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나친 환상을 품지도 말고, 어두운 현실을 탓하지도 말고,
주어진 삶을 기꺼이 살아내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라.”
여호와께서 당신을 떠나서 범죄 한 성민 이스라엘을 신흥 강국 바벨론 손에 붙이셨습니다. 징계하셨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성민 이스라엘의 다수는 이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선동과 폭동으로 저항하다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두렵고 떨리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내일을 위한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희망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난 절망에 완전히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통해 그들을 향한 당신의 창세 전 뜻의 계획을 담아놓은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렘29: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에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조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의 기후도 익히고, 그곳의 농사법도 배우고, 텃밭을 일구고, 조상들이 그랬었던 것처럼 눈붙일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일하고, 그곳을 위한 생산적인 일원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열매를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랫동안 떠나지 않고 살 것처럼 아주 정착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어져 있는 현실이 비록 자유도 없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도 없고, 희생 제사마저도 없고, 아무리 어렵고 힘겨울지라도 절대로 도망치려고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살아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삶이 예배가 되고, 예배가 삶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또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렘29: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의 구성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친밀하고, 책임감이 있는 관계를 맺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녀들도 시집가고 장가가게 하고, 그들의 자녀들도 시집가고 장가가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후손이 줄어들지는 않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포로라고 할지라도 절대로 약해지지 말고 오히려 강인한 민족으로 당당히 살아남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또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이라.”(렘29: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로로 잡혀 있는 바벨론의 평안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벨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희망은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아내야 할 그들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장차 그들을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보게 될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의 구원을 위해서입니다. 태생적으로 관계 맺어진 나라와 민족, 서로 촘촘한 그물망처럼 하나로 묶여 있는 세계, 영적 모판과 같은 교회, 여러 가지 이유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욕하지 말아야 합니다.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안을 구해야 합니다. 그들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보고 돌아서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나게 될 무수히 많은 영혼을 위해서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또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과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듣고 믿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29:8b-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포로 생활이 제아무리 길어봤자 2년이 넘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낙심하거나 절망하지도 말라고 외쳤습니다. 여호와의 뜻과는 완전히 다른 헛된 망상이었습니다. 긍정의 힘Joel Osteen이었습니다. 적극적인 사고방식Norman V. Peale이었습니다. 긍정의 힘과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낙심한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격려할 수 있습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도 있습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으켜 세워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생각이 부자를 만든다, 모든 성취의 출발점은 욕망이다. 그러니 성공을 욕망하라.”라는 식의 발상Napoleon Hill에서 출발한 일종의 인본주의입니다.
실제로 성공 철학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여러분의 운명은 여러분의 생각에 달려있습니다.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긍정의 힘과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성공과 행복과 건강 등을 여러분에게로 끌어들이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으로 그것들을 창조하십시오. 탄생시키십시오. 여러분이 꿈꾸고 있는 모든 것들을 생각이라는 힘을 사용해서 이루어내십시오.”라고 외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결단코 당신의 절대 주권을 생각이라는 우상에게 내어주지 않으십니다. 긍정적인 생각도 그렇고, 부정적인 생각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다른 무엇보다 창세 전에 이미 완성된 당신 뜻의 계획에 목숨을 바쳐 온전히 순종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구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거기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물질적이지 않습니다. 지극히 영적입니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 하나에 맞춰져 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초점 역시 하나님의 영광에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대뜸 하나님의 영광도 뭐라도 좀 가지고 있어야 나타낼 수 있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나타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분명, 일리一理가 있게 들립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설득당할 가능성도 높아 보입니다. 그렇다고 옳은 주장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파괴된 아담의 본성에서나 나올 법한 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달리신 십자가를 무시하는 불신앙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은 소유가 아니라 성숙한 신앙 인격을 통해서 나타낼 수 있습니다. 무려 열 명이나 되는 생때같은 자식들은 물론 소유 전부를 하루아침에 다 잃고, 사랑하는 아내도 떠나 버리고 마지막 남은 육체마저 악창이 들어 흘러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는 있습니다.
출생과 함께 누리게 된 천문학적인 부와 명예와 권세를 모두 다 내려놓고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선교지에서 복음을 단 한 마디도 외치지 못한 채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면서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근본적인 목적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지 않은 거짓 선지자들은 여호와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며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셨던 무당, 점쟁이, 꿈꾸는 자, 술사 등과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들로부터 헛된 정보를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속한 목회 현장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은 선동과 폭동을 주동했습니다.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질 때 겨우 살아남았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민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였습니다. 다른 이들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헛된 망상을 조장했습니다. 하나님 뜻과는 완전히 다른, 아니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말씀해 주지 않은 거짓 희망을 외쳤습니다.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희망을 외쳤습니다. 될 수 없는 일을 믿기만 하면, 기도하기만 하면 될 수 있다고 외쳤습니다. 힘겨운 하루하루를 절망 속에서 살아내고 있던 성민 이스라엘을 고문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속한 교회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너무 무책임한, 깊은 절망과 공허로 몰아붙일 수 있는, 끝내 실망하여 아주 떠나 버리게 만들 수 있는,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희망 고문까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간증은 개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비슷한 사례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모든 이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똑같이 적용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나타난 기적이 당신에게는 왜 일어나지 않았느냐고, 믿음도 없고 기도도 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냐고 판단합니다.
정죄합니다. 절대로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또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29: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칠십”은 숫자라기보다는 충만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 이르렀다 등의 의미입니다. 바벨론의 패망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당시 중근동의 유일한 패자霸者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던 바벨론의 패망은 누구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그랬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들어와 있는 온갖 문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수고와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기미가 전혀 없는 문제들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거기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라는 증거에 따르면, 저와 여러분을 향한 여호와의 생각은 재앙이 아닙니다. 평안입니다. 특히, “미래אַחֲרִית(아히리트)”는 “끝, 후에, ~의 말末, 최후” 등의 뜻입니다. 희망이라는 단어와 하나 곧 일체一體가 될 때만 사용됩니다.
결국 “미래와 희망”을 직역하면, 희망과 희망입니다. 포로 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들이 바라던 미래, 대망하던 미래,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 정하신 때가 충만하게 차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2-13)라는 증거에 따르면, 저와 여러분이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던 희망으로 가득 찬 미래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틀어진 여호와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를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고 받아들이는 영적인 수용성도 없고, 여호와를 뜨겁게 갈망하지도 않고, 거룩함을 사모하지도 않고,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모진 고난과 핍박과 조롱을 받고 마침내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려는 내면적인 굶주림도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해서 늦은 저녁까지 누구보다 많이 수고하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헌신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마음으로בְּכָל־לְבַבְכֶם(벡홀 레바브켐)”는 단순히 형식적이고 지극히 감정적인 열심을 넘어섭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삶의 방향 전체 곧 99.9999%를 내놓고도 0.0001%만큼은 차마 내놓을 수 없는 진심이 아니라 차마 내놓을 수 없었던 0.0001%까지 아낌없이 내놓는 전심全心을 여호와 한 분께로만 향하겠다는 결단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한 분께 전적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모든 욕망과 애정을 여호와께 온전히 묶어야 합니다. “나를 찾을 것이요”는 그럴 것이라는 우연 같은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한 결과를 가리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이며, 선언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당신을 감추지 않으십니다.
특히, 여호와께서 값없이 선물로 허락해 주시는 은혜는 선행적입니다. 먼저 베푸십니다. 곧 저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당신을 찾도록 먼저 불러주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기꺼이 가까이 다가와 주십니다. 반드시 발견되어 주십니다. 혹 늦어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을 구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발견되어 주시기 위해서 한시도 쉬지 않는 걸음으로 부지런히 다가오고 계십니다. “나를 만나리라.”는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만남이 아닙니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끈끈하게 맺어진 관계적이거나 경험적인 만남을 가리킵니다.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렘29:14b)라는 증거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유대 백성들에게 당신을 기꺼이 나타내 주시고 또 기꺼이 만나주시는 목적은 하나입니다. 그곳 곧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내시기 위해서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예루살렘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있어야 할 자리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한 여호와의 창세 전 뜻의 계획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뤄져야 할 자리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살아내고 있는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의 특징은 마치 파수꾼처럼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는 평안입니다. 희망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미래입니다. 물론 당장은 믿음으로 참고 견디며 이겨내야 할 엄청난 절망일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이 과정을 거쳐 대제국 이집트는 물론 주변 국가까지 살리는 총리로 거듭났습니다. 다윗은 아브라함 때 약속된 이후 무려 천 년 동안이나 미루어지고 있던 가나안 땅 완전 정복이라는 대업을 완성하는 전무후무한 지도자로 거듭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나타내 보여주시는 충만한 영광입니다.
공급입니다. 공급은 필연적으로 가져야만 하는 물질일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지 못했던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을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견고한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요셉의 경우에서처럼 홀연히 나타나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마친 다음 홀연히 사라지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절대 주권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탁월한 섭리로 저와 여러분의 삶을 이끌어주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방법은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고는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헛된 환상을 품지도 않고, 어두운 현실을 탓하지도 않고,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아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파수꾼처럼 마음과 생각을 하루 스물네 시간 지켜주는 평안이 더할 나위 없이 넘치는 복된 20026년, 희망과 미래로 충만한 복된 2026년, 있게 하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2026년, 무엇보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 뜻의 계획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뤄지는 복된 2026년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