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동에 얽힌 이야기는 무궁무진하지만, 이쯤에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동을 해야겠다.
초량동을 지나면 수정동과 좌천동이 나온다.
수정동은 별로 얘깃거리가 없지만, 십 수년전에 수정터널이 생겨 구포 방면이나, 남해고속도로 방향으로 갈 때는 이용에 편리함을 더했다.
좌천동은 가구거리로 유명하고 좌천로타리에서 아래쪽(좌측)으로 가면 당시 부산에서는 많이 없던 관계로 유명하게 알려진 오버 브릿지(고가도로)가 나온다.
오버브릿지 아래로 가면 부산진시장이라는 상가가 나오고 우측으로 돌면 자성대가 있는 범일동이 이어진다.
부산진시장은 주로 포목점과 혼수품 등을 주로 취급하는 상가였으며, 범일동은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 다음 시간에 중점 해서 다루기로 한다.
먼저 좌천동 로타리에서 직진하면 나타나는 곳은 삼일, 삼성 극장으로 이곳은 영화 ‘친구’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삼일 극장과 삼성 극장은 바로 이웃하여 이면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당시 극장은 한번 입장하면 영화 두 편을 상영했는데 영화 포스터에는 ‘2편 동시상영’이라는 문구가 반드시 들어있다.
새로운 신 프로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홍보 차원에서 초대권을 뿌리기도 했는데 인근 식당 등에 주로 비치하여 단골손님에게 선심 쓰듯 건네 주곤 했다.
영화 ‘친구’는 폭발적인 흥행에 성공하여 전 국민 중에서 본 사람보다 안 본 사람이 적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후 ‘친구2’도 제작하여 흥행에 성공 했으니...
당시에 영화관을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을 잘 알겠지만,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는 광고가 있었고(현재도 광고는 필수), 광고가 끝나고 본영화가 상영되기 직전에는 애국가가 연주되었다.
누구나 자리에서 일어나 화면 속 태극기를 향해 삼천리 금수강산을 영상 편집한 내용을 보고 있어야 했다.
특히 현재는 사라졌지만, 오후 5시가 되면 국기 하강식이라 해서 전국적으로 태극기가 게양대에서 내려오며 애국가가 울려 퍼진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 소리에 태극기를 바라보며 국기에 대한경례를 했었다.
아마도 나라에 대한 애국심은 이 시기가 최고조를 달했을 것 같다.
요즘 같으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구시대 유물로 젊은이들은 펄쩍 뛰었을지도 모른다.
영화관에서 애국가 다음 순서는 ‘대한 뉘우스’ 이며 자막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의 동정과 업적을 다루는 내용이 함께 했다.(전두환 대통령 시절 전으로 기억된다)
흑백 화면 이었지만 당시 국민들에게는 ‘대한 뉘우스’가 시사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또한 극장은 학생들에게 시청각 교육이라고 단체관람도 심심찮게 시행했다.
주로 교육적인 내용 들이었으며, 반공을 부르짖던 시기에 대표적인 영화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나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벤허’ 등이 주로 대상이 되었다.
필자가 학창 시절에 유행했던 영화는 주로 하이틴 물로 ‘고교 얄개’, ‘얄개시대’, ‘꺼꾸리와 장다리’, ‘여고 시절’ 등이 주로 상영되기도 했다.
그때 나온 대사 중 하나가 ‘아기다리든데이트’로 띄어쓰기를 안 하고 마치 암호처럼 읽곤 했다.
정상적인 문구는 ‘아! 기다리고 기다리든 데이트’ 였지만...
필자와 비슷한 연배들은 이해하겠지만, 당시 히트 친 외화는 서부 영화로 ‘크린트이스트우드’ 주연의 영화가 대세인 적도 있었다.
‘황야의 무법자’, ‘내이름은 튜티니’, ‘튜티니라 불러다오’, ‘OK 목장의 혈투’, ‘용서받지 못한자’ 등이 있었다.
어째던 삼일, 삼성 극장을 얘기하다가 영화 이야기로 빠진 것 같아 양해를 구한다.
삼일, 삼성 극장 쪽에서 앞서 밝힌 범일동 쪽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라 불리 운 육교가 있었다. 영화 ‘친구’ 화면에도 나오는 곳으로 경부선 등 열차가 지나가는 철길 위로 가로질러 세워져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지나가면 다리가 출렁거린다고 구름다리라 했는지, 철길 위에 설치하다 보니 아주 높게 설치할 수밖에 없어 구름과 맞닿은 것 같아 구름다리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구름다리를 지나가면, 범일동으로 나오고 범일동은 다른 명으로 조방앞, 또는 구 조방앞으로 불리었다.
조방이란, 조선방직회사를 줄인 말로, 흔히 사람들은 조방앞이라고 하면 통했다.
정확히는 과거 부산은행 본점이 있던 곳으로 예전에는 이곳에 전차가 서는 정거장도 있었고, 부산 시내버스에는 아직도 조방앞이란 정류소 명칭이 눈에 띄기도 한다.
조방앞 뒤쪽으로 가면 구터미널(현재는 사직동으로 옮긴 후, 노포동 전철 종착지에 합류해 있다.)이 있었고, 부산 시민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구 터미널 주변에는 부산의 또 다른 대표 음식인 돼지국밥집이 즐비했다.
돼지국밥은 한번먹으면, 그 담백한 맛에 구수한 국물이 끝내준다.
부산사람들은 국수를 좋아해 돼지국밥과 사리로 국수를 삶아 내놓곤 했다.
전국적으로 수육 국밥집이 많지만 부산 식 돼지국밥과는 좀 다른 맛이다.
아마도 터미널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즐겨 먹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에는 ‘그레이하운드’라는 고속버스가 중간에 한번 씩 2층 버스가 운행되곤 했다.
필자는 꼭 이층 버스를 타보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던 차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서울에 심부름 갈 일이 있어, 이층 고속버스를 이용하고 파 앞서 출발하는 차를 보내고 뒤에 출발하는 2층 버스를 타고 떠났다.
그런데 추풍령 휴게소를 지나갈 무렵 버스가 고속도로에서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여 잠시 멈춰 섰다.
아뿔싸!
필자가 안 타고 보낸 앞차였던 것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한다.
운이라고 하기엔 너무 끔찍했다.
구급차가 도착하지 못해 우리 차에 옮겨탄 사람(주로 경상자)들은 운전자가 졸았던 것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중상자들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도 있었으니...
한동안은 버스를 타지 않은 적도 있었다.
당연히 부산으로 올 때는 기차를 이용했다.
범일동 구 터미널 뒤쪽에는 나이트 클럽 ‘시티 라이트’가 있었다.
당시에 나이트 클럽은 주로 관광호텔 지하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범일동에 덩그라니 자리한 건물에 나이트 클럽이라니 시민들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표 가왕인 조용필의 콘서트가 주로 열린 곳으로 잘 알려져 흥행에 성공했었다.
필자도 성인이 된 후 제일제당에 근무할 당시 납품을 간 적이 있어 대낮인데도 조용필 가수가 연습하는 장면을 몰래 훔쳐보곤 했다.
그때나 이후에나 조용필은 가왕중에 가왕임을 실감했다.
필자가 근무하던 곳은 서면으로 이곳 범일동과는 버스로 약 15분 정도 거리에 있어 자주 가던 곳(유흥을 즐기기보다, 업무차 또는 물건을 구입할 때 주로 찾아갔었다)이었으며, 서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기록하고자 한다.
범일동에는 부산의 대표재래시장중 하나인 중앙시장이 있다.
중앙시장에는 주로 식재료나, 야채, 생선 등을 도매로 파는 곳이 많았다.
재래시장하면 예나 지금이나, 나프탈렌이라는 좀약이나 수세미 등을 조그만 수레에 싣고 파는 장애인들을 볼 수 있다.
카세트 테잎에 흥겨운 트로트를 흘려보내며, 나름 씩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가끔 힘들고 시름에 빠질 때 재래시장을 찾아 이들을 보거나 장을 보러온 사람들, 좌판에서 쪽파나, 시금치, 부추 등을 다듬어 파는 할머니들을 보면서 힐링하며 또다시 용기를 내곤했다.
부산 갈매기 8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