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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그림으로 이해하기- 오천만의 로마서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 다시 서신서로 돌아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모든 분들이 함께 즐겁게 갈라디아서를 영어로 배우게 하소서! 좋으신 하나님! 소란의 시기에 우리 모두가 세상의 혼잡함에 현혹됨이 없이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서로 사랑하고 기도하면서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하소서!
샬롬! 모든 체제를 영어를 배우는 체제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모두가 듣고 보는 바와 같이 중국의 대홍수,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신종 코로나의 만연, 온 세상은 경제적인 위기도 함께 겪으면서 한반도에도 북한과 중국, 일본의 도전에 힘겹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베이비부머의 위기가 도래했습니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질병으로 또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여러 가지 문제가 국내외적으로 한 번에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뉴스에 주목해서 정신을 잃게 되면 소망이 없어지고 흔들리게 됩니다. 이때에 더욱 기도하고 믿음을 굳게 잡고 성경을 읽고 영적으로 무장을 더욱 단단히 해야 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시면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언제나 말씀을 보고 연구하는 자세를 게을리 말아야 할 것입니다.
베이비 부머 세대로서 저도 똑같이 이곳에서 살고 집도 없고 전세로 중학생 자녀를 키우면서 그리고 외국에서 온 처와 같이 이런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합니다. 아직은 국민연금도 없이 한 달에 집세가 약 60만 원이 나가고 또 모아둔 돈도 없고 빛과 정부의 고지서가 가득합니다. 그래도 조금도 흔들리거나 염려나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영어를 잘 배우려고 모든 체제를 영어를 배우는 체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돈이 되는 근무도 이틀을 줄여서 20여만의 수입이 다음 달부터 줄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에 휩싸이면 무엇을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염려와 걱정으로 잠도 못 자고 밥맛도 없고 나이는 들어 늙어가고 소망은 점점 줄어들게 되어 있으니 믿는 자는 이럴 때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굳게 잡고 조금도 흔들림 없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셔야 하고 또 육체로 하는 작은 수입의 일들을 기뻐하면서 용기를 가지고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영어는 우리 베이비 부머는 우선 중학교 때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약 40년 이상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을 나오신 분이면 또 대학 4년, 그리고 대학원이나 더 공부하신 분은 또 3년 이상을 영어를 배우고 미국의 중심의 삶을 우리가 수십 년 살다 보니 모든 환경에 영어가 없는 곳이 없고 늘 영어에 접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하는 일이 토익을 요구하는 영어와 접하는 일이라 토익을 보려고 하니 1-7파트로 된 시험이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년 전에 토익을 공부하는 저보다 연배가 더 있는 분이 팁을 줍니다. 인터넷 강의(인강)을 신청을 해서 들으라고 해서 한 곳에 9만 원을 주고 신청해서 들은 지 약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과거에 다 배운 내용인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뛰어난 강사의 명쾌한 강의에 아! 이렇게 하면 되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옵니다. 영어를 더욱 향상시키는 길이 보인 것입니다.
이 나이에 영어는 무슨 영어 하실 분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수차 오천만의 로마서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영어를 잘 배우면 성경을 영어로 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말씀이 더욱더 분명하게 이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저는 제가 아는 내용을 온 세상에 전하고 있는데 영어로 전하면 더욱더 많은 분이 보게 될 것이고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공부를 실천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나이에 성경은 더욱 왜 배우냐 하실 분도 있겠지만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자에게 영적으로 기쁨과 젊음과 희망이 넘쳐남은 물론이고 또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사람에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덤으로 있기 때문에 어려운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어렵게 사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못할 일이 없고 풀지 못할 문제가 없기에 이렇게 성경을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이 되는데 이 믿음이 수십, 수백억의 돈보다 또 우리가 없는 젊음보다 더욱더 소중함을 믿습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이런 혼잡한 세상에 현혹됨이 없이 꿋꿋하게 성경을 배우며 또 영어를 배우고자 올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갈라디아서를 영어로 다번역 성경 찬송을 통해서 근무 중에 틈틈이 또 쉬는 날에 읽어보니 새로운 이해가 많이 일어나고 영어도 조금씩 공부가 됩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갈라디아서 영어로 공부를 하는 곳을 인터넷에 검색하니 유명한 정철 선생의 강의도 있고 또 다른 분들의 강의도 있어서 보니 모두가 즐겁게 재미있게 공부를 시키고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잘 충분히 공부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을 이제까지 이해를 그림으로 간단하게 표현을 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데로 갈라디아서를 영어로 같이 배울 것입니다. 우선은 같이 배우시고 싶은 분은 한글로 또 영어로 갈라디아서를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미 올린 오천만의 로마서의 갈라디아서 정리 부분도 참고를 하시면서 갈라디아서 정복에 영어로 나서 봅시다.
갈라디아서는 쉽지가 않는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잘 이해를 하면 로마서가 이해가 더욱 잘 될 것입니다. 배경도 보고 바울도 잘 살펴보면서 지도도 찾고 도표도 찾으면서 공부를 영어로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을 그림으로 그린 내용을 먼저 올립니다. 워밍업입니다.
갈라디아서에는 두 가지의 대립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가만히 들어온 유대인과 바울 사도와의 대립입니다. 가만히 들어온 유대인은 착하고 서로 사랑하는 믿는 사람을 자신들의 종으로 삼고자 율법을 통해서 유혹하고 이들의 유혹에 교인들이 따라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을 통해서 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바울은 이들을 성도가 따라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리고 가만히 들어온 유대인들이 가르치는 율법과 믿음과의 대립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온 인류는 유대인을 포함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얻게 되어 있는데 이렇게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에게 유대인이 들어와서 율법을 지키도록 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에 대해서 단호하게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설명하며 지키지 말아야 할 율법을 거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자녀와 약속의 자녀의 대립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 의롭게 됨이 아님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 둘이 서로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쉽지 않은 이해인데 율법이라고 표현된 두 가지 법의 대립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죄와 사망의 법이고 또 하나는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이는 로마서 8장에서 설명이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절대로 갈라디아서를 올바로 이해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육으로 사는 삶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에 대한 대립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립의 존재를 보면서 갈라디아서를 읽어야 이해가 됩니다. 한글로 된 다양한 번역을 읽으시고 또 영문으로도 읽어야만 온전한 이해가 옵니다. 그리고 다번역 성경 찬송 앱을 컴퓨터와 핸드폰에 꼭 설치를 하시고 이를 보면서 영문도 보고 또 직접 들어보기도 하셔야 합니다. 제가 순서대로 영문도 같이 공부를 할 것입니다. 가장 최신의 가장 앞선 갈라디아서의 이해를 통해서 로마서를 이해하고 또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성경의 내용의 이해에 있어 한 걸음 더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 교회와 저자 바울과 그리고 기록 연대에 대해서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갈라디아는 위의 지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금의 터키 지방으로 지중해를 경계로 하고 있습니다. 북쪽이나 혹은 남쪽이냐에 따라서 학설이 나누고 있고 이에 따라서 편지를 쓴 연도가 A.D 49년에서 약 56년으로 확정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회심하고 복음을 전한 후 약 16-23년이 지난 시점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갈라디아 교회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님은 서신서의 내용 곳곳을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처음 바울이 교회를 세웠을 때와 시간이 지나면서 가만히 들어온 유대인의 그릇된 가르침으로 교회의 모습이 본래의 모습을 잃고 있음을 지적하며 올바른 신앙을 가질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차 전도여행이 끝나는 49년보다 더 뒤에 기록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바울은 유대인 바리새인이었고 율법의 박사였고 유대인의 전통과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던 사람이었습니다. 구약에 아주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해선 알지를 못했고 자신의 신앙 즉 유대인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사람으로 모든 당시의 기독교인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런 신념에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율법의 중심의 유대교를 훼손시킨다 생각하고 이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고 괴롭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예수님께 무릎을 꿇고 조용히 예수님과 구약의 내용을 살펴보니 틀림없이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메시아 이심을 보았고 또 온 인류의 죄를 해결하실 유일하신 분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로부터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능력을 행하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이런 바울 사도께서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지닌 율법으로 무장된 유대인들이 들어와서 율법을 지키라 강요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선물 받고 성령으로 사는 삶을 방해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를 고치고 성도들이 이들에게 현혹이 되지 말라고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과 같이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면 절대로 쉽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율법으로 흠이 없이 살았지만 죄의 용서가 없었고 그리고 의롭다 인정도 하나님께 받지 못했고 따라서 성령을 선물로 받을 꿈도 꾸지 못하고 살았던 과거를 생생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고 믿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살다 보니 능력으로 복음도 잘 전하고 또 과거에 자신을 얽매였던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고 또 율법으로부터 해방이 되고 또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이 되어서 천국이 보장이 되었고 또 실로 천국 즉 3층 천에도 가서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을 보았고 그리고 늘 율법을 지키면서 죄를 멀리하고자 했었어도 할 수가 없었던 죄의 문제를 육체의 정욕을 억제하고 성령의 충만과 인도를 받다 보니 비로소 사랑을 완성하고 죄를 이기는 것을 늘 실감하고 실천하고 사시는 분이셨기에 이렇게 다시 자신과 같이 거듭난 영적으로 살아야 하는 자유인 갈라디아 교인이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지닌 율법학자의 꾀임에 넘어가서 다시 예수님을 모르는 유대인과 같이 살게 되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큰 염려와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절대로 되지 말라고 간절한 염원과 그리고 또 한편으로 모든 정성 어린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그냥 평평한 글이 아니라 진리에 대한 절규이고, 잘못 가르치는 못된 선생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며, 이런 못난 보잘것없는 초보 학문을 지닌 유대인을 용납하고 또 이들에게 현혹되는 초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심한 견책을 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사랑이 가득한 편지입니다.
율법으로 무장된 유대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갈라디아 교회는 편지를 통해서 보면 우선 바울 사도의 사도권을 잘 인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모든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죄로부터의 자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고 서로 사랑하고 믿고 참으로 온전한 초대 예루살렘 교회와 같은 사랑과 자유함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들이 율법을 지닌 유대인에게 만만하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종 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잘 모르는 신자들 특히 이방의 신자들에게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고 할례를 강요했습니다. 더 이상 부족함이 없고 더 이상 좋은 것이 없는 신자에게 또 다른 짐을 지워주고 더욱 낮은 상태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회개하고 바울과 같이 예수님을 믿고 의롭게 되고 또 성령을 받아야 함이 마땅한데 도리어 이는 하지 않고 낮은 단계의 율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고 전도하는 성도에게 성령을 받지 않고 오직 신구약 말씀으로 가득 찬 교사나 지도자가 바울과 같이 베드로와 같이 성령을 받은 더 이상 가질 것이 없는 성도에게 성령을 따르지 못하게 하고 또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게 하는 수도 있습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나 종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제 문제가 생긴 갈라디아 교회의 모습입니다. 성경을 잘 배우고 또 신학도 하고 또 목회도 하지만 아직 성령의 선물을 받지 못한 바나바와 같은 지도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여전히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지 못하고 즉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에 여전히 육의 요구를 따라서 살고 있으면서 사도 베드로와 같이 사도행전 2장 38절의 절차에 따라서 틀림없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또 하나님께 죄를 사함 받으므로 의롭게 되어서 성령을 선물로 받은 성도 그렇지만 아직은 구약의 말씀도 신약의 말씀도 그렇게 깊이 알지 못하는 평신도를 자신이 아는 수준으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공부만 열심히 하나 진정으로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고 의롭게 되어서 성령을 선물로 받지 못한 지도자는 체험이 없기에 성령의 세례와 충만과 사역에 대해서 강조하지 않게 되는데 이렇게 되다 보면 성령의 은사로 나타나는 각종 이적에 대해서도 잠잠하라고 가르치게 되고 또 당연히 성령의 열매도 보기가 어렵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성령을 선물 받고 성령의 인도로 능력 있는 복음의 전파자가 되어야 하는 많은 성도가 이런 가르침과 교회생활에서 더 이상 진보하지 못하고 교회에 그냥 적응하며 일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는데 모든 면에서 날로 날로 새로워지고 날로 날로 믿음의 진보와 하나님의 나라와 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어가야 할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들려오는 바울의 외침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흑인 노예 해방을 위해서 죽음으로 외쳤던 루터 킹목사의 "I have a dream"의 설교와 같은 강렬하고도 단호하며 호소력 있는 바울 사도의 사랑이 넘치는 메시지를 우리는 정말로 올바로 이해를 해야 됩니다. 이런 모든 맥락을 보시면서 다시 우리는 한글 본문과 영어 본문을 보면서 구절구절 이해의 길로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당연히 따라서 오는 영어 실력도 향상을 시킬 것입니다. 계속 기도하면서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과거의 모습을 버렸습니다. 사랑을 모르고 자신의 정욕에 따라서 죄를 매일 밥을 먹듯이 짓던 모습을 버렸습니다. 과거엔 누가 나에게 잘못을 하면 바로 응징을 했습니다. 인내가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악으로 맞받아쳤습니다. 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악행에 대해서 관용이 절대로 없었습니다. 지금의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 사는 모습입니다. 이런 우리가 과거의 이렇게 사랑 없이 산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을 통해서 보고서 회개를 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사랑이 없는 삶이며, 지옥에 가는 삶임을 보고서 대부분 버렸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사랑을 하고 있고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새롭게 된 새로운 피조물로서 과거와 같이 행치 않고 인내하고 관용하고 선을 행하며 친절하고 또 타인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며 때로는 바보와 같이 악으로 가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떤 이들을 이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착각으로 우리에게 대합니다. 우리는 못났고 자신은 우월하고 잘나서 자신에게 그렇게 충성을 하고 선을 행해야 된다고 말입니다. 그리다 보니 우리를 순식간에 종으로 부리려고 합니다. 갈라디아 유대인 율법주의자는 이렇게 착한 갈라디아 교인을 종으로 삼고자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이를 용납하면 되지 않습니다. 절대로 누구의 종으로 살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한순간도 종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세상에서 거듭난 크리스천이 살기가 쉽지가 않는 이유입니다. 속이 터지고 참으로 참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복음이 전해집니다. 전도는 이렇게 나누고 베풀고 사랑을 실천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해 본 사람만이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사람을 변화를 시킵니다. 내 인격으로 내 노력으로 되는 일이 절대로 아니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람으로 바꾸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 창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인 내가 나를 새롭게 거듭나게 절대로 할 수가 없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여름은 때때로 너무나 덥고 주변은 답답합니다. 그래도 믿음으로 하루하루 성경을 읽고 정리하며 또 복음을 쉬지 않고 전하면서 승리의 길로 나아 가야겠습니다. 힘을 냅시다. 할렐루야!!!
※ 제가 이 글을 쓰고 갈라디아서를 영어로 모든 분과 같이 배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크신 은혜를 베푸셔서 잘 배우고 있습니다. 2020년 6월 29일자로 이 글을 올렸는데 약 2주 동안 갈라디어서 1장을 영어로 보면서 배웠습니다. 이제 2장을 배우면서 제가 이해가 부족했던 부분이 보여서 이렇게 다시 조금 첨부합니다. 그림으로 보는 갈라디아서에서 "가만히 들어온 자들"의 정체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서 이들이 갈라디아 교회를 혼란시키는 주범으로 설명을 했는데 2장에서 보니 바울과 바나바가 사역을 하던 안디옥 교회에 들어온 유대인 율법자들을 지칭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바울은 조금도 용납이 없이 쫓아 내었다 합니다. 저는 이들이 갈라디아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이 위와 같습니다. 그러면 갈라디아 교회를 혼란시키는 자들의 정체는 누구입니까? 갈라디아서 전체를 보니 "그들" 이라는 표현이 있고 할례를 받으라고 하는자, 그렇지만 자신들도 율법을 잘 지키지 않는 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 절기를 지키게 하는 자, 성령의 인도가 아니라 육체를 따라가게 하는 자들로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모양을 내려고 하는 자,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라고 표현이 또 되어 있는데 이를 종합하면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로 볼 수 있고 이는 율법을 준수해야 된다는 유대인으로 볼 수가 있는데 이들이 교회에 들어온 목적이 안디옥 교회에 들어온 것과 같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갈라디아 교회나 안디옥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로마교회의 문제가 되기도 했고 또 유대인들로 주로 구성이 된 예루살렘 교회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승천 후 약 20년이 지난 무렵의 시기에 성령의 인도로 이스라엘, 시리아(안디옥), 갈라디아, 당시의 표현으로 아시아(터키),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에 복음의 불길이 맹렬하게 일어날 때 당시 로마 전역에 약 600-700만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고 이들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많이 생겼는데 이들이 모두가 율법을 지키던 사람으로 새로 예수님을 믿고 율법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 분명한 분별력이 없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과 같이 이 문제를 명확하게 아는 분도 있었고 또 여전이 알지 못하는 유대인 성도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인 성도가 이제는 전도를 통해서 교회로 들어오면서 이들을 율법을 지켜게 해야 된다고 주장을 하던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의로 교회에 몰래 들어와서 교인을 종으로 삼고자 하던 이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결국은 복음을 혼란을 시키고 다른 복음을 전하며 진리를 왜곡시키니 바울 사도가 로마서도 썼고 갈라디아서도 쓴 줄로 이해가 됩니다. 이제 이렇게 배우고 부가 설명을 합니다. 바울 사도의 입장도 사도행전과 갈리디아서를 보면서 이해를 합니다. 먼저 바나바와 할례 문제를 다투고 이것이 안디옥 교회에서 문제가 되니 바울과 바나바와 디도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개인적으로도 유력한 이들을 만나고 공적으로도 만나서 이 문제를 해결을 하는 과정을 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선 2장을 배우면서 같이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0년 7월 19일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