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장 구속사 강해
이스라엘 공동체 예배와 성막
여호와께서 정월 초일일에 마침내 성막을 세우라고 하심으로서(1절) 그동안 모든 과정을 마치고 여호와께서 계시하신 대로 성막을 세우게 되었다. 모세는 이 과정을 기술하면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19, 21, 23, 25, 27, 29, 32절)는 후렴 구절을 거듭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성막 건설의 처음부터 마치는 때가지 전적으로 여호와의 계시에 따라 진행되었음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출 40:34) 하였다는 묘사는 하나님께서 성막을 접수하셨음을 보여준다. 이제 하나님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만들어진 성막에 친히 좌소(座所)를 정하신 것이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만든 구조물인 성막을 자신의 거처로 삼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1. 여호와께서 성막에 임재하신 방식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성막을 접수하시고 그 안에 임재하신다는 증거는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는 현상으로 충분하게 드러났다.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출 40:38)는 묘사 역시 여호와의 임재를 모든 백성이 인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성막 건설과 완공에 대한 출애굽기 34장부터 40장에 이르기까지 두드러지게 나타난 사상은 성막 중심의 제의와 더불어 여호와의 임재 방식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성막 제의 역시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한다는 속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이 부분에서 실제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여호와의 임재 방식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출애굽기에서 여호와의 임재 방식과 관련하여 특이하게 나타난 것 중 하나는 여호와의 사자( )에 대한 것이었다. 출애굽기 3장 2절의 여호와의 사자는 4절에서 여호와와 동일시된다. 특히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와 "여호와의 사자가 말씀하신다"는 말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여호와의 사자는 특별한 신분을 가지신 분으로 하나님 자신이거나 하나님과 동등한 분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에 등장한 하는 하나님의 사자( )가 방향을 취하실 때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다(출 14:19-20). 그런데 이 구름 기둥은 여호와의 현현(Theophany)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출 16:10). 무엇보다도 밤에는 구름 기둥에서 신비한 불빛이 나타났는데 그 불빛은 마치 시내산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불꽃 형상(출 3:2)을 연상시킨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를 가리켜 하나님은 '이스라엘 앞서 행시는 분'( )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신다(출 23:20). 이분은 이스라엘 보다 앞서 행하시면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성막 건설에 대한 계시가 주어지고 금송아지 사건을 치른 후 하나님은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가나안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고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출 33:2-3) 하시겠다고 하신 말씀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바로 샬라( ) 곧 '이스라엘 앞서 행시는 분'과 동일시된다. 그리고 이 여호와의 사자의 임재는 회막 문의 쉐키나로 상징되었다(출 33:10). 그렇다면 쉐키나는 바로 그 사자 곧 '말락 아도나이'( )의 현현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데 이 쉐키나에서 여호와는 모세와 대면해 말씀을 나누신다(출 33:11). 그리고 성막이 완공된 후 회막은 성막에 흡수되었고 쉐키나가 성막을 뒤덮고 성막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된다.
앞서 성막의 구조와 기물들의 상징성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것들은 한결같이 여호와의 임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볼 때, 구름이 성막을 덮었다는 것은 곧 여호와께서 거기에 임재하신다는 하나님의 현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때로는 여호와의 사자를 상징하는 쉐키나가 여호와의 임재와 동일시되기도 하고 여호와의 사자가 곧 여호와 자신과 동일시된다는 점을 볼 때 쉐키나는 곧 여호와의 현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호와는 영이시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성막에 임재하신다는 것은 영으로 임재하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특히 이 점을 중시하셨기 때문에 쉐키나가 회막 문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출 33:10) 별도의 처소로서 성막을 세우도록 하셨다(35장 구속사 강해 참고). 그렇다면 쉐키나가 성막 위에 임했다는 것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여호와의 사자가 거기에 함께 하신다는 논리적 결론을 얻게 된다.
모세가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다"(출 40:34)고 묘사하고 있는 것 역시 여호와의 사자가 현현하신 형상으로서의 쉐키나와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성막에 임재하셨다는 사실을 구별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호와는 여호와의 사자와 자신을 동일시하실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와와 동일한 신분을 가지신다는 증거들은 쉐키나와 여호와의 영광이 동일시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 사실에서 여호와와 여호와의 사자는 동일한 분이심과 동시에 다른 인격을 가지신 분들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증거하는 하나의 자료가 될 수 있다.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출 40:36-37)라는 기사는 여호와의 사자가 친히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보호하
심을 묘사하고 있다. 반면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출 40:38)라는 기사는 여호와 임재를 증거함과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와 여호와가 동일시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2. 성막 제의와 이스라엘 공동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막의 주인이시자 그곳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여호와의 임재는 구별되어야 한다. 여호와는 이 성막 제의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거기에서 말씀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기 때문이다. 쉐키나와 달리 성막이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막은 곧 하나님 나라의 전형으로서 그 의미를 가짐과 동시에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유일하게 허용된 장소이다. 거기에서 백성은 여호와의 통치를 받으며 여호와를 경배하게 된다. 쉐키나는 어떤 이유에서든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성막과 쉐키나는 구별되어야 했다.
또한 이 점은 여호와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준다 하겠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이 하나님께 나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고 그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을 치유해 주시는 곳으로서의 성막의 기능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비록 구속사의 점진성이라는 계시의 틀 안에서 구약의 성막이 계시의 한계를 가진다 할지라도 성막이 존재하는 동안 성막은 하나님의 나라를 표상하는 지상의 유일한 구조물임과 동시에 영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임재하시고 그 백성을 통치하시는 유일한 장소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막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도록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말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제한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그들이 거하는 어느 곳이든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예배는 어디까지나 영이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영적 예배여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공동체의 공적인 예배는 성막에서만 행해져야 한다. 이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공동체로 상대하시고 공동체의 예배 의식을 중시하신다는 사실을 지시한다(39장 구속사 강해 참고). 성막이 완성됨으로서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정당하게 경배하는 유일한 공동체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출애굽기 이후에 등장하는 레위기와 민수기 역시 이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레위기는 공동체 제의에 대한 규례를, 민수기는 공동체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출처: 기독신학공동체 글쓴이: 송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