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항산 그림자 낙동강에 드리우고> 함안문협 사화집에는 시인 이상규 님을 비롯하여 66분의 시와 수필가 23분의 글이 실려 있다.
합강정에 와서
이상규 님 (함안문화예술회관 명예관장, 전 함안예총 회장)
산도 강도 들도
본래는 한 살붙이였다는 것을
여기 합강정에 와서야 알 수 있다
산맥이 치달리는 것도
강물이 굽이 치는 것도
서로 못 견디게 그리워하기 때문
태백산에서 그리고 덕유산에서
제 어미 품을 떠나
지난해 무너진 산자락도 쓰다듬고
가문들판도 다독이며 적시고
때로는 급하게 때로는 에둘러
합강정 발아래 와서야
비로소 살을 섞고 뒤척이며
강 건너 복숭아밭까지 바알갛게 물들이는
낙동강과 남강의 저 농밀한 몸짓.
말이산 고분군
이명호 님 (전 함안예총 사무국장, 전 함안문협 회장)
깨어진 토기 파편 하나에도
비워둔 가슴 속에 징소리가 울린다
누가 저토록 척박한 삶을 살다 갔을까
손금이 닳도록 저린 그 아픔을
이곳에다 새겨 놓았을까
사방을 둘러보면 박토에 가시덤불
풀벌레 여운도는 적막을 베고 누워
끝 모를 생각들이 고개를 들고
무명초 피었다 지는 사연
풍전등화의 낮과 밤이
무수한 과거를 일으켜 달린다
돌아보면 되돌아보면
뿌리 깊은 안라가야
찬란한 인고의 그 역사
불멸의 세월을 안고
흙빛에 묻어둔 여윈 속살마저
어찌하여 천오백여 년을 뛰어넘고 있는가.
오곡동 전설
장영수 님 (함안문협 회장, 명덕고등학교 교사)
방어산 까투리떼 오곡동에 나래 접고
후미진 콩밭골 콩서리 할 때면
해거름 억새바람에 신음하는 풀벌레 소리
여항산 송골매 산허리 맴도는데
너가 없고 내가없던 그날의 아비규환
피바위 슬픈사연이 미산재를 넘는구나
무당집 무남독녀 얽음배기 점둘이는
외기러기 울음 울면 상사병 도지듯이
아버지 우리아버지 동구밖에 마중가네.
성산산성
권충욱 님 (함안문협 회원, 함안예총 회장)
대숲 머리 우듬지 지나
상수리나무 숲길 들어서서
송홧가루 날리는 산성 간다
찔레 덤불 우거진 구릉 따라
무너진 황토언덕을 오르면
억새풀 바람에 쓸리는 '가야국의 구허'
사방에 흩어진 토기 조각마다
아득한 천년세월이 빗살무늬로 남아
나도 흙살 빚는 옛 도공이고 싶다
물레질하는 이름 없는 도공이 되어
한 생애 뜨겁게 소신하고 싶다
산뻐꾸기도 울어라, 울어라
사방 적막한 골짜기를 깨우는 새소리와
다람쥐가 꼬리 세워 나뭇등걸을 타고 가는
빈 당집 어름에 놀란 산꿩이 날아오르고
난데없이 천둥지기 논배미를 달려가는 고라니들
물물교환하던 그 옛적
아무도 오지 않는 성 안 오솔길이
피안으로 가는 길이었으리
흰옷입은 어진 사람들이 연꽃동네에서
다랑밭을 일구던 신천지었으리
늙은 소나무가 병풍처럼 지켜 선
산비알 외딴 무덤가에
자미화는 아직 꽃 피지 않았고
길을 덮은 칡넝쿨이 악착스레
마른잡목을 감아 오르고 있다
무한 천공 뜬구름 흘러가듯
잊혀진 왕국의 오랜 역사가
성터 허물어진 돌무더기에 묻혀 있다
각디미산
김상환 님(전 가야초등학교 교장, 전 함안문협 회장)
각디미산 바라보면
울아버지 생각난다.
같이 나무 한 짐씩
지겟작대기에 받쳐 놓고
진달래로 나뭇짐 꾸미시던
울 아버지 손길.
'각디미산 같이 큰마음 먹고
잘 살거라, 널 믿는다이'
울 아버지 음성이 들린다
진달래도 고개 끄덕이며 격려해 주던
큰 나뭇짐, 작은 나뭇짐.
각디미산은
울아버지다.
* 각디미산- 여항산
감목
강홍중 님 (함안문협 회원, 저서 <천국에 핀 싸리꽃> 외 다수 )
여항면 주서리 감목 골짜기
천년 묵은 감나무와
삼백 살 넘은 감나무 일곱 그루 살았지요
가을이면 새벽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배고픈 사람들에게 만나를 나눠 주었고
마을 사람들은 부모처럼 여겼지요
어느 날 그렇게 존경받던 사랑이
도시 사람들 땔감으로 팔려갔지요
동네지존이 쿵하고 쓰러지던 날
소년은 감나무가 줄줄 흘리는 눈물을
난생처음 보았습니다
해마다 봄이면 소녀의 목에 걸어 주었던
하얀 감꽃 목걸이가 오십이 넘어도 생생한데
감목이란 동네 이름은
소년의 기억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함안의 노래
이강섭 님 (함안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눈썹 그리는 남자>, 군북면장)
철의 왕국 가야의 터 면면히 이어온 땅
도약의 기회 맞아 꿈틀거리는 후손
여항의 웅혼함과 남강의 유려함 속에
새로운 꿈을 향해 땀흘리는 사람들
동지산의 여명에 아라고분 솟아오르고
여항산 자락에 낙조가 내릴 때 까지
뙤약볕 속에서 농심을 키워나가고
활기찬 기계소리에 묻혀 사는 사람들
백일홍 만발할 때 선비의 혼 살아나고
까치소리 정겨울 때 우리의 미래 보인다.
감나무 가지에 매달린 붉은 열매는
우리의 밝은 내일 아- 우리의 함안!
<여항산 그림자 낙동강에 드리우고> 함안문협 사화집에는
함안의 문화재, 역사, 명소, 고향과 유년의 추억에 대한 글들이 실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