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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2월23일(日)雲,雨,雪
▲낙동정맥종주19구간(땅고개~소호고개)*사진67컷
해봉산악회(23명)
제19구간 : 경북 경주시 산내면, 내남면
♠참 고
▶경주시 산내면(山內面)
朝鮮時代 太宗 13년 鷄林府를 慶州府로 개칭하였는데 지역은 慶州府에 속하였으며
高宗 32년 전국8도를 23부로 개편할 때 慶州郡 西山內面으로 개칭되었으며,
그 이듬해光武元年(1896) 13道 제도 施行으로 慶州郡 山內面으로 개칭됨
1914年4월 1일 面制實施 行政區域 改編時 慶州郡 山內面 9個 里洞으로 改編되었고,
1943년에는 9개 리 동이 分洞되어 19개리 동으로됨
산내면은 가도 가도 산이요, 봐도봐도 하늘뿐인, 말 그대로“산속의 고을”입니다.
고도 신라의 수도인 경주시청에서 약 26km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
9개 법정리와 68개의 자연부락, 19개 행정리, 71반으로 인구 4,177명이며 전체면적
142.25㎢중 임야면 적이 전체의 84%를 차지하는 해발180-550m 고지대 산간 오지로써
밤낮의 일교차(5~7℃) 가 심한 지역이다.
지리적으로는 남쪽으로 울산시 상북면과 연접하고, 동남쪽엔 내남면, 서쪽으론 청도
군 운문면, 북쪽으로는 영천시 북안면과 이웃하고 낙동강 상류인 동창천이 면 중심을
관통하고 대구시민의 식수원인 운문댐 상류에 위치한 산천어, 꺽지, 피라미, 빙어등
민물고기가 많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고장이다.
▶경주시 내남면(內南面)
○ 1906 군구역 조정으로 경주군 내남면이라 칭함.
○ 1912 면사무소를 배리 박씨 정각에서 임시 설치 집무하였음.
○ 1914 이동 통폐합에 따라 박달리 일부(상목골)가 산내면 내일리에 편입.
○ 1941 면사무소를 용장리로 이전.
○ 1954 이동 행정구역을 16개리 41개 분동으로 조정.
○ 1975 율동 및 배리가 경주시로 편입 13개 법정 리 동 34개 행정 리 동으로 분동.
○ 1991 면사무소를 이조리 156-2번지로 신축 이전하였음.
경주시 남쪽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의 청정지역으로 경주시와 더불어 인간과 자연
이 공존하는 세계적인 문화 관광도시로 가꾸는데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경주시에서 천마총 서편 정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능, 나정, 포석정, 삼능 솔밭을 지
나면 경주시 내남면에 이릅니다.
현재는 남산의 1/3-1/4를 지니고 있습니다.
★단석산[斷石山](오픈 백과사전)
위치 : 경주시 건천읍 방내리와 내남면 비지리의 경계
문화재 : 마애불상군(국보 199)
높이 829 m. 방내리(芳內里)와 내남면(內南面) 비지리(飛只里)의 경계에 위치한다.
신라 때 화랑들의 수련장소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신선사(神仙寺)에는 마애불상군
(국보 199)이 소장되어 있다. 또 단석산 일대는 경주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
시대 김유신 장군이 이산에서 공부를 마치고 칼로 바위를 쳐서 깨었다는 바위의 유적
이 있다 하여 "단석산"이라 칭함.
▶신선사 마애불상군[斷石山神仙寺磨崖佛像群]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乾川邑) 송선리(松仙里)의 6세기경 신라시대의 마애불상군.
지정번호 : 국보 제199호
지정연도 : 1979년 5월 22일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시대 : 6세기(신라)
종류 : 불상
1979년 5월 22일 국보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이 유적은 단석산(斷石山) 중턱에 위치하여
김유신(金庚信)장군과 관계가 있는 화랑(花郞)의 유적으로 추정되며, 높이 30m의 거대한
암석이 ㄷ자형으로 솟아 석실을 형성하고 있다. 북쪽 바위 2개 중 구석 바위에는 거대한
여래상(如來像)을 주존(主尊)으로 하였고, 동쪽 바위에는 보살상을, 남쪽 바위에는 보살
상과 명문(銘文)을 조각하여 3존(三尊)의 형식을 이루었다.
북쪽의 또 한 바위에는 위쪽에 여래와 보살 4구를, 아래에 공양상(供養像) 2구와 여래상
1구를 조각하여 도합 10구의 상을 조각하였다. 동쪽 바위에는 '경주 상인암 조상명기
(慶州上人巖造像銘記)'라는 400자 가까운 명문이 음각되었고, 북쪽 바위에는 다른 여래
입상 ·보살상과 함께 반가사유상이 조각되었다.
반가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왼손을 들어 주존 앞으로 인도하는 형상이며, 반가상은 고
신라기의 마애상으로서는 유일한 것이다. 이 불상들 밑의 주존 쪽 가까이에 공양상 2구
가 주존을 향하고 있으며, 암면(巖面) 하단 가까이에 작은 여래입상이 있다.
♧산행 코스 (19구간)
9시57분 당고개
10시30분 능선삼거리
11시10분 단석산 갈림길 단석산, ~ 되돌아 내려와
12시15분 방주교회
13시20분 메아리농장
13시50분 535봉
15시24분 700봉
15시37분 소호고개
16시25분 내와리
총6시간28분
♧사진은 오 지호 대원이 촬영했습니다.
♧ 참여 대원(23명)
대장 : 김성수, 하종관(후미담당)
강형태, 김윤근, 김두호, 김 신, 남상기, 오지호, 신철호
윤말순, 이승우, 이혜년, 백운기, 이진복, 조숙희, 최철식,
권무길, 이종원, 김영남, 박정제, 이대홍, 박신영, 이가림(어린이)
☞☞☞☞아직 개운하지 않은 몸으로 약을 준비, 노모와 아내에게는
산행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장비를 챙겨 잔뜩 찌푸린 하늘,
집을 나섭니다.
날씨 탓인가 썰렁한 시민회관 앞, 관광버스는 거의 반이 비어있고
산행 취소하는 산악회가 속출하는데 그 인원을 기다리다 예정시간
보다 10분 늦게 출발.
이 대원의 친구 분이 도중에 승차하고 도시고속도로를 거쳐 영락공원
입구에서 고정멤버 외 두 명이 추가되어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통상하는 김 대장의 안내방송과 산행비디오를 보며 달리다
건천휴게소에 들려 휴식을 취하고 건천 나들목을 빠져 20번
국도로 남행, 진눈개비가 내리는 당고개
도착이 9시45분.
다시 열이 올라 하 대장에게 캠코더 촬영요령을
교육시키고 바쁘게 내려,
당고개 약수터 위치를 마침 승용차로 도착한
쉼터 주인에게 물어 동쪽으로 약50m 거리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버스 앞으로 와
꼬마가 엄마 아빠 도움으로 산행 준비하는 걸
촬영하며 나이를 물으니 아홉살이라고 합니다.
9시57분, 상견례를 마치고
주차장 왼편 산기슭에 시그널이 매달려 있는
들머리를 따라 올라가는 대원들을 촬영하고
하 대장에게 수고하라며 캠코더를 인계합니다.
그리고 정맥 길에서 벗어났지만
단석산에도 들리라고 당부합니다.
10시, 어제 소호고개를 답사했다는
총무 김 신과 함께 버스에 승차하여
날머리인 소호고개로 향해 되돌아 내려갑니다.
잔뜩 찌푸린,
흐르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몇 일전의 대구지하철참사를 생각해 봅니다.
운행 이후 종합방제훈련 한 번도 안 받았는데
작년에 안전대상(安全大賞)을 받았다는
대구 지하철의 화재 대 참사!
화재경보가 울려도 오작동으로 판단,
그냥 흘러듣고 당장 재난이 발생하여도
발뺌 궁리부터 하는 지하철 관계당사자들.
이건, 대구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의 안전 불감증, 적당주의,
네 탓 주의의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말해주는
한심한 코미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대 참사에
이민족인 세계 각국이 애도를 표시하는데
같은 동족 운운하며 온갖 미사여구로
동포애를 외치든 북한에서는
못보고, 못 들었다는 듯 묵묵부답이고
대신 전투기와 미사일로 위협 시위만 하고 있으니...
종주를 못하는 자신처럼 우울하기만 합니다.
경주를 거쳐 35번 국도를 따라가다
삼능을 지나 ‘봉계 불고기단지’를 거쳐
오른편으로 빠져 좁은 도로를 따라가다
높이 3.1m 고속도로 굴다리에서 좌로 돌아
높이4m 지하도를 빠져 하산 지점인
내와리 고개에 당도합니다.
좌측 위로 안개구름 속에 산 하나가
연황색으로 까발려져 있는
경주랍석(蠟石)광산의 흉상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하산 후의 뒤풀이로 대원들의 목을 축일
소주를 사기위해 박달리까지 갔으나 매점은 문이 잠겨,
근처의 모 가든에서 한 병에 삼천오백원 달라는 걸
삼천원 주고 몇 병 사, 되돌아 내와리 고개로 돌아와
김 총무는 대원들을 마중하러 간다며 소호(蘇湖)고개로
출발하고 배기사는 방석을 들고 뒷좌석으로 가 오수를,
나 홀로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법정스님의 수필집을 읽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14시50분, 김 대장을 비롯한 최철식 대원등
선두그룹 4,5명이 도착합니다.
▶▶당고개에서 출발한 종주기는 하 대원이 촬영한 비디오 화면과
오 대원이 촬영한 사진을 참고자료로 하여 엮어나갑니다.
진눈개비를 맞으며 잡목숲길의 완만한 오름을 탑니다.
등산로 가운데에 태풍으로 쓸어져
가로누운 소나무를 건너
10시10분, 무덤 옆을 지나칩니다.
제법 된비알을
꼬맹이가 엄마, 아빠를 앞장서 잘도 올라갑니다.
10시17분, 꼬맹이가 신발 끈이 풀렸는지
아빠가 신발 끈을 다시 묶어주고 목을 축입니다.
10시20분, 진눈개비가 꽤 쌓여있는 등산로를 계속 오릅니다.
10시25분, 하 대장이 가쁜 숨을 쉬며 갈지자 코스를 거쳐
10시30분, 능선 삼거리, 경주국립공원지역에 올라섭니다.
10시37분, 내리막길을 거쳐
10시40분,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
상고대가 하얗게 피어있는 숲길을 통과하고
앙상한 진달래 군락지를 거쳐 662봉에 올라섭니다.
10시45분, S자 내리막을 지나
10시52분, 꼬맹이가 발뒤꿈치에 물집이 생겼는지
양말을 벗겨 뒤꿈치를 확인하며 하 대장이
상비약으로 준비한 연고를 발라주고
일회용 벤드를 붙여줍니다.
11시10분, 삼거리 도착.
소나무에 빨간 페인트로 ‘반환점 3km'라고 써놓은
표찰을 매달아 놓았습니다.
눈발은 더욱 많이 휘날리고
꼬마 가림이 가족과 쌍 스틱은 종주 길로 내려가고
하대장과 오 대원은 단석산을 오르기 위해
왼편으로 올라갑니다.
11시20분, 안개구름으로 자욱한
비탈을 어지간히 올라가자
파란 솔잎에 날카로운
상고대와 빙화가 만개해 있고
고도가 올라갈수록 기온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된비알을 다시 올라가자
영롱한 빙화가 탱글탱글 맺혀있고
모처럼 하 대장이 오 대원을 세워놓고
짙은 상고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해 줍니다.
11시28분, 신라 김유신 장군이 이 산에서 수련을 마치고
삼국통일의 결의를 다지면서 단칼로
바위를 쳐서 두 쪽으로 깨었다는
눈을 덮어쓴 단석이 있는 정상에 올라섭니다.
‘단석산’이라고 음각한 정상비와
정상을 둘러싼 상고대들이
칼바람을 조금 막아줍니다.
캠코더로 촬영하는 하 대장.
단석산 정상비를 짚고 선 오 대원과 안개구름 속에
방금 시산제를 마친 10여명의 등산객들이
둘러서서 제주를 나누어 마시고 있습니다.
“여기, 와서 막걸리 한잔 하이소!”
산꾼들이 넉넉하고 따뜻한 인심을 펼쳐놓습니다.
하 대장이
“어데서 왔어예!”
하고 물으니
“대구 구삼 산악횝니더!”
93년도에 산악회를 만들어
구삼산악회라는 명칭을 부쳤다는 대구 산사람들.
두 사람은 대구지하철 참사에 위로의 말을 전하고
소주와 수육 한 점을 들고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 뒤
11시35분, 시간에 쫓겨 잰걸음으로 되돌아 하산합니다.
11시47분, 삼거리 도착.
내리막길을 거쳐
11시52분, ‘비지리 등산로 갈림길’
안내판 앞에 당도합니다.
12시2분, 내리막길을 거쳐 가림이 팀을 잡기위해
가픈 숨을 몰아쉬며 짧은 오르막길에 오릅니다.
12시13분, ‘단석산’이정표를 거쳐
바로 안개구름 속에 불숙!
등 돌린 피라미드 방주교회와 마주섭니다.
멀지 않아 닥아 올 대재난을 생각하여
21세기의 노아가 이 높은 낙동정맥의
주능선에다 이런 교회를 세운건가요?
방주교회 좌측으로 돌아,
인기척이 없는 교회 안에 들어서니
큼직한 코카콜라 자판기가 눈에 들어오고
빨간 십자가 아래
‘번성케 되리라’
는 글귀가 눈에 띄고
‘주일예배시간 오후3시’라고 써놓았습니다.
12시24분, 경주국립공원 경계를 벗어나
짙은 안개구름속의 반송등 관상수가 보기 좋게
넓은 초지에 앉아 있는 OK그린에서
잠시 헤매다 방향을 잡아 통과합니다.
12시30분, 오른편으로 무덤을 끼고 가는데
수의 저수지가 안개구름 속에 보입니다.
12시33분, 진탕 길 임도를 지나
12시37분, 이동통신 안테나 옆을
지나칩니다.
12시42분, 산불방화선을 타고 가다
자그마한 턱에 올라섭니다.
12시49분, 메마른 잡초속의 방치된
조각공원 옆을 지나칩니다.
13시2분, 방화선 삼거리를 거쳐
폐기물야적장을 지나치고
13시14분, 방화선에서 빠져
잡목지대를 지나
쌍무덤을 통과하여
노송군락 숲 속을 거쳐
자욱한 안개구름 속에 가린
메아리 농장이 유령처럼 나타납니다.
13시18분, 인기척이 없는 메아리농장을
가로질러 지나는데
농장건물 벽면에
심한 낙서가 시선을 끕니다.
큼직하게 ‘佛’를 써놓았는가 하면
山有花 시를 적어 놓기도 했습니다.
‘生則必死 死則必生’등 여러 글귀가 쓰여 있다는 건
심각한 농장경영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건가요?
13시27분, 임도를 따라가다
물탱크 있는 곳에서 왼편으로 빠지고
다시 잡목 숲속 길을 거쳐
13시43분, 아랫 상목골 삼거리를 통과합니다.
내리막길을 거쳐
13시48분, 천우농산 관광개발지구의
콘크리트 포장로에 내려섭니다.
13시54분, 개발이란 미명아래 까발려,
뒹굴고 있는 바위돌과
새로 지은 기와건물이 대조를 이루고
13시57분, 등산로로 접어들어
비탈을 오릅니다.
14시5분, 잘록이의 능선을 거쳐
돌 바위 길에 올라
535봉에 올라섭니다.
그리고 내려가면서 뜻밖에
요통(腰痛), 관절염에 좋다는
참나무, 밤나무등의 기생식물인
겨우살이를 발견한 하 대장이 환호합니다.
14시15분, 오른편으로 철망을 끼고 올라가다
효자 하 대장이 허기를 느껴,
노모에게 드릴 겨우살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점심식사를 합니다.
철망너머의 망가져 가는 통나무 원두막이 보이고,
철망은 계속 이어지다
14시25분, 잘록이에서 끝이 납니다.
14시26분, 임도에서 마중 나온
김 신 총무와 반가운 재회를 합니다.
14시43분, 다시 가파른 오름을 거쳐
억새와 안개구름으로 덮인
헬기장에 올라섭니다.
14시44분, 잘록이를 지나
14시50분, 오름길에
다시 나타난 상고대를 배경으로
하대장과 김 총무를 촬영해 줍니다.
14시55분, 계속 이어지는 상고대를 거쳐
두 번째 헬기장에 오릅니다.
완만한 능선 길을 거쳐 700봉을 넘고
15시13분, 꼬맹이 가림이 가족과
쌍 스틱등 후미그룹을 만나고
합동으로 기념촬영 한 후
15시24분, 표지석(언양303 1982재설)이 박혀있는
700.1봉에 올라섭니다.
이제부터 경주시 산내면과 해어지고
내남면, 울주군 두서면의 경계를 타고 내려갑니다.
잡목이 부러져 가로누운 등로를 따라 내려가다
15시37분, 가파른 내림을 거쳐 자갈로 덥힌,
높이 솟은 분지마을이란 뜻의
서남쪽에 있는 소호리(蘇湖里)에서 이름을 딴
널따란 임도 소호고개로 내려섭니다.
소호리는 2002년 발행된 상북면지에 의하면
소(蘇)는 산악의 높이 솟음을 나타내는 말 (借字),
호(湖)는 이지역의 지세가 분지이므로 이를 형용한 말인데
즉 높이 솟은 분지마을 이란 뜻이랍니다.
차기에 이어갈 정맥 길을 오른편에 두고 이 대원과
그의 친구까지 합하여 9명이 후미 그룹으로 형성되어
콘크리트 임도를 따라
안개구름 속으로 내려갑니다.
15시49분, 임도시설 석비를 지나
15시54분, 오른편으로 봉우리가 황갈색으로 낡아가고 있는
납석광산의 험상궂은 몰골을 바라보며 내려갑니다.
일명 ‘곱돌’이라기도 하는 납석.
이를 채취하기위한 광산이라는데
아무리 귀한 재료로 사용한다지만
이렇게 마구잡이로 살벌하게 까발려도 된단 말인가요.
다가오는 대자연의 보복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키 만한 스틱을 짚으며 내려가는
앙증스러운 가림이.
16시10분, 울산광역시와 경주시의 경계간판이 서있는
2차선 지방도로 아스팔트에 내려 섭니다.
▶▶▶한편, 앞서 15시25분, 중간 그룹의 신 고문이 먼저 내려와
“오늘 종주 안 한 게 잘했어요.
안개구름 때문에 조망은 하나도 안되지에...
길은 진흙 탕에 미끄럽지에...
그런데 저기 노랑나비(윤 대원)은 잘 걷데요...
내가 따라 부칠려고 속도를 내면 금세 저만큼 달아나고,
여기 히말리야(백 대원)는 신을 바꾸어 신드니 총알같이 달아나지,
야~ 모두 잘 걷데요...“
하며 감탄합니다.
그 사이 배기사가 준비한 어묵탕이 끓자
한 두 사람이 모이더니 소주한잔씩 부어
서로 권하며 하얀 김을 불며 맛있게 어묵과
따끈한 국물로 무사종주를 자축하며 피로를 풉니다.
16시25분, 하 대장 등 꼬맹이를 포함한 후미그룹이 도착,
6시간28분의 산행이 끝납니다.
하 대장이 젖은 캠코더를 전하면서
“어떻게 되었는지, 도중에 테이프가 다 되었는지 촬영이 안되데요...”
합니다.
엄마, 아빠와 어묵을 먹고 있는 가림이 가족에게
산행소감을 담기위해 테이프 끝부분을 2분 정도 되돌려
아빠에게 산행 소감을 물으니
“저보다 우리 딸아이에게 물어보이소!”
합니다.
캠코더를 가림이쪽으로 보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음이 맑아지고요...
나쁜 마음을 산에 다 버리고 왔어에...”
합니다.
아빠는 환하게 웃습니다.
“내보다 낳지에, 허! 허! 허!~”
가림이도 장하지만
이렇게 키우는 젊은 부모가 더 훌륭해 보입니다.
뒤풀이를 끝내고 주변청소는 물론
흐르는 물에 뒤 설거지까지 깨끗이 끝내는 집행부.
16시43분, 빗발이 굵어지는 내와리 고개에서
아침나절의 우울한 기분대신
가벼운 마음으로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도중에 간이 휴게소에서 부녀회원들을 위해 잠시 쉬고
일사천리로 달려 언양 나들목에서 고속도로에 올라
18시14분, 부산T/G를 빠져나왔습니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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