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광섭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예술경영 전공. 문화예술경영학 석사, 학예사, 세계일보 기자를 거쳐 현재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총괄부장으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문화가 예뻐졌어요>, <글로벌문화담론_크라토피아>, <우리는 왜 문화도시를 꿈꾸는가>, <미술관에서 박물관까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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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필장 유필무
이 시대 장인의 처절한 삶과 정신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항아리>에는 황모필(黃毛筆)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추운 겨울날 스님이 황모필로「염송설화」라는 불경을 스물아홉 권이나 집필하고 마지막 한 권을 집필해야 하는데 붓끝이 달아 더 이상 글씨를 쓸 수 없었다. 폭설이 내리고 길이 끊어져 붓을 장만해 올 방도가 없어 걱정하던 차에 스님이 아침잠에서 깨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족제비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족제비는 스님의 절간을 매일같이 드나들고 있었는데 스님의 근심거리를 알아차리고 스스로 생명을 바쳐 자기 몸을 보시한 것이다.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붓을 일컫는 황모필은 만드는 기술부터 간단치 않다. 족제비 꼬리털을 푹 쪄서 잘 말린 다음, 재로 문질러 기름기를 빼내야 한다. 그리고 털을 통 속에 넣어 원추형의 붓털모양으로 만든 다음, 붓털의 기부(基部)를 실로 동여매고 인두로 지져서 고정을 시키고, 그것을 다시 붓자루에 끼워 풀로 붙여야만 황모필이 된다. 문방사우(文房四友)는 종이·붓·먹·벼루의 네 종류의 문방구를 일컫는다. 이 중 붓에 대한 문화적 가치는 단순한 기록을 위한 재료로서의 의미를 뛰어넘는다. 서양의 펜이 단단함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동양의 붓은 부드러움이 특징이다. 조선 선비들이 가장 선호한 붓은 족제비의 꼬리털에 부드러운 양털을 곁들여 만든 황모필(黃毛筆)이었다.

붓은 짐승의 털과 대나무나 갈대와 같은 식물을 사용하여 만들어낸다. 붓을 만드는 과정은 수십여 차례의 손질을 거칠만큼 복잡하고 힘든 작업이다. 털을 골라 빗질하고 기름을 8번 제거하며, 털의 앞쪽을 가지런히 한 후 재단하여 체질하고 뒷털을 가지런히 한 다음 모양을 낸다. 저울로 무게를 잰 다음 의체를 씌우고 도모질을 하고 물을 묻혀 끝을 본 후 건조시키고 초가리를 해서 묶는다. 각통에 초가리를 맞추고 붓대의 속을 파서 붓촉을 끼우며, 동을 씌워 풀을 먹인 후 건조시키고 뒤꼭지를 끼워 완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털의 선별부터 빗질과 손질 및 수차례의 기름기 제거부터 끼우는 작업마다 예민한 눈썰미와 섬세한 손끝 감각이 요구된다.

유필무 작가(49)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붓과 인연을 맺으면서 30년 넘게 붓쟁이로 살아오고 있다. 그동안 동물의 털로 붓을 만드는 기능을 물론이고 태모필을 상품화하는데 심혈을 기울여 왔으며, 최근에는 풀잎으로 붓을 만드는 초필작업에 몰입하면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초필은 사람의 손으로 만 오천 번을 두드려야 붓의 총이 만들어지는 고단한 작업과정이 필요하다. 한 자루의 초필이 만들어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3개월이나 된다. 작가의 모필기법 역시 빼어나다. 갓 태어난 아이의 머리털을 잘라 붓으로 만드는 모필은 원모선별, 지방질 제거, 초벌정모, 재단, 배합, 재벌정모, 작편, 물끝보기, 필관 맞추기, 접착, 풀먹이고 빼기 등 30여 과정을 거쳐야 하며 250여회의 손길이 필요하다. 철저한 장인정신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과정이다.

유필무 작가는 명장중의 명장이다. 붓을 만드는 기술을 스스로 터득해 왔으며,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기예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혼을 담아 창작활동을 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열정 때문에 유필무 작가가 만든 붓은 다른 붓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붓끝의 섬세하고 미세한 울림은 그것을 쓰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케 한다. 한 번 사용한 사람은 반드시 선생의 붓을 찾게 마련이다. 마음으로, 혼을 다해 붓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난하고 삶이 고단해도 작가는 늘 부자라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 일 부자인 것이다. 청원군 문의면 마동리 옛 회서초등학교에 마동창작스튜디오가 있는데 이홍원(화가), 손영익(조각), 송일상(조각) 작가와 함께 창작활동에 몰입하고 있다. 아이들의 손때 묻은 낡은 교실 한켠에 그의 공방이 있다. 거추장스러운 삶의 때를 벗기고 싶은 사람, 황모필의 사연을 엿보고 싶은 사람은 청주인근의 마동창작스튜디오로 발길을 돌려라. 그곳의 아름답고 가슴 시린 사연을 담아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