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방조제 주변의 호흡이 느린 여행기 1 - 군산, 변산

군산 비응항(네이버지도 위성모드 캡쳐) 빨간 점이 우리가 묵었던 '애플모텔' 깨끗하고 조용하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어째 주둥이 큰 애벌레 머리?
출발 전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오후까지 굵어졌다 가늘어졌다 하기를 계속한다. 여행지는 군산. '그간의 삶과 앞으로의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 오면 잘~해주겠다'는 친구의 초대가 계기다. 네비에 찍어보니 330km. 저질체력 부부가 4년 전에 가본 여수 빼고는 최장거리 여행이 되겠다.
도착까지 다섯 시간 걸렸다. 도착하자마자 친구 만나 악수하니 베트남 전문식당으로 이끈다. 자기가 부업으로 열었단다. '토끼밥상'이 안성맞춤인 우리 부부에게 예닐곱 명이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은 요리들을 디민다. 결국 따뜻한 마음만 받았다^^; 이어 여행안내를 시작하겠다며 "복성루 짬뽕? 이성당 야채빵? 새만금 방조제? 부안댐? 격포?, 내소사?.... 어디부터 가고싶어?" 한다.
"응? 그게 뭔데?"
"전국 3대 빵집, 전국 5대 중국집...."
"됐다. 새만금 건너 가장 가까운 곳이.... 부안댐? 오늘은 여기만 다녀와서 저녁 길~게 먹고 헤어지자. 그 이상은 우리에게는 과~해서"
총연장 삼십 몇 킬로미터라는, 개발과 보존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바로 그 새만금방조제 길에 들어섰다. 중요한 역사적 현장에 나도 드디어 발 내디뎠다. 이 순간 나도 역사에 편입된거다. 규모가 크긴 크다. 어느 쪽이 계속될 바다이고 어느 쪽이 사라질 바다인지 얼핏 봐서는 알 수가 없다. 땅이 모자라서일까, 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일까? 인구가 줄어드는 나라라는 점을 고려하면 땅이 모자라서라고 보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설핏 든다.
(음 무거워지고 있다. 정신차리자. 이건 여행기란 말이다!)

친구가 찍어준 우리 부부. 부부가 함께 나오기로는 참 드문 사진이다.
우리 부부는 여간해서는 다른 사람과 함께 여행하지 않는다. 호흡이 느려서다. 강원도에서는 흔적조차 사라진 토끼풀이 군산에서 꽃봉오리를 달고있는 것이 눈에 띄면 5초 이상 우와~~를 해야 하고, 석축 틈에서 자라고 있는 어린, 하지만 슬프게도 혈통은 큰, 나무를 보면 아무 말 없이 1분 이상 물끄러미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여행 중에 함께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삼각대 들고다닐 부지런함도 없거니와 내 '똑딱이디카'에 몇초뒤찍힘 기능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찍어달라고 부탁할 정도의 숫기는 차고 넘치지만 굳이 그러고싶지는 또 않다. 그러니 위와같은 사진이 드물 수 밖에 없다. 친구와 동행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쉽게 "친구야, 고맙다"는 건데 참 어렵게 쓴다)

그 친구와 함께

석축 사이에서 자라는 나무
부안대 아래 호숫가 돌로 쌓은 둑에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고개숙여 들여다보니 밑둥은 벌써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수종이 뭔지는 긴가민가한데 아무튼 크게 자라는 품종이다. 차라리 개나리, 철쭉 같은 떨기나무였으면 좋으련만. 부적절한 곳에 난 나무의 잘못인가, 부적절한 곳을 만든 인간의 잘못인가? 부적절하다고 보는 것도 나의 관점이겠다. 살 수 있는 곳에 나서 최선을 다해 살다가 여건이 되지않으면 몸체를 줄여 살거나 바람이나 물에 씨 흘려보내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데 말이다. 수시로 무디어지는 생명현상에 대한 감성을 갈면서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아섰다.

변산에 있는, 있는지도 몰랐던, 부안댐 아래서 인상적인 바위산을 찍다
변산. 높이 508m. 막상 가서보니 생각하지 못했던 깊은 산세가 펼쳐진다. 어찌 강원도에 비하랴만은 호남평야 서남단에 있기에 놀라는, 선입견의 표현이다. 내가 서있는 지점이 해발 20m 이내라면 놀라는 것도 자연스럽다. 강원도 어느 해발 600m 지점에 서서 1,000m 높은 산을 바라보면서 우와~ 하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바위산이 낯설게 다가온다. 바위산 하면 설악산인데 설악산 바위와 다르기 때문이다. 설악산은 대형 맷돌이 맷돌 위에 얹혀있고 그 사이를 따라 가로로 나무가 옹송옹송 나 있는데 반해 이 통바위는 세로로 갈라지고 그 틈새 따라 나무가 줄지어 있다. 규모는 설악산보다 작아도 통바위의 비례미는 되려 웅장하게 느껴진다.
부안댐 입구에 출입금지 팻말이 걸려있다. 왜지? 대부분 관광차 개방하던데? 못가게 되니 더 아쉬워서인가? 잠시 올려다보았다. 저 댐 위 어딘가에 직소폭포가 있을 것이고 그 물이 아래로 흐르다 구비구비칠 것이다. 거기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원불교 교조 소태산은 시를 썼으리라.
변산구곡로 (邊山九曲路) 변산 아홉 구비 길에
석립청수성 (石立聽水聲) 돌이 서서 물소리를 듣는다
무무역무무 (無無亦無無) 없고 없으며 또한 없다는 것도 없으며
비비역비비 (非非亦非非) 아니고 아니며 또한 아니다는 것도 아니다
이 뜻을 알면 곧 도를 깨달은 것이라고 했다. 나도 죽기 전에 그 뜻을 알게 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갖고있다. 그러고보니 내소사를 가보지 못했다. 다행이다. 실날같긴 하지만 언젠가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새만금방조제 길로 접어든 이후부터 날이 개였고 해지기 직전에는 반갑게도 햇살까지 보여주었다. 다시 새만금방조제 길로 돌아들어섰다.

새만금방조제 중간, 가력도 새만금공원에서 찍은 내해 갯벌에 걸려있는 배들
해가 진 직후에 찍어서인지 좀 어둡다. 물과 갯벌 구분이 어렵다. 가장자리 따라 하늘빛을 반사해서 보다 밝은 약간의 물이 보인다. 저 배들이 있는 곳은 장차 육지가 될 내해 갯벌언덕이다.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연처럼 갯벌언덕에 걸려있는 저 배들은 버려진 걸까? 개발은 늘 원래 살던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주인들이 궁금해진다.

새만금 방조제 북쪽 끝단에 있는 비응항 근처에 있는, 친구가 잡아준 애플모텔에 짐을 풀고 얼마간 쉬다가 가게로 돌아간 친구를 다시 만났다. 친구가 안내한 곳은 비응항에 있는 횟집. 나야 좋은데 회 못먹는 초록손이가 걱정이다. 다행히 따로 삶아내온 소라, 전복을 맛있게 먹으니 다행이다.
친구는 서울에서 꽤 큰 사업을 안정궤도에 올려놓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챙기지 않아도 별 일이 안생긴다고 했다. 부인은 29년차 공무원. 군산에 외국인식당과 외국인수퍼를 부업으로 열었다. 스물 일곱 아들과 스물 다섯 딸은 아직 정착이 안된 상태였다. 딸은 전공과 상관없는 새로운 코스를 밟고 있었고, 아들은 수퍼와 식당을 관리하고 있었다. 친구는 서울 사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자기 부부는 수퍼와 식당을 운영하며 사는 것이 노후여정이라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이 친구는 자식들이 힘들지 않게 자리잡을 때까지 어떻게 멘토링하고 지원할 것인지가 고민이라고 했다.
우리는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지원을 최소화하는 유형이다. 지원을 최소화하는 것은 교육적 관점도 있지만 우리 노후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수위 이내에서는 별로 여유가 없다는 경제적 요인도 작용한다. 우리는 연고대는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딸에게 4년 전액장학금을 제시하는 대학에 가라고 했고, 대학에 가고싶지 않다는 수능 2~3등급 짜리 아들을 서울로 보내 자신의 삶을 살라고 했고 일년 뒤에는 지원을 하지않아도 되었다.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두 부부의 자식 이야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철학자 푸코, 교육철학자 이반 일리히, 전 정농회 회장 임락경 목사. 전혀 뜬금없는 조합이지만 학교, 병원으로부터 자유로워야 주체적인 삶을 가질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친구 부부와 헤어져 숙소로 돌아왔다. 나는 베트남 쌈, 쌀국수, 메추리구이, 새우소금구이, 회, 매운탕, 소주와 맥주에 임산부 배 내밀듯 하고 있는데 초록손이는 내려올 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다 남긴 떡라면을 남기지 말았어야 한다며 툴툴댄다. 입짧은 초록손이는 하루종일 먹은 거라고 떡라면 한 그릇, 복사뼈 만한 전복 2개, 애기 주먹만한 소라 몇 개라며 배고프다고 성화다. 일찍 자자고 하고는 불을 껐다.
(다음날 여행기, 개봉 임박)
첫댓글 떡라면..맛있겠다 ㅋ 즐거운 여행이셨던 것 같아요. 그 시에서 세번째 줄을 읽을때 하얀색이 생각난건 뭐지..ㅡㅡ
새만금방조제 한번 가보고 싶네요... ㅎㅎ 정말 즐거운 여행 하신 것 같아요. 저도 죽기전에 그 시를 해석하도록의 수준에 올라가고 싶어요~ ㅎㅎ
맞아요 땅 없다고 개발하는 사람들 정말 이해가 안되요.저도 저 새만금 사업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런것 같아요.
돌 사이에 난 저 나무 되게 신기하네요.그리고 호흡 느리게 여행을 하신 아줌마,아저씨가 신기하기도 하고 부러워요.저는 감성이 많이 딸려서 그런지 완전 반대거든요(여행도 빨리빨리ㅋㅋ)
저는 어딜 여행가면 항상 풍경보는데에 바빴는데,,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감상도 할 줄 알아야 될 것 같아요..
언젠간 강원도에 있는 산과 전남에 있는 산에 대한 다른느낌을 아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ㅎ
즐거운 여행이었던 것 같네요. ㅎ
풍경을 볼 때 감탄만 하고 넘어갔는데 그지역의 풍경을 보고 다른지역의 풍경과 비교를 한다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