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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수 엄마
원작 김 용 만
극본 조 영 훈
연출 임 종 성
나 오 는 사 람 들
기 용 문 씨(40중반)
능수 엄마 기사 1(운전)
미스 강 기사 2
재 식(30대) 해 설
박사장
M 시그널
E 식당 소음
재 식 수원에 있는 정비공장에서 도장반장으로 있습니다. 공장은 작지만 무척 바쁩니다. 춘성옥 소문은 전에부터 들었지만 염치가 없어 이 제야 찾아왔습니다.
기 용 그래. 찾아와 줘서 고맙다. 그 동안에 아주 딴 사람이 돼 있구나. 몰라보겠어. 들어가자.
해 설 기용씨는 재식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힘도 좋고 꾀도 부릴 줄 모르는 착한 아이였지만 주차한 차에서 밤에 몰래 휘발유를 빼내 팔다가 불을 낸 장본인이었다. 불이 나자 도망쳤고 그동안 소식을 모르다가 15, 6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재 식 죄송합니다. 진작 찾아뵈야 하는데요. 공장 태우고 홧김에 노름도 하셨다죠. 모든 게 저 때문에...
기 용 불내고 어디 갔었니.
재 식 부산에요. 사장님한테는 돌아갈 수 없고 저도 힘들게 보냈어요. 참, 사장님도 부산 사시다가 대구로 가신 거죠?
기 용 그래. 공장이 철거되는 바람에...
해 설 기용씨는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능수엄마를 불러 술상을 봐오게 했다. 술을 마시지 않고는 엉켜오는 마음을 추스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E 술 따르는 소리
기 용 대낮이니까 한두 잔만 먹거라. 너를 이렇게 다시 보다니...감회가 깊다. 널 다시는 못 볼 줄 알았어.
재 식 죄송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졌습니다.
기 용 다 지나간 얘기 아니냐. 사실 당시에는 죽이고 싶도록 네가 미웠 더랬지. 날 불행하게 만든 놈...날 망하게 만든 놈....얘길 하자면 내가 경찰을 그만 두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겠구나. 광택공장 을 차린 게 경찰을 그만두고 난 다음이었으니까.
재 식 그래서 제가 더 죄송하죠. 사장님 첫 사업이신데 제가 망쳤으니까 요.
기 용 경찰을 그만두고 내가 자동차 광택센터를 처음 냈던 건 부산이었 어. 네가 직원으로 들어오기 훨씬 전의 일이지. 부산에서 처음 시 도한 업종이라 어려움이 많았어.
재 식 처음엔 직원 두 사람에 광고지를 들고 자가용마다 찾아 다니셨다 면서요. 전에 들었던 것 같아요.
기 용 그랬지. 내가 고객들을 찾아나섰던 첫날 일이 생각 나. 주말을 택 해 하얀 작업복을 입고 직원 둘을 데리고 골프장으로 갔어. 동래 에 있는 골프장이었는데 마침 한여름이어서 햇볕은 또 얼마나 뜨 겁던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직원들을 시켜 트렁크에서 장비 를 꺼내게 했어. 둥근 그라인더처럼 생긴 광택기에 왁스통, 콤파 운드에 희석제를 섞은 연마제, 변압기와 센더 따위를 꺼냈어. 나 는 주차장에 쭉 세워놓은 고급승용차 중에서 때가 끼고 가장 칙 칙한 차를 골라 기사에게 말했어.
M 회상
E OFF에서 차 경적
기 용 (젊은 날) 차를 잠시 맡겨 주십시오. 그럼 반짝반짝 유리처럼 빛 을 내드리겠습니다.
기사1 공짜로 말이오?
기 용 그렇습니다. 오늘이 특별 선전기간이거든요. 그냥 해드리겠습니다.
기사1 저게 다 광을 내는 기곈교.
기 용 그렇습니다. 어느 차든 거울처럼 광을 낼 수 있습니다.
기사2 그럼 저 차도 광이 납니꺼?
기 용 아, 저 검은 색 지프요.
기사2 여기 저기 래커 칠로 땜을 한 데다가 먼지 때가 절어 우중중한 데도 말입니꺼.
기 용 물론입니다. 여기 주차한 차 중에서 젤 깨끗한 차로 만들겠습니 다.
기사2 진짠교?
기 용 못 믿으시면 그럼 먼저 본네트만 닦아보도록 하지요.
기사2 좋소. 그라믄 해보소.
E 윙, 기계음
기 용 (현재) 작업 준비를 끝낸 나는 구경꾼을 모으려고 차 보닛에 광택 기를 대고 스위치를 올렸어. 왕왕대는 기계음이 온 주차장에 진동 했지. 그늘 밑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기사들이 작업광경을 보러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어.
재 식 성공하셨네요. 목적이 사람을 모으는 건데 일단 관심을 보이고 모 여들었으니까요.
기 용 들어봐. 보닛에 콤파운드 액을 묻히고 기계로 갈며 직원들에게는 걸레로 닦게 했어. 거기에 왁스를 칠하고 융 걸레로 닦으니까 보 닛은 거울이 돼서 햇살을 튕겼어. 나뭇잎들이 그 거울 속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지.
E 웅성거리며 탄성
기사2 와아, 기똥차데이. 이기 내 차가 맞나?
기사1 아찔하구마. 똥차가 왕차 됐데이.
기 용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지. 대성공이었어. 공장에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 그런데 두달 만에 집과 공장이 철거 되는 바 람에 문을 닫아야 했어. 중앙동 철거지역 빈터에 공장을 세웠더랬 는데...그게 실수였어.
재 식 그래서 대구로 오셨군요.
기 용 대구로 와서 명덕동 로터리에 있는 공터에 월세로 천막을 쳤어. <로타리공업사>라고 쓴 간판을 내걸고 부산에서처럼 선전했더니 금방 자가용차들이 밀려들었지. 곧 소문이 나서 한번 다녀간 손님 은 우리 공장만 찾았어. 대구에는 기업적인 큰 공장도 여러 군데 있었는데 말이지.
재 식 (머뭇거리는) 그런데 제가 그걸...
기 용 그건 한참 뒤였지. 우리 공장은 네가 우리 공장에 오기 전에 이미 눈부시게 성장해 있었으니까. 모두 내 신용 때문이었어. 조금이라 도 미진하면 출고를 시키지 않고 다듬기를 반복해서 마침내 만족 스러워야 손님에게 내놨으니까.
재 식 사장님 신용은...알아주는 신용이었죠.
기 용 아버지 가르침 때문이었어. 어려서부터 신용을 첫째로 말씀하셨으 니까. 보릿고개 시절 봄철에 쌀을 꾸어 먹고 가을에 갚을 때도 아 버지는 꼭 쌀을 키로 까불어서 뉘를 가리고 나서야 갚았으니까...
재 식 네.
기 용 날이 갈수록 고객 수가 불어났어. 개인 승용차와 회사 차는 물론 도청, 시청, 법원 차...경찰, 검찰청 차...영남대, 계명대 차...심지어 미군부대 차들까지 우리 단골이 될 정도였으니까.
재 식 알아요. 저도 그 무렵에는 <로타리공업사> 직공이었잖아요. 그런 데 제가...
기 용 그랬지. 제일 잘나가던 때에 공장이 불이 났지. 공장에 와 있던 고급 외제차를 비롯해서 거기 주차해 있던 차들이 모두 타는 바 람에 금방 알거지가 됐지.
재 식 다 저 때문이에요. 죽을죄를 졌습니다. 사장님. 절 때려주시고 짓 밟아주세요.
기 용 들어봐라. 그때도 정신만 바짝 차렸으면 기술과 시설이 남아 있었 으니까 곧 재기할 수도 있었는데 이번엔 화투에 미쳐 진짜 거지 가 되고 말았어.
재 식 그 얘기 듣고 저도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기 용 노름꾼은 나까지 모두 여섯 명인데 그 중에는 관광버스 사장도 있고, 건설회사 사장도 있었어. 지물도매상, 대형 중국집 사장도 있었구...우리를 뒤에서 봐주는 패거리로는 장소 제공자...돈 대주 는 물주...식사를 제공해주는 식모..담배, 음료수를 사다주는 처녀 까지 가지각색이었어. 그들은 수고비조로 이리 챙기고 저리 챙겨 결국 노름꾼들의 돈은 거개가 다 그리로 흘러 들어갔지. 결국 화 투판에 낀지 석 달 만에 나는 거지가 되고..관광버스는 버스를 다 날리고...도매상은 거래처를 날리고....중국집 사장은 아버지가 홧 김에 목매 자살했는데 장례를 치르기가 바쁘게 다시 화투를 잡았 다고 했어. 풍문에 들으니 탈탈 다 털리고 나서도 노름판 주변을 기웃대며 개평이나 뜯었다는데 지금 어디서 뭘 하며 사는지 궁금 할 때가 많아.
재 식 ....네.
기 용 근데 참 묘한 생각을 할 때가 있어. 그때 만약 내가 노름판에 끼 지 않았더라도 오늘날의 내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야...처자식 을 굶길 수 없어 부득이 서울로 떠나야 했구...그 바람에 포장마차 를 하게 됐구...그렇게 생각하니 노름판에 끼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드는 게...
재 식 네?
기 용 그리고 더 우스운 건...노름판에 끼도록 동기부여를 해준 그 화재 사건...그날 네가 일으킨 실화마저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지 뭐냐. 그날 재식이 네가 불을 안 냈더라면 아직까지도 대구 어디쯤에서 차나 닦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면서 말이야...
재 식 사장님...
M 브릿지
E 소줏집 분위기
E 불판 위에 안주...지글지글
E 술잔에 소주 따라서
박사장 (마시고) 크으...우리 복잡하게 생각 말고 간단히 계획을 세워요. 평강댁이 문형 부인 맞죠?
문 씨 무슨 말씀이세요.
박사장 대답해 봐요. 문형 부인 맞죠?
문 씨 당연하죠. 내 마누라 맞죠. 사실적으루나...법적으루나 다.
박사장 박사장의 물음에 문씨가 명쾌하게 대답한다. 둘은 소주 한 병을 비우고도 금방 한 병을 더 시켰다. 불판 위에는 삼겹살이 자글자 글 익고 있다. 박사장은 문씨와 어울리면 금방 춘성옥을 넘어뜨릴 해법이 나올 것 같은데 손에 잡힐 만한 성과가 없자 조바심이 탄 다.
박사장 세상에 문형 부인과 가장 친한 사람이 문형이니 부인을 설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겠죠?
문 씨 물론이죠. 식은 죽 먹기죠.
박사장 맞아요. 식은 죽 먹기죠. 그런데 그 식은 죽 먹기에 문제가 있으 니까 그게 문제 아니오.
문 씨 무슨 말씀이세요.
박사장 저번 일을 보니 보통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문형은 부인하고 가장 친한 게 아니라 가장 먼 적이더라...그 말이에요. 왜 그렇소?
문 씨 걱정 마세요. 그거라면 간단해요.
박사장 왜요. 또 몽둥이찜을 하게요.
문 씨 그야 필요하다면....
박사장 문형은 그게 틀렸어요. 아무 때나 완력을 행사하려 드는 거...이솝 우화에 나오는 햇볕 얘기 몰라요. 바람이 불면 추워서 있는 대로 옷을 껴입고 몸을 오그리지만 햇볕을 비춰주니까 껴입은 옷을 다 벗어던지더라는 얘기...
문 씨 알죠, 그 얘기.
박사장 몽둥이 대신 안아줘봐요. 여자 맘을 그렇게 몰라요? 정성을 다해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여봐요. 귀가 다 간지럽게 속사여보란 말요. 거기다가 사나이 굵은 눈물 몇 방울을 더 보태면 금상첨화 겠지. 어디 몽둥이찜에 대겠소.
문 씨 무슨 말씀인지 알아요. 그거야 말로 식은 죽 먹기죠.
박사장 웬놈의 식은 죽 먹기가 그렇게 많아요. 이래도 식은 죽 먹기...저 래도 식은 죽 먹기...다시 말하지만 간단한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말 라는 말이오.
문 씨 내가 왜 일을 어렵게 만든다고 그러세요, 자꾸?
박사장 이런 젠장.
문 씨 왜요, 내가 또 뭘 잘못했습니까.
박사장 죽이는 일이니까 하는 소리 아니오.
문 씨 죽여요?
박사장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문 씨 무슨 말씀이신지...
박사장 죽이는 일이라니까.
문 씨 (조심스럽게) 누구를.... 누굴 죽이는데요.
박사장 춘성옥이지 누구겠소. 춘성옥을 죽여야 문형과 내가 성공한다구.
문 씨 어떻게 죽이는데요.
박사장 간단해. 아주. 짜게만 절이면 돼.
문 씨 예? 뭐를요.
박사장 배추.
문 씨 배추를요? 배추를 짜게 절여요?
박사장 그거요. 바로.
문 씨 배추 짜게 절이는 게 뭐가 어려워서요. 그런 거야...
박사장 쉽지.
문 씨 그런데요.
박사장 어렵기도 하구.
문 씨 뭐가 어려워요. 배추가 있고...짜게 절이는 건데...
박사장 문형 부인이 그걸 할 수 있을지 모르겠소.
문 씨 참, 사장님도...걱정하실 일을 걱정하셔야죠. 그야 말로 식은 죽... (하다가) 걱정 마세요. 그런 거라면 백번도 더 하게 할 수 있으니 까요.
박사장 그리만 되면 얼마나 좋겠소. (일어난다)
문 씨 왜요, 그만 가시게요.
박사장 오늘은 그만해요. 문형이 평강댁 맘을 홀린 후에 마시자구요. 그 때는 아주 코가 비뚤어지게 말이오...
M 코드
E 차 시동 걸려 있고
문 씨 그럼 사장님 안녕히 가세요.
박사장 예, 또 봅시다.
E 차 움직이기 시작
E 그 승용차 안
박사장 (혼잣소리) 우라질. 저 등신 같은 놈은 언제까지 만나야 하는 거 야. 술에 용돈까지 줘 가면서...마누라 하나 후려잡지 못하는 놈... (하다가) 아니지. 저놈한테 그런 중차대한 일을 시켰다가 외려 일 을 그르치는 수가 있어. 내 의도는 배추를 짜거나 싱겁게 절여 맛 이나 안 나게 하는 정돈데 저놈이 괜히 일을 확대시켜 오히려 법 망에라도 걸려들면 무슨 망신이야. 일이 잘 돼도 저놈한테 약점이 나 잡혀 평생을 끌려다니게 될 테구....안되겠어. 일단 중지시켜야 지.
E 차 돌려 급히 달리는
박사장 다행히 안 가고 저기 서 있군. 뭐야. 내가 준 돈 세고 있는 거 아 냐. 우라질놈...
E 차 달려서 급정거
E 차 유리 내리면
문 씨 아니 사장님. 왜요, 뭐 잊은 것 있습니까.
박사장 아무래도 안되겠소. 문형. 내가 아까 한 말은 좀 더 생각을 해봐 야겠소. 아무래도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요. 주인이 금방 맛을 알아볼 텐데 괜히 부인만 신용을 잃게 되고 결국 문형한테도 이 득될 게 없을 것 같소. 다른 방도를 연구해 봐요.
문 씨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김치 맛이 이상하면 제 식구만 난처해지겠 죠. 박사장님 말씀대로 우리들 생각이 짧았나 봐요.
박사장 맞아요. 하루 이틀 김치가 짜다고 춘성옥이 망할 리도 없구 말이 오.
M 브릿지
E 급한 발소리
미스 강 (숨찬) 사장님, 사장님...
기 용 왜. 미스 강. 어디 호떡집에 불이라도 났어?
미스 강 사장님. 우리 춘성옥이...춘성옥이 올림픽 업소로 뽑혔어요. 올림 픽 특정업소요. 보세요. 여기 신문요...
기 용 특정업소라니. 무슨 소리야.
E 사람들 웅성이는 소리
사람들 (특정업소? 특정업소가 뭐야...등 한마디씩)
미스 강 이번에 서울에서 올림픽 하잖아요. 올림픽 업소로 우리가 뽑혔다 구요. 우리 춘성옥이요. 보세요. 여기요.
기 용 어디...
E 신문 받아 펼치는
미스 강 여기요.
기 용 아, 여기...
능수엄마 미스 강아. 올림픽...(하다가) 그기 뭔데...
미스 강 88 올림픽 준비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을 업소를 정부차원에서 선정했는데 우리 구에서는 춘성옥이 뽑혔지 뭐야.
능수엄마 우리 구라캤나?
미스 강 종로구는 뭐...서대문구는 뭐...하는 식으로 각구마다 대표되는 메 뉴를 정해서 올림픽 때 활용할 거라고 하는데 우리가 거기 뽑힌 거라구요.
기 용 맞아. 우리 막국수와 보쌈이 우리 구의 대표 메뉴로 올라왔네. 동 대문구는 홍릉갈비...마포구는 마포갈비...
능수엄마 정말 잘됐네예. 그럼 올림픽 때는 외국인들이 우리 춘성옥으로 막 몰려온다 이거 아임니꺼.
기 용 그렇지. 능수엄마 더 바쁘게 생겼어. 그런데 어떡하지. 능수엄마 영어 할 줄 몰라서?
능수엄마 영어예? 글쎄예. 아이엠어 보이 정도는 아는데, 그것 가지고는 어 림없겠지예?
기 용 아이엠어보이? 아이엠어 능수엄마가 아니구?(웃음)
능수엄마 네? 능수엄마예?(웃는)
M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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