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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의 중요성: 검은 천 위에서 다이아몬드가 가장 빛나듯, "나는 박해자였다"라는 어두운 배경이 있기에 "지금의 나는 은혜다"라는 고백이 보석처럼 빛나는 것입니다.
자격 없는 나: 내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된 것은 자격증을 따서 된 것이 아닙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자에게 맡겨주신 **'과분한 직분'**임을 깨닫는 것이 은혜의 시작입니다.
2. 정체성의 혁명: "나의 나 된 것" (10절 상반)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I am what I am)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바울은 지금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은혜로 정의합니다.
"나의 지식, 나의 건강, 나의 열정, 나의 위치...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빌려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하다가 왜 상처받습니까? "내가 누구인데 나를 안 알아줘?"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내 자존심이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존심이 없습니다. "나는 본래 없던 존재인데, 은혜가 나를 빚으셨습니다." 이 고백이 있는 사람은 무시를 당해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겨도 괜찮습니다. 내 정체성이 '사람의 인정'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있기 때문입니다.
3. 은혜의 동력: "내가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10절 중반)
이 부분이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흔히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라고 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믿음이라고 착각합니다. "하나님이 다 하시겠지 뭐."
천만의 말씀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여기서 '수고하다'는 헬라어 **'코피아오(kopiaō)'**는 **'뼈가 으스러지도록 일하다', '탈진할 정도로 노동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베드로보다, 야고보보다 더 많이, 더 치열하게 선교 현장을 누볐습니다. 매를 맞고, 굶고, 잠 못 자며 일했습니다.
은혜의 역설: 은혜는 우리를 게으르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어떤 의무감보다 더 강력한 엔진이 됩니다.
빚진 자의 심정: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셨는데, 내가 이 몸 하나 바치는 것이 무엇이 아까우랴!" 이 감격이 바울을 미치도록 일하게 만든 것입니다. 율법은 억지로 일하게 하지만, 은혜는 기꺼이 죽도록 일하게 합니다.
4. 영광의 반납: "내가 한 것이 아니요" (10절 하반)
그렇게 뼈 빠지게 일해 놓고, 바울은 마지막에 충격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요(Yet not I)."
이것이 진짜 실력입니다. 땀은 내가 흘렸는데, 공로는 하나님께 돌립니다.
"내가 했다"고 말하고 싶은 그 순간, 사탄이 교만이라는 틈을 타고 들어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모든 수고를 십자가 뒤로 감추고,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남깁니다.
주어(Subject) 바꾸기: 사명자의 인생은 문장의 주어를 바꾸는 훈련입니다.
(X) "내가 교회를 건축했다." -> (O)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X) "내가 헌금을 많이 했다." -> (O) "하나님이 드릴 마음과 물질을 주셨습니다."
이 고백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수고는 자기 의(義)가 되어 하늘의 상급을 갉아먹습니다.
[목회적 결론 및 성도를 향한 선포]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묵묵히 교회를 섬기시는 성도 여러분.
혹시 "나만 고생하는 것 같다"는 억울함이 드십니까? "아무리 해도 변하지 않는다"며 지쳐 계십니까?
그것은 내 힘(기름)으로 달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내 연료는 언젠가 바닥납니다.
오늘 바울의 고백을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십시오.
"나는 자격 없는 자입니다." (겸손의 시작)
"그러나 은혜가 나를 일하게 하십니다." (사역의 동력)
"결국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영광의 귀결)
여러분의 땀방울 하나하나가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름표를 달 때, 그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사라진 그 자리에 오직 예수의 향기만 남는, 가장 아름다운 사명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