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의 투수놀음] 류현진, '빠른 슬라이더'의 빛과 그림자기사입력 2014-07-29 15:08  샌프란시스코전은 '빠른 슬라이더'가 빛난 경기였다 ⓒ gettyimages/멀티비츠 |
2014년 7월 28일 LAD vs SF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첫 두 경기에서 샌프란시스코 타선은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지구 우승을 다투는 라이벌간의 맞대결.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대의 마음가짐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 타선의 이틀간의 침묵이 되려 불안감으로 다가온 이유다.
커쇼 다음날에 등판해야 한다는 점도 불편한 구석이었다. 류현진은 디트로이트전 이후 팔을 높게 들면서 속구 구속이 높아짐과 동시에 슬라이더와 커브의 움직임이 좋아졌다. 하지만 팔 각도와 슬라이더의 움직임이 커쇼의 투구 동작과 비슷해졌다는 점은 숨겨진 뇌관이었다. 이 같은 경우 앞서 던진 투수의 구위가 좋으면 뒤에 던지는 투수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타자들이 전날과 같은 유형의 투구를 접하면 당연히 익숙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후반기 첫 등판의 경우 커쇼는 세인트루이스전 마지막 날, 류현진은 피츠버그전 첫 경기에 나선 바 있다.)
아래 슬라이더를 던지는 커쇼와 류현진의 투구 동작 그림을 보면, 팔 높이와 공의 움직임이 비슷한 것을 볼 수 있다.
 슬라이더를 던지는 커쇼와 류현진 (자료 제공: MBC 스포츠 플러스 박차현 PD) |
1, 2회만 놓고 보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류현진은 ‘커쇼‘라는 또 다른 부담감과 상대해야 했다. 모든 구종의 속도와 움직임에서 커쇼가 류현진보다 앞선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2회까지 단 17개의 공으로 상대 타선을 압도했던 것은 커쇼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제구력과 고도의 집중력 덕분이었다. 2회까지 던진 17구 중 13구가 스트라이크였으며, 6명의 타자 중 초구 스트라이크를 다섯 번이나 꽂아 넣을 만큼 컨디션도 좋았고 공격적인 투구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3회, 지난 피츠버그전과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선두 타자인 어글라를 상대하며 갑자기 제구가 흔들렸다. 1할대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며 위기를 자초했다. 선취점을 내주는 동시에 투구 수도 급격하게 불어나고 말았다. 류현진 스스로도 갑자기 흔들리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투수는 종종 이런 상황과 마주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진부한 코멘트일지 모르겠지만 더욱 집중하는 것이 첫 번째요, 그 같은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해 본인 스스로 템포를 늦추던지 포수를 마운드로 불러 타이밍을 조절하는 것이 두 번째다. 오늘 3회와 같은 상황은 다시는 나와서는 안 되는 장면이었다. 두 경기 연속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는 점에서 류현진 스스로 이 부분에 대한 치밀한 복기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2014년 7월 22일 피츠버그전 4회(왼쪽) 2014년 7월 28일 샌프란시스코전 3회(오른쪽) | 위기를 맞는 과정만큼이나 결과도 아쉬웠다. 물론 펜스의 1타점 적시타는 투수 키를 살짝 넘는 빗맞은 타구였다. 결과론이지만 펜스의 공격적인 성향, 그리고 본인에게 강한 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상황이었다면 초구를 볼로 던졌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 이닝에서도 안타까운 장면이 나왔다. 류현진은 4회 브랜든 크로포드에게 다시 한 번 적시타를 허용했다. 상대하는 과정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2-2 카운트에서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졌지만 상대가 잘 골라냈다. 풀 카운트. 6구째 공 역시 승부구로 손색없는 공이었다. 하지만 앞서 던진 공보다 다소 높게 제구되면서 사단이 났다. 그렇다 해도 방망이가 부러지면서도 적시타를 때려낸 크로포드의 대처를 칭찬해야 할 듯하다.
정작 아쉬운 것은 크로포드를 상대하는 류현진의 대처법이었다. 2사 1, 2루 상황에서 타석에는 8번 타자. 류현진이 들고 있는 선택지에는 9번 타자를 상대하는 방법도 있었다. 크로포드를 통산 무안타로 막았다는 자신감이 정면승부의 근간을 이뤘겠지만, 9번 타순에 투수가 들어선다는 점은 내셔널리그 투수들이 지닌 특권이다. 내셔널리그에서 2사 후 8번 타자에게 적시타를 맞는다는 것은 미묘한 흐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 향후 경기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쉬운 크로포드와의 승부 (사진: 손혁 해설위원) |
경기는 꼬이고 있었다. 초반 찬스에서 다저스는 선취점을 얻지 못했고, 류현진의 실점이 먼저 나왔다. 타선에서 동점을 만들었지만 이내 추가점을 허용했다. 경기는 악을 품고 경기에 임한 샌프란시스코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5회, 경기 전체 흐름이 뒤집어졌다. 디 고든의 기민한 주루 플레이로 인한 동점 득점 이후 라미레즈와 크로포드의 적시타로 다저스가 앞서나갔다. 좀처럼 보기 힘든 고든의 주루플레이도 인상적이었지만, 경기를 지배한 것은 라미레즈와 크로포드의 적시타였다. 만약 동점 상황에서 이닝이 종료됐다면 흐름은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의 몫이었을 것이다.
5, 6회는 류현진에게 또 하나의 과제를 던진 이닝이었다. 바로 체인지업이다. 초반에도 비슷한 장면이 나왔었는데, 5~6회 들어 류현진은 체인지업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을 것이다.
류현진이 슬라이더 위주의 투구를 하면서 지불한 대가는 쉬어가는 구질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실제 이날 경기 류현진의 체인지업 구사율은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적은 비율이었다. (5이닝 이상 투구 기준. 반면 슬라이더 구사율은 가장 높았다.) 그간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자신이 불리한 카운트에서 손쉽게 스트라이크 혹은 아웃카운트까지 잡아내는 역할을 해준 바 있다. 하지만 새 슬라이더는 항상 전력으로만 던져야 하는 구종이다. 커브의 경우 초구는 가능하지만 타자가 노릴 타이밍에서는 실투에 대한 부담으로 쉽게 던지기 어려운 구질이다.
이날도 초반부터 좀처럼 체인지업 제구가 말을 듣지 않자 구사율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경기 중반 잠시 구속이 떨어지는 현상을 보였다. 이후 5회 2사 후에는 포지에게 연속 3개의 체인지업을 던졌지만 모두 제구가 되지 않았고, 3-0 카운트에서 던진 높은 속구가 홈런으로 연결됐다. 류현진은 경기 후 두 가지 부분에서 아쉬움을 나타냈는데, 3실점 모두가 2아웃 이후에 나온 점과 체인지업에 대한 문제였다.
 제구가 안 된 류현진의 체인지업 (사진: 손혁 해설위원) |
6회에도 마찬가지였다. 1사후 듀발에게 던진 9구중 체인지업은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초반에 효과를 봤던 슬라이더가 연속해서 커트를 당했지만, 그럼에도 제구에 대한 우려 탓인지 체인지업을 구사하지 못했다. 부담이 없는 2사 후에 다시 어글라에게 체인지업을 던져봤지만 다시 볼이 되고 말았다. 류현진의 얼굴에는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답답함이 어려 있었다.
 흔들리는 제구에 아쉬움을 보이는 류현진 ⓒ gettyimages/멀티비츠 |
그럼 체인지업이 말을 듣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설명하면 팔 각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팔이 올라가면서 슬라이더와 커브의 각은 날카로워졌다. 각도를 조금 더 높인다 해도 슬라이더와 커브를 던지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는다. 두 구질은 위에서 팔이 내려오는 방향으로 손목과 손을 회전하면서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인지업은 다르다. 체인지업은 반대 회전으로 던져야 하는 구종인데, 팔이 올라가게 되면 회전하는데 부담을 갖게 되고 앞으로 끌고 나오는 공간이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팔이 올라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머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게 되는데, 이 경우 릴리스 포인트 역시 뒤에서 형성된다. 그렇게 되면 공이 떨어지는 순간부터 볼이 되기 때문에 타자가 속지 않고 체인지업의 움직임 역시 무뎌지게 되는 것이다.
 2013년(왼쪽)과 지난 SD전을 비교한 체인지업 투구 동작. 확실히 팔이 올라온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료 제공: MBC 스포츠 플러스 박차현 PD) |
 2013년 체인지업(왼쪽)과 어제의 체인지업. 머리가 벗어난 모습을 확실히 볼 수 있고 릴리스 포인트도 뒤에서 형성됐다 (자료 제공: MBC 스포츠 플러스 박차현 PD) |
경기 후 인터뷰에서 류현진은 체인지업을 더 가다듬어 다음 등판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지극히 당연한 코멘트로 들리겠지만, 상당히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한 마디다.
타자들은 그동안 류현진의 체인지업에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체인지업이 없어지게 되면 슬라이더와 커브는 같은 궤적의 구질이기 때문에 상대 타자들이 류현진을 상대하기가 한결 수월하게 된다. 고속 슬라이더를 얻는 대신 체인지업을 잃어버린다면 류현진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큰 것이다.
좋은 슬라이더가 생겼다. 하지만 정작 주 무기인 체인지업이 말을 듣지 않으면서 또 하나의 과제와 마주하게 됐다. 본인도 이 부분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 더군다나 다음 등판은 류현진이 부담스럽게 느끼는 4일 휴식 후 등판이다. 당연히 체력적인 안배가 중요한 경기가 될 전망으로, 류현진이 체인지업과 슬라이더의 조합을 어떻게 가져가느냐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 손혁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
 류현진이 던진 구종과 코스 (사진: 손혁 해설위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