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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예배 2013. 5. 12. 한우리교회
*제목: 부부, 그 아름다운 이름 *본문: 엡5:22-33
“여호와는 네게(성도에게) 복을 주시고 너를(성도들을)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성도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얼굴을 네게로(성도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1. 아내의 복종이 행복의 비법입니다. 2. 남편의 사랑이 행복의 비법입니다. 3. 아름다운 부부는 이렇게 삽니다.
*생명의 말씀: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들어가는 말) 최악의 남편과 사는 한 지혜로운 아내가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내는 남편을 뒤뜰 나무 아래로 이끌었지요.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당신이 술을 마시고 나를 때리며, 그리고, 외도를 했을 때도 나는 이 나무에 못을 하나씩 박았답니다.” 그날 밤 남편은 아내 몰래 크고 작은 못들이 수없이 박힌 그 나무를 안고 울었지요. 세월이 흐르고 아내가 또 남편을 나무 아래로 이끌었지요. “보세요, 당신이 고마울 때마다 못을 하나씩 뺏더니 이제는 다 없어졌네요.“ 남편이 울면서 말했지요. “못을 없어져도 자국은 그대로 남아있질 않소” 아내는 그런 남편을 끌어 안았고 두 사람은 하염없이 울었다고 합니다.
부부 혹, 여보와 당신이란 단어의 뜻을 아십니까? “여보”는 같을여, 보배보 그래서 “소중한 사람이란 뜻이며, ”당신“은 당연히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 할 사람“ 이라고 합니다. 부부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 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의 핵심인 부부가 무엇보다 행복하기를 소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부부가 행복해 지는 방법을 성경 여러 곳에서 가르치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불행한 원인은 남이 아닌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부부간에 서로 힘들게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욕심과 탐심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성에서 나오는 욕심과 탐심, 이기심이 부부 사이를 힘들게 합니다.
가정의 주체인 부부행복, 이것은 하나님이 만든 최고의 복입니다. 이 부부행복이 회복되어야 가정 행복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부행복을 이룰 수 있을까요? 모든 사물에는 법칙이 있듯이 부부가 행복을 이루려는 데도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아내의 복종이 행복의 비법입니다. 가정의 행복의 열쇠는 누가 갖고 있나요? 하나님이 갖고 계시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구성원인 부부에게 주셨습니다. 부부 중에도 특별히 아내에게 더 많은 비중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내들에게 먼저 명령하십니다.
22절부터 24절까지를 보세요.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보다 먼저 아내가 행해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가정 행복의 열쇠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가정 행복의 열쇠는 다른데 있지 않고 복종에 있다고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누구에게 복종입니까? 자기 남편에게 입니다. 남의 남편이 아닌 자기 남편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사도 바울은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독신으로 살았으면서도 여성의 심리를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그때 당시에도 많은 여성들이 남의 남편에게는 친절하고 예의를 갖추고 예쁘게 보이려고 애를 쓰면서 자기 남편에게는 아무렇게나 하기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 같습니다.
2) 또 어떻게 복종하라고 하십니까? 주께 하듯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께 복종 하듯 남편들에게 복종하라 하십니다.
3) 왜 복종하라고 하시죠?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결정정하면 몸은 순종하듯이 아내는 머리되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저는 왜 하필이면 복종이라는 단어를 썼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순종이라면 좀 더 나을 텐데 왜 복종이라 했을까 살펴보았습니다. 순종은 순순히 따르는 것으로 자원하여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종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아내들에게 복종을 명하실까요?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반발하실 분도 계십니다. 오늘날 남녀가 평등한 세상에 왜 한쪽이 일방적으로 복종을 해야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생각이고 성경은 남편이 머리이기에 따르라고 명령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이고 그것이 행복의 비법이라는 것입니다.
-각 가정을 살펴보면 아내가 남편을 누르는 집안은 아이들도 제대로 되는 집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쥐락펴락하면 남편은 항상 집밖을 나돌고 아이들도 가정을 행복의 보금자리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내가 남편을 존경하고 순종하며 잘 섬기는 집은 자녀들도 잘되고 집안은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행복의 열쇠인 복종을 실행하려면 하나가 꼭 있어야 합니다. 아내가 자기를 내려놓은 “겸손”과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없이는 절대로 복종이 어렵습니다. 정말 어떤 때는 남편이 하는 짓이 맘에 안 들고 확 뒤집어엎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일단 순종하세요. 그리고 나중에 기회를 봐서 생각을 내어놓으세요. 그러면 지혜로운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아내가 갖고 있는 /행복의 열쇠는 /희생을 통한 복종이다/
2. 남편의 사랑이 행복의 비법입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로 남편들에게 명령합니다. 25절을 보세요.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아내를 사랑하되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시나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심 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온전한 헌신입니다.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28절에 언급하시기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여기 보세요.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남의 아내가 아닙니다. 남의 아내에게는 온갖 친절 다 베풀면서도 자기 아내에게는 무뚝뚝한 남편이 되면 안 됩니다. 성경은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같이 사랑하라하십니다. 그러면 그것이 자기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내 몸을 사랑하듯 아내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해”가 아닙니다. 아내가 아프면 내 몸이 아픈 것 같이 보살피라는 것입니다. 아내가 아프면 “왜 병원 안 가보는 거야!” 하고 소리만 지르지 말고 손으로 머리라도 만져 보고 수건이라도 언져 주고, 기도해주고, 관심을 보여 주란 말입니다. 그렇게 아내를 사랑하면 그것이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권면입니다.
-남편이 갖고 있는 열쇠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어떻게 실현되나요? 이것도 자기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자기희생을 통한 사랑” 이것을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우리는 그 모습을 주님에게서 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교회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가시관을 쓰셨기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거나 고통스럽다고 외치거나 신음하지 않고 가셨습니다. 왜그러셨습니까? 그 십자가를 우리가 져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과 교회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희생입니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의 희생, 이것이 가장 위대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사랑의 심벌인 것입니다.
그처럼 남편들도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말없이 묵묵히 가정의 기둥도 되어야 하지만 한 몸 된 아내를 생각하고 배려하며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남편의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 희생으로 가정의 행복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멘? 이 두 가지의 열쇠, 복종과 사랑은 희생이라는 공동분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희생이 없는 복종은 거짓말이고 희생이 없는 사랑도 거짓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희생을 통한 행복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3. 아름다운 부부는 이렇게 산답니다. 1) 부부는 산울림과 같습니다. 한 소년이 엄마 품에 안겨 울먹거리며 말했습니다. “엄마, 산이 날 보고 자꾸 바보라 그래요.” 그 이야기를 들은 엄마가 물었습니다. “네가 뭐라고 했는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야, 이 바보야!” 하고 외쳤지요. 순간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그러면 이제 다르게 말해 보거라. 산에 가서 <야, 이 천재야>하고 외쳐보렴” 그러자 정말로 산이 소리쳐 주었다. “야, 이 천재야~~~~~~”
한마디로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이야깁니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는 것이야말로 부부의 황금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발 아내는 남편에게 반말하지 마세요. 남편은 아내에게 소리 지르지 마세요. 내가 행하는 대로 상대가 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일 바보 같은 사람은 남편을 보고 ‘오빠’라 부르는 사람이고 제일 미련한 남편은 아내를 보고 이름 부르며 야! 자! 하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노회 어느 목사님은 아내를 “내 사랑”이라 부릅니다. 목사님들 앞에서나 성도들 앞에서도 “내 사랑”이라 부르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호칭이 뭐냐에 따라 상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은 핸드폰에 사모님 이름을 조폭마누라 라고 했더군요. 하도 무서워 그랬는지... 저는 제 핸드폰에 아내 이름을 ‘에스더황후마마’라고 합니다. 에스더는 당시 바사(페르시아)제국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였습니다.
2) 부부는 실과 바늘의 관계입니다. 바느질 해보신 분은 아시지요? 바늘이 너무 빨리 가면 실이 끊어집니다. 또 바늘이 너무 느리면 실은 엉키고 맙니다. 그렇다고 바늘 대신 실을 잡아당기면 실과 바늘은 따로 놀게 됩니다. 그러기에 실과 바늘은 자신의 역할을 바꿀 수도 없고 바꾸어서도 안 됩니다. 남편이 시원찮다고 아내가 바늘 역할을 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또 반대로 아내가 시원찮다고 남편이 실 역할을 할 수도 없습니다. 실과 바늘의 조화, 여기에 부부화합의 비밀이 있습니다. 항상 함께 하시고 서로를 도우시고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3) 부부는 자동차 타이어 바람처럼 좀 빼야 합니다. 모래에 빠진 차가 모래를 빠져 나오는 방법은 뭐냐 하면 타이어 바람을 조금 빼는 것입니다. 그러면 타이어가 좀 평평해져서 바퀴 표면이 넓어지기 때문에 모래 구덩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부부도 마찬가집니다. 갈등의 모래사막에 빠져 헤맬 때, 즉시 자존심과 자신의 고집이라는 바람을 빼는 것입니다. 아내들의 알량한 자존심이 자기를 수렁에서 헤매게 합니다. 남편들의 어줍잖은 고집이 부부사이를 힘들게 합니다. 그때 서로 바람을 좀 빼어야 합니다. 그러면 둘 다 살 수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부부사이는 배짱 튀길 일이 아닙니다. 머리가 몸에게 배짱 튀겨봐야 자기가 자기에게 부끄러운 짓이고 몸이 머리에게 자존심 내세워 바야 될 것도 아닙니다. 바람 빼십시오.
4) 부부는 김치와 같이 죽어야 합니다. 지난 겨울에 교회 김장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런데 배추는 5번 이상 죽어서야 김치가 된다합니다. 땅에서 뽑힐 때 죽고, 칼로 배추의 배를 가를 때 죽고, 소금에 절일 때 죽고, 매운 고추와 젓갈과 마늘의 양념에 버무려질 때 죽고, 그리고 사람 입 안에서 씹힐 때 죽고, 5번입니다. 그래서 입안에 들어갈 때 사람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게 김치의 최종 행복입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이란 맛을 내기 위해 부부도 죽고 죽어야 합니다. 몇 번 죽어야 한다고요? 5번입니다. 솔직히 내가 경험해 보니 3번만 죽어도 됩디다. 그러면 행복이 피어납니다. 아멘입니까? 죽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내가 죽겠습니다./ 옆에 아내, 남편의 손을 잡고 따라 하세요. /여보 미안해요 /내가 죽겠습니다./
5) 부부는 서로에게 최고의 고객입니다. 식당 가계에 들어가 보면 그 가계가 될 가계인지 망할 가계인지는 고객을 대하는 직원들의 자세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계는 고객에게는 절대 화를 낼 수 없습니다. 항상 미소로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재빨리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음식을 사먹으러 식당에 들어갈 때 제일 짜증나는 것은 몇 명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몇 명이세요.” 어느 가계는 인사도 안하고 몇 명이세요가 인사입니다. 눈치껏 보면 알것 아니겠어요. 어세 오세요. 반갑습니다. 반갑게 맞이하시면 됩니다.
부부도 그렇습니다. 남편이 퇴근을 하면 “어서 오세요.” “고생 하셨어요” 반갑게 상냥하게 맞아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왔어” 하고 텔레비전 보고 있어요. 그래도 그것은 안합니다. 이불속에 누워서 본척만척하는 여자도 있습니다.. 그러니 그 집 되겠습니까? 부부란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알면서도 가장 어려운 손님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일생 최고의 고객으로 여기며 상대를 위해 최선의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부부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배우자를 최고의 VIP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Very Important Person입니다. 여러분의 아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Very Important Person입니다. 그러기에 평생고객으로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나가는 말) 부부란 평생을 함께 살면서 5단계 변화를 겪는다고 합니다. - 처음에는 ‘좋아서 산다’는 것입니다. - 그 다음에는‘어쩔 수 없어서 산다’는 것입니다. - 그 다음에는 ‘서로가 필요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 그 다음에는 ‘서로가 불쌍해서 산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서로를 묻어 주려고 산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3단계로 진행된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습니다. 제1기 : 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는 [사생사사] 제2기 : 경제문제에 민감해지는 [돈생돈사] 제3기 : 살아온 정으로 사는 [정생정사]...
이렇듯 한 부부가 10년, 은혼, 금혼을 넘어 결혼 60주년이 되는 회혼식을 맞이하기 까지는 그저 무심한 세월이 흐른 것이 아닙니다. 사랑과 미움의 파도를 타고, 절망과 희망의 계곡을 넘어, 가난과 부요의 벽을 깨치며 심지어 그 어렵다는 권태의 늪을 함께 건너온 동지이자 전우라 말 할 수 있습니다.
오늘밤, 잠든 남편과 아내의 손을 더듬어 찾아 그대의 심장 위에 살며시 얹어 보십시오. 삶이 힘겨울 때마다 서로의 마음에 머물러 쉬어가는 아름다운 그대의 이름은 “부부”입니다. 부부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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