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최전방 초소인 4초소 앞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동족상잔 후 남북 포로교환이 이루어졌던 장소다.
8만 여명에 달하는 포로들이 이 다리에서 남북을 앞에 두고
자신들의 운명을 저울질했던 단 한 번의 선택은 영어의 몸이 되어
끝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그 당시 한 번 건너면 다시 못 온다는 유래에서 붙여진 이름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민족의 가슴에 흐르지 않는 강으로
한 맺힌 속울음을 토하며 오늘도 야위어만 가고 있다.
한때 이백 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의 전성시대를 연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은 이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배경으로
남북한 병사의 사랑과 우정, 민족동질성 회복에 심도 있게 접근한 좋은 작품이다.
단지 영화는 영화일 뿐 '판문점에서 그런 일은 있지도 않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서 촬영협조를 거부했다는 후문은 어쩐지 씁쓰름하다.
지난 소련기자의 망명 시 남북 간의 충돌과 총격전으로 사상자를 양산하며
피로 물들었던 '자유의 집'앞 정원이 이를 잘 웅변해주고 있지 않은가.
자유가 그립거든 이 곳에 와 보라, 아니 국가와 민족이, 피로서 쟁취한
평화가 그 얼마나 소중하고 숭고한 것인지를 잊고 사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이 자리에 서 보라. 그대 숨통을 자맥질하는 목마른 자유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노도처럼 밀려올지니.
제 3초소에서 시야를 서북쪽으로 향하면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한
우리측 자유의 마을 대성동과 북의 선전촌인 기정동이 시야에 잡히는데
자그만치 국기 게양 탑의 높이가 백 미터, 인공기 게양 탑 높이가
백 육십 미터다. 남북이 다투어 높이 세우기 경쟁을 하다 하늘로
치솟았는데 인공기의 무게만 275Kg이요 넓이는 백 육십 평 아파트
평수와 맞먹는다니 가히 세계최대의 게양 탑이 아니고 무엇인가,
태극기도 3개월에 한 번씩 갈아 끼울 때마다 이백여 만원이 넘는
비용이 소요된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민족분단으로 인한 불필요한
재원낭비가 아닐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평양에서 열리는 세계청년학생
축전비용 47억불, 중단된 평화(착취)의 댐 건설비용 1조원, 매년 GNP 20%를
상회하는 국방비도 남북분단의 산물이다.
누구의 말대로 이제 정말 우리는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에 의한
공멸의 제로섬 게임이 아닌 공존공영의 플러스 섬,
알파섬 게임에 지혜를 모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아가 복지 경쟁으로 획득된 독일통일의 교훈을 군비경쟁으로
일관하는 남북이 본받아야 할 때가 왔다는 사실을 쌍방 모두 깊이
인식해야만 한다.
더불어 민족분단을 사상과 이념무장의 무기로 약용,
일인체제 고수정책을 고집하는 북이나 또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남측 모두 거시적 안목에서 발상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
무거운 마음을 노을에 실어보내고 판문점 구내식당에서
평양소주를 반주 삼은 저녁은 그래도 지속적이고 끈기 있게
추진해 온 햇볕정책이 가져다 준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우울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겉으로는 평온하나 끓어오르는 휴화산과도 같은 판문점은
항시 침잠 된 채로 우울한 회색 빛이다.
하지만 이제 판문점은 남북분단에 의한 이념과 사상의
대립장소가 아닌 부산과 신의주, 목포와 청진, 온성을 잇는
화합과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아니 칠천 만 온 겨레가 부둥켜안고 덩실덩실 춤추는 혼 굿판의
한풀이 한 마당이 되어야 한다. 누구의 도움 없이도 우리문제는
우리가 풀어 가는 주체적이고도 당당한 힘과 용기, 인내와 민족적인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가을이 왔다고는 하나 판문점은 일년 내내 동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바람도 숨을 죽이는 무중력의 유배지, 들국화나
개망초 꽃 한 송이 피어나지 못하는 지구상에서 유일한 민족분단선인
판문점의 가을은 그렇게 마지막 잎새를 속절없이 떨어뜨리며
겨울을 부르고 있었다.
'이곳에 와서/꽃이 절명하는 이유를/이제 알겠다/
저 찬란함의 눈부신 추락 앞에/헐벗은 내 육신 야위어만 가느니...
[choikwanglim@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