큰 일을 낼 인물이다’하고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시23:1절‘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노래한 것입니다. 양은 스스로 살 수 없습니다. 목자가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양은 흉내쟁이랍니다. 얼마나 웃기는지 앞서가는 양이 걸어가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찔뚝하면 뒤따라오는 양들도 그 자리에 가면 괜히 찔뚝하고 간다는 것입니다. 앞 양이 넘어졌다 일어나면 뒤따르는 양이 모두 괜히 넘어졌다 일어난다는 겁니다. 양은 목자 없이는 살 수 없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를 시100:3절‘그의 기르시는 양’이라고 말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다윗도 너무 어리고 작은 자라 아버지조차도 그 가능성을 제로로 보았습니다.
사무엘이 찾아왔을 때 형들은 다 보여주면서도 다윗은 들로 나가 양이나 지키고 있도록 쫓아 보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어리고 작은 자 다윗의 가능성을 보시고 그를 불러다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십니다. 그러자 다윗은 골리앗이 버티고 있는 전쟁터에서 전혀 기죽지 않았습니다. 큰 일을 내지 않습니까? 더이상 작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도 이처럼 지금도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부족하고 불완전한 사람들을 보시며 미래의 가능성을 보셔서 장차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다듬고 성숙케 하였을 때 변화되어 헌신할 모습을 미리 보시고 감격하시는 하나님입니다.
3.샬롬은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과 함께 할 때 누리게 됩니다.
렘29:11절‘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사26:3절‘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사48:18절‘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사9:6절‘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이름은 평강의 왕이라’, 요14:27절‘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샬롬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은 ‘샬롬’이 가득했던 곳이었습니다. 왜 샬롬을 잃고 에덴에서 쫓겨났을까?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기드온과 이스라엘의 상황은 극심한 어려움 속에 있었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가 바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이고 부르짖을 때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이런 상태에 있다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시고 부르짖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니까 절망이 사라지고, 샬롬이 임했습니다. 숨어서(포도주틀에서) 밀을 타작하던(삿6:11)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구조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서면 하나님이 일(역사)하십니다. 메뚜기 떼처럼 많은 연합군을 3백 용사로 물리치게 하셨듯이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을 박살냈습니다.(7:13) 빌 4:6-7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지켜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여호와 샬롬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오셔서 막힌 담을 허실 때, 우리에게 여호와 샬롬이 이뤄졌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여호와 샬롬을 전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가족에게 이웃에게 지인에게, 여호와 샬롬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담돼도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키지 않아도 순종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샬롬은 우리에게 축복이요, 세상을 향한 주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대제사장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평강을 기원하라고 한 것입니다. 평안을 비는게 우리 습관이 되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여호와는 그 얼굴을 김영윤에게로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축복하며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