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석 자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윤 균
원래 내 이름은 윤철允喆이었다. 그러나 조부님께서 喆자를 均으로 바꾸어 주셨다. 바꾼 이유는 모른다. 그저 장손이니 모두 잘 해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나 자신은 그렇게 멋진 이름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중학교 때는 친구들이 간혹 옥균으로 불렀고, 어른들은 윤근으로 쉽게 부르는가 하면 융군, 윤군 등 2개의 'ㄴ‘받침이 ’ㅇ‘으로 발음돼서 부르기에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법률상의 이름을 개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호를 하나 지어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號의 사전적 의미는 의존명사로 허물없이 쓰기 위한 이름이라고 되어 있다. 같은 장소에 여러 물건이 있을 때 순서를 매겨 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어떤 순서나 차례를 나타내는 말이다. 요즘은 푸드 가게에서 체인점을 여기 저기 내면서 영역을 넓혀 나갈 때 1호점, 2호점 하는 식이다.
어떤 집에서는 자식들을 첫째야, 둘째야, 셋째야, 그렇게 불렀다. 어쩌면 자식의 이름들이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 자의적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 같았다.
나는 호를 “壹水”라 부르기로 했다. 한문선생인 친구가 지어준 호다. 이유를 물으니 물의성질에 대한 설명과 老子사상까지 이야기를 해주며 내게 잘 어울리는 號라며 쓰라고 했다. 이 호를 받으면서 노자 8장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詩에서 노자의 물 철학을 알게 됐고, 道는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는 것 가운데, 가장 도에 가까운 것이 물이라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최고의 善은 물과 같다〃는 말의 의미가 첫째, 물은 세상 만물을 이롭게 하고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이며 둘째, 다투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안 되는 것을 노자는 爭이라 했다. 다투는 일이 없으니 도에 가깝다고 했다. 셋째,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는 것이다. 물의 겸손이라 극찬까지 한다.
그처럼 물은 일반 국민과 같으며 국민 다수가 나라의 주인이고 힘이고 민주주의 정의이며 원리 아닌가. 또한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인데,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란다. 대해불택세류(大海不擇細流)라는 말처럼 바다는 강물도, 도랑물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엄청난 포용력을 지니고 있다. 號 하나를 받으면서 많은 공부를 한 셈이다.
물의 성질과 작용이 인간의 삶과 정신 그리고 행동방식까지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물이 머무는 곳은 그냥 낮은 곳이며 물은 수평을 잡을 때도 사용된다. 물의 성질 자체가 평형을 가졌다는 뜻이니 얼마나 바른 삶인가? 바른 다스림은 바른 삶과 직결된다. 어질고 인자한 사람처럼 어디든 쓰여 진다. 그리고 물은 가식이 없다. 물이 담기는 형태 그대로 나타내니 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그뿐인가? 물은 순리에 따라 움직인다. 건드리지 않으면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지닌다. 그러나 물이 흐르지 않고 가두어져 있으면 썩게 된다는 진리도 순환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게 “上善若水”라는 휘호를 생일 선물로 주었다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이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궁금하다.
우리 집은 딸이 셋이다. 첫애가 태어났을 때 우리 부부의 이름 ‘가운데 자’를 뽑아 ‘윤희’로 작명을 했다가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라’는 의미에서 智鮮이라 지었고, 둘째는 ‘선명하게 비추’며 살라’고 映鮮이라 지었으며, 셋째는 ‘어질게 살라’는 뜻의 賢鮮이라 지어 호적에 올렸다. 첫째는 건축학을 전공했고, 둘째는 교육대에서 미술을 전공하여 교직에 있으며, 셋째는 일본어와 정보학을 전공해서 종교에 심취하고 있다. 3형제 중에서 둘째만 교대입학을 권유했고 둘은 자신들이 선택했다. 큰애는 설계파트에서 사람이 사는 공간을 설계하다 보니 바쁘고 남성적인 기질이 생긴 것 같다. 쾌적한 환경과 새로운 아이템을 계발해야 되고 주도면밀한 작업에 종사하는 직업이어서 밤낮이 따로 없다.
내가 소망 하나만을 생각하고 지은 이름이라서 그들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모르지만 모두가 행복한 삶이기를 기원할 뿐이다. 둘째딸은 학교생활이 옛날 같지 않고 매우 까다로워 졌다고 한다. 지금도 잡무 때문에 힘들다고 투덜댄다. 지식을 아이들에게 잔해주어야 하니 왜 힘들지 않겠는가?
나는 방학 때 보충수업에 불만이 많았던 사람이다. 학교가 교육을 통째로 하려했으니 힘들었다. 어쩌면 교수의 특권으로 여기는 통념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 편협함이 사교육을 부채질하지 않았을까? 교육은 학교만 하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 방학이 왜 필요한지 의심스러웠다. 방학 동안의 학습은 학생 자율에 맡겨야 정상이 아닌가? 교육이 정상화되려면 보충수업부터 없애라고 떠들었어도 내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날아갔다.
요즘 아이들의 이름을 보면 순수한 우리말로 지은 이름을 많이 본다. 봄에 태어나서 ‘보미’ 깨끗하게 살라고 ‘희라’ 존재 이유를 알라는 ‘벼리’ 큰 뜻을 세우고 살라는 ‘세리’ 소중한 의미로 ‘하나’ 우두머리가 되라는 ‘수리’ 막힘없이 살라는 ‘시원’ 자유롭고 아름답게 살라는 ‘새나’ 세상의 중심에 서라는 ‘가온’ 강을 뜻하는 ‘가람’ 반갑다는 뜻의 ‘가이’ 날아오른 새처럼 ‘난새‘ 나비처럼 예쁘게 ’나예‘ 세상의 옛말 ’누리‘ 빈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다빈‘ 다사롭고 은은하게 ’다은‘ 미덥게 커달라는 ’미나‘ 아름답다의 ’아름‘ 등 우리말의 어휘가 얼마나 많은가.
예로부터 이름을 짓는 데는 역학적, 사회문화적, 시대적인 것들을 포함해서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의미를 함축시키려다 보니 글자 찾기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된다. 발음과 한자에서 느껴지는 의미가 다양하니 운명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름 하나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만들려니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로 평가 받는다. 오랫동안 한문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그렇지 순수한 우리말의 이름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내 친구는 성이 장 씨인데, 첫딸의 이름은 ‘하리’, 둘째아들은 ‘하라’로 지었다. ‘장하리, 장하라.’ 얼마나 좋은가? 나는 아름답고 멋진 이름이라 생각한다. 부르기 좋고, 쓰기 좋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구태여 한자에서 의미만을 찾을 필요가 있을까?
요즘은 신문을 보면 100% 한글 우리말로 나온다. 대한민국신문으로서의 위상을 보이기 위해서라도 우리글과 말로 만들어야 함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날, 뉴스를 보니 국회의사당 의원들의 명패가 한글로 통일된 것을 보고 한 가지가 바로 잡혔다고 내심 좋아했다. 이왕이면 국회의원들이 옷깃에 다는 뱃지(badge)도 도형을 새롭게 한글디자인으로 바꾸면 좋지 않을까 싶다.
(2015. 8. 15.)
첫댓글 그렇습니다. 우리말 우리글이 얼마나 과학적이고 좋은지는 다 알면서, 어려운 한자를 끌어오고, 영어를 입에 달아야 지성인으로 보이는 줄 아는, 그런 생각들이 없어져야 나라가 발전하고 민족이 융성할 것입니다.
쉬운 것이 좋은 것이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쉬운 것이 바로 우리 것입니다.
이름은 부르기 쉽고 성과 함께 잘 어울려 좋은 뜻이면 최고 인듯 합니다.
김선생님 호가 좋은네요.
제호는 김민술님이 지어 주었습니다. 김민술님 감사합니다.
玉水 마음에 꼭 듭니다. 이름 처럼 살아야 겠다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