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 선지식 32차. 17, 빈방에 앉아
빈방에 앉아
호랑이 눈알 같은 몸으로
허공을 응시 해 본다.
영축산에서 설법하신 여래의 외침 소리
산자락을 뒤흔들고 들려오는데도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대로 있어
바윗돌에 이끼 피는 세월을
원망하고 있는 내 마음
가을 끝자락에 달이 걸려있네
산모퉁이에는 감나무가 붉은 감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어쩌면
내 모습과 같은 운명이로구나,
구름가는 그 곳에
구름 가는 그곳에 누가 있기에
구름은 자꾸만 그곳으로 가나
여래종 산무루에 올라앉아
저 멀리로 가는 구름을 바라보네
구름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까마귀
무순사연을 그리도 안고 가나
고려 시대 묘청 스님의 원력이 있었다면
정지상의 시도 여기에 뿌렸건만
지금은 갈 수 없는 몸이지만
그대로 구름은 그곳으로 가고 있네
내 육신의 변화
내 육신의 변화
거대한 영축산 바위를 들고
황소처럼 발걸음을 옮기던 날
그날에는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인데
세월이 지난 후에 그 증상이 오네
정지용이 거닐던 산 숲도 아니건만
향수에 젖어 있는 듯이 말하고 있는데
그는 어쩌다가 그러한 향수시를 썩는다
모든 것은 나의 삶에 있어서 변화
내 육신의 몸도 변화의 물결을 타고
금강이라는 작은 물줄기를 타고 가는 낙업배
차를 마시는 인연
차를 마시는 것도 인연이 있어야 하네
차는 인연의 몸을 이끌고 다니는 신비의 마술
차는 거리에서도 숲속에서도 자리를 잡아야 하네
자리를 잡지 않고서도 선차를 마실 수 없는데
선차의 도량을 만드는 것이 또한 소중하니
선승들이 있는 곳애 선차가 없네
내 이제 선차의 마음을 준비하려고 하면
숲속에 있는 숲 속에 작은 방안에
선차의 도구를 올려놓고 선차를 마시는 날
어것이 또한 선차를 찬양하려니
나의 노래는 너무도 슬픈 노래
선차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꿈이네
2024년 1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