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행복>
자정이 넘은 시각, 불빛 하나 없는 컴컴한 집에서 마루는 회사 다녀온다며 아침 일찍 나간 언니를 기다렸다. 신발장 앞에 쭈그려 앉아 기다리길 한참, 현관문 너머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왔구나!’ 설렘에 가득찬 마루는 온몸을 흔들며 1초라도 빨리 현관문이 열리길 기대했고,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며 열린 현관문 사이로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마루는 낑낑 거리며 언니의 다리에 매달렸다.
“마루야, 언니 취했어.”
마루가 기대했던 따뜻한 인사와는 달리, 언니는 피곤한 얼굴로 마루를 밀어냈다. 비틀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간 언니는 어질러진 거실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곤 치울 힘도 없는 듯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그제야 마루는 화장실에서 물고 온 휴지를 떠올리고 후회했다. 평소보다 늦는 언니를 기다리다가 심심함을 이기지 못해 물어뜯기 시작했는데,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줄이야. 휴지 조각이 거실 바닥에 흩뿌려져 있었다. 마루는 눈치를 보며 언니의 뒤를 살금살금 따라갔지만, 언니는 그런 마루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요즘 들어 언니의 귀가가 점점 늦어져 며칠째 산책을 나가지 못했다. 마루는 그래도 언니만 보면 있는 힘껏 다해 꼬리를 흔들었다. 그냥 언니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마루는 언니의 침대 밑에 자리를 잡았다. 하루 종일 혼자 시간을 보내며 잠을 너무 많이 잤던 탓에 마루는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내일은 산책 나갈 수 있겠지.’ 마루는 산책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언니와 처음 산책했던 날을 떠올렸다. 한 달 전, 언니와 처음 만났던 날이었다. 그날 언니는 마루를 처음 집으로 데려가면서 설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루는 언니가 하는 “너가 있어서 행복해”라는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마루를 쳐다보며 웃는 모습만으로도 그저 행복했다.
다음 날 아침, 언니는 웬일로 회사를 가지 않았다. 마루는 기뻐하며 언니의 곁을 맴돌았지만, 언니의 표정은 어딘가 무거워 보였다. 언니는 조용히 마루의 목줄과 케이지를 챙겼다. 마루는 오늘은 드디어 산책을 가는 날인가 싶어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자동차에 오른 언니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차가 멈춘 곳은 인적이 없는 작은 공원 앞이었다. 언니는 마루를 케이지에 넣고 케이지 위에 작은 종이를 붙이며 마루에게 말을 건넸다.
“넌 사고를 너무 많이 쳐. 감당 가능한 사람이 있을 거야.”
처음 듣는 단어에 언니의 말뜻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 마루는, 공원에서 언니와 산책할 생각에 행복함으로 가득찼다. 케이지 문을 열어달라는 마음을 전하고자 힘차게 꼬리를 흔드는 마루를 뒤로 한 채, 언니는 혼자 자동차에 올라탔다. 놀자는 뜻으로 알아들은 마루는 언니가 탄 자동차를 향해 힘껏 짖었다. 케이지 문을 발로 열심히 긁었지만 케이지 문은 열릴 리가 없었고, 그 사이 언니의 차는 점점 멀어졌다. 흔들리던 마루의 꼬리가 멈췄다.
마루를 공원에 두고 온 언니는 집에 도착해 간만에 늘어지는 낮잠을 즐겼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 어두워지자, 집에만 있기 지루해진 언니는 산책을 나섰다. 현관 앞에서 혼자 조용히 신발을 신자 산책을 나설 때마다 다리에 올라타 신남을 표했던 마루가 생각났다. 언니는 이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밖을 나섰다. 언니는 한참을 걸으며 마루가 있어서 힘들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집이 더러워져, 귀찮아, 놀아줘야 해, 똥도 치워야 해… 안 좋은 점들을 곱씹으며 집에 돌아와 현관에 들어서자 새삼 집이 싸늘하게 느껴졌다. 꼬리를 흔들며 마중 나와야 하는 마루가 없었다. 그제서야 마루의 언니는 본인의 욕심을 채우느라 마루가 가져다 준 행복을 보지 못했음을 알아차렸다.
첫댓글 -이대로 완결성 있는 것 같음. 굳이 얘기하자면 키워드가 행집욕부 인데, 행복에 집중하는 동물 모습이 확고하게 드러나진 않는 거 같아서, 어떤 잣대도 없이 행복에 집중하는 동물 모습과 더 대비되면 좋을 듯.
-마루는 언니랑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욕심이고, 언니는 욕심이 더 큰 것. 마루한테는 집에 있는 것 자체가 욕심인 걸까,, 하는 ㅠ ㅠ
-전보다 끝난 게 있어서 좋았음. 근데 마루 버릴 때 “넌 사고를 너무 많이 쳐. 감당 가능한 사람이 있을 거야.” 가 너무 가혹했음. 그럴만한 일이 앞에 없었던 것 같음. 이 말이 나올 정도로 언니가 현생이 힘들다거나 하는 게 있으면 개연성 있을 것 같다.
-마루가 자기가 옛날에 했던 행동 자책하는 장면 나오면 진짜 슬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