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 선지식9. 18,조계사 대웅전 뒤뜰에 부처님 사리탑을 수호하고 있는 선지식 보살을 보고
조계사 뒤뜰에 부처님 사리탑이 있는데 1930년대 세워진 탑이다, 당시에 사찰의 명칭은 태고사인데 태고사는 태고보우를 섬기는 의미를 조선총독부에서 지정해준 태고사였다, 태고사는 태고보우를 숭상하는 1930년대에 태고사를 방문한 스리랑카 스님이 태국에 국왕으로부터 기증을 받아 세운 탑이기도 하다, 그 이후에 1937년에 태고사 대웅전을 건립하게 된다,
태고사는 그 명칭이 상실되고 태고사를 수호하려던 승려들은 이승만 시대에 이승만을 찬양하는 승려국회의원이 10명이 있었다, 그런데 선학원에서는 태고사 승려들이 결혼을 하였다고 하여 이승만은 선학원에 승려들을 위한 교시를 발표하였다, 아내가 있는 승려들은 사찰을 떠나라고 하는 교시였는데 선학원에 승려들은 소수의 승려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승려들이고 대부분 수계를 받지 않고 가 수계 승려들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태고사 승려들 가운데 태고사를 창건하고 태고사를 건립하는데 주축이었던 승려는 이종욱 조선불교 종무원장이였다, 조선불교종무원장 이종욱 스님은 태고사를 건립하는데 중심인물이라는 점이다, 세월이 지난 후에는 그 흔적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탑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리에서 떠난 이후 뒤뜰에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교계는 흔적을 지우는 일에 앞장을 서서 지우는 행위를 하는 것은 역사관을 모르고 있는 이들이기에 그러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모른다면 민족에 문화도 없다 민족문화가 상실됨에 대하여서는 바른 관점에서 역사를 전승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족문화가 전승되지 못한다면 역사관을 살 실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태고사도 역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조선불교 총본산 태고사라는 자취는 상실되었지만 1930년대에 서있는 불사리 탑의 존재는 남아있음이다, 태고사라는 사찰의 명칭은 사라졌어도 그 자리에 서있는 불사리 탑은 민족문화에 초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태고사에 대한 역사성을 바르게 전승할 수 있는 터를 전승해야 한다,
태고사라는 도심지역에 사찰의 명이 이승만 이라는 명칭 대통령에 의하여 사찰의 명이 소멸하라는 명이 떨어진 것은 조선 왕조 시대 연산군 같은 행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는데 비유하자면 연산군 같은 이승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승만은 마치 조선왕조에 임금처럼 행위를 하였다고 본다, 이승만은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는 북한산에 있는 시절에서 기도를 하였고 파주에 있는 석불 앞에서 기도를 하여 아들을 태어나게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후가에 미국으로 가서 본래 부인을 페하고 외국여자를 부인으로 하여 하여 부인을 택했던 이승만이다, 조선에 독립운동을 한다고 하여 김구선생과 맞장을 선 이후에 미국국적을 소지하고 미국을 의지하여 독립운동을 하여야 한다고 말하여 위장 동지들을 모집하였던 독립운동가 행세를 하였다, 조선에 독립은 미국을 의지하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던 이들이다, 그러한 이승만의 행위는 일본을 연합군에 의하여 항복을 받은 이후 미군정 시대 이승만을 택하여 미군정에 추종하게 하였다,
미군정은 일본을 찬양하던 이들을 미군정에 영입하여 일본을 찬양하던 모습으로 나투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승만은 미군정에 의지하여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되어서 친일파를 청산하려는 행위를 하였는데 그 가운데 불교계가 이승만이 타도의 대장으로 삼았다, 불교계가 미군정에서 추종하게 하였던 일본을 찬양하는 이들을 영입하였지만 불교계에 대하여서는 친일파를 청산하여야 한다고 하는 정책이 미군정의 정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승만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있어서 불교계에 대한 정화라는 명분을 조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시를 내려 불교를 청산하라고 한 것은 이승만이 교시를 내린 것이 아니라 실무자들이 대통령의 이름을 도용하여 교시를 내린 것인데 실무자들이 친일파들을 청산하려고 한 것은 선학원 승려들에 이용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학원 승려들의 수는 비구승이라고 하였지만 실로 비구승들이 수가 비구니들뿐이었고 선학원 승려들은 비구승들이 아니었다, 이름만 비구승이었다,
태고사 승려들 가운데 철저한 비구승이었다, 그러기에 불교를 정화하자고 했을 시기에 협력을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계율을 수지한 이들이 율사들이었다고 하면 율사는 무엇인가 불교의 계율을 수지한 승려들이 진정한 승려들인가 말이다, 태고사 승려들은 당시에 7천 승려들이었고 선학원에 비구승들은 50명도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태고사에 불사리 탑이 서있게 된 동기는 동남아로부터 불교를 전승하려는 의도였다, 특히 인도로부터 가야에 불교를 전승된 이래로 부터 고구려 불교를 동진에 백제 불교를 신라 불교를 근대 일본에 불교를 동남아 태국 불교를 수용하게 되었단 불교였다, 1930년대에 탑이 조선총독부의 명에 의하여 탑이 서있게 되었다, 동남아 불교가 전승되었다는 사실을 이승만에 의하여 파기되는 불교 연산군 같은 정치였다, 이승만은 연산군과 같은 행동을 하였다, 이승만은 연산군이다,
태고사가 소멸되고 그 대신에 보조를 숭상하는 조계사가 그 명칭을 벗기였다, 그런데 조계사 정문 앞에는 조선총독부의 시대 태고사의 명칭으로 간판이 바뀌었다. 대한불교 총본산 조계사는 그 명칭이 조선불교총본산 태고사, 그 명칭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조선총독 시대에 명칭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1930년에 탑이 서고 1937년에 태고사가 탄생했다, 그 이후에 태고사는 조계사로 그 명칭이 변했다, 그리고 탑이 이동하여 조계사 뒤뜰에 이전했는데 그 탑을 수호하고 있는 보살이 있어 그 보살을 선지식이라고 명하고 싶다, 탑을 조성하고 탑을 숭상하고 있는 의미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수행자란 자신을 위함인가 아니면 민중을 위함인가, 불교에 충실함인가, 불교를 수호하고 있는 교단에서는 탑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 불교계가 나서 불사리 탑을 숭상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도들은 탑을 돌고 있는데 승려들은 탑을 돌고 있는 승려들이 무 존재다,
2021년 7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