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독립운동가
중안 / 조상진
춘추전국시대 이후 중국은 하나의 왕조가 300년을 넘기지 못하였고, 북방 이민족인 몽골족과 여진족이 침략하면서, 장구한 문화를 자랑하던 전통 한족(漢族)이 원과 청으로 개국하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대륙을 재건하였고 몽골과 티베트는 물론 바다 건너 타이완까지 지배하는 세계 대국을 이루고 있다.
조선은 장장 500년간 존속하면서 무엇을 키우고 발전시켰는가. 지정학상 북쪽을 제외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조선은 중국 명나라만 사대(事大)로서 잘 섬기면 왕조와 사대부 양반 선비들의 부귀영화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조선이 후기에 이르러서 삼정(三政)이 문란해지고 충청,전라,경상도의 삼남 지방에서는 반란도 자주 일어났다. 도둑무리들이 횃불을 들고 관가나 양곡창고들을 습격하였기 때문에 화적떼 불한당이라고 말했다. 현대로 보면 테러리스트에 해당할 것이다.
인근 섬나라 일본은 대륙 진출의 방향으로 한반도를 노리고 있었고 그러한 야망은 사무라이 정신으로 칼을 들고 무장하였으나, 조선은 상전으로 명나라만을 믿고 가문과 문필을 앞세워 일본을 좌시하였다. 일본 막부도 쇄국이 원칙이었지만 한쪽 문을 열고 서양 네덜란드와 긴밀하게 교역을 주고받으면서 서구 문명을 배웠고 서구식 무기를 도입한 것이다.
결국 1910년에 이르러 붓을 든 조선은 칼을 든 일본에게 합병을 당하였고 1919년에는 3.1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민족운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대표적 지도자로서 백범 김구와 우남 이승만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상징인 남산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백범 김구이고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자리하여 육중한 대리석으로 건축된 건물의 이름 역시 ‘백범기념관’ 이다. 그리고 서울의 명소 효창공원 안에는 왕릉을 방불케 하는 거창한 묘역의 주인공도 김구이다.
독립운동가는 아니지만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대부 김대중은 현재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고 전라도 광주에는 ‘김대중컨벤션센타’ 가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점에서 김구의 위상도 만만치 않다. 그러함에도 이승만의 경우는 자유 대한민국의 건국(建國) 대통령으로서 동상이나 기념관, 묘역도 보이지 않다는 점은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의문점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지금까지, 일제 치하에서 우리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안겨주고 독립운동의 위대한 민족 영도자, 항일독립의 거성, 대한민국 국부(國父)라고 앙망하며 떠받드는 더없는 흠모와 숭경의 위인으로 전해지고 있는 얼굴은 누구인가.
그동안 항일 독립운동의 거대신화로 떠오른 인물을 상대로 그의 또 다른 얼굴을 실증연구하여 발간된 도서가 최근에 출간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른바 ‘KIM GOO’S Terrorist Activities’ 이다. 저자는 정안기 박사이고 유명한 1인의 독립운동가 활동에 대하여 그동안에 알려진 내용과는 너무 상반된 이면 등을 밝히고 있다.
그는 1876년 출생하여 1949년까지 73년간 생애를 갖고 있는데 평생에 걸쳐 최소 80여 명 이상의 동족 또는 일본인(3명)을 살해하는 등 잔혹한 테러를 자행한 정치적 암살자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테러리스트라는 점과 대한민국 국부라는 환상적 부조화에 대하여 비판적 성찰과 함께 탈(脫) 신화에 도전하는 학술연구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는 민족적 강박관념은 언제부터 형성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911테러와 비교하며 그는 독립을 위한 애국적 폭력을 행사하였기 때문에 테러가 아니라는 논쟁에 있어서, 이러한 한국인들의 역사적 강박관념 혹은 역사적 확증편향의 이면에는 역사학계의 불편한 진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1911년부터 3년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수형생활 하는 동안에, 삼남 지방 일대를 무대로 강도행각을 벌이다가 같은 형무소에 투옥된 불한당 두목을 알게 되었다. 그를 통해 화적떼의 존재와 함께 그들의 결사와 훈련방식을 배웠고 1920년대 경무국장 시절에는 불한당으로부터 배운 배신자 처벌방법을 직원들에게 연습시켜서 밀정 처단에 응용하였다. 상해 일본영사관 주변에서 조선인 등 밀정들이 나타나면 비밀리 체포하여 처참하게 처치해 버렸다고 말하는 증언과 함께 그의 테러 활동은 화적떼 전법의 복사판이었다.
한국인들이 환상하는 그는 종북(從北) 주체사상파가 만들어낸 역사적 허상이고, 1980년대 중반 그들은 사회악의 모든 근원을 ‘친일 미청산’ 에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이승만 깍아 내리기’ 를 위한 대항마로서 그를 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한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의 “38선을 베고 쓰러질망정 남한 단독정부는 안된다.” 등의 발언을 이용하였다. 즉 이승만을 부정하고 소련 스탈린의 지침을 의식한 것이다. 이렇듯 종북 주사파의 가장 성공한 프로젝트로 회자되는 역사공작은 그를 ‘통일의 화신’으로 이승만을 ‘분단의 원흉’ 이라는 허위 프레임으로 재구성되어 한국인들을 세뇌하여왔다. 그러한 그를 두고 민족의 구원자 혹은 통일의 메시아라고 환상하고 성인화 하는 것은 끔찍한 위선이다.
요컨대 그는 한 손에 임시정부 간판을, 다른 한 손에는 장 칼을 휘두르며 자신과 뜻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족을 협박하고 폭력을 자행했던 테러리스트이고 임시정부 극단주의를 가장 권력적으로 완성해 영세불망의 지위에 오른 루갈(Rugal)이다. 이것이 바로 또 다른 민낯이자 이른바 독립운동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잔인한 진실이다.
그가 쓴 일기 중에는, 1896년 20대 자신의 고향인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투숙중인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명성황후 민비의 시해범 또는 공범인 일본제국 군인으로 지목하고 살해한 사건 기록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군인이 아닌 약제를 판매하는 일본 상인이었고 그 상인이 소지한 금품을 빼앗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가 중국 국민당 장개석으로부터 수차례 독립자금을 지원받았는데 그중 상당한 금액을 횡령하였다는 증언과 자료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종북 주사파가 만들어낸 역사적 허구이자 한국인들의 무지함과 천박성을 조롱하는 우상에 불과하다.
저자의 위와 같은 지적들이 혹여 사실이라면, 한국인들은 특정인에 대한 시대착오적 우상숭배와 터무니없는 환망공상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하고, 그러한 그의 전성시대를 외면하거나 방치할 수 없다는 근현대사적 당위성에서 나도 상당히 공감하고 싶어진다. 따라서 21세기에서 유명 독립운동가의 또 다른 얼굴의 민낯을 접하는 독자들도 심히 착잡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이승만을 주제로 상영된 ‘건국전쟁’ 이라는 영화 중에서 ‘Japan Inside Out’ (일본 내막기) 이라는 독립운동가 이승만의 저서를 소개했고 1941년 출간되어 일본이 미국을 침범할 것이라는 예측으로 미국을 놀라게 했다는 내용이 공개되었다. 실제로 진주만을 공격당하자 미국은 이승만을 재평가하였고 한반도의 독립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게 된 계기도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진실 등은 한국 사회에서 현재까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공교육의 문제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두 얼굴의 지도자 중 누가 더 진실한 자유와 민주를 위하여 독립을 외쳤는지,자유 대한민국을 건국하게 만든 진정한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곰곰이 따져보아야 할 때도 되었다고 본다. 왜냐면 조선조와 같은 속 좁은 파벌 정치가 아닌 글로벌 시대의 크고 넓은 현실 정치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최초 국제정치학 박사 이승만은 좌우 이념을 초월하여 역사적 진실로 재평가되어야 한다.
한반도 지도에서 그나마 반쪽만 남은 대한민국의 남쪽 국토와 고조선의 광대한 영토를 상상해보면서, 염치와 수치심을 모르는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