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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완전한 이해를 하고 있다면
천국의 복음에 깨어 있는 주의 백성일 것입니다.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한 천당의 개념은
무속적이며 불교적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당은 지옥과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마태복음의 천국이나 마가와 누가 복음의 하나님 나라와 상관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죽으면 가는 곳이 천당이라는 개념은
구약 성경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신약에도 사실상 없습니다.
요한 계시록의 천국은 천상의 나라가 아니라 이 땅이요,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 성전은 천당의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머물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신 바로 그 곳이 하나님의 나라요,
그 통치의 영역 주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는 바로 그것입니다.
☞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31:33)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1-2)
하나님의 나라는 장소와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믿음으로 순종하여
백성의 하나님이 되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바로 그것입니다.
이사야와 스데반은 성전과 천당이 아닌
하나님의 발등상으로서의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에 깨어 있었습니다.
부자가 죽어서 간 곳은 지옥이지만
나사로가 죽어서 간 곳은 천당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품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의 천국과 누가복음의 하나님 나라는 같은 개념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는 천당이 아니라
창조와 구원의 통치,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천국과 천당의 개념이 동일한 사람은
아마도 죽어서 부자가 간 지옥에 갈 확률이 높습니다.
한 때 유명했던 내가 본 천국, 천당의 간증 시리즈는
100% 거짓이라고 이해하면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본 천국이라는 간증에 브레인 워싱된 사람은
복음서의 천국이나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할 수 없습니다.
영혼불멸사상이 비성경적이라는 개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면
사후 세계에 대한 불교적 천당 개념에 함몰되었습니다.
영혼불멸사상은 부활과 충돌 되는 개념으로
사망을 영원히 멸하는 구원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가는 영생의 길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겔18:4)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마10:2 )
영생의 구원은 완전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은혜요,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영생의 구원, 그 영광으로 충만합니다.
사역자들 가운데서도 천국과 천당에 대한 대부분 혼동된 개념을 갖고 있어
일반 성도들은 거의 불교적 사후 세계관으로서 천당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강단의 복음이 사라졌다는 말씀은
곧 강단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의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였으며
두란노 서원에서 이 년 동안 강론하였으며 삼 년 동안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가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쳤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울의 이해를 가지고 있는 교회의 강단은
예레미야가 그토록 이스라엘의 멸망, 그 심판을 멈출 수 있는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그 한 사람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5:1)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바로 그 한 사람을 찾지 못하여
이스라엘의 심판을 눈의 눈물이 시내가 되며 창자가 끊어지며 간이 땅에 쏟아지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애2:11)
혹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뭐야~" 평생 예수 믿었는데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울의 이해가 없다는 말인가? 의혹할 것입니다.
구원에 대한 천당의 개념은
토착화된 무속적인 신앙의 산물입니다.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는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형상, 그 뜻을 이루는 경륜이요,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구속사가 아닌 영원한 현재의 통치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누가의 이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가 있는 통치의 영역이요,
죽은 나사로가 안긴 아브라함의 품은 소위 말하는 천당이 아니라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로 말미암은 그 나라의 백성이 누리는 언약의 복입니다.
죽어서 지옥에 간 부자는 죽어서 지옥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지옥을 알지 못하였으며 물 한방울로 혀를 서늘하게 할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뱀이 사는 지옥은 없습니다.
구더기가 죽지 않은 지옥은 없습니다.
보이는 형상의 지옥은 이미 지옥이 아닙니다.
물 한방울로 혀를 서늘하게 할 지옥은 없습니다.
영혼의 목마른 현상은 물리적이지 않고 영적입니다.
영적인 현상은 물리적인 제재(制裁)를 받지 않으며 보수는 불타지 않고 궤멸(潰滅)될 뿐입니다.
생각이니 사상이나 마음과 영혼은
물리적인 불로 태우거나 고통을 주거나 아프게 할 수 없습니다.
신약 성경에 번역된 게엔나의 지옥은 구약성경 흰놈이 골짜기에서 유례하였으며
하데스의 지옥은 영혼불멸사상을 가진 헬라철학의 육체와 분리된 영혼이 머무는
사후 세계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게엔나와 하데스를 우리 말 지옥으로 번역한 것은
지옥에 대한 우리의 개념, 곧 무속적이며 불교적 세계관의 관념입니다.
사탄의 이름으로 둔갑한 "루시퍼"에 대한 문제도
라틴어의 불가타 역본을 킹 제임스 성경에서 음역하여 루시퍼의 이름을 가진 사탄이 탄생하였습니다.
루시퍼라는 오해된 사탄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은
순전히 킹제임스의 오류이며 개역과 개정은 계명성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사야14장 12절의 본문은
바벨론왕의 교만을 심판하시겠다는 이사야의 신탁입니다.
그런데 루시퍼라는 이름을 가진 타락한 천사, 곧 사탄의 기원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벨론 왕과 사탄을 동일시하는 해석의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강단에서 사탄을 루시퍼라고 설교하면......
루시퍼를 추종하는 사탄의 졸개라고 이해하면 거의 맞을 것입니다.
결혼과 인연이 결합된 혼인은
결과적으로 전생의 개념이 포함된 용어입니다.
성서의 언어로 번역된 혼인은
사실상 전생의 환생 개념이 포함된 오역입니다.
지옥도 마찬가지로 성서가 번역되기 전에
무속적이며 불교적 세계관으로 정착된 사후 세계의 관념이 덧씌워졌습니다.
성서 번역과 그 이해에 덧씌워진 개념 용어는
성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불가항력의 스크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게엔나와 하데스를 지옥으로 번역함으로
성서의 본질적인 게엔나와 하데스의 의미는 상실되고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무속적 지옥의 개념으로 고착되었습니다.
천당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천당이라는 천국의 인식으로 고착되었습니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개념은
케리그마로 선포된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이 아닙니다.
천국과 천당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지 못하면
소위 말하는 내가 본 천국으로 지옥을 경험할 겻입니다.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는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입니다.
선포된 말씀, 곧 케리그마로서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울의 완전한 이해입니다.
복음서는 물론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선포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으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담았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포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의 이해는
복음서와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으로 선포된 복음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 예수를 찾는 사람은 의식적 부활을 강조하고
케리그마, 그 선포된 예수에 대한 이해는 역사적 예수의 부활을 믿습니다.
성서 밖의 예수, 곧 다빈치 코드의 망령을 따르고
도마복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케리그마, 그 선포된 말씀에 대한 하나님 나라의 이해가 없습니다.
다시한번 강조하면 선포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이해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울의 완전한 이해입니다.
천국에 대한 마태의 이해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하는
하나님 나라, 그 메시야 통치의 선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산상수훈의 천국은 메시야의 통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전파하시고 가르치시는 천국 복음이었습니다.
천국의 강령에 대한 수미상관법으로 기록된 팔복은
천국에서 천국으로 강조되었습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5:3-10)
천국에 대한 보배로 빛나는 예수님의 교훈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에 순응하는 그 나라 백성 삼으시는 메시야의 사역이었습니다.
☞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0)
☞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마8:11-13)
이 말씀은 천국의 복음이 그 나라의 본 자손 곧 유대인을 배제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이방 구원의 선포요,
이방인 가운데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을 가진 자는 아브라함 언약의 복을 받을 것이라는
구원의 본질에 대한 선포된 말씀입니다.
☞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
예수님의 공생애는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며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 그 자체입니다.
천국에 대한 비유의 말씀은 하나님 말씀의 정관이요,
그 생명의 서정으로 넘치는 은혜입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비유로 선포된 천국의 말씀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그 정관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
이렇게 비유로 선포된 천국은 종말론적인 예수의 하나님 나라요,
전도된 복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이요, 그 통치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의 선포된 천국의 복음을 듣고 믿는 주의 백성은
소위 말하는 내가 본 천당을 간증할 것이 아니라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도록 온 세상에 전파하여야 할 것입니다.
선포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온전히 전파하는 하는 것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구원받은 주의 백성입니다.
마태복음의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통치는
천하 만민에게 선포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전도와 선교의 열정은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전파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스텔스 선교나 에큐메니칼 선교는
종말론적인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전도된 복음"의 전파가 아닙니다.
바울의 선포된 복음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요,
바울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선포된 복음의 전파, 그 사역의 실상을 이루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은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받아 바나바와 함께 전도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은 가는 곳마다 많은 믿는 성도를 많이 얻었으나
그 만큼 박해와 핍박을 받았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스데반과 같은 역사적 증언으로 주 예수의 고난과 부활을 증거하여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두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하였으며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도의 많은 결실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었습니다.
또한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를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와서 무리를 충동하여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으로 끌어 내쳤습니다.
바울은 돌에 맞아 거의 죽을뻔 하엿으나 이튿날 일어나 바나바와 제자들과 함께
루스드라를 떠나 더베로 가서 많은 제자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떠나면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는 것은
예수의 고난에 참여한 자가 예수의 부활에 참여한다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었습니다.
바울은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롬8:16-17)
또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빌1:29)
바울은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골1:24-25)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교훈하였습니다.(딤후4:5)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먼저 주 예수의 복음을 위하여 고난과 환난의 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고난의 복음으로 부활의 주 예수를 증거한 사도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으 나타나심으로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영생의 구원으로 기뻐하였으며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 주 예수를 온전히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스데반의 사도행전 7장과 쌍벽을 이루는 주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였고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두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의 복음 증거는 곧 주를 믿음으로 영생의 기쁨으로 충만한 구원을 얻고
주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는 제자들은 성령의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또한 바울은 죄의 종이 되었을 때 사망의 이르렀지만 주 예수를 믿음으로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울의 완전한 이해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의 구원에 대한 성령의 기쁨으로 넘치는 그 확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