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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 17 위로부터 난 지혜 - 약 3: 18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약 3: 17 위로부터 난 지혜 -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
이와 대조적으로 위로부터 난 지혜,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는,
첫째, 성결하다.
그것은 죄악 된 일을 버리고 거룩하고 의로운 것이다.
둘째,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말한 성령의 열매들과 비슷하다(갈 5:19-23).
셋째, 편벽과 거짓이 없다.
그것은 공정하고 진실하다. 신적 지혜는 의로움과 선함과 진실함이다. 잠언은 지혜를 가르치는 책인데, 거기에서 말하는 지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대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잠언의 모든 말씀은 결국 야고보서 본문이 가르치는 위로부터 난 지혜와 동일하다.
1]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본 절은 앞서 언급된 거짓 지혜와 대조되는 참된 지혜, 즉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지혜의 특성에 대한 진술이다.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지혜는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실천적인 것이다.
2] 첫째 성결하고
이에 해당하는 '하그네'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지혜의 기본적 특성으로 성적인 순결의 의미보다는 모든 악한 태도나 동기가 없음을 의미한다.
'거짓된 지혜'의 이기적인 동기와 대조를 이룬다(Robertson, Burdick).
3] 다음에 화평하고(에이레니케)
이는 '평화를 사랑함'이나 '평화를 가져옴'을 의미한다.
* 히 12: 11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이것 역시 독한 시기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 위로 난 지혜는 모든 이에게 화평을 가져다준다(Tasker).
4] 관용하고
이로 번역된 '에피에이케스'는 주로 왕으로서의 하나님의 성품을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 죄인에 대해 단호하게 징벌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고 인내하시는 온유와 자비를 나타낸다.
5] 양순하며
이의 '유페이데스'는 '유'(잘, 좋게)와 '페이도마이(순종하다)의 합성어로 '잘 순종하는'이나 '유순한'을 의미한다.
이것은 교만하여 진리를 대적하는 것과(14절) 대조되는 것으로 위로 난 지혜는 하나님께 잘 순응하는 성품을 소유케 한다.
6]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는 상관관계를 갖는다. '긍휼'은 가난하고 곤경에 처한 자들을 실제로 도와주는 마음 자새로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정죄 아래에 있는 자이다(2: 13). 이러한 긍휼을 드러낼 때 그 결과로 선한 열매를 맺게 된다.(Martin, Burdick).
* 마 7: 17-18 -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7]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거짓된 지혜의 당을 만들고 구별하며 자기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는 달리 위로 난 지혜는 구별이나 위선이 없는 공평함과 신실함이 가득하다.
* 출 23: 3 -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 말지니라.
* 레 19: 35-36 - 35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36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다시 말해, 신적 지혜의 특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함이다. 잠언은 지혜의 삶을 가르치는 책이다.
* 잠 1: 2-6 - 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거기에서 강조하는 지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나는 것이며 하나님의 율법대로 의롭고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다.
* 잠 1: 7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 잠 2: 16 -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 잠 2: 20 - 지혜가 너로 선한 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 잠 3: 7 -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 잠 8: 13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잠언의 모든 말씀은 결국 야고보서 본문이 가르치는 '위로부터 난 지혜'와 동일하다.
약 3: 18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본문은 '위로 난 지혜'에 대한 결론이다.
'의의 열매'(카르포스 디카이오쉬네스)는 '의로 이루어진 열매'를 뜻한다(Laws, Ropes).
1]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행위를 뜻하는 것으로(Moo) '화평'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지닌다(Tasker).
* 시 85: 10 -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 사 32: 17 -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이러한 의는 이기적인 욕망과 야망에서 비롯된 무질서와 악한 행위에서는 생겨날 수 없으며 오직 화평 가운데서 맺어질 수 있는 열매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속성인 화평을 소유하고 닮은 자녀이기에 화평을 이루어 '의'를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 마 5: 9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결론적으로, 야고보서 3: 13-18의 내용은 두 종류의 지혜를 가르친다.
마음속에 시기와 다툼이 있고 혼란과 무질서와 온갖 악으로 표현되는 것은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이다.
그러나 그와 대조되는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함이 가득하며 편벽과 거짓이 없다.
우리는 세상적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지혜를 구하여 가져야 하겠다. 참된 지혜의 내용은 성결과 의와 선과 진실이다.
* 잠 3: 13-18 - 13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우리는 참된 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께 구하여 얻음으로써 참으로 지혜로운 성도가 되자!
2] 위로부터 나오는 7가지 지혜 : 김정남 목사
< 지혜롭지 못한 삶 >
야고보서는 신약성경의 잠언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잠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바로 ‘지혜’라는 단어입니다. 마찬가지로 야고보도 지혜를 여러 구절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약 1:3).
그러나 지혜가 다 좋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지혜가 다 좋은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지혜에는 거룩한 성도의 지혜가 있고, 사기꾼의 나쁜 지혜가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 그런 나쁜 지혜가 언급되어 있을까요? 바로 오늘 본문 14-15절 말씀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본문 14-15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이 구절을 보면 독한 시기와 다툼과 자랑과 거짓말하는 삶이 지혜롭지 못한 삶이라고 말하면서 야고보는 그러한 잘못된 지혜의 세 가지 성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잘못된 지혜는 세상적입니다. 잘못된 지혜는 영원한 가치와 천국의 상급을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둘째, 잘못된 지혜는 정욕적입니다. 영적 원리보다는 본능을 따라 살기 때문에 시기하고 다투고 자랑하고 거짓말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잘못된 지혜는 마귀적입니다. 그 말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기와 다툼과 자랑과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최대한 살지 못하고, 가끔 잘못을 저질러도 이 4가지 죄, 즉 시기와 다툼과 자랑과 거짓말의 죄만은 최대한 피하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 4가지 죄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결국 그런 삶은 우리를 점차 마귀의 종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것입니다.
< 위로부터 난 지혜 >
위로부터 난 지혜는 무엇일까요? 17절 말씀을 보면 위로부터 난 지혜의 7가지 덕목이 나와 있습니다.
1. 성결
17절을 보십시오. 위로부터 난 지혜를 말하면서 “첫째 성결하고”라고 말합니다. 그 구절을 보면 특별히 성결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 중의 최고의 지혜는 성결입니다. 사람들은 지혜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진짜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최고로 복 받는 지혜는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가꾸어 하나님 앞에 나갈만한 충분한 모습이 되길 힘쓰는 것입니다.
가끔 바람직하지 않은 곳에 가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나 자신을 지키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그런 장소, 그런 장면을 피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과의 교제가 매끄럽게 되고 그 때에야 바른 기도가 됩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지혜 중의 하나는 바로 성결함이고, 그러한 성결한 삶 속에 실제적인 삶의 지혜가 열리고 복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2. 화평
화평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화평이고, 또 하나는 사람과의 화평입니다.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면 급속도로 사람과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크게 성공하기를 원하면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성공하기도 힘듭니다. 혹시 성공은 해도 행복은 없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제 1법칙은 ‘윈윈게임’을 하려는 태도입니다. 저항하고, 반항하고, 증오하고, 미워하면 성공할 수도 없고 불행하게 됩니다. 중국말로 ‘사람 인(人)’자를 보면 서로 기대는 모습입니다. 그처럼 서로 기대하고 의지하고 만져주고 위해줄 때 하나님은 그 영혼과 가정과 자녀에게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3. 관용
관용이란 다른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것을 말합니다. 때로 그 사람에게 오류가 발견되어도 그의 오류 때문에 그의 인격은 배격하지 않는 것이 관용입니다. 또한 오류가 있어서 충분히 비난할 수 있음에도 그 비난을 포기하는 것! 그것이 바로 관용입니다.
4. 양순
양순이란 다른 사람들의 권고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권고를 다 듣고 수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주관과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권고가 있을 때 진지하게 그 의견을 경청하고, 그것이 정당한 권고라면 수용하려는 행동의 변화를 보이는 것이 양순입니다.
양순함은 온유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온유하면 이 험한 세상에서 다 망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사람이 최종적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사실 지난 수천 년 동안 예수님이 온 인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예수님이 무슨 총과 대포가 있어서가 아니라 온유한 주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의 누구보다 온유하신 분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지만 말 한마디 안 하시고 욕 한마디 안 하셨습니다. 이사야는 그 모습을 털 깎는 자 앞에 가만히 있는 양과 같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가위 가지고 양털을 깎는데 살을 안 찝으려고 해도 자꾸 찝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살을 많이 찝는지, 다 깎고 나면 온 몸에 온통 살점이 잘려 있었습니다. 그래도 양들은 한번도 달려들지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래서 주님을 어린 양이라고 했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실 제물로 양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온유하면 하나님 앞에 하늘과 땅에서 큰 복을 받는 길이 반드시 열리게 됩니다.
5.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한 것
은혜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주는 값없는 사랑이라면 긍휼은 저주받기에 마땅한 사람에게 베푸는 동정의 마음과 손길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은혜보다 긍휼이 더 차원이 높은 사랑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선한 열매는 그 긍휼함이 실제적으로 삶에서 표현되어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만 가지고 있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것은 사실상 마음도 없는 것입니다. 주머니를 비우지 않는 마음, 주머니를 비우지 않는 회개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마음과 회개가 되지 못합니다. 선교를 위해 기도할 때에도 실제적으로 선교사를 돕기 위해 주머니를 비우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상일 뿐입니다. 어려워도 우리는 힘써 돕는 손길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한 마디도 다 기억하시지만 우리의 긍휼한 손길 하나도 다 기억해주십니다.
6. 편벽이 없는 것
진리에 기초해서 치우친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실질적으로 가치관, 도덕관, 윤리관, 생활관이 성경에 입각해야 편벽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정당하지 않은 병적인 편견이 있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모습처럼 사람이 좁아 보이고, 못나 보이는 모습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배운 사람들은 물질, 학력, 출신지 등에 대한 편견이 없어야 합니다.
무조건 부자의 편을 들어 그 입장을 옹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무조건 가난한 자의 편을 들어 그 입장만 옹호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자를 위하는 일은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가난한 자를 무조건 편드는 일은 자칫 잘못하면 편벽된 모습이 됩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올바르게 판단하고 올바른 편에 서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우리 인간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너무 차이가 있으신 분이기 때문에 가장 편벽을 가지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조금만 차이가 있어도 금방 차별하고 편벽을 가집니다. 그런 인간의 모습은 편벽이 없으신 하나님의 뜻에 가장 어긋난 행동입니다. 우리가 진정 복된 존재가 되기를 원하면 편벽이 없어야 합니다.
7. 거짓이 없는 것
의도적인 거짓이나 모함은 절대 잘못입니다. 그러나 때로 선한 의도로 하는 거짓말인 백색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백색 거짓말도 최대한 주의해야 합니다. 자칫 양심이 화인 맞아 양심의 칼날이 무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통해서 위로부터 난 지혜로운 삶 7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 7가지 지혜로운 삶을 통해서 선한 열매를 많이 맺는 복된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본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성도들은 많이 선생이 되지 말고 말에 온전한 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귀한 것이지만, 잘못 가르치면 벌을 받을 것이다.
사람의 혀는 가장 길들이지 않는 것이지만, 말에 온전한 자가 되기를 소원해야 한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태우듯이, 작은 혀가 온 몸을 더럽히고 우리의 삶의 과정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
성화는 말의 온전함에서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바르고 선하고 진실한 말을 하고 특히 남을 비난하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둘째,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를 버려야 한다.
세상적, 정욕적, 마귀적 지혜를 가진 자들 가운데는 시기와 다툼이 있고 혼란과 무질서와 온갖 악이 있다.
말에 있어서 악하고 거짓되고 부덕한 것은 다 이런 지혜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는 지혜자인지 모르나 교회를 어지럽히고 파괴시키는 자이다.
셋째, 성도들은 위로부터 나는 지혜를 사모해야 한다.
위로부터 나는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온유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함이 가득하며 편벽과 거짓이 없다.
그것은 잠언이 가르친 지혜와 같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또 그것은 성령의 열매들과도 같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 바르고 선하고 진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