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자동차로 해안도로를 한 바퀴 휙 둘러본 후 “제주에 별로 볼 만한 게 없더라”고 말한다. 몇몇 박물관과 민속마을, 천편일률적인 관광 음식을 내놓는 식당 등으로 짜인 일정을 생각해보면 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제주에 대한 이런 오해와 편견은 제주도가 섬이라는 데서 시작된다. 제주도의 ‘도’는 섬(island)이 아니라 ‘주(province)’다. 면적이 약 1845㎢. 남한 전체의 약 1.9%를 차지하는 넓은 이 섬을 고작 사나흘 만에 돌아보려는 것 자체가 제주에 대한 실례일 수도 있다. 제주도를 이미 서너 번 다녀온 당신, 여기 조금 더 깊은 제주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조금 더 맛있고, 조금 더 색다르고, 조금 더 제주다운 곳들이다. 즐길거리 1.오직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숲 - 교래곶자왈 등 곶자왈
▲ 교래곶자왈
용암이 굳어가면서 쩍쩍 갈라져 생긴 돌무더기 땅을 비집고 식물들이 자라 숲을 이루었다. 이런 지형은 보온·보습효과가 뛰어나고 지하수도 많다. 난대식물과 한대식물이 함께 자라는 특이한 형태를 띠는데, 이는 세계에서 제주의 곶자왈이 유일하다. 곶자왈은 지금까지 우리가 육지에서 경험하던 숲과는 다른 숲을 경험하게 해준다. 나무와 덩굴식물, 암석이 뒤범벅이 돼 빚어내는 풍경은 숨이 멎을 듯 경건하기까지 하다. 제주에는 한경·안덕, 조천·함덕, 애월, 구좌·성산 등 4개의 곶자왈지대가 있다. 비교적 알려진 곳이 조천·함덕 곶자왈지대에 속한 교래자연휴양림이다. 곶자왈을 둘러보는 생태관찰로(1.5㎞)와 곶자왈과 초지를 거쳐 큰지오름까지 다녀오는 오름산책로(약 3.5㎞) 등 두 종류의 탐방로가 마련돼 있다. 생태관찰로는 아이들이 걸어도 부담 없을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다. 안덕에 자리한 화순곶자왈은 뭍에서 온 여행객들은 거의 찾지 않는다. 조금 이른 시간에 간다면 이 신비로운 숲을 온전히 자신만의 정원으로 만들 수 있다. 한경면에 자리한 ‘환상숲’은 사유지로 입장료를 내고 탐방 가능하다. 교래자연휴양림 -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 2023 (064)710-8673 환상숲 -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2848-2 (064)772-2488 2. 우리가 몰랐던 제주의 풍경 - 따라비오름
▲ 따라비오름에서 본 풍경.
가장 제주다운 풍광을 꼽으라면 아마도 오름일 것이다. 제주 전역에 약 360여개의 오름이 흩어져 있다.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오름은 따라비오름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에 있다. 높이는 342m, 실제 오르는 높이는 100m가 좀 넘는다.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데 2시간이면 넉넉하다. 따라비란 이름은 오름 동쪽에 모지(어머니)오름, 장자(큰아들)오름, 새끼오름 등이 서로 따르는 모양이라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철조망을 지나 오름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 계단으로 된 오름 트레일이 보인다. 초입의 숲 부분을 지나면 억새로 뒤덮인 민둥오름이라 시야가 환하다. 나무 계단을 따라 20여분 오르면 정상에 도착하는데 멀리 태흥리와 남원리 바다가 아스라하다. 굼부리(분화구) 능선을 오르자 전망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밑에서 보던 것과는 딴판으로 많은 봉우리와 굼부리를 거느리고 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펼쳐진 조망을 감상한다. 첫 봉우리에 올라서니 동쪽 가까이 모지오름의 큰 품이 보인다. 그 뒤로 한라산이 살짝 고개를 내밀었고, 멀리 우도의 우도봉 머리가 가물가물한다. 구좌읍 송당 일대의 높은오름, 백약이오름, 동검은오름, 좌보미오름 등이 어울려 빚어내는 스카이라인도 아기자기하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62 3. 올레가 지겨운 당신에게 - 지질트레일 트레킹 지질트레일은 올레길에 이어 제주의 또 다른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제주도는 2010년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됐으며 이 가운데 수월봉, 산방산, 용머리해안, 주상절리대, 서귀포층, 성산일출봉, 만장굴, 선흘곶자왈, 한라산 등 12곳이 핵심 지질 명소로 지정됐다. 이후 제주도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수월봉 지질트레킹 코스 개설을 시작으로 지질트레일을 만들고 있다. 제2코스는 산방산·용머리해안 코스, 제3코스는 동굴 위를 걷는 김녕·월정 코스로 이어진다. 얼마 전 4코스인 성산·오조트레일도 열렸다. 칠월 제주를 찾는다면 김녕·월정 코스를 추천한다. 코스 총길이는 14.6㎞. 마을을 걷는 길과 바닷가를 따라 걷는 길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 뭍을 따라 걷는 9㎞ 코스를 드르빌레길, 바다를 따라 걷는 5㎞를 바당빌레길이라고 부른다. 제주사투리 ‘드르’는 들을, ‘바당’은 바다를 의미한다. 제주식 등대인 ‘도대불’, 바다에서 솟구치는 샘물인 ‘청굴물’, 암반숲인 ‘진빌레’ 등을 만날 수 있어 올레길과는 또 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다. 제주시 구좌읍 일대 볼거리 1. 세계적 컬렉션을 만나다 - 아라리오뮤지엄
▲ 아라리오뮤지엄
제주시 탑동 한복판에 들어선 강렬한 빨간 빛깔의 현대적 건물. 탑동시네마, 탑동바이크, 동문모텔을 갤러리로 꾸몄다. 세계적인 미술품 수집가 김창일 회장의 수집품을 전시하고 있다. 영화관을 개조한 ‘탑동시네마’에는 커다란 공간을 활용해 아라리오 컬렉션에서 가장 거대한 작품들을 전시한다. 중국 작가 장환의 ‘영웅 2.0’은 길이가 10m, 높이가 5m에 이른다. 이 작품은 철제 구조물에 100여마리의 소가죽을 덮어 만들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탑동시네마에서 약 1㎞ 떨어진 장소에 있는 ‘동문모텔’은 영화관과 반대로 좁은 객실에 주목했다. 모텔의 한 층을 원형대로 남기고 각 객실에 작은 영상작품을 하나씩 설치해 비디오방 느낌을 연출했다. 관객들은 모텔에 버려져 있던 거실장 위에 앉아서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탑동시네마 바로 옆에 위치한 ‘탑동바이크샵’은 두 장소와 달리 평범한 전시공간으로 개조됐다. 제주시 탑동로 14 (064)720-8201 2.무심코 지나쳤을, 결코 지나치지 말아야 할 - 추사관과 추사적거지
▲ 추사 유배지
제주도 최남쪽에 자리한 대정현은 바람이 거센 곳이다. 추사 김정희는 1840년에는 이곳으로 유배를 와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추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책뿐이었다. 역관이었던 추사의 제자 우선 이상적은 그런 추사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중국에 갈 때마다 최신의 서적들을 구해다 추사에게 보내주었다. 유배 가기 전이나 유배 간 뒤나 언제나 똑같이 자신을 대하는 우선의 행동을 보면서 추사는 문득 ‘논어’의 구절을 떠올렸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 ‘겨울이 되어서야 소나무나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꼈듯이, 사람도 어려운 지경을 만나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는 법이다’라는 뜻이다. 추사는 우선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그 그림이 바로 걸작 ‘세한도’다. 대정읍성에 둘러싸인 추사 유배지는 추사의 고독한 시간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곳이다. 안거리(안채), 밖거리(사랑채), 모거리(별채)로 이루어진 현재의 초가집은 고증을 거쳐 1984년에 복원했다. 복원된 유배지 옆에는 추사의 서찰과 글씨, 기록들을 모은 전시장인 추사관이 있다. 이곳에서는 9년여의 제주 유배 기간에 겪은 경제적 궁핍과 참담한 심경 등이 느껴지는 편지들이 발길을 붙잡는다. 추사관은 한국 건축의 거장 승효상이 설계한 것으로 세한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감흥을 전해준다.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 (064)760-3406 3. 가장 아름다운 마을의 미술관 - 제주현대미술관 한경면 저지마을은 420가구 1100명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 최근 ‘가장 아름다운 마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마을 안에 제주현대미술관이라는 근사한 미술관이 있다. 제주의 독특한 문화를 알리고 예술인마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건축가 김석윤의 작품인 건물은 너무나 제주적이다. 현무암으로 외벽을 마감한 건물에서부터 제주색이 도드라지게 드러난다. 틈틈이 공간을 주어 현무암을 표현했고 바람이 마음대로 드나들도록 했다고 하는데, 이렇게 현무암의 특징을 잘 표현한 미술관은 제주 7대 건축에 선정되기도 했다. 미술관은 본관과 분관으로 나뉘며 상설전시실에서는 한국 원로 화가인 김흥수 화백과 박광진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여성의 미는 선에 있다. 선은 움직이며 생명체를 창출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긴 김흥수 화백의 작품이 보는 이의 마음을 지그시 누른다. 주변 예술인마을에 자리한 20여동의 창작 건축물도 잘 어우러진다. 미술관을 보고 난 후 가까운 저지오름에 가보는 것도 좋을 듯. 마을에서 정상까지는 1350m. 쉬엄쉬엄 걸어서 왕복 1시간30분이면 충분하다. 저지오름은 숲이 좋다. 220여종 2만여그루의 나무가 빼곡하다. 2007년에는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대상을 받기도 했다. 겉보기에는 별것 아닐 것 같지만 막상 파고들면 아름다운 숲에 이내 마음을 뺏기고 만다. 왕초피나무며 예덕나무, 좀작살나무, 가막살나무, 합다리나무, 까마귀베개 등 이름도 낯선 나무들이 빼곡하다. 조망도 여느 오름에 뒤지지 않는다. 돌계단을 거쳐 정상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 거칠 것 없는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차귀도와 비양도, 산방산, 송악산, 가파도, 마라도 등이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뒤로는 한라산이 크게 서 있다. 제주시 저지14길 35 (064)710-7801 먹거리 1. 제주 재료로 만든 최고급 스시 - 스시 호시카이 문을 열고 들어서면 동양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공간이 펼쳐진다. 최고급 편백나무로 만든 스시바, 거장 이우환의 작품, 검은 현무암으로 된 장식 등 레스토랑 내부는 서로가 튀지 않고 잘 어울리며 편안하고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시 호시카이를 책임지는 임덕현 조리장은 제주 출신이다. 일본 최고의 조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0여년간 도쿄의 유명 초밥집에서 실력을 쌓았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맑은 고향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최고의 재료를 사용해 최고의 초밥을 만들고 있다. 스시 호시카이의 모든 재료는 매일 이른 아침 임 조리장이 동문시장에서 직접 선별한 제주산을 고집한다. 초밥의 생선 부분인 ‘네타’는 최소 하루 이상 숙성시켜 감칠맛을 극대화한다. 물론 각 어종에 따라 숙성 포인트도 다르다. 스시 호시카이의 초밥은 적당한 크기의 네타와 어울린다. 특히 금태, 옥돔 등 제주의 생선만으로 만든 초밥은 뭍과는 전혀 다른 맛을 경험하게 해준다. 꼭 드셔 보시길. 오직 천연재료로만 맛을 낸 회덮밥, 아나고덮밥, 흑돈 스키야키 정식 등 단품 메뉴도 가능하다. 제주시 오남로 90 (064)713-8838 2. 제주 스타일의 캐주얼 레스토랑 - 르 씨엘 비 애월 해안도로는 제주의 해안도로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 고급 풀빌라며 개성 있는 음식점들이 많이 들어서 있고 지금도 속속 들어서고 있는 이곳은 제주에서 가장 ‘핫’한 곳이기도 하다. 가수 이효리와 장필순도 애월 주민이다. 약간은 번잡한 해안도로에서 한적한 시골길을 따라 마을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다 보면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아담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서 있는데, 이곳이 애월에서도 가장 멋진 음식을 만들어내는 ‘르 씨엘 비’다. 오세득의 줄라이에서 수셰프로 공력을 쌓은 김태효 셰프가 전개하는 레스토랑으로 몸(모자반), 톳, 뿔소라, 보말(고둥) 같은 제주산 식재료를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선보인다. 일단 메뉴부터 제주스럽다. 감태로 감싼 보말 파스타, 뿔소라 에스카르고, 수비드(저온 조리) 방식으로 조리한 흑돼지오겹 등 창의적인 레시피가 메뉴판에 가득하다. 새로운 레시피 개발을 위해 제주를 찾았던 김 셰프는 제주의 재료에 반해 아예 눌러앉았다고 한다. 시그니처 메뉴는 보말 파스타와 뿔소라 에스카르고. 보말을 가득 넣은 파스타에 감태를 푸짐하게 얹은 파스타는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다. 부드러운 파스타와 쌉싸름한 감태가 어울려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낸다. 달팽이 대신 뿔소라를 이용해 오븐에 조리한 뿔소라 에스카르고 역시 제주의 감성이 물씬 묻어나는 요리다. 이 두 요리만으로도 그가 왜 제주에 둥지를 틀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근에는 간장 베이스의 문어 파스타도 선보였다. 알맞게 삶아진 문어와 계란, 돈나물, 감태 등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연출한다. 앞으로 그의 요리가 더 기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1097 (064)712-1427 3. 현지인들이 애지중지하는 횟집 - 모살물 제주시 연동 골목길에 자리한 모살물은 제주 도민과 근처의 직장인들로 붐빈다. 오후 6시에 가도 기다려야 할 때가 많을 정도로 인기다. 그걸 방증이라도 하듯 입구에 놓인 수조에는 참돔이며, 벵에돔, 황돔, 광어가 가득 들어차 있다. 모살물의 주메뉴는 객주리회다. 객주리는 쥐치, 엄밀하게 말하자면 말쥐치인데 제주에서는 객주리라고 부른다. 모슬포나 서귀포의 식당에 가면 벽에 객주리조림이라고 써 있는데 이는 쥐치조림을 말한다. 우리가 먹는 쥐포가 바로 말쥐치로 만드는데 요즘은 많이 잡히지 않아 동남아산을 수입해 만든다. 가격은 요즘 말로 ‘착하다’. 한치, 우럭, 따치, 붕장어, 어랭이, 모듬, 세꼬시가 있는데 작은 접시가 2만원(2인분), 큰접시가 3만원이다. 객주리회 큰접시를 주문하니 사장님이 수조에서 바로 고기를 잡아 회를 뜬다. 그 사이 부요리(쓰키다시)가 나오는데 구성이 만만치 않다. 갈치회 몇 점과 광어회 약간이 먼저 나오는데 선도가 좋다. 붕장어 무침도 맛있다. 회무침, 미역, 다시마, 겉절이 등이 푸짐하게 상 위에 오른다. 메인 메뉴인 객주리회도 훌륭하다. 얇고 널찍하게 잘 썰어서 놓았다. 둘이서 먹기에 남아도는 양이다. 3만원짜리 회를 시킨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중문이나 제주 근처의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횟집에서 이렇게 먹으려면 이 값의 대여섯 배는 치러야 한다. 제주시 삼무로3길 14 (064)713-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