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궁 밖 거리의 인파
왕궁 입구로 나가니 숨이 탁탁 막힌다. 방콕의 한 낮 기온이 38℃인데다 아스팔트와 관광버스 등 차량, 관광객들이 내뿜는 열기는 말 그대로 살인적이다. 한시 바삐 이 곳을 탈출하고 싶은 생각에 상인들과 관광객들을 헤치고 빠른 걸음으로 국립박물관으로 향한다.
아들과 열심히 Phra That 거리를 걷는데 어깨 띠를 두른 여인들이 구경 좀 하고 가라고 잡아 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라마 5세 특별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 무료다. 여인들을 따라 전시장으로 들어 가니 내부가 아주 냉방이 잘 되어 있어 무척 시원하다. 전시장엔 태국의 근대화를 이뤄 주변 모든 나라가 서양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굳건히 독립국을 유지해 태국 국민들의 자존심을 지켜 주었던 라마 5세의 업적을 기리는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다. 라마 5세의 본명은 Phrachunlachomklao로 태국의 근대화에 가장 크게 공헌한 영주(英主)로서 대왕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쭐라롱껀’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데, 부왕 라마 4세의 뒤를 이어 1868년에 즉위한 그는 유럽의 문물제도를 도입하여, 행정조직 ·사법제도 ·철도 ·우편 등 여러 부문에 걸쳐 개혁과 정비를 하고 대내적으로는 1905년에 노예제를 폐지하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외국의 치외법권의 철폐 등 불평등 조약의 개정에 노력하여 국권회복과 보존에 힘쓰는 한편 왕족의 유럽 ·미국 등지에의 유학을 장려하고, 스스로도 2회나 외유를 하는 등 근대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한 그의 업적을 주제별로 분류해 전시하고 있는데 이 전시물을 보면서 라마 5세를 잘 몰랐던 내게 라마 5세는 태국 근대사의 기점을 이룩한 왕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전시실 내부에서는 라마 5세 기념관 건립을 위한 기부금을 모금하고 있는데 나도 20batt를 기부했더니 라마 5세의 사진이 들어간 엽서를 준다. 전시관을 나오면서 이런 지도자를 왕으로 두었던 태국 국민들은 행복한 국민이라고 전시관을 둘러 본 내 소감을 안내대 여직원에게 말해 줬더니 매우 흐믓해 한다.
▶ 탐마삿대학교 정문
▶ 탐마삿 대학 건물
▶ 그늘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Phra That 거리를 조금 더 걸으니 태국 민주화운동의 본산으로 유명한 Thammasat대학 대강당과 정문이 보인다. 강당 입구에서는 졸업 사진을 미리 찍는지 남녀 대학생 예닐곱 명이 학사모에 검은 가운을 입고 사진을 찍으라 바쁘다. 정문으로 들어가 보니 방학인지 학생들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법과대학 건물 옆 그늘에만 독서에 열중인 학생들이 꽤 많이 보인다.
▶ 방콕 국립박물관
▶ 국립박물관 앞 거리
▶ Phra Athit거리에 있는 유명한 쌀국수집 "낀뜸/뚜씻"에서 먹은 쌀국수
다시 Phra That 거리로 나오면서 아들이 더위에 지쳤는지 국립 박물관은 건너 뛰자고 한다. 나도 지쳤지만 국립박물관을 건너 뛰는 것이 내 여행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표가 아들 중심의 여행이란 것을 생각하면 양보하는 것이 좋겠고 시간도 벌써 오후 1시가 넘었다. 배도 고프고 해서 국립박물관 관람은 포기한다. 삔까오 다리로 가는 육교 밑을 돌아 G.H 인근 Phra Athit거리에 있는 유명한 쌀국수집 "낀뜸/뚜씻"으로 향한다. 유명한 쌀국수집이라 그런지 식당 안은 손님으로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아들과 쌀국수 특 2개를 주문해 먹는데 닭고기 육수 국물에 가늘고 쫄깃한 면발과 계란이 들어간 쌀국수는 역시 소문난 음식점의 맛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가격 1그릇에 45batt) 식당 주인에게 잘 먹었다는 인사를 하면서 계산을 마치고 G.H로 돌아 온다. 아침에 맡겼던 짐을 찾으러 G.H 프론트에 가니 여권을 보여 달란다. 여권이 캐리어 가방 속에 있다고 하니 길잡이 방을 가르쳐 준다. 길잡이 방으로 가 여권을 찾아 프론트에서 키를 받고 방으로 들어 간다. 샤워를 마치자 피곤함에 졸음이 몰려 온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 낮잠을 잔다.
▶ 태국 방콕의 택시
곤한 잠에 빠졌던 난 아들이 깨워서야 일어난다. 오후 3시. G.H를 나와 택시를 타고 위만 멕 궁전으로 향한다. 궁전 정문까지는 택시로 10분 쯤 걸렸는데 택시비는 49batt(약 1,800원)으로 매우 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왓 포에서 왕궁 갈 때 택시를 탈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 위만멕 궁전 입구
▶ 위만 멕 궁전
▶ 카메라 및 신발 보관소
위만 멕 궁전에도 관광객으로 아수라장인데 카메라를 비롯해 손가방까지 라커에 보관하란다.(20batt) 왕궁에서 산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니 "세계 최대의 황금색 티크 궁전"이라고 소개한 위만 멕 궁전이 보인다. 황금색은 아니고 연한 갈색이라 "태국 사람들 정말 황금을 좋아하다 보다"란 생각이 들어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가이드 북에는『1897년 유럽에서 돌아 온 라마 5세가 두씻공원 조성 때 함께 만든 궁전으로 태국 전통을 유지한 유럽풍 건물이다. 1901년 완공된 건물로 세계에서 가장 큰 티크 목으로 만들었는데 건물 전체에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티크(Teak)목은 인도,미얀마,타이,라오스등에 분포하며 직경이 60~80cm이고 나무결이 정교하고 조밀하며, 내구력과 병충해에도 강한 고급나무란다. 1906년까지 왕실로 사용하다 1932년부터는 왕실용품 보관소로 사용됐고 1982년에 현재 왕비인 Srikit에 의해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일반에게 공개되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궁전 입구에서는 안내원들이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넣으라고 하는데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몰려 시끄럽고 혼잡스럽다. 내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고 한시간에 두번씩 진행되는 투어 시간에 맞춰 입장해야 한다. 게다가 들어가기 전에는 공항 처럼 몸 수색도 한다. 궁전 내부에는 그 당시의 가구, 수집품들이 각종 진귀한 것들이 다 있기 때문일 게다. 위만 멕 궁전은 팔각형 4층 건물로 내부엔 침실, 국왕실, 욕실, 접견실, 서재, 식당 등을 포함한 31개의 전시실이 있다. 각 전시실에는 왕과 왕족들이 궁전에서 사용하던 물건과 사진 의복들을 그 쓰임새에 따라 각 방에 전시해 놓았고 관리 직원들이 복도 곳곳에서 관람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문을 잠가 놓은 관광객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공간도 상당히 있어 관리 직원들이 관광객 안내에 애를 먹고 있다. 여기서도 중국인 가이드의 용감한(?) 목소리는 다른 관람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중국 경제의 급부상으로 중국인들의 해외여행이 늘어 날 텐데 경제성장과 더불어 국민의식도 성장해야 할 것이다. 또한, 너무 많은 관광객이 입장해 밀리듯 관람할 수 밖에 없다. 관람을 마친 후에 보니 30분 간격으로 실시되는 영어 가이드 투어가 있고 태국 전통무용 공연이 궁전 앞 무대에서 오전 10시 반과 오후 2시에 있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모두 사전 지식이 없어 기회를 놓친 것이 안타깝다.
▶ 짓 뜨라따 궁전
▶ 아난타 싸만콤 궁전
라커에서 짐을 찾고 위만 멕 궁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은 후 라마 5세 동상으로 가기 위해 궁전 옆 길을 따라 간다. 물이 흐르는 다리 아래엔 커다란 물뱀이 강을 헤엄치고 있다. 길잡이가 아침에 농담 삼아 이 곳에서 물 뱀이 헤엄치는 걸 보는 사람은 100명에 1~2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에게 그런 행운이 온 걸까? 라마 5세 동상으로 가는 길엔 넓은 잔디밭 한쪽에 티크 목으로 지은 짓 뜨라따 궁전과 라마 5세 동상 뒤로 병풍처럼 받치고 있는 유럽풍 석조 건물인 아난타 씨만콤 궁전, 왕실 차량을 전시해 놓은 건물 등이 보인다. 아난타 씨만콤 궁전은 라마 5세때 건설하기 시작해 라마 6세 때인 1925년 완공된 건물로 단일 건물로는 태국에서 제일 큰 대리석 건물로 라마 7세 때까지는 국가의 중요 행사 때 외빈을 맞이하던 곳으로 절대 왕정의 권위를 느낄 수 있다. 또한, 1932년 민주 혁명으로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입헌군주국이 되었을 때 라마 7세가 권력을 이양하는 서명식을 한 장소이기도 하며 그 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태국 근현대사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라마 5세 기마상
▶ 라마 5세 기마상에 꽃을 바치는 젊은이들
▶ 라마 5세 동상 앞 광장
▶ 비들기를 쫒던 아이와 아이 엄마
아난타 씨만콤 궁전을 지나오니 광화문 광장 정도의 넓은 광장이 나타나고 광장 중앙에 라마 5세가 칼을 차고 말에 탄 동상이 보인다. 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는 라마 5세의 동상은 프랑스 조각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동상 앞에는 시민 몇몇이 향을 피우며 두 손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어 라마 5세에 대한 태국 국민들의 존경심을 엿 볼 수 있다. 라마 5세 동상 앞이 가장 붐비는 시기는 태국의 국경일인 10월 23일이라고 하는데 평일에도 헌화하는 시민이 많다. 광장 한쪽엔 위만 멕 궁전과 라마 5세 동상 등이 있는 두씻공원을 보러 온 관광객들과 관광버스 행렬이 길게 늘어져 있다. 가로수 그늘에서 다음엔 어디를 보러 갈까 생각하고 있는데 걸음마를 배운 지 얼마 안돼 보이는 아이가 비둘기를 쫓아 다니고 있는데 내가 사탕과 풍선으로 유혹을 해도 아이의 관심은 오로지 비둘기 뿐이다. 아이는 비둘기를 잡으러 다니다 넘어져도 울지 않고 계속 쫒아 다니고 엄마는 불안한지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지금 시간이 오후 5시니 오전에 못 봤던 국립박물관은 문을 닫았을 것 같고 아들의 의견을 들어 일단 카오산 로드 쪽으로 가기로 하고 택시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