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먼저 본 넘이 임자라고 누군가가 그럽디다.
꽃바람만 불어도 어화둥둥 내사랑 연분홍빛 철없던 봄날을 가슴에 묻고 줄창 애간장을 녹인 여름 땡볕과 우기로 심신을 적신 한시즌을 보내면서
계절은 저마다 독특한 빛깔만큼이나 머무는 시간에 차이가 있더군요. 짧아서 아름다운 계절이 있는가 하면 길어서 추한계절이 있습니다.
미련을 못버리고 서성대는 여름보다 성급하게 다가오는 겨울보다 더 짧은 가을이기에, 그래서 느낌을 제대로 받지 못해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정함의 여름과 냉정함의 겨울에 낀 틈새라고 하는게 더 나을듯 싶네요. 그래서 녹기전의 얼음처럼 가을도 빠르게 그 맛을 봐야 하는가 봅니다.
한땐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 외로움을 얘기하던 때가 있었습니다만 지금도 여름내내 매일 걸었던 길을 가을에 걸으면 왠지모를 허허로움이 느껴집니다.
지친 몸보다도 마음을 쓰다듬는 선선한 바람과 고개들면 파란 하늘이 있고 발 아래로 살째기 밟힌 낙엽이 있음에 왜아니 가을이 아름답지 않을려구요.
초등시절, 써보지 못했던 서른여섯 색의 왕자표 크레파스로 한참 어른이 된 지금 나만의 가을을 그리고 싶습니다. 아주 근사한 배경으로 말입니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로 시작하는 고추잠자리 노래를 용필오빠가 불렀던가요? 가을은 어려져도 됩니다.
소리없이 본체만체 지나지만 추억으로 가기엔 그지없이 좋은 계절이 가을이죠.
운치있는 통나무 찻집은 아닐지라도 근처 소박한 산자락 의자에라도 앉아 차한잔을 음미하면 심신으로 타고 흐르는 감정이 얼마나 좋은데요.
가을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되는(천지인 일체) 유일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땅은 하늘을, 하늘은 땅을 품은 사이로 웃음가득 머금은 사람이 있구요.
이즘 해바라기는 청명한 하늘을 볼 수가 없어 고개 숙인채 수줍어 하지만 너른 들판의 두팔벌린 허수아비는 위풍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가을은 길가에 놓인 의자를 잠시 데우다 사라지는 햇볕같이 참 짧지요. 결국 우리의 삶도 이렇게 짧다는 사실을 가을을 통해 많이 느끼는 셈이죠.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은 것을, 돈벌기 위해 건강 돌보지 않고 애써 왔지만 다시 건강을 위해 돈쓰는 것을,
세월에서 배우고 지혜를 늘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난 지혜도, 통찰력도, 성숙도 없는지라 짧기만 한 가을을 먼저 찾아 나서 못배운 한수 배워나 볼랍니다. 한편, 통영은 도시 전체가 하나의 공원이다. 섬들은 파도와 놀고, 햇살이 누운 바다는 눈부시게 곱다. 바다에 은비늘로 반짝이는 햇살 한줄기, 섬마을을 쓸고가는 바람 한 자락, 포구에 부려지는 갈매기 울음소리가 마음을 뒤흔드는 곳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은 유치환에게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으로 태어났고, 윤이상에게는 서정의 멜로디를 선물했다. 들고나는 고기잡이 배가 긴 여운을 남기는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바다는 그대로 시이며, 음악이며, 한 폭의 그림이다. 윤이상이 죽는 날까지 고국을 그리워한 이유도, 유치환이 청마(靑馬)란 호를 지은 것도 어쩌면 자기가 태어난 이곳 앞바다를 못 잊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통영은 이 두 사람 외에도 시인 김춘수, 소설가 박경리, 그리고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전혁림 화백 등 뛰어난 예술가를 많이 배출했다. 박경리는 김약국의 딸들에서 통영을 ‘일찍부터 항구는 번영하였고 주민들의 기질도 진취적이며 모험심이 강하였다’고 썼다. . ◇ 일 시 : 2014년 11월 22이(토요일) ◇ 기행코스 세병관 → 동피랑 →달아공원 →박경리기념관 →김춘수유품전시관 ◇ 출발 : 부산 영도 영선주민센터 08시, 봉래동 로타리 8시 10 분, 부산본부세관 앞 8시20분 ◇ 참가신청 : 카페 사무국장 여심(☎ 010-8777-4148) ◇ 회 비 : 4만원(45인승 관광버스출발, 조식.중식, 간식제공, 뒤풀이- 희망자에 한함) |
세 병 관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 건물이다. 경상, 전라, 충청 삼도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인 통제영 본영의 중심건물이다. 선조 37년(1604) 제6대 통제사인 이경준이 설계, 완성했고, 그 후 여러 차례 중수했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팔작집으로 장대석 기단에 50개의 민흘림기둥을 세우고,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어 웅장한 건물이다. 안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에 서까래가 드러난 연등천장을 시설했으며, 뒤쪽 중앙에 한단을 올려 궐패를 보관하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함께 조선시대건축물 중 바닥면적이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은하수로 병기를 씻는다는 세병관”
세병관은 경상, 전라, 충청 삼도수군을 총 지휘했던 본부의 객사건물로, 언제라도 거친 파도와 싸우며 바다를 지켜야 하는 해군들이 근무하는 곳이다. 이곳의 이름은 세병관 즉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두보의 시에서 따왔다고 한다. 두보의 시 ‘세병마’ 마지막 대목에는 ‘어떻게 하면 힘센 장사를 얻어 하늘의 은하수를 끌어다가, 병기를 씻어내어 길이 사용하지 못하게 한단 말인가’하는 문구가 있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풀이되는데, 큰 전란을 이겨낸 군인들은 병기가 필요없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처마 밑의 ‘세병관’이라는 웅장한 현판글씨는 제136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쓴 글씨라고 한다. 세병관은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가 두릉포에서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긴 이듬해인 조선 선조 37년(1604)에 완공한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이 건물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3도(경상·전라·충청도)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으로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아직도 멀리 남해를 바라보며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지방관아 건물로서는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앞면 9칸·옆면 5칸 규모의 웅장한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홍살을 세웠고, 후면 내진주열 중방 하부에는 머름을 설치하여 분합문을 달고 중방 위로는 판벽으로 마감하여 무인도(武人圖)를 그렸으며 천장은 소란반자를 설치하였다. 세병관은 17세기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동피랑마을 통영시 태평동과 동호동 경계언덕에 자리 잡은 한국의 몽마르트르 언덕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마을 동피랑은 통영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그대로 녹아 있는 달동네이다. 강구안의 언덕배기에 위치하고 있기에 비탈진 골목마다 작은 집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곳이지만, 서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에서는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벽화들이 마을 입구에서부터 먼저 사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달아공원 달아공원은 통영 산양읍 남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남쪽에 자리한 미륵산 해안을 중심으로 나 있는 산양일주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중간 지점쯤에 달아공원이 있다. 달아공원에 이르기 전 수려한 한려해상의 정취에 정신을 팔리면 잘못하다 스쳐 지나갈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달아공원 맨 끝에는 달아전망대라는 곳이 있다. 이곳 전망대에서 여름 바람에 기대 서 있으면 파랗게 펼쳐진 바다 위 한산, 욕지, 사량 등을 포함한 수많은 섬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달아공원 뒤편에 자리한 미륵산이 통영에서 최고의 일출 정경을 자랑하는 곳이라면, 달아공원은 통영에서 최고의 일몰을 자랑하는 곳이다. 일몰 시각이면 달아공원은 주차장에 주차할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달아공원을 알기 위해서는 달아공원이 속한 산양읍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산양읍은 통영시 남부 해역에 있으며, 예로부터 군사 요충지였는데 고려시대에는 왜구를 막기 위해 구당포성, 당포성, 삼천진이 설치됐고 임진왜란 때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곳의 진지를 이용해 당포대첩 승전을 거두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도 수군을 거느린 통제영(1604년)이 이곳에 있었는데, 이 때문에 수공업이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해산물이 풍부해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고 한다.
현재 주민 대부분은 어업에 종사한다. 예전에는 굴, 멍게 등이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이었으나, 현재는 어류축양단지가 조성돼 있다. 수산물로는 가자미, 멸치, 갈치, 방어 등이 어획되고 특산물인 피조개가 유명하다.
통영대교를 지나 달아공원 방향으로 산양일주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오른편에 당포 포구가 보이는데 이 포구 앞바다가 바로 이순신 장군이 당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곳이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서 당포해전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6월 2일 맑음. 아침에 출발해 곧장 당포 앞 선착장에 이르니, 적선 20여 척이 줄지어 정박해 있었다. 우리 배가 둘러싸고 싸우는데, 적선 중에 큰 배 한 척은 크기가 우리나라 판옥선만 하였다.(중략) 편전과 크고 작은 승자총통을 비오듯 마구 쏘아댔더니 왜장이 화살에 맞고 떨어졌다. 그러자 모든 왜적이 한꺼번에 놀라 흩어졌다. 여러 장졸이 일제히 모여들어 쏘아대니, 화살에 맞아 거꾸러지는 자가 얼마인지 그 수를 알 수 없었고 모조리 섬멸하여 놓아두지 않았다. 얼마 후 큰 왜선 이십여 척이 부산에서부터 바다에 줄지어 들어오다가 우리 군사들을 바라보고는 도망쳐서 개도(介島)로 들어갔다.’
달아공원 입구에서 5분 정도 완만하게 닦인 공원길을 따라 올라가면 오른편에 관해정(觀海亭)을 볼 수 있다. 정자 양편으로는 동백나무가 줄지어 자라고 있는데 달아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뿐만 아니라 한려수도의 장관도 감상하고 낙조나 달이 뜬 밤의 은물결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관해정을 지나 바다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그야말로 땅끝에 선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이름을 갖지 못한 작은 바위섬에서부터 대·소장재도, 저도, 송도, 학림도, 곤리도, 연대도, 만지도, 오곡도, 추도 그리고 멀리 욕지열도까지 수십 개의 섬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전망대에는 섬 이름을 안내하는 대형 지도가 한쪽에 설치돼 있어 실제 섬과 이름을 짝지어 가며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달아는 어디서 온 것일까
옛 가야 지역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다라(多羅)계의 지명에서 유래된 토박이 지명인 다라, 다래 등에서 따왔다는 설과, 한자 지명인 달아를 풀이해 주변의 지세가 마치 코끼리의 어금니를 닮은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요즘 달아라는 명칭은 달 보기에 좋은 곳이라는 쉬운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통영 사람들은 보통 ‘달애’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달아공원 주변에는 달아마을이 있는데 최근 인근에 있는 섬인 하림, 저도, 연대도 등으로 왕래하는 도선 섬나들이호가 취항해 섬에 드나드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박경리 기념관 박경리선생의 고향 통영을 배경으로 한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통하여 한 가족의 몰락 과정을 다루며, 작가의 작품 세계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었으며,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여 4대에 걸친 인물들을 통해 민중의 삶과 한(恨)을 새로이 부각시킴으로써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박경리를 기념하고, 박경리선생의 고향으로 선생문학에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한 고향 통영을 소개함으로써 선생의 문학세계 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건립하였다. 대하소설 〈토지〉를 통해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가 고(故) 박경리를 기념하고, 작가의 고향인 통영을 소개함으로써 작가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설립한 기념관. 박경리기념관은 유치환, 김상옥, 김춘수, 김용익 등 많은 문학인을 배출한 통영의 문화예술 인프라 확충과 박경리를 기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이 추진되었다. 2008년 8월에 착공해, 2010년 5월 4,465㎡의 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건립되었다. 주요 시설로는 다목적실, 사무실, 전시실, 영상실, 자료실 등이 있다. 전시실은 박경리의 사상과 생애를 소개하는 코너를 비롯해 박경리가 생전에 쓰던 유품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박경리의 작품 연보를 비롯한 각종 작품 설명 자료와 작품을 썼던 서재의 실제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박경리기념관에서는 박경리 추모제와 청소년백일장 등을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박경리기념관 뒤쪽으로는 2,545㎡의 대지 위에 박경리공원과 1,541㎡의 대지 위에 박경리 묘소가 조성되어 있다. 박경리공원에는 시비, 친필원고 동판 시비, 어록비 등의 전시물이 갖춰져 있다 김춘수 유품전시관 김춘수 유품전시관에는 김 선생의 유품인 육필원고 126점과 8명의 유명 서예가가 김 선생의 시 구절을 쓴 8폭 병풍 1점, 탈 문방사우, 서적, 침대, 생활용품 등 330여점이 전시하고 있다.
유품전시관 내부는 김 선생의 유품 전시실과 책장, 유품 저장실, 김춘수 방, 사무실 등으로 꾸며져 관람객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김춘수 시인은 통영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1947년 첫시집 '구름과 장미'를 출간한 이후 2004년 향년 82세로 타계할 때까지 20권이 넘는 시집을 출간, 한국 시문학에 큰 족적을 남겼다.
내 고향 통영이야기 여천(汝遷) 김도용 나의 고향 통영을 흔히들 한국의 나폴리 또는 예향(藝鄕)으로 부른다. 이름에 값하듯 풍광(風光)이 수려(秀麗)하고 문화예술인들이 여느 곳 보다 많이 배출된 곳. 이곳에 태어나 잔뼈가 굵어지고 지적능력과 감성의 대부분을 길러 준 통영은 고성반도의 끝자락에 자리하며. 도시전체가 바다로 둘러싸인 수향(水鄕)이다. 원문곡 입구의 호수 같은 죽림만, 바다가 깊숙이 들어앉은 북신만. 한산양 물결이 맞닿는 동호항, 파시(波市)와 뱃고동 소리로 왁자지껄한 강구항, 그리고 서호동의 서호만은 모두가 수향(水鄕)임을 여실히 일러준다. 통영(統營). 그 지명도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 역사 또한 만만찮은 고장. 작고(作故)한 토지(土地)의 작가 박경리 선생의 말을 빌면 예향(藝鄕)의 토대가 되는 DNA는 이미 통제영시절 조선기술과 12공방으로부터 유래 한단다. 통영시 태평동 주전골은 나의 탯자리다. 어릴 적 술주정뱅이가 많아 주정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상평통보를 만들었던 주전소(鑄錢所)가 있던 계곡이었다. 여황산의 지맥이 토성(土城)곡을 넘나들며 주전골, 대몽지, 동피랑을 이루었고 한 가운데 꽤 넓은 물길이 흐르고 있던 깊숙한 골짜기 주전골. 수백 년 된 포구나무(팽나무) 수 십 그루가 이 마을 터줏대감, 나무도 오래되니 신목(神木)이 되어 할매들의 비손이 끊일 날이 없었다. 늦은 여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던 포구나무, 바람이 불면 떨어진 참포구는 주워 먹고 개포구는 포구총알로 이용하였다. 이른 아침 고모 댁에 들리면 어김없이 울어대던 풀국새 울음소리가 늦은 봄을 재촉하고 냠새 밭 언저리에 모여 놀던 병아리 떼가 어미 닭의 구구대는 소리에 품속에 숨어들던 평화롭고 한가하기 까지 했던 그 정경이 이젠 다들 사라져 버렸다. 연 재주 오광대의 풍류인(風流人)이 만들어 낸 예향은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명한 시인묵객이 한 둘이 아니다 그리고 골골마다 역사의 숨결이 배어있어 그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보고 넘어갈 곳은 없다. 남방(南芳)에 내 서면 돌아보면 산자(山紫)에 굽어보면 수명(水明)이었다. 그 누군들 이곳을 산자수명(山紫水明)이라 감탄치 않으리오. 풍광이 명미하고 사방이 바다인 이 고장은 해산물 또한 천국이라 일찍부터 해산물 요리가 남달리 발달한 곳. 통제사 밥상에 올랐다던 대구알젓 껍질이며 약대구, 개조개(유곽구이) 그리고 국물채로 떠먹는 굴젓 등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음식. 충무김밥은 유명세만큼이나 술안주에 제격이다. 예전엔 꼬지로 만들어 김밥과 함께 팔았고 각종해산물이 풍부하여 호래기, 홍합, 갑오징어. 그리고 부레김치 등이 주종을 이루었는데 한 번 사먹어 보니 그 맛이 예와 같지 않다. 이젠 내가 다녔던 백년의 역사를 지닌 통영국민학교도 다른 곳으로 옮겨 갔고 그 자리엔 애초에 있었던 12공방을 복원한다. 몇 백 년 된 느티나무 한그루와 세병관(洗兵館)만 남았는데 그 곳은 6.25동란 때 우리들의 교실이었다. 지과문(止戈門) 앞에 서서 세병관이 앉아있는 그 터가 학(鶴)이 나는 형국이며 세병관 중앙에 병기를 씻었던 우물이 있다고 설명했으나 다들 믿지 않으니 그것도 보통 병(病)이 아니다. 세병(洗兵)은 만하세병(萬河洗兵)이란 두보(杜甫)의 시구(詩句)에서 차용한 말임을 그 뉘가 모르리. 이런저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고향 이야기 많이 하는 것도 팔불출에 해당되지 않을까? 저어기 우려된다. “미륵산 솔밭바람에 자란 젊은이 대대로 푸른 솔은 우리의 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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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몇번이나 가 봐도 또 가 보고 싶은 곳 ! 한국의 나폴리~ 이순신. 유치환 , 윤이상, 김상옥, 김춘수, 전혁림, 박경리를 만나고,시와소설이 있고 음악과 한폭의 살아있는 화폭을 볼수 있는곳 ,김도용 교수님의 감칠나는 어릴적 고향 이야기를 들을수 있는곳 통영 !!!,절대로 후회 하지 않으실겁니다. 맛있는 점심도 준비한다 하는군요. 가까운곳이니 회원님들 미리 미리 신청하고 선불 입금하셔요,,
글을 올린분이 참으로 마음이 넉넉하고 풍성함을 느낍니다.
나는 일흔의 나이지만 아직은 이렇게 마음이 넉넉해 지는 글을 읽어 보지를 못했나 봅니다.
이런분과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니 참으로 애석합니다.
나는 통영에서 가까운 남해에서 농사를 짓고 삽니다.
기회가 오며는 같이 할 때가 있겠지...
여러분의 건승을 빕니다.
과찬의 말씀입니다..남해에도 다녀왓습니다만 내후년엔 의논해서 또 일정을 잡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행복하세요
참가하려고 몇 번 벼르다가 이 번 30차에 가고 싶었던 박경리선생님 기념관이 포함되어, 다른 일은 뒤로 미루어
놓고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함께 동행 한다는 것만도 설레이고, 기념관에 들러 그 분의 잔여된 체취와 금년에
대하소설 토지 전20권을 정독 후, 잔영을 비추어 볼 기회라서 까치 설날을 기다리는 옛날 어린 시절 마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정말 꼭가보고 싶은 곳이오나 매번 이곳은 밀양이라서 참가하기가 영 어렵네요...........아쉽다여.......
그러나 부산정모에는 꼭 꼭 갈 예정입니더
감사해요^^
참가 할수있는 방법이,,,서울지역은 어때요,,,아쉽내요,,
그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