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대한민국에서 품격 있는 도시로 유명한 영주로 떠나는 아침이 밝았습니다.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마음이 왜 이렇게 들뜨고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사전 조사를 할 때, 언뜻 언뜻 보았던 오늘 여행지의 아름다운 모습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오늘 여행할 영주는 대한민국에 소중한 보물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도 역시 부푼 설레임과 기대감을 가득 가지고 영주로 가벼운 발걸음을 향했습니다.
영주로 가는 길은 비가 온 뒤라서 인지 청명하고 맑았습니다.
여름의 향기보다는 가을에 가까운 진한 자연의 향기가 차창 안으로 가득 퍼져왔습니다.
조금은 이른 아침에 도착한 영주에서 대표적인 관광8경중 하나인 부석사 입구에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부석사에 모습에 입이 떡 벌어졌습니다. 마치 영화 속 에서 나올법한
부석사의 위엄 있는 모습에 잠시 부석사로 오르는 제 발걸음이 멈칫 하기도 했습니다.
부석사는 대한민국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5점, 보물4점, 도유형 문화재2점 등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10대 사찰 중 하나 입니다.
자랑이라도 하듯 부석사 입구에 첫번 째 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부석사 3층 석탑 입니다.
3층 석탑은 두 개의 쌍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균형 있게 입구에 각 각 왼쪽 오른쪽에 위엄 있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보물 답게 범종루 앞에 동일한 모양의 삼층 석탑이 동쪽과 서쪽에 균형있게 세워져 있는 모습은 마치 부석사를 지키는 무사 같은 느낌의 위엄이 있었습니다.
이 석탑은 동탑과 서탑으로 불리는데, 산사마다 많은 아름다운 석탑이 산재되어 있기에,
그저 지나치기 쉽지만 부석사의 이 3층 석탑은 여느 절의 탑처럼 평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석탑 앞에 있는 안내판을 통해 보니 이 동탑과 서탑은 원래 부석사 인근에 있던 일명사 터에있던 것을
1960년대에 부석사로 옮겨온 것이라 하네요
또 서탑에는 익산 왕궁리 5층탑 에서 가져온 석가모니 진신 사리 5과가 안치되어 있다 하니,
안내판의 글을 읽은 후의 이 3층 쌍탑은 마치 그 모습이 고귀하다 싶이 느껴졌습니다.
신비스러운 3층 석탑을 지나 계단을 오르려 고개를 드니 부석사의 오래된 역사를 설명이라도 해주듯
범종각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역시 대한민국의 국가적 문화재와 보물이 가득한 절 답게 평온하면서도 조용하면서도
고풍이 느껴지는 곳이였습니다.
범종각은 부석사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건물로, 첫눈에도 아름답지만 다시 보고 또 보아도
그 아름다움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건물입니다.
2층 누각임에도 견고한 기단 때문에 안정감 있어 보이는 이 아름다운 건축물은 밑에서 보았을 때와 위에 올라서 보았을 때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도록 지어졌는 것 같았습니다.
사진에서도 보이시겠지만, 그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눈을 뗄 수 없을 뿐더러 고운 선으로 슬적 치켜 올라간
팔작지붕은 마치 하늘로 비상 할 듯한 그런 모습이였습니다.
1층 누각을 통하여 위로 올라가 본 범종각의 모습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우선 범종각 앞으로 소백산자락과 산하가 한눈에 펼쳐지는데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감상하기에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범종각에 올라 범종각을 다시한번 보니 아래층에서 보았을 때와는 달리 견고하면서도
고졸한 아름다움으로 산하의 풍경을 깨치지 않으면서도 품격 있게 앉아 있는 모습 이였습니다.
과연 정말 경상북도 영주 부석사에 가장 먼저 들르기를 잘했다 라는 생각이 연신 들었습니다.
범종각 안을 유심히 들여다 보니 신기하게 보이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는 목어를 비롯해 아침을 상쾌하게 깨워줄 듯한 아름다운 북소리를 자랑할 듯한
복고(북)과 멋진 대한민국 특유의 건축구조는 정말 ‘와’하고 탄성을 절로 날 듯한 모습이였습니다.
범종각을 지나 범종각과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부석사 안양루가 보였습니다.
불가에서 '안양'은 극락을 말한다고 하네요. 이 안양루를 1층 누각을 지나면 무량수전이 나오는데,
특이한 것은 아래에서 보았을 때의 현판은 '안양문'인데, 위에서의 현판은 '안양루‘로 적혀 있었습니다.
그 뜻이 너무나 궁금하여, 부석사 관계자분께 여쭤보니,아래쪽에서 이 '안양문'을 지나면
'무량수전'이 나오니 바로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고, 문을 들어가서는 바로 극락세계이니
극락세계에서 밑을 바라볼 수 있는 '루'의 역할을 한다고 뜻으로 쓰여있다고 했습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5대 사찰중의 하나 답게 안양루의 모습에 한번 놀라고 그 뜻에 두번 놀라는
정말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석사에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구경하다보니 시간이 참 빨리도 흘러갔습니다.
도착하고 한참을 부석사를 구경하다보니 목이 말랐는데, 마침 안양루옆에는 시원한 약수가
눈에 띄었습니다.
정말 반가운 마음에 얼른띄어가 약수물을 한잔 마셨습니다. 몸속 깊이까지의 그 상쾌하고 시원함이란
정말 이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부석사에 시원한 약수를 먹으며 다시 부석사의를 구경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안양루를 지나 계단을 조금더 올라가니 드디어 부석사의 메인장소라고 할 수 있는 무량수전이라는 곳이
제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오래 된 목조건물이라는 '무량수전'의 웅장한 모습이 드러나고,
그 앞엔 석등 하나가 도드라지게 눈에 띄었습니다.
요즘의 대한민국시대이 아닌 오래 전 신라시대라는 때에는 전형적인 8각 석등으로 비례적으로도 아름답지만, 그 석등에 세겨진 보살상의 모습도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습니다.
한데 무량수전 앞에 오로지 홀로 서 있는 석등이 무량수전의 현판과 직선으로 연결되는 정 중앙에 위치해 있지 않고, 미세하게 서쪽으로 치우져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는데요,
만약 이 석등이 무량수전이라는 현판과 직선상에 있었더라면 안양루에서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길은 답답해 보였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하나 석등을 정 중앙에서 미세하게 치우치게 함으로써, 시각적인 답답함을 피했고, 불자들은 무량수전에 오르며 약간이나마 넓은 동쪽으로 발걸음을 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네요. 무량수전에 들어 기도를 하자면 동쪽 문으로 출입을 해야 하니, 이는 미학적인 고려와 현실적인 건물 사용의 편리를 동시에 고려한 것이라고 관계자분께서 그 깊은 뜻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석등의 아름다움을 지나치고 드디어 부석사의 메인코스 무량수전에 다시 눈을 돌렸습니다.
지금 보시는 이 무량수전은 설명이 필요없는, 대한민국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목조 건축물입니다.
봉정사의 극락전이 가장 오래되었다 하나, 규모면에서나 그 장중함과 아름다움에서나 무량수전에
비할바가 못되는 듯 그렇게 큰 기교는 부리지 않았으나 육중한 배흘림 기둥과 압도적인 규모의 무량수전
앞에 서면 세월의 무게마저 더해져, 마치 히말라야 산 정상에 선 것처럼 저절로 숨이 가파져 가슴이 터질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량수전안을 살짝 엿보아 보았습니다. 사진에 보이시는 저 불상이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며 만든 아미타불입니다.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불상.
엄청난 규모임에도 안정되어 보이며, 아미타불의 근엄한 표정과 화려한 후광 아래 서면
절로 참배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곳이였습니다.
무량수전을 그렇게 실컷구경한 후 무량수전 뒤쪽편을 가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엄청나게 큰 바위 하나가 덩그러니 하나 놓여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 아름다운 사찰이 왜 부석사가 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부석입니다.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하였다고 하는데,
이 부석에는 전설이 하나 내려져 온다고 합니다.
창건설화를 잠시 말씀드리자면, 의상이라는 한 스님이 699년 불법을 닦으러 중국에 도착해
어느 불교신도 집 에서 묵었는데 선묘는 그 집의 딸이었다고 합니다.
사랑의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의상이 불법 정진을 위해 선묘를 멀리하면서 헤어지게 됐는데요,
의상을 흠모하던 처녀는 의상이 공부를 마치고 10년 후 신라로 건너 갈 때 손수 지은 법복을 전해주려 했으나 배가 이미 떠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의상이 떠나자 처녀는 자신이 용이 되어 의상의 귀향길을
돕겠다며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맙니다.
용이 된 선묘는 의상이 다른 종 파의 반발로 부석사를 못짓자 커다란 바위로 변해 이들을 위협해
내 쫓음으로써 의상이 절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고 하네요.
부석사의 부석(浮石)은 바위로 변한 선묘가 땅 위에 내려앉았다는 데서 연유했고,
무량수전 왼쪽의 커다란 바위가 바로 선묘가 변한 바위 바로 위의 사진에 보이시는 바위 인 것 입니다.
이런 기막히고도 신기한 전설을 들으며 부석사를 돌아보니 정말 마음이 경건해지고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부석사를 구경하며 이 곳 부석사 사찰이 왜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5대 사찰중의 하나인지,
또 많은 관광객들이 왜 이곳을 찾는지 알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부석사에 열광하는 이유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단순이 수많은 문화재와
아름다운 건축물 때문만은 아니라수많은 석조물의 아름다움은 물론이고,
건축물 하나하나 나름대로의 개성과 섬세한 기교, 그리고 당시의 화엄사상과 정토사상이
교묘히 맞물리도록 하면서 교리와 이상향을 동시에 구현한 가람배치가 마치 완벽한 원처럼
정교히 맞물려 조화를 이룬 곳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석사... 라는 대한민국의 대표 사찰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인것 같습니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의 취해 하마터면 영주의 다른 대표적인 관광지는 소개하지 못할뻔 했습니다.
서둘러 채비를 다시 갖추고 다음 여행지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부석사를 빠져나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대한민국의 선비 문화를 알 수 있는 소수서원과 선비촌입니다.
부석사에서 빠져나와 한 10여분 달렸을까요? 또 다른 멋지고 아름다운 경상북도 영주의 대표 관광지
소수서원이 나타났습니다.
소수서원은 대한민국 최초의 서원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과거로 돌아가 보면, 1542년 조선 중종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유학자인 안향의 위패를 모시는 사묘를 세우고 백운동서원을 건립하였습니다.
이후 대한민국의 유명한 학자인 퇴계 이황선생이라는 분이 이곳 풍기지역의 군수에 재임하던 때 명종임금께 건의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사액)받았다고 하네요.
소수서원 매표소를 지나자 마자 제 눈앞에 나타난 것 울창한 숲과 시원하게 길게 뻗은 길이였습니다.
이곳은 학자수림이라는 곳인데, 겉과 속이 모두 붉다하여 적송 즉 붉은 소나무라 부르고 3백년에서 길게는 천년에 가까운 수명을 자랑하는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곳입니다.
예전 사람들은 이 소나무들을 겨울을 이겨내는 소나무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참선비가 되라고
이 소나무들을 학자수라고도 부른다고 합니다.
이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놓여진 길을 걸으며 소수서원으로 걸어가다 보니 상쾌하고 맑은 공기가
제 코끝을 간지럽혔습니다.
그렇게 상쾌한 마음으로 소수서원으로 들어가던 중 숙수사지 당간지주라는
커다랗고 기다랗게 생긴 것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오랜전 시대인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기둥을 높이 세워 깃발을 걸어둔 것이라 합니다. 비록 모습이 소실되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고 하네요.
숙수사지 당간지주를 지나니 길 옆에 시원하고 씩씩하게 흐르는 계곡이 눈에 보였는데요,
정말 맑고 깨끗해 당장이라도 뛰어 들고 싶은 곳이였습니다.
눈으로 계곡에 취해 계곡을 조금더따라 올라가니 취한대라고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옆에 작은 절벽에는 한문으로 (경)자가 쓰인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곳은 대한민국 과거에 유명한 학자이신 퇴계이황선생의 명명으로 취한이란 뜻은 ‘푸른연화산의 산기운과 맑은 죽계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하네요.
취한대의 말 뜻처럼 저 정자위에 앉아 있노라면 정말 도시의 바쁜 생활은 다 잊을 수 있는 그런 멋진 곳이였습니다. 그리고 붉은색으로 (경)자가 써있는 바위는 깊은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관계자 분의 말에 따르면 이 곳은 1475년 이 곳에 살았던 영주 순흥사람들이 ‘정축지변’이라는 참화를 당하게 되어 참화를 당한 사람들의 피가 계곡을 따라 흘러가 멎은곳이라 합니다.
그때 희생당했던 사람들이 이곳에 묻히면서 밤마다 억울한 넋들의 울음ㅅ호리를 듣게 되어 당시 풍기 군수 주세붕 선생이 글씨에 원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붉은 칠을 하고 정성들여 제사를 지내 그 후로는
울음 소리가 그쳤다고 하네요.
관계자분의 설명을 들어보니 섬뜩하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다행이 원혼들의 한이 풀렸다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계곡을 지나 드디어 소수서원 입구가 눈에 보였습니다.
막상 입구에 들어서니 떨리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한 소수서원의 모습에 서둘러
소수서원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입구를 지나자 마자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는 강학당이라는 곳이 보였습니다.
이 곳은 유생들이 모여 강의를 듣던 곳이라 하네요. 대한민국 최초의 사립대학이라고 할수 있는 곳입니다.
넓은 마당과 조용한 산세속의 이곳은 정말 지금이라도 공부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 같이 보였습니다.
강학당을 지나니 장서각이라는 요즘으로 치면 대학 도서관이라는곳이 나타났습니다.
요즘의 대학으로 치면 턱없이 작고 초라해보이지만 그 당시 학업에 힘썻던 사람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곳이였습니다.
이 곳말고도 학구에 힘썻던 옛날 유생들이 열정과 생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건축물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소수서원을 나와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는 선비촌으로 가는 길
곳곳에는 푸른잔디와 함께 대한민국의 예쩐 유생들이 쓴 시를 번역해서 새겨놓은 바위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읽으며 선비촌으로 걸어 가는데 마치 제가 학자라도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
잠시나마 어깨가 으쓱해지면서 이곳 영주에 온 제 자신이 조금은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선비촌 입구에 도착!
입구에 도착하자 마자 반가운 팻말이 보였습니다.
바로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추노의 활영현장이라는 맷말이였습니다.
추노팻말을 보니 이 곳 선비촌이 반갑기도 하도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팻말을 지나 선비촌안으로 조금더 들어가보니 한국에서 띠를 의미하는
12간지 동물들의 조각상들이 보였습니다.
동물들의 얼굴을 한 형상들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아무래도 드라마 추노의 촬영지이다 보니 관광객들을 위한 사진대가 많이 놓여있었습니다.
저도 한컷 찍어보았습니다. 어떤가요? 추노의 배우 같나요?하하
사진대들을 뒤로하고 선비촌의 본격적인 관광에 나섰습니다.
이름그대로 선비촌이다 보니 가옥들의 모습이 고풍이 물씬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을 위한 그 당시의 생활상등을 보여주는 인형과 그에 맞는 방송은 정말 관광하는데
재미와 도움을 배시켜 주었습니다.
선비촌을 돌다보니 각 가옥들마다 관광객들을 위한 여러가지 이벤드들도 많이 하고 있었는데요,
그 중에서도 짚을 가지고 새끼를 꼬우시는 할아버님과 나무조각을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들이 작업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어찌나 실력이 좋으신지, 정말 감탄을 그지 못했습니다.
만약 다음번에 선비촌을 방문하시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참여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의 전통 공예를 배울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네요.
할아버님들을 뒤로하고 선비촌의 이곳저곳을 한군데도 빠짐없이 샅샅히 돌아다녔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만큼 한참 동안을 그렇게 신나게 구경하며 돌아다녔습니다.
선비촌 곳곳에는 예전 선비촌에서 지냈던 생활상이나 모습들이 잘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선비촌에서의 시간은 마치 제가 선비가 된것 같은 그런 기분으로 구경을 잘마쳤습니다.
선비촌을 나오다 보니 배꼽시계가 꼬르르륵 하고 울리네요.
부석사와 소수서원 선비촌을 구경하며 정말 시간가는줄 모르고 바삐 관광을 하였나봅니다.
마침 시간도 점심시간이고 하여 미리 검색해서 알아두었던 영주에서 유명한 맛집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영주에서 유명한 묵밥집인데요, 한국의 유명한 방송국에서 촬영을 많이 다닌 기록이 문앞을
장식해 두었더군요. 정말 유명한 밥집이라 그런지 손님분들도 북적북적 되었습니다.
자리를 잡고 묵밥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찰나 제 앞으로
정말 맛있어 보이는 묵밥이 제 앞으로 짠하고 등장했습니다.
너무나 맛있어 보이지 않으세요?
전 정말 10분도 안되 이 큰 한그릇을 뚝딱 하고 해치웠습니다.
부드러운 묵과 푹 익힌 김치의 맛은 정말 꿀맛 그 자체였습니다.
너무 맛있다 보니 과식을 했나 봅니다. 소화도 시킬겸 묵밥집을 나와 영주에서 특산물로 유명한 인삼을 구경하기 위해 영주에서 가장 큰 영주 풍기 인삼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인삼시장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향기로운 인삼냄새로 시장 전체가 가득 매웠습니다.
인삼이 유명한 곳인 만큼 정말 수많은 인삼들이 제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습니다.
풍기인삼시장안에는 인삼박물관이 눈에 띄어 들어가 보았는데요,
정말 많은 인삼과 인삼에 대한 구체적이고 잘설명되어 있는 글들이
저를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와 정말 이래서 영주 풍기가 인삼으로 유명하구나 라고 새삼 느끼는 순간이였습니다.
그렇게 인삼박물관을 한바퀴돌아 나오는데, 한 인심좋게 생긴 아주머니께써 인삼차 한잔 마시고 가라며,
건네주셨습니다. 그때 마신 깊은 향의 인삼차의 맛이 아직도 입가에 남아있는 듯 합니다.
인삼차 한잔을 마시고 아주머니께서 모델이 되어주시겠다며, 인삼을 들고 포즈를 취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인삼 구경을 실컷하고 인근 숙소로 향하는 길 너무 신나게 구경했는 탓일까요?
조금 출출한 마음에 영주에서 또다른 유명한 먹거리 도너츠를 맛보기로 하고 도너츠 가게로 향했습니다.
어떠세요? 맛있어보이시나요? 영주 풍기에는 이렇게 도너츠도 유명하답니다.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한상자 이렇게 사서 왔습니다.
정말 강추하고 싶습니다 영주 풍기의 정 도너츠 한번 드셔보세요~
한국의 대표 도넛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맛있는 영주 풍기의 도너츠를 한입 베어물며 오늘의 바쁘고도 즐거운 영주에서의 관광을 마쳤습니다.
영주…관광8경모두다 보진 못했지만, 정말 대한민국의 전통이 살아있는 대표 관광지라고 해도
무색할정도로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였습니다.
다음번에 시간이 되면 또 가보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21c 고품격 도시 영주… 대한민국을 알고 싶으시다면 꼭 한번은 가봐야 할 명소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맛있는 먹거리와 볼거리가 너무나 풍성했던 영주 정말 핼복했던 여행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