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빌당'의 추억/김규원

[느티나무]

‘햄빌당’의 추억

-전주천 시리즈(2)-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규 원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전주천 한벽루 근처 석축 아래 물줄기가 부딪히는 곳에 경칫돌을 쌓고 시멘트 4각 기둥을 가로 세로로 엮어 유실되지 않도록 해놓은 시설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비가 많이 내리면 엄청난 양의 물이 급류를 이루어 석축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에 돌무더기를 쌓아 물의 충격을 줄이는 시설이었다. 길이 약 80미터쯤 되는 그 경칫돌 무더기가 꼬마들의 물놀이 거점이었다.

아이들은 돌 위에 바지와 윗옷을 벗어 개어놓고 고무신으로 눌러놓은 다음 냇물에 ‘풍덩!’ ‘풍덩!’ 뛰어들었다. 물놀이를 하다가 지치면 가로로 엮어진 시멘트 기둥을 붙잡고 쉬거나, 물 위로 쉽게 올라올 수 있었다. 그 시절 우리는 한벽당 아래 물놀이 터를 ‘햄빌당’이라고 불렀다. 한벽당이 아이들의 구전에서 변화되어 불린 호칭이다. ‘햄빌당’은 초등학생까지만 이용하는 곳이었다. 중학생이 되어 고추가 커지고 거웃이 돋아나면 거기서는 물놀이를 할 수 없었다. 천변에 피라미탕 집이 있어서 석축에 물려 평상을 펴고 장사를 했기에 손님들이 내려다보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끔은 아주머니들이 그곳에 내려와 빨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 이상 아이들은 1.5km 위쪽 ‘각시바우’나 그 위의 ‘서방바우’로 물놀이를 다녔다. 일부 수영을 잘하는 중고등학생들은 기린봉 우측 동고산성 고개를 넘어 ‘아중리 저수지’까지 가서 수영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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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라고 기억하는 어느 여름날, 단짝 친구와 같이 물놀이를 하러 각시바우로 가고 있었다. 한벽루 밑 길을 따라 올라가 천변 논둑길을 가다가 보니 저만치 냇가에 낯익은 아저씨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햄빌당’ 위에서 ‘피리 매운탕(피라미 탕)’을 끓여 파는 아저씨였다. 매운탕 재료로 쓸 고기를 낚시로 잡고 있는 것이었다. 궁금한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내가 그 광경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 친구와 눈짓을 보내고 살금살금 아저씨 옆으로 다가앉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라니! 세상에, 그 아저씨의 낚시 솜씨는 완전히 신기(神技)였다. 흐르는 물에 낚시를 던지는데, 던지고 나서 낚시 끝대를 살짝 한 번 흔들어주면 찌가 물속으로 쏙 들어가고, 낚싯대를  들어 올리면 통통한 마자, 개마자, 피라미, 불거지 등이 걸려나왔다. 고기를 다래끼에 담고, 돌 벌레 미끼를 꿰어 다시 던져 살짝 흔들면 곧 또 한 마리가 걸려 나왔다. 쉼 없이 잡아 올리는 고기를 보며 우리는 넋이 나갔다.

“야! 아저씨, 정말 귀신이네요. 그렇게 하루 몇 마리나 잡아요?”

“시끄러워 이놈아, 고기 도망가! 그건 알아서 뭐하게?”

“에이, 아저씨 목소리가 더 크네요. 말을 해줘야 우리가 가지요.”

내 발림수에 아저씨의 대답이 오졌다.

“요런 맹랑한 놈 봐라. 그래. 아침저녁으로 잡으면 5백 마리는 잡지. 이렇게 잡아서 매운탕으로 팔아 우리 다섯 식구가 먹고 산다. 이놈아! 알았냐?”

그날 우리는 물놀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아저씨 뒤로 물러앉아 낚시구경에 정신 줄을 놓았다. 가끔 어른들이 여울에서 ‘가바리’라고 부르던 털바늘 낚시를 하는 것은 보았지만, 그건 물에 들어가 서서하는 낚시여서 꼬마들로서는 어려웠기 때문에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 이 낚시는 편하게 앉아서 던지기만 하면 걸려나오니……. 친구와 나는 이 낚시를 배워보리라 작정하고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그리고 살금살금 다시 다가앉아 낚싯대와 낚시, 낚시 줄, 찌의 생김새와 던지는 동작까지 눈에 익히고 또 익혔다. 지닐총이 남달랐던 내 눈에 아저씨의 일거수일투족이 차곡차곡 박혀들었다. 그 때 아저씨가 낚시를 끝내려는지 일어서더니, 낚싯대를 감아 옆에 놓고 물속에 담가둔 다래끼를 들어 올렸다. ‘투두둑’ ‘투두둑’ 묵직한 다래끼 속에서 고기들이 요동을 쳤다. 아저씨는 야트막한 물가로 가더니 고기를 한 마리씩 끄집어내어서 배를 따고 씻기 시작했다. 기회가 왔다. 우리가 아저씨의 낚싯대를 자세히 볼 수 없어서 발싸심하는 걸 하늘이 알고 기회를 준 것이다. 낚싯대를 만지면 아저씨가 싫어할 것이므로 손은 대지 않고 자세히 보았다. 정말 작은 낚시와 아주 작은 납이 달려있고, 마늘 속대로 만든 찌가 달려 있었다.

다음날 어머니를 졸라 돈을 마련한 나는 친구와 남부시장 입구의 낚시점에 가서, 낚시터에서 보았던 장비를 설명하여 똑같이 채비를 했다. 그리고 그길로 아저씨가 하던 낚시자리에 가니 아저씨가 없었다. 얼씨구나! 물벌레를 잡아 꿰어 낚시를 던지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채비가 가벼워 앞으로 잘 던져지지 않았고, 이리저리 걸려 낚시와 줄을 떼이고, 다시 매어서 던지면 제멋대로 날아갔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과 낚시와 줄을 소모한 끝에 원하는 자리에 가끔 던질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낚시로 멋진 불거지 한 마리를 걸어 올렸다. 고기 병을 놓아 잡던 맛하고는 완전히 다른, 손맛이라는 그 짜릿함은 전율이었다.

그 뒤, 우리는 날이면 날마다 낚시를 갔지만, 그 아저씨처럼 많은 고기를 잡을 수는 없었다. 같은 장비를 하고 잡지만, 뭔가 야로가 있었다. 어느 날 잠꾸러기인 내가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서 아저씨네 집 근처에 몰래 숨었다.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아저씨가 낚싯대와 괭이, 뭔가를 담은 그릇을 들고 집을 나가 냇물로 가더니, 무릎어림 정도 깊이의 완만한 흐름이 있는 곳에서 괭이로 돌과 자갈을 긁어냈다. 5~6미터 길이를 긁어내고 뭔가를 꺼내 납작한 돌에 바르더니 그걸 물속에 다시 넣었다. 그러기를 여러 번, 자리를 잡고 낚시를 시작했다. 시간이 좀 흐르자 전처럼 고기가 쉼 없이 잡혀 나왔다.

‘옳지! 저거다.’ 아저씨는 자갈 바닥을 긁어 모래가 드러나게 하고, 납작한 돌에 깻묵을 발라 모래 속에 묻어두어 고기를 모이게 하고 낚시를 한 것이다. 집으로 달려간 나는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친구와 함께 괭이와 깻묵을 챙겨 아저씨가 안 보이는 상류로 올라가 터를 잡았다. 그리고 조금은 서툴지만 오전 동안 거의 1백 마리 이상의 물고기를 잡아 의기양양 집에 와서 자랑을 했다. 그해 여름 내내 우리 집 밥상에는 맛있게 졸인 민물고기 반찬이 끊이지 않았고, 이듬해에는 아저씨의 실력에 버금가는 솜씨가 되어 어죽을 쑤어 먹기도 했다.

낚싯대 하나로 다섯 식구를 먹여 살렸던 그 아저씨도, 천변 피리매운탕도 지금은 없지만, 가끔 자전거를 타고 ‘햄빌당’ 놀이터가 있던 자리를 지날 때면,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밀짚모자를 쓰고 앉아 고기를 낚아 올리던 그 아저씨의 힘겨운 어깨가 눈에 어른거린다. 내가 아저씨네 식구가 먹고살아야 하는 고기를 다 잡아갔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2014.05.02.)

# 발림수 : 발라 맞추는 수단이나 꾀

오지다 : =오달지다. 호되고 야무지다.

지닐총 : (한 번 듣거나 본 것을) 잊지 않고 오래 지니는 총기

발싸심 : 무슨 일을 하고 싶어서 애를 쓰며 들먹거리는 일

[만송]

글감이 무궁 무진 하시고 또한 문장으로 잘 엮어 나가시는 능력이 대단 하십니다.
참으로 우리 꽃밭의 자랑입니다. 옛날의 추억어린 일들을 아기자기 하게 잘엮어 햄빌당에 대한 모든것을 잘 배웠고
좋은글 잘 보았습니다. 윤동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