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송종규의 시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또한 그 시선을 통해 세상의 깊이에 도달해 가려는 시인의 지적 탐색에 우리 모두를 동참시킨다. 송종규의 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형성하는 시간의 존재에 대한 고민과 모색을 통해 새로운 세계 인식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주체라고 생각하며 산다. 그리고 나라는 주체가 나의 모든 시간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현실에서 ‘나’는 주체가 아니라 상품의 지배에 종속되는 타자일 뿐이다. 시간마저 순전히 내 것은 아니다. 그래서 타자화된 개인이 느끼는 파편화된 현실과 착종된 의식이 파괴된 언어로 나타나 현대시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기까지 하다.
송종규 시인의 「구부린 책」은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를 만드는 것도 내가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모두 타자들이 만들어 낸 오래된 시간이고 그 오래된 역사가 나의 모든 인식의 근원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구부린 책이라는 것이다. 그 책을 읽고 해석하고 그 책을 완성하는 것이 바로 이 시대 시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요설적이고 난삽한 언어가 주류가 되어버린 세태 속에서 쉽고 명확한 언어가 어떤 깊이를 만들어내는지 이 작품은 잘 보여주고 있다.
송종규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아울러 이번 수상이 시인에게나 우리 <애지>에게나 큰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반경환, 이형권, 황정산, 이승희, 안서현(글 황정산 대전대 교수)
수상소감
송종규
눈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나비 같고 회오리 같고 꽃잎 같은 잎사귀들이 내 뜰에 수북수북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가볍고 차고 환하게 얼비치는 그 아름다운 문장 속에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잠시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천산북로의 만년설처럼 녹지 않는 눈은 말고, 가슴 에이게 하는 사무치는 싸락눈은 말고, 낯선 손님처럼 처음인 듯 눈이 와서 나는 매 순간, 내가 나에게 바치는 설레는 첫 문장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어의 궁전을 내 안에 세워 올리려 했습니다. 시를 통해 당신께 이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변변한 집 한 채 짓지 못했고 당신은 너무 멀어 나는 거기에 닿을 수 없습니다. 또한 형체가 없으므로 나는 당신을 만질 수도 없습니다. 영원한 부재로만 존재하는 모순인 당신, 혼돈인 당신. 흩날리는 이 말들은 또 누구의 혼돈이며 누구의 은유인지요.
작은 움막에 문풍지를 달아 주신 <애지>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연보 송종규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안동에서 마치고 대구에서 신명여고, 효성여 대 약학과를 졸업하다. 동산기독병원에서 약국인턴과정을 수료하고 결혼, 딸 미혜, 아들 영 진 태어나다. 1985년 난생 처음으로 쓴 시 3편이 <약사문예>에 당선 되다. 그 후 <물빛> 동인에 들어가서 습작을 시작하다.
*1989년 「겨울스케치」 외 4편으로 심상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옴
*1991년 습작시를 묶은 첫 시집 『그대에게 가는 길처럼』을 (둥지)에서 출간
이 시집으로 문예진흥기금 수혜
*1997년 시집 『고요한 입술』을 (민음사)에서 출간
*1997년부터 십여 년간 계간 시와반시 편집위원, 기획위원등 역임
*2003년 시집 『정오를 기다리는 텅 빈 접시』를 (시와반시사)에서 출간
*2005년 23회 대구 문학상을 수상
*2006년 시집 『녹슨 방』을 (민음사)에서 출간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
*2008년 봄호부터 2011년 겨울호까지 시와반시에 「송종규의 시집다시 읽기」 연재
*2011년 31회 대구시 문화상 (문학부문) 수상
*2013년 3회 웹진 시인광장 시작품상 수상
*2015년 시집 『공중을 들어올리는 하나의 방식』을 (민음사)에서 출간
*2015년 13회 애지문학상 수상
첫댓글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선정하시느라 수고도 많으셨구요,,,,
오늘도 행복이 넘치는 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