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안경을 사려면 안경점에 가야 한다. 시력 검사를 하고, 안경이 얼굴에 맞는지 수없이 직접 껴본다. 안경을 살 때만큼은 인터넷의 편리함을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이런 상식을 깬 회사가 있다. 맞춤 안경을 온라인 배송하는 회사 '와비 파커(Warby Parker)'가 그것이다. 이 회사는 고객이 원하는 안경 견본을 최대 다섯 종류까지 배송하고 최대 5일간 직접 써보며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골라서 반송한 다음 홈페이지에 시력, 눈동자 사이 거리 등을 입력하면 2주쯤 뒤 맞춤 안경을 받을 수 있다. 1개에 95달러. 모든 배송 비용은 회사가 부담한다. 이른바 '집에서 써보기(home try-on)' 시스템이다.
와튼스쿨 졸업생 4명이 만든 뉴욕 기반의 이 벤처기업을 두고 남성 패션 잡지 지큐(GQ)는 '안경계의 넷플릭스'라고 극찬했다. 원하는 DVD 영화를 고르면 집까지 택배로 배송해 주는 넷플릭스와 닮은꼴이란 것이다.
이 회사는 2010년 창립 첫해 안경 2만개를 팔았고 이듬해엔 10만개, 작년엔 25만개를 팔았다.
와비 파커의 창업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길보아씨는 한 인터뷰에서 "다른 온라인 쇼핑몰은 소비자들이 지금 당장 물건을 사도록 유도하는 반면, 와비 파커는 심사숙고한 다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살 수 있게 하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성공의 또 다른 요소는 싼 가격이다. 명품 브랜드의 3분의 1 정도다. 자체 디자인한 다음 중국에서 제작하고, 미국에서 렌즈를 끼워 판다. 직접 디자인하므로 로열티를 낼 필요가 없고, 온라인으로 판매하므로 매장 운영비도 낼 필요가 없어 값을 낮출 수 있는 것이다.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라이방'으로 유명한 세계적 안경 브랜드 '룩소티카'와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공장에서 만든다.
창업자 중 한 명인 헌트씨는 한 인터뷰에서 "안경처럼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플라스틱 재질인 데다 제작 공정이 복잡하지도 않은 제품이 왜 아이폰만큼 비싼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혁신적 유통 시스템이 성과를 내고 회사 평판도 좋아지자 투자금도 넉넉하게 모였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벤처 투자를 총 4150만달러(약 443억원)나 받았다. 와비 파커는 지난해 4월 뉴욕에 처음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고, 지금은 5개로 늘어났다. 보통 기업들이 오프라인에서 시작해 온라인으로 확장하는 것과는 거꾸로 간 것이다. 고객이 오프라인 매장에서 안경을 써보면 그 정보가 홈페이지에 저장돼 이후 온라인으로 안경을 살 때 쉽게 선택할 수 있다.
안경을 산 사람들이 안경을 낀 자기 모습을 찍은 사진과 구매 후기를 인터넷과 SNS로 옮기면서 와비 파커는 성공 가도를 달렸다. 길보아씨는 "우리 매출의 절반은 구전(口傳) 마케팅 덕"이라고 했다.
와비 파커는 탐스슈즈를 모방해 '원포원(1 for 1) 기부'를 한다. 소비자가 안경 한 개를 살 때마다 개도국에 시력 보정용 저가 안경 한 개가 전달된다. 이장우 이장우브랜드마케팅그룹 대표는 "와비 파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요즘 흐름의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