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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한나아렌트는 실존주의 야스퍼스의 상당한 영향아래
마르틴 하이데거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존재의 분석에 집중하며 하이데거의
사상의 기틀 속에서 하이데거의 변론에 신경을 썼다.
한나는 인간자체가 목적이어야 함을 칸트의 사상에 의해 강조했으며
성경을 인용하면서 철학 너머 인간 존질, 존재의 가치를 철학적으로 풀이를 했다
근대 초기에 신과학 발달이나 신대륙 발견보다
유럽사회를 더 동요시켰던 사건은 종교개혁이었다
마르크스가 사유의 절대화로 인한 인간소외의 과정을 분석했다면 아렌트는 세계소외 과정을 역추적하고자 했다.
인간의 조건 - 한나 아렌트 (이진우옮김)
제1장 인간의 조건
활동적인 삶이라는 개념에서 노동, 작업, 행위를 표현하고자 한다.
노동, 작업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없이 인간들 사이에서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유일한 활동이다. 행위는 다수성이라는 인간의 조건
활동적 삶이라는 용어는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잃고 세상사에 대해 모든 종류의 적극적인 참여를 뜻하게 된다
세상사에 말려들지 말고 이 세상의모든 사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후대 기독교의 주장은 고대 말기 철학의 의식적무관심에서 발생하여 계승되었다.
전통적으로 활동적 삶의 의미는 관조적 삶에서 나왔다
기독교는 사후의 삶에 대한 신앙을 토대로 하고 이 신앙의 지복은 관조의 기쁨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기독교는 활동적인 삶을 파생적으로 부차적인 위치로 강등시키는 일을 종교적으로 승인했다.
불멸적인 행위업적과 사라지지 않을 흔적을 남기는 능력으로 인해 인간은 불멸성을 획득하고 스스로를 신적 본성을 가진 존재로 확증한다.
불멸의 명예를 좋아하는 가장 뛰어난 자만이 참된 인간이다.
소크라테스만이 자신의 사상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소크라테스를 지지하는 중요한 이유다.
그는 활동적 삶으로 들어가서 잠재적 불멸성을 선택한 것이다.
제2장 공론 영역과 사적 영역
개체의 유지는 종족의 보존을 위해 타인과의 교제를 필요로한다 개체의 유지가 남자의 임무이고 종족의 보존은 여자의 임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가정이 가장 엄격한 불평등의 장소인 반면 폴리스는 오직 평등만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가정과 뚜렷이 구별된다.
결합가정
용병대장이 천한 조건에서 높은 지위로출세한 것-니콜로마키아벨리
정치영역에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우선 자기생명을 버릴준비가 되어야 한다.
생명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자유에 방해가 되고이는 동시에 노예성의 확실하 표시다
그러므로 용기는 가장우수한정치적 미덕이 되었다.
사랑은 우정과달리 공적으로 드러나는 한, 끝나거나 없어진다. (사랑한다는 말을 결코 하지 마세요 /사랑은 말할수 없는것입니다.)
기독교의 형제애와 자ㅣ에 근거한 인간관계의 확립을 제안한 사람은 아우그스티누스였다
강도들도 자기들끼리는 이른바 이웃사랑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구절 즉‘우리가인간사를 고찰할때 단지 우리가 인간인 까닭에 인간적인 면만을 완강히 주장해서도 안되고 우리가 죽는 존재인 까닭에 사멸성을 주장해서도 안되며 오히려 그 반대로 사멸적 존재인 인간이 어느정도로 불멸성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음식이 배고픔을 충족시킨다면 공적 찬사는 개인적 허영심을 충족시킨다.
사적영역:소유
원래 박탈된 이라는 의미를 가진 사적 이라느 용어
관계이 박탈성이 드러난 가장 극단적이고 반인간적 형태가 고독이다.
인간활동의 지위
오른손이 하느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한다
누가너더러 선하다고 부릅니까, 하나님외에는 누구도 선하지 않습니다.
선한 행위는 행해진 순간 잊혀야 한다.
선한 일은왔다가 가며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선한 일은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제3장 노동
마르크스는 비판받을 것이다.
우리신체의 노동과 우리 손이 작업
세계의 사물성
노동과 삶
니체처럼, 모든 존재의 최고원리인 영원회귀 의 긍정에 도달하지 못하는 삶의 철학은 자신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지를 알지못한다.
노동의 ’노고와 고통’은 유기체가 죽어야만 끝이난다.
노동과 다산성
마르크스 이론 전체가 다산적 삶의 과정의 두양식인노동과 생식이 이해에 근거한다는 사실만큼 마르크스사상의 수준과 현상적 실재의 충실한 서술을 더 잘 말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에게 노동은 개별적 생존을 보장하는 ‘자신의삶’의 재생산이고 생식은 종의 생존을 보장하는 ‘낯선삶’의 재생산이다. 이런 통찰은 연대기적으로 그의 이론의 확실한기원이다
삶이 힘은 다산성이다.
마르크스의 일관적인 자연주의는 ‘노동력’에서 특별히 인간적인 형태의 생명력을 발견한다
소유의 사적 성격과 부
마르크스를 ‘역사학의 다윈’이라 부른 엥겔스는 일찍이 일치를 간파했다.
작업도구와 노동분업
인간은 자신이 필연성에 예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않고서는 결코 자유로워질수 없다. 그의 자유는 필연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무상함에 대한 혐오’
소비의 사회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우리는 ‘생계를 유지하기’위해 ㅇ리한다 이것이 (근대)사회가 내린 판결문이다.
사회가 인정하는 유일한 예외적 직업은 예술가다.
‘예술가’는 노동의 필연성에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
‘생계유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고 다른 기술들의 목적은 이런 기본적 필연성으로부터 훨씬 더 멀리 벗어나 있다.
마르크스는 이미 근대의 노동해방이 모두가 자유로운 시대를 이룩하는데 실패할 뿐만 아니라 그 반대로 인류를 강제로필연성의 멍에 아래 둘 위험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혁명의 목적이 이미 거의 성취된 노동계급의 해방이 아니라 노동으로부터 인간의 해방이어야 한다고주장했다.
진보는 너무 과대평가 되었다.
왜냐하면 진보는 초기 자본주의 단계에 지배적이던 착취라는 매우 예외적인 비인간적 조건과 비교하여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활동적 삶의 궁극적 목표가 부와 풍요화 ‘최대다수의 행복’을 중대하는 것이라는 고전 정치경제학의 확실한가정 속에 암시되어 있다.
노동하는 동물의 여가시간은 소비에만 소모되고 그에게 남겨진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의 탐욕은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
근대세계가 필연성에 거둔 승리는 노동이 해방, 즉 노동하는 동물이 공론 영역을 차지할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소비자 또는 노동자의 사회에서 삶이쉬워질수록 이사회적 삶을 취하는 필연성의 충동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가더 어려워진다. 필연성의 외적 현상인 고통과 수고가 눈에 띄지 않기 때문
제4장 작업
세계의 지속성
인간이만든 사물 세계의 지속성은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가 소비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이용함으로써 이 세계는 소모된다.
인간의 주관성에 대립하는 것은 손대지 않은 자연의 숭고한 무관심이기보다 인위적 세계의 객관성이다. 자연이 압도적힘은 오히려 반대로 인간을 강요하여 자신이 생물학적 운동이 순환 속에 돌게 만든다.
사물화
호모 파베르의 작업, 즉 제작은 사물화로 이루어진다.
‘노동의 즐거움’에 대한 대부분의 서술이 ‘성경’이 주장하는 삶과 죽음의 축복에 대한근대적 반성이 아닌 한, 또 일을 해냈다는 자긍심을 일을 성취했다는 즐거움으로 오해하지 않는 한, 그것은 폭력적인 힘의 행사를 통해 느끼는 의기양양함 관련된다.
활동적 삶의 위계 안에서 제작이 가지는 중요성은, 그 형상을 통해 제작과정을 주도하는 이미지나 모델이 제작에 선행할뿐만 아니라 제품이 완성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다는 사실이다.
생산과정은 전적으로 수단과 목적의 범주에 의해 결정된다.
도구성과 노동하는 동물
모든 문명은 사용하는 도구를 기준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근대사회에서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고, 인간은 자신이만든 기계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위해 도구를 이용하기보다 도구의 요구에 ‘적응’해야 존재 되었다는 잦은 불평은 노동의 실제 상황에 원인이 있다.
도구와 기계의 근본차이는, 인간이 기계에 ‘적응’해야 하는가 아니면 기계가 인간의 ‘본질’에 조정되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끝없는 논의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자연의 힘을 인간세계로 들여옴으로써 세계의 목적성, 즉 대상은 목적이고 도구와 용구는 이 목적을 위해 고안되었다는사실
씨앗은 나무를 포함할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나무다. 나무는 그것을 존재하게 하는 성장과정이 멈추면 존재하기를그친다.
자연이나무를 생산하기 위해 씨를 생산했는지, 아니면 씨를 생산하기 위해 나무를 생산했는지 하는 문제가 늘 의미없듯이.
도구성와 호모 파베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공리주의적 세계에서는 목적은 반드시 짧게 지속되고 더 나은 어떤 목적을 위한수단으로 변한다
공리주의에서 당혹스러운 것은 목적과 수단의 범주, 즉 유용성의 범주자체를 정당화하는 원리에 도달하지 못한 채, 수단과 목적의 끝없는 연쇄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의미로서 확립된 유용성이 무의미성을 초래한다.
엄격히 공리주의적 철학이 무의미성의 딜레마에서 벗어 날수 있는 유일한 길은 사용물건의 개관적 세계로부터 등을 돌려사용자체의 주관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호모파베르의 인간중심적 공리주의를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은 ‘모든 인간은 결코 목적을 위한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며, 모든 인간존재는 목적 자체다’라는 칸트의 정식이다.
수단과목적의 관점에서 매이지 않는 사유를 반드시 정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치명적 결론
호모 파베르의 이런 태도 때문인다. 속물적의 가장 적절한 번역은 ‘교양없는’이다.
플라톤의 예에 따르면, 바람은 더 이상 자연이 힘으로 이해되지 않고 오로지 따뜻함과 시원함에 대한 인간욕구와 관련해서만 생각 될 것이다
교환시장
고대가 호모파베르의 배제에 열중했던 것처럼 근대는 정치적인간, 즉 행위하고토론하는 인간을 공론 영역에서 배제하는데 열중했다는 사실에서 마르크스 말이 참임을 알수 있다.
근대는 법과 질서의 강제를 넘어서는 모든 것을 ‘쓸데없는잡담’ 또는 ‘헛된 명예욕’으로 간주한다.
인간에게 고유한본능은‘교역’ 즉 물물교환의 경향이다.
애덤스미스에 따르면 바로 이것이 인간과 동물을 구별한다.
’화려한 고립‘ 타인으로부터 고립은 존재하게 될 사물의정신적 이미지인 ’관념‘과 함께 독거하는 모든 장인에게는 삶의필수조건이다.
교환시장에서 만나는 사람은 이제 분명 제작자 자신이 아니다 마르크스가 자주 지적했듯이 그들은 인격으로서가 아니라상품과 교환가치의 소유주로서 만난다
인간의상품화라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자기소외가 시작될수 있다. 이런 인간의 평가절하하는 인간을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상품의 질에 따라생산자로서 판단하는 제조업 사회에서 노동이 처한 상황이 특징이다.
’가치‘ 이 가치는 오로지 공론 영역을 존중함으로써 이루어진다.
발견되는 가치(worth)
’사용가지‘
노동, 토지, 이윤
세계의 영속성과 예술작품
예술의 두드러진 영속성 때문에 예술작품은모든 구체적인 사물들중에서 가장 세계적인 사물에 속한다.예술작품은 살아있는 피조물이 사용하는 물품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의 직접적 원천은 인간의 사유능력이다.
에술작품이 경우, 사물화는 단순한 변형이상이다.
예술작품은 사유의 산물이다
언어를 재료로 하는 시는 아마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세계적이지 못한 예술이다. 시의 최종생산품은 그것을 영감을불어넣은 사유와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다. 시의 지속성은 압축을 통해 산출되기 때문에 가장 밀도 있게, 집중적으로말해진 말은 마치 시처럼 보인다.
시의’기억가능성‘이 시의 지속성을, 즉 인간의 기억에 영원히 자리잡을 가능성을 결정한다.
사유와 인식은 같지 않다.
변신하지 않고도 분명히 표출된다.인식과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과학이다
호모파베르의 공리주의 철학
에술가나 철학자는 자기 작품의 물질적 사물화를 위해 바로이 사유과정을중단하고 변형해야 한다.
이 과정이 결과를 산출하지 못하면 실패한 것이다
플라톤의 언어로 말하면, 에이도스 또는 이데아와의 적합성 여부다. 이데아는 정신적 상 또는 내적인 눈만이 볼수 있는상으로서 세계의 생성에 앞서고 세계가 파괴된 후에도 살아남는다.
제 5장 행위
모든 슬픔은, 말로 옮겨 이야기로 만들거나
그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참을 수 있다-아이작 디네센
행위자가 모든 행위에서 우선적으로 의도하는 것은, 자연적 필요에서 행위하든 자유의지에서 행위하든 상관없이 자기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다.따라서 모든 행위자는 행위하는 한, 그 속에서 기쁨을 얻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존재를 원하고, 행위에서 행위자의 존재는 다소 강렬해지기때문에 , 필연적으로 기쁨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자신의 잠재적 자아를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행위는 행위가 아니다. - 단테
말과 행위 속에서 드러나는 인격
사람은 말과 행위를 통해 다른 사람과 자신을 구분한다.
말과 행위를 인간이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서로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양식이다.
’너는 누구인가’
새로 온 자의 존재를 해명할수 있느 단서는 그의 행위와 말 속에 들어있다.
행위는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인간사의 그물망과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들
모든 정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규정이거나 해석이다.
인간사의 영역은 사람들이 함ㄲ 사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존재하는 인간관계이 그물망으로 이루어진다. 말을 통한 ‘인격’의 현시와 행위를 통한 새로운 시작의 출발은 항상 기존이 그물망으로, 행위와 말의 직접적인 결과가 감지디는 그물망으로 귀속된다.
플라톤의 행위의 산물인 인간사를 진지하게 치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일종의 신이 장난감처럼 여겨진다. 프랄톤은 하나님, ‘보이지 않는 손’, 자연,‘세계정신’, 계급이해 등이 진정한 선구자다,
무대 뒤의보이지 않는 조종자의 도입
애덤 스미스가 교환시장에서 경제적 거래를 조정하기위해 ‘ 보이지 않는 손’울 필요로 했다.
용기는 결과로 인한 고통을 감수하려는 자발성과 반드시 또는 우선적으로 관계있지는 않다.용기와 대담성은 사적은신처를 떠자기가 누구인가를 보여줄 때, 즉 자아를 열거나 노출할때 이미 나타난다.
26 인간사의 연약성
행위는 궤저 내용이무엇이든 늘 관계를 확립시키며, 따라서 모든 제한을 풀고 모든 경계를 없애려는 내 적 경향을 가진다.
인간의 제도와 법률의 연약성
법률은 인간사의 안정을위해 매우중요하다 왜냐하면 제한하고보호하는원리들은 인간사의 영역 자체 안에서 진행되는 활동엣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의 절제의 덕이 우수한 정치적 덕의하나로 여겨진 이유는 바로 이때문이다
27. 그리스인 해결책
에우다이몬하다는 것과 에우다이몬해왔다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같은 것이다
‘잘산다’는 것과 ‘잘 살아왔다’는 것도
위대한 행위로 목숨을 잃는 자만이 자신의 정체성과 잠재적인 위대성의확고한 주인으로 머물 수 있다.
폴리스는 ‘불멸의 명예’를 얻는 기회, 즉 말과 행위로 그가 누구인지를 유일무이한 차이를 통해 보여주는 기회를 배가시키는 곳으로 여겨졌다
‘네가 어디로 가든 너는 폴리스가 될것이다,’
28 권력과 현상의 공간
소수의 권력은 다수의 권력보다 더 가알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간의 경쟁에서는 권력이 아니라 힘이 결정한다. 영리함즉 지력은 근육의 힘만큼 실제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인민의 항쟁은 승자나 패자가 있는 전투로 막을수 없고 오직 대량학살로만 저지할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승자조차 패자가 된다. 누구도 죽은 자를 지배할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삶의 조건에서권력의 유일한 대안은 권력에 대항해서는 무기력한 힘이 아니라 세력이다.세력은 한 사람이 홀로 동료에게 발휘하는 것이며
모에스키외의 발견이다. 전제정치의 핵심적 특징이 고립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권력은 강자를 파멸시키기 위해 약한자가 함께 연대할 때 비로소 부패하게 된다.
29 호모 파베르와 현상공간
호모파베르의 경우에는 세계를 더 쓸모있고 더 아름답게 만드는가 하는 관점에서, 노동하는 동물의 경우에는 삶을 더 편하고 오래 유지할수 있게 하는가의 관점에서 판단한다.
공동감각(common sense)
‘교환의 힘’(애덤스미스)
30 노동운동
오늘날 노동자는 사회 밖에 있지않다. 그들은 사회의 구성원이고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직업인이다. 노동운동의 정치적 의미는이제 다른 이익집단과 같다. 거의 100년,
31 행위를 생산으로 대체한 전통적 시도
누군가가 명령할 자격을 부여받고 다른 사람이 복종할 의무를 가지는 경우에만 인간들은 법적, 정치적으로함께 살수 있다는 생각.
지배를통해 ‘다수는 모든 측면에서 한 사람이 된다.’
’폭력은 신사회를 잉태한모든 구사회의 산파‘
신이 자연을 ‘만들었듯이’ 역사는 인간이‘만든다’는 가장 내밀한 믿음을 산출한다.
‘목적을원하는 자는 수단도 원해야 한다’
‘희생 없이는 목적을 이룰수 없다’
전통을 ‘편견’으로부터해방시켰다
32 행위의과정적 성격
인격으로서의 주권과 불가침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인간사의 모든 영역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인 듯하다
월신을 가정할 때에만 주권과 자유는 같을수 있다
33 환원불가능성과 용서하는 힘
예수의표현은 훨신 급진적이다. 복음서는 신이 인간을 용서하기 때문에 ’신과같이‘ 남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남을 용서할 때만‘신도’ 그와 같이‘ 인간을 용서해주다고 가르치고 있다.
용서는 극단적인 범죄나 의도적인 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수에 따르면 이것은 하나님이 마지막 심판의 날에 판단하실 것이며 -이 심판은 지상의 삶에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마지막 심판의 특징은 용서가 아니라 공정한 응도(apdounai)
죄는 항상 용서하여 잊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인간이 알지 못하고 행한 것으로부터 부단히 인간을 해방시켜야만 인간의 삶은 계속 가능할수 있다.
인간은 행한 것으로부터 서로를 해방시켜줌으로써 자유로운 주체로 남을수 있다. 자시의 마음을 변화시켜 다시 시작하겠다는 부단한 의지를 통해서만 인간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위대한 힘을 부여받을 수 있다
예수의 용서의 가르침에 포함된 자유는 보복으로부터의 자유다. 보복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절대로 끝나지 않는 행위 과정의 잔인한 자동운동 안에 가둔다.
용서의 정반대는 아니지만, 용서 외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처벌이다. 처벌과 용서는, 간섭하지 않는다면 무한히 계속될 그것을 끝내려고시도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인간은 처벌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할 수 없고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처벌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수와 함께 다음 말을 되풀이할 수 있을 뿐이다, ’연자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졎ㄱ는 것이 그에게는 더 나을 것이다.‘
사랑만이 용서하는 힘을 가진다는 통상적인 확신의 이유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완전히 받아들이고 구가 무엇을 하든항상 기꺼이 용서하는 까닭에 사랑만이 용서의 힘을 가진다면 용서는 우리가 고려할 수 없는 것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이 정치적우애
34 예측불가능성과 약속의 힘
약속의 행위를 통해 적어도 부분적으로 제거될 수 있는 예측불가능성은 이중이 본질을 가진다.
공동체의 주권
약속은 타당하고 구속력 있게하는 , 모두가 동의한 목적에 의해 제한되고 유지된다.
도덕은 기꺼이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약속하고 지킴으로써 행위가 초래하는 수많은 위험을 이겨내는’ 선의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시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사실
이 세계에서 믿음을 가질 수 있고 이 세계를 위한 희망을 가져도 된다는 사실을 표현하는 가장 웅장하면서도 간결한 말은, 복음서가 ’기쁜소식‘을 천명한 몇 마디 말에서 발결할수 있다,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다.”
제 6장 활동적 삶과 근대
35 세계소외
세 가지 커다란 사건
아메리카의 발견, 지구의 탐험, 교회와 수도원의 재산을 몰수함
소유는 인간의 세계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조건이다. 초기 기독교이 태도인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로의 복귀를의미
사유재산 몰수는 부의본원적 축적을 창출했으며 동시에 부가 노동의 착취를 통해 자본으로 변형될수 있는 기본조건
자연과정에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창조만으로도 임의이 숫자의 인간을 번식하여 생산하기에 충분하지만
36 아르키메데스적 점의 발견
“구유에서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에 , 그렇게 위대한 일이 아무런소동없이 일어날수 있었늕 의심스럽다”
세계소외가 근대사회의 방향과발전을 규정했다면, 지구소외는 근대과학의 기호가 되었다.
대수학의 발전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대수학으로서 수학은“공간성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데 성공했다.” 즉 기하학으로부터의분리다. 기하학은 그 이름이 의미하듯이 지구의 측량과 측정에 의존한다. 근대 수학은 인간을 지구에 묶인 형험의한계로부터 해방시켰으며 인식능력을 유한성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다.
실험을 통해 인간은 지구에 묶인 경험의 족새로부터 새롭게 획득한 자신의 자유를 실현했다. 수학은 근대이 주도적 학문이 되었다. 수학이 모든 학문 중에서철학 다음으로 가장 고상한 학문.
수학(즉 기하학)
수학은 이제 더 이상 철학, 즉 존재를 그것의 참된 현상에서 탐구하는 학문의 시작이 아니며, 그 대신 인간 정신의 구조를 탐구하는 ’과학‘이 되었다
보편수학으로서의 과학의 근대적 환원
37 보편과학 대 자연과학
인간의 파괴력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그래서 지구상의 모든 유기체를 파괴할 수 있으며, 언젠가는 지구 자체도 파괴할 수있다는 사실이다.
데카르트가 근대철학의 아버지라면 갈릴레오는 근대과학의 시조다
38 데카르터적 회의의 발생
데카르트의 회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회의하라.
’누구도자신이 의심한다는 것을 의심할 수 없으며 그가 의심하는지 하지 않는지 자체는 불확실하지 않다.‘
데카르트의 유명한(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어떤 것을 회의할때 나는 내 의식속에서 회의하는과정을 지속적으로 인식한다.
39 자기반성과 공동감각의 상실
자기반성은 자기자신에 대한의식의 인지적관심이다.
자기반성은 반드시 확실성을 산출해야 한다.
데카르트아 라이프니츠 신의 존재가아닌 신의 선함을 증명해야 했다. 데카르트는 세계를 지배하고 인간을 조롱하는 악령이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논증했고 라이프니츠는 인간을 포함한 이 세계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 최상의 세계임을 논증했다.
2+2는 얼마? 4 이것이 공동감각의 추론의 전형적 사례
데카르트에게 이성은’ 결과를 계산함‘ 즉 추론하고 결론을 끌어내는 능력이다.
40 사유와 근대의 세계관
41 관조와 행위의 전도
중세철학에서는 신적 진리를 관조하기 위한 시녀였고 고대철학에서는 존재의 진리를 관조하기 위한 시녀였던 사유가 이제 행위의 시녀가 된다.
마르크스가 헤겔의 변증법을 전도시키고 니체가 초감각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항하여 감각적이고 자연적인 것을 재평가한 것처럼 저 유명한 위계 안에서의 근대적 전도를 지대한 것도 동일한 전통이고 한 쌍의 반대명제를 가지고 벌이는동일한 지서 게임이다.
전도는 갈릴레오의 발견이 낳은 정신적 결과다.
42 활동적 삶 내에서의 전도와 호모 파베르의 승리
활동적 삶 내의 활동 가운데 이전에 관조가 차지하던 지위로 제일먼저 상승한 것은 만들고 제작하는활동이었다. 즉 호모파베르가 특권을 갖게 되었다. 근대의 혁명을 주도했던 것은 도구와 도구를 만든느자로서의 인간이었기 때문
’나에게 재료를 주십시오. 그러면 나는그것으로세계를건설하겠습니다 나에게 재료를 주십시오 그러면 세계가 어떻게 그것으로부터 발전했는지를 보여주겠습니다.. 칸트의 이 말은 만든다는 것과 안다는 것의 근대적 결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과학의 대상은 더 이상 자연이나 우주가아ㅣ라 역사,즉 자연이나 생명 또는 우주가 존재하게된 역사여야 한다는 점이다.
근대정치철학의 첫째가는 대표자는 여전히 홉스인데
형상“idea)
43 호포파베르의패배와 행복의원리
호모파베르의 세계관이 정수인 유용성의 원리가불충분하다고판명되어 재빨리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원리로 대체되었다는사실만큼 호모파베르가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데 궁극적으로 실패했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은 없다.
’고통과 쾌락의 계산법‘에 관한 제러미 벤담
유물론의 19세기 해석판인 자연주이는 데카르트 철학의 난점을 해결하고 동시에 철학과 과학사이의 골 깊은 격차를 메울 수 있는 길을 생명에서 찾았다
44 최고선으로서의 삶
호모파베르의 패배는 왜 도동하는동물의 승리로 끝났는가, 활동적 삶이 상승과 더불어 정확히 노동활동이 인간능력의 서열에서 최고의 지위로 상승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개별적 인간생명의 불멸성에 대한 기독교이 ’기쁜소식‘은 인간과 세계의 고대적 관계를 전도시켰고 가장 가멸적인 인간생명을 당시 우주가 차지하고 있던 불멸성이 지위로 끌어올렸다.
’죽음은 죄의 삯이다‘라는 바울이 진술
죽음으로써 끝나는 이러한 지상의 삶이 없다면, 영원한 삶도 있을 수 없다. 바로 이 때문에 개채적 생명의 불멸성이 서양이 핵심교리가 되었을때, 즉 기독교가 발생했을 때에만 지상의 삶도 인간의 최고선이 될수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노예를 경멸할수 없었다.왜냐하면 어떤 상황에 처해서도 살아남은 것이 신성한 의무가 되고 자살은 살인보다 더 나쁜것으로 여겨졌기때문이다 따라서 살인자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끝낸 자에는 기독교 장례를치르지 않았다
나사렛 예수가 설교에서 권명하는 유일한 활동은 행위다 . 그리고 그가 강조하는 유일한 인간능력은’기적을 행하는‘ 능력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근대는 최고선이 세계가 아니라 살이라는 가정에서 지속적으로 작용해왔다.
생명의 불멸성이 아니라, 삶이 최고선이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45 노동하는동물의 승리
마르크스는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사회의 계급들을 지도하고 고무시키며 이들 간의 갈등을 통해서 사회 전체가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사유는-정치적으로 자유로운 곳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가능하며 또 실제로 이루어진다.
사유의 경험을 한 사람은 누구든지 카토(cato)가 다음과 같이 말한것이 얼마나 옳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은 그가 아무것도 행하지 않을 때 보다 더 활동적인 적이 없으며, 그가 혼자 있을 때 보다 더 외롭지 않은 적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