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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후 선생의 <중국철학사(하)> 주렴계 철학 부분 가운데
<태극도설(太極圖說)> 관련 내용 올립니다.
(원래는 한 번에 다 올리려고 했는데, 분량이 좀 많아서 마지막 부분은
따로 올리겠습니다.)
보통 주렴계를 '리학(理學)의 개조(開祖)'로 부르지만,
주렴계의 저작은 대표적으로 <태극도설>, <통서> 이렇게 둘 밖에 없습니다.
비록 분량은 짧지만, 두 저작 모두 성리학을 공부할 적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저작입니다.
(<논어>, <맹자>보다는 <주역(계사전)>, <중용>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좀 난해한 측면도 있습니다.)
참고로, 주렴계는 생존 당시에는 그냥 지방에서 벼슬하고, 공부하는 무명의 학인(學人)에 불과했지만,
정명도, 정이천 형제를 제자로 두었고, 나중에 주자(朱子)가 <태극도설>을 매우 중시했던 까닭에
갑자기 스타(?)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학계에서는 과연 주렴계가 주자가 칭송하듯,
대단한 역사적, 학문적 실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논쟁이 있지만,
채인후 선생의 경우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채인후 선생은 <태극도> 그림 자체는 도교의 영향을 받았을지라도,
거기에 해설을 붙인 <태극도설>은 내용상 철저하게 <통서>에 기초를 두고 있고,
<통서>는 유가의 <주역>(특히 <계사전>)에 근본을 두고 있다고 강조합니다.
참고로,
주렴계의 저작은 <통서해(通書解)>(청계출판사, 권정안, 김상래 역주)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되어 있으므로, 참조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정종모 올림
제 6절 「태극도설(太極圖說)」의 사상구조
도교(道敎) 방면에서 먼저 태극도(太極圖) 또는 무극도(無極圖)가 있었는데, 수련(修練)의 과정을 표현한 것이다. 주렴계는 그것을 보고 곧바로 흥미를 느꼈고, 결국에는 그것에 수정을 가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따로 「도설(圖說)」을 지어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공정하게 말해서, 태극도(太極圖)는 도교(道敎)에 연원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태극도설」은 분명 주렴계 자신의 사상이다. 유가(儒家)의 의리로부터 말하면, 도교의 ‘그림(圖)’라고 꼭 말할 필요는 없으며, 설령 주렴계의 태극도라고 해도 그렇게 커다란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다. 이 ‘그림(圖)’이 없다고 해도, 「도설(圖說)」의 의리는 여전히 독립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렴계는 ‘그림(圖)’에 의탁해서 생각을 표현했지만, 거기에 담은 뜻은 순전히 『통서』에 근본을 두고 설명한 것이다. 아래에서는 「태극도설」 전문을 단락을 나누어 수록한다.
(1) 「태극도설」 전문
무극(無極)이면서 태극(太極)이다. 태극이 운동하여 양(陽)을 낳고 운동이 극에 달하면 고요함(靜)에 이르고, 고요함으로써 음(陰)을 낳는다. 고요함이 극에 달하면 다시 운동한다. 한번 운동하고 한번 고요하니 서로 각각의 뿌리가 되며, 음으로 갈리고 양으로 갈리는 음양의 양의(兩儀)가 수립된다. 양과 음이 변하고 합하여 수, 화, 목, 금, 토의 오행을 낳고, 이 다섯 기운이 순조롭게 펼쳐지면서 사계절이 운행된다.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며,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無極而太極. 太極動而生陽, 動極而靜, 靜而生陰, 靜極復動. 一動一靜, 互爲其根. 分陰分陽, 兩儀立焉. 陽變陰合, 而生水化木金土, 五氣順布, 四時行焉. 五行一陰陽也, 陰陽一太極也, 太極本無極也.
오행이 생길 때 각기 하나의 성(性)을 가진다. 무극의 참됨(眞)과 음양오행의 정수(精)가 오묘하게 합하고 엉겨서, 건도(乾道)는 남성적 요소가 되고, 곤도(坤道)는 여성적 요소가 된다. 이 두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만물을 변화, 생성한다. 이렇게 만물을 낳고 낳으니, 변화가 무궁하다.
五行之生也, 各一其性.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
오직 사람은 그 가운데 빼어난 부분을 얻어 가장 영명하다. 형체가 일단 생기면 정신이 지각 작용을 일으키며, 다섯 가지 본성이 자극을 받아 움직이고, 선(善)과 악(惡)이 나뉘고, 온갖 일이 산출된다. 성인은 이에 중정인의(中正仁義,)를 통해 그것을 안정시키고, 고요함(靜)을 근본으로 삼아 ‘인간의 궁극적 표준(人極)’을 수립했다. 그러므로 “성인은 그 덕이 천지에 필적하고, 영명함은 해와 달에 필적하며, 규칙성은 사계절에 필적하고, 길흉의 판단은 귀신에 필적한다.”(주역 「문언전」) 군자는 인극(人極)을 닦기 때문에 길하고, 소인은 거스르기 때문에 흉하다.
惟人也, 得其秀而最靈. 形旣生矣, 神發知矣, 五性感動, 而善惡分, 萬事出矣. 聖人定之以中正仁義(自註: 聖人之道, 仁義中正而已矣), 而主靜(自註: 無欲故靜), 立人極焉. 故聖人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君子修之吉, 小人索之凶.
따라서 “천도(天道)를 수립하여 음(陰)과 양(陽)이라 일컫고, 지도(地道)를 수립하여 유(柔)와 강(剛)이라 일컬으며, 인도(人道)를 수립하여 인(仁)과 의(義)라 일컫는다”라고 말했다(『주역』「설괘전」). 또한 “시초를 탐구하고 종말을 헤아려 봄으로써 생사(生死)의 이치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주역』「계사전」). 위대하다 역(易)이여! 여기에 지극한 이치가 있도다!
故曰: “立天地道, 曰陰與陽. 立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 曰仁與義.” 又曰: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大哉易也, 斯其至矣.
(2) 「태극도설」에 담긴 의리의 핵심
주렴계의 “묵묵히 도의 오묘함에 합치하는 것(黙契道妙)”은 『중용』, 『역전』으로부터 깨우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의 「태극도설」 역시 “천도(天道)로 말미암아 인극(人極)을 세우는” 뜻을 올바르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태극도설」의 사상 또는 문맥을 종합해서 보면, 또한 『통서』의 「동정(動靜)」 제 16장, 「리성명(理性命)」 제 22장, 「도(道)」 제 6장, 「성(聖)」 제 20장 등의 각 장절과 서로 의미가 상통하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들 관련 장절들을 수록하여 참고하도록 한다.
① 「동정(動靜)」 제 16장
움직이면 고요함이 없고, 고요하면 움직임이 없는 것은 사물(物)이다. 움직이되 움직임이 없고, 고요하되 고요함이 없는 것은 신(神)이다. 움직이되 움직임이 없고, 고요하되 고요함이 없는 것은 움직이지 않거나 고요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물은 경우는 통하지 못하지만, 신(神)은 만물에 오묘하게 통한다. 물(水)은 음으로 양에 뿌리를 두고, 불(火)은 양으로 음에 뿌리를 둔다. 오행은 음양이고, 음양은 태극이다. 사계절이 운행하여 만물이 끝나고 시작한다. 뒤섞여 있다가 열리니, 그 끝이 없다.
動而無靜, 靜而無動, 物也. 動而無動, 靜而無靜, 神也. 動而無動, 靜而無靜, 非不動不靜也. 物則不通, 神妙萬物. 水陰根陽, 火陽根陰. 五行陰陽, 陰陽太極. 四時運行, 萬物終始. 混兮闢兮, 其無窮兮.
② 「리성명(理性命)」 제 22장
그 밝음과 그 미묘함은 영명함이 아니면 밝혀지지 않는다. 강한 것의 좋은 것과 강한 것의 나쁜 것이 있고, 부드러운 것도 이와 같으니, 중(中)에서 멈추어야 한다. (음양의) 이기(二氣)와 오행(五行)이 만물을 생성, 변화시킨다. ‘오행의 다름(五殊)’은 결국 ‘(음양이란) 두 실질(二實)’이고, (음양이란) 두 근본은 결국 하나이다. 이처럼 만물이 하나가 되고, 하나의 실질이 만 가지로 나뉜다. 만(萬)과 하나(一)가 각자 바르고, 크고 작은 것들이 모두 제자리를 정한다.
厥彰厥微,匪靈弗瑩. 剛善剛惡, 柔亦如之, 中焉止矣. 二氣五行, 化生萬物. 五殊二實, 二本則一. 是萬爲一, 一實萬分. 萬一各正, 小大有定.
③ 「도(道)」 제 6장
성인의 도는 인(仁), 의(義), 중(中), 정(正)일 뿐이다. 그것을 지키면 귀하고, 그것을 행하면 이롭고, 그것을 확충하면 하늘과 땅에 짝한다. 어찌 쉽고 간단하지 않으며, 어찌 알기 어렵겠는가? 지키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으며, 확충하지도 않을 뿐이다.
聖人之道, 仁義中正而已矣. 守之貴, 行之利, 廓之配天地. 豈不易簡, 豈爲難知, 不守不行不廓爾.
④ 「성(聖)」 제 20장
(물었다) “성인은 배울 수 있습니까?” 대답했다. “배울 수 있다.” 물었다. “요점이 있습니까?” 대답했다. “있다.” (물었다) “듣고 싶습니다.” 대답했다. “하나가 요점이다. 그 하나는 바로 욕심이 없는 것이다. 욕심이 없으면 고요하여 텅 비고 움직임이 바르게 된다. 고요하여 텅 비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통달한다. 움직임이 바르면 공정해 지고, 공정해 지면 두루 미친다. 밝고, 통하고 공정하면, 거의 성인에 가깝다.”
“聖可學乎?”? 曰, “可.” 曰, “有要乎?” 曰, “有.” “請聞焉.” 曰, “一爲要. 一者, 無欲也. 無欲, 則靜虛動直. 靜虛則明, 明則通. 動直則公, 公則溥. 明通公溥, 庶矣乎!
시험 삼아 이들 네 장절과 「태극도설」을 대조해 보면 다음을 알 수 있다. 「태극도설」의 여섯 번째 구절 “한번 운동하고 한번 고요하니 서로 각각의 근원이 된다”는 구절 이하부터 다음 단락의 “변화가 무궁하다”에 이르는 긴 단락은 「동정(動靜)」 장절의 “물(水)은 음으로 양에 뿌리를 둔다”이하의 여덟 구절 및 「리성명(理性命)」 장절의 “(음양의) 이기(二氣)와 오행(五行)” 이하의 여덟 구절 등과 의리(義理)가 서로 부합하고, 문맥 역시 비슷하거나 심지어 동일하다.
甲: 예를 들어 「태극도설」의 “한번 운동하고 한번 고요하니 서로 각각의 뿌리가 된다”는 구절은 「동정(動靜)」 장절의 “물(水)은 음으로 양에 뿌리를 두고, 불(火)은 양으로 음에 뿌리를 둔다”의 뜻에 대응한다. 물(水)의 음은 불(火)의 양에 뿌리를 두고 나온다는 말은 곧 음의 고요함이 양의 운동에 뿌리를 두고 나온다는 의미이고, 불(火)의 양이 물(水)의 음에 뿌리를 두고 나온다는 말은 양의 움직임이 음의 고요함에 뿌리를 두고 나온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한번 운동하고 한번 고요하니 서로 각각의 뿌리가 된다”는 말이다.
乙: 또한 「태극도설」에서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다”는 두 구절은 「동정(動靜)」 장절의 “오행은 음양이고, 음양은 태극이다”는 구절 및 「리성명(理性命)」 장절의 “오행의 다름은 결국 (음양이란) 두 실질이고, (음양이란) 두 근본은 결국 하나이다”는 구절과 어법 및 의리가 모두 동일하다. 이른바 ‘오행의 다름(五殊)’란 곧 오행의 서로 다름을 말하는데, 바로 「태극도설」에서 말한 “오행이 생길 때 각기 하나의 성(性)을 가진다”는 뜻에 상응한다. 또한 이른바 '두 실질(二實)'이란 음양(陰陽)의 기(氣)를 말한다. 이들 두 기(氣)의 근본은 바로 태극인데, 태극은 리(理)이며 또한 ‘하나(一)’이라고 이름할 수도 있다. 때문에 “(음양이란) 두 근본은 결국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丙: 또한 「태극도설」에서 “다섯 기운(=五行)이 순조롭게 펼쳐지면서 사계절이 운행된다”라고 했고, “두 기운이 서로 감응하여 만물을 변화, 생성한다. 이렇게 만물을 낳고 낳으니, 변화가 무궁하다”고 했는데, 이들 각 구절들은 「동정(動靜)」 장절의 “사계절이 운행하여 만물이 끝나고 시작한다. 뒤섞여 있다가 열리니, 그 끝이 없다”는 구절이나 「리성명(理性命)」 장절의 “(음양의) 이기(二氣)와 오행(五行)이 만물을 생성, 변화시킨다”는 각 구절들과 사유의 논리 및 문맥이 서로 근접, 부합한다.
丁: 이 밖에도, 「태극도설」의 “성인은 이에 중정인의(中正仁義,)를 통해 그것을 안정시키고, 고요함(靜)을 근본으로 삼아 ‘인간의 궁극적 표준(人極)’을 수립했다”는 전체 구절은 두 구절로 되어 있는 주렴계 본인의 주석을 통해 보건대, 실제로는 통서 「도(道)」 제 6장과 「성(聖)」 제 20장 두 장절의 개괄에 다름 아니다.
(「태극도설」의) 후반부 단락은 『역전(易傳)』에 근본을 두고 설명한 것인데, “(성인은) 그 덕이 천지에 필적한다”는 몇 구절은 『주역』 「건괘문언전」에 근본을 두고 있으며, (그 아래) 몇 구절은 『주역』 「설괘전」에 등장한다. 그리고 “시초를 탐구하고 종말을 헤아려 본다(原始返終)”는 두 구절은 『주역』 「계사전상」에 등장한다.
이상의 비교, 관찰을 통해 「태극도설」에 담긴 의리(義理)의 핵심이 주로 『통서』 네 장절의 뜻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태극도설」에서 『통서』와 차이를 보이면서, 의리(義理)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부분은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 ‘태극동이생양(太極動而生陽)’, ‘태극본무극(太極本無極)’ 세 구절을 들 수 있다.
첫댓글 참 별일입니다. 뭘 모르면서도 우에 그냥 읽고 보는것만으로도 힘이 솟는 것일까요?
좀 더 어려서 만물이 하나로 돌아가는 이치를 꿰었더라면
실천함에 총력을 기울였을것이고 따라서 스스로 밝고 맑아 자연에 감응함이
봄이면 싹트고 여름이면 무성하고 겨울이면 감추듯 하였으련만...............그래도
늦은 시절 인연되어 귀한 가르침 얻으니 값없는 웃음이 절로 입가를 맴돕니다.
정종모선생님 보내오신 태극도설 금쪽같이 잘 보았읍니다. 시절은 바야흐로 매화향기
코앞인데 모쪼록 건강 활달하시길 빕니다.
저희는 두 밤만 자고나면 다시 기다리는 수업시간 뒤이어 3월 봄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