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웅 조각전> 도록(9월 말 전시장에서 판매 예정)에 실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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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참 스승, 최충웅 선생님
김성철(서울고 교사 시절의 제자, 경주 동국대 불교학부 명예교수)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1973년) 특별활동부로 미술반을 선택했다. 지금의 경희궁 터를 교정으로 삼았던 서울고등학교에는 대학교 동아리방처럼 미술반 특활실이 따로 있었다. 미술반 가운데 열성분자 몇몇은 방과 후면 거의 매일 미술반 특활실에 남아서 그림을 그렸고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말까지 그랬다. 대학입시를 목표로 매일매일의 시간을 쪼개서 써야 하는 지금의 청소년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정규수업을 마친 후 미술반 특활실에 남아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해 있던 우리를 최충웅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그리곤 교실 건물 밖에 있는 허름한 창고로 데리고 가셨다. 선생님의 조소 작업실이었다.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는 찰흙이 가득 담겨있었고, 두상 조소용 철제 심봉, 노끈 다발, 심봉용 각목 등이 잔뜩 쌓여 있었다. 최 선생님께서는 ‘ㅗ’자 형의 철제 심봉에 짧은 각목을 수평으로 대고 노끈으로 단단히 묶은 후, 찰흙을 붙여서 두상을 만드는 시범을 보여주신 후, 각자 자신의 얼굴을 만들어 보라고 지시하셨다. 우리는 그날 평생 처음 조소용 찰흙을 만져보았다. 그 생생한 체험에 가슴이 뛰었다. 수업만 끝나면 작업실에 모여서 자소상 제작에 몰두했다.
최 선생님께서는 거의 매일 우리들의 작업실로 오셔서 두상 조소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처음 두상을 만들 때는 턱을 들어 올린 모습이 되기 쉬우니 주의하라는 점, 얼굴이 밋밋한 것 같이 보여도 피부 속에 미세한 근육들이 있으니 이를 잘 살펴서 재현하라는 점 등 기법은 물론이고 얼굴의 해부학적 구조까지 두상 제작의 기초적인 사항 거의 모두를 상세하게 가르쳐주셨다. 며칠에 걸쳐서 우리는 자기 얼굴을 만들었고, 최 선생님의 지도로 석고 뜨기까지 모두 끝내어 자소상을 완성하였다.
곧이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는데, 최 선생님께서는 망우리 신내동의 옹기 가마로 우리 미술반 소년들을 불러모으셨다. 배요섭씨라는 분이 운영하는 전통옹기 가마였는데, 예술가들을 배려하여 테라코타 작품을 구워주는 곳이었다. 우리는 옹기 작업장 한구석에 앉아서 다양한 소품을 만들었다. 테라코타의 경우, 찰흙의 두께가 두껍거나 공극이 있으면 굽는 과정에서 갈라지기에 찰흙이 어느 정도 굳으면 속을 파내야 한다. 최 선생님께서는 가는 철삿줄로 찰흙 자르는 방법, 둥근 철사 고리로 찰흙 속 파는 방법, 그늘에 말리기 등 테라코타 제작 기법의 거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우리나라의 고등학생 가운데 미술 선생님의 인솔과 지도로 테라코타 작품까지 만들어 본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최 선생님께서는 감수성 예민한 까까머리 소년들에게 당신의 지식과 작업 재료와 도구와 소중한 시간까지 모두 내어주시면서 자상하게 지도해 주신 진정한 스승이셨다.
우리는, 선생님의 작업실에서 만든 석고상들과 망우리의 옹기 가마에서 구워낸 테라코타 작품들을 모아서 그해 가을 학교 강당에서 열린 예술제에서 전시하였다. 최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만든 작품의 제목, 전시장 내의 작품 배치 등 모든 것을 일일이 지도해 주셨다.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여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는 한 친구가 자소상의 제목을 짓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으니까, 선생님께서 ‘고졸기 미소’라는 제목을 달아주셨다. 그 뜻을 여쭈니 그리스 조각의 역사에서 한 기간을 고졸기(古拙期)라고 부른다고 설명해 주셨다. ‘예스러운 졸작의 시기’라는 의미이리라. 누가 봐도 참으로 못 만든 자소상이었는데, 최 선생님께서 붙여주신 독특하고 멋진 제목 때문에 잊지 못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필자는 최 선생님 덕분에 조소와 테라코타를 처음 알게 되었고, 조각가의 길을 가지는 못했지만, 고교 졸업 후 지금까지 가끔 테라코타 작업을 하였다. 수십 년 동안 간간이 만들어 온 것들이 하나, 둘 쌓이다 보니, 30점 남짓한 소품이 모였다. 최충웅 선생님의 지도가 없었다면, 내 삶의 일부가 된 테라코타 작업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라면 괴짜이고, 기행을 하고, 술 잘 마시는 사람을 떠올린다. 장승업, 피카소, 로댕, 이중섭 등이 그런 분들일 것이다. 그런데 최 선생님께서는 그와 정 반대셨다. 항상 올곧으셨고, 진지하셨고, 자애로우셨고, 선비와 같은 기품을 가진 분이셨다. 감수성 예민한 고교 시절, 교사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학생의 일생을 좌우할 수 있는 시기에 최충웅 선생님께서 우리의 은사로 계셨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최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작품을 학교의 작업실에서 제작하셨다. 조각의 기법 면에서 최 선생님을 ‘스티로폼 조각의 창시자’라고 평하는데, 우리를 지도해 주셨던 1975년 전후한 바로 그 시기에 최 선생님의 스티로폼 조각이 탄생하였다. 최 선생님께서는 서울산업대학(현 서울과학기술대학)을 퇴임하시면서 기념 전시회를 개최하셨는데(2004년), 그때 우리 미술반 동기들을 중심으로 기금을 마련하여 선생님의 작품을 모교에 기증하였다. 탑의 이미지를 추상화 한 ‘전설’이라는 제목의 브론즈였다. “자르고, 깎고, 녹인 스티로폼을 다시 Bronze화 한다.”는 최 선생님의 독특한 제작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이었다. 서울고등학교 서초동 교정에 가면 강당 로비에서 만날 수 있다.
미술의 영역을 회화와 조각으로 구분할 때 이중섭, 김환기, 장익진, 박수근 등 화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우리나라 조각가의 이름을 단 하나라도 댈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조각예술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낙후되어 있다. 또는 ‘대형 건물의 장식 조각 설치 의무화’라는 예술장려 경제정책이 오히려 한국 조각을 황폐하게 만든 근원일지도 모른다. 이런 척박한 사회, 가혹한 시기에 온 삶을 바쳐서 오롯하게 형상의 본질을 추구한 분, 손끝이 아니라 그 영혼으로 재료를 깎고 녹이고 다듬은 분, 연우 최충웅 선생님이시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지적(知的)으로 보다 성숙하고 도덕적으로 보다 진실해지는 그 날이 되면, 당신의 분신과 같은 작품들과 당신의 작가 정신이 더욱 큰 빛을 발하리라.
필자가 서울고등학교 2학년 때(1974년) 최충웅 선생님의 인솔로 한미요업 작업장에서 제작한 테라코타 첫 작품 | 2020.8.30 최충웅작품전에서 - 우리의 위태로운 인생행로와 같이 쓰러질 듯 하지만 가까스로 쌓아 올린 탑 모습의 브론즈 옆에서 |
첫댓글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열반에 드신후 되려 불교공부 많이하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근데 교수님 허리 벨트 삐뚤어
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