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그랬어
강릉여고 개교 80주년, 35기 40주년 행사일정을 총무 전화로 받았다. 슬몃 가슴이 뛰었다. 얼마만의 설렘인지, 여고시절에는 늘 가슴이 벅찼었는데 새로운 것에 눈이 흡떠지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 심장은 두근거렸었는데...
창밖의 풍경을 잠시 놓고는 의자에 깊숙히 앉아본다. 벚꽃 잎이 봄눈처럼 흩날리는 강릉여고 교정과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 아래에서 팝콘처럼 웃음을 터트리곤 하던 여고 동창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히말라야시타 나무가 지키는 교문을 들어서던 아침 등굣길에서 흰 바지와 자주색 교련복을 입고 행진 연습을 하던 운동장에서, 짱구를 사러 달려간 매점 앞의 긴 줄에서 갈래 머리의 여학생들이 보인다. 다른 오락이 없던 시절, 흰 칼라를 뒤집고 캄캄한 영화관을 더듬고 들어가 앉았더니 학생주임 옆자리였다는 전설과 TV 명화극장 이야기를 들으려고 친구따라 긴 하굣길을 돌아서 걷고 또 걸었던 일과 운동장 벤치에서 별 것도 아닌 큰 비밀을 서로 주고 받던 일들까지 실타래처럼 이어진다.
우리는 그 시절, 자라고 또 자라고 하루마다 자랐다. 건축물에 자갈과 모래와 시멘트가 섞이듯이 여고시절에는 선생님들 말씀과 친구들의 수다와 파안대소의 웃음들이 단단히 결속되어 있었다. 교문 옆 바위 위에 새겨진 '순결, 협화, 근면'이라는 교훈이 성장기 삼년동안 얼마나 깊게 각인되었는지 마치 '반지의 제왕'의 글자처럼 가슴에 불길이라도 치솟는 듯 했다. 선배 김형경 작가는 어느 강연에서 '순결이 교훈인 촌스러운 여학교에서 자랐다'고 했지만 우린 어쩔 수 없이 그 토대로 성인이 되었고 그 방향대로 이제껏 살아왔다.
강릉여고 교문을 나서 세상으로 첫 걸음을 내딛었을 때 우리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길이 웅장하고 대단한 줄 알았다. 고구려의 벽화처럼 산백이 연달아 이어지고 우린 그 정상에 올라가 말 잔등에서 세상을 돌아보게 될 줄 알았다. 인생길은 꼭 그럴 줄 알았다. 그렇게 믿었다. 평지의 들길을 걷고 또 걷다가 한 모퉁이를 돌아보니 강나루가 보이는 게 인생인지 차마 몰랐다. 살아보니 알겠다. 무미한 것이 인생이구나! 여고시절, 그 시절이 인생 중 새콤달콤 가장 맛나는 부위였구나! 참치횟집에서 어느 부위가 가장 입에 녹는지 여러 군데를 먹어 본 후에 알아지듯 지금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중략
우리 여고시절엔 책은커녕 교과서에 연관된 필독서도 한 줄 요약으로 암기하면서 자랐다. 줄을 맞춘 묘판에서 속성으로 자랐다. 여고 졸업 후 우리는 실제의 책을 읽고 실제의 생을 살면서 흐르는 물길에 뿌리를 내리는 법을 익히느라고 누구보다 힘들었다.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자라난 요즘 아이들은 묘판의 형상대로 틀 지워진 우리 꼰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려나.
35기 여고 동창들은 이제 단단하고 주름진 씨앗을 품은 열매로 빛나고 있을 것이다. 푸른 열매의 싱그러움은 지나갔지만 더욱 달콤한 과즙과 향기를 지닌 완숙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우린 만나자마자 사십 년 전 강릉여고 교정에서 함께 자랐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어이없는 웃음부터 터트릴 것이다. 그땐 그랬지. 뭐가 그렇게도 우스웠던지, 뭐가 그렇게도 중요했던지, 뒤집어지도록 웃고 환호를 지르고 나면 더 자란 것 같았어.
......우린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