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의 즉위(1863)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흥선 대원군은 왕조의 위기를 극복하고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즉,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 경복궁 중건(1865~1872), 비변사 폐지와 의정부(정치).삼군부(군사)의 기능 회복(1865), 대전회통(1865), 육전조례(1867) 등의 법전 편찬 등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였다.
흥선 대원군은 영조의 서원 개혁 정책을 참조하여 서원 정리를 단행하였다. 원래 서원은 선현에 대한 봉사와 교육을 목적으로 세워졌지만면세와 면역의 혜택을 누려 국가 재정을 악화시키고, 제사 비용의 명목 등으로 백성을 수탈하고 있었다.
흥선 대원군은 사액서원 중 47개소만 남기고 노론의 정신적 지주였던 만동묘와 600여 개의 서원을 철폐하였다(1871). 이에 지방 유생들이 반발하였으나 흥선 대원군은 서원 철폐에 소극적인 지방관을 처벌하고 반발하는 유생들을 탄압하였다. 이 조치는 유생들의 지지를 상실하여 훗날 대원군의 하야를 촉구하는 빌미가 되었다.
농민 봉기의 원인으로 지목된 삼정을 개혁하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려 노력하였다. 이를 위하여 양전 사업을 실시하여 전정을 바로잡고, 군역 제도를 개혁(호포제: 양반에게도 군포 부과)하여, 환곡제를 사창제(양반 지주 운영)로 개혁하였다.
③ 유향소는 조선 시대 향촌 사회의 지배계층인 사족(士族)이 향촌 자치를 위하여 설치한 기구로서, 수령의 자문을 전담하며, 향리를 감찰하며 향촌 사회의 풍속을 바로잡기 위한 기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