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가방?
2017.7.
차 상 희
나에게 있어 가방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과 함께 늘 관심 목록 중에 한가지이다. 여름이 다가왔고 왠지 이 계절에 어울릴만한 가방을 갖고 싶었다. 나에게 가방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나는 새로운 가방을 원하게 되는 걸까. 해마다 그해에 유행하는 옷이 있듯이 유행하는 가방도 있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가방이 멀쩡하지만 지겹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갖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되는 요즈음이다.
에피소드 1. 유행하는 가방
얼마 전에 아는 지인들 몇 명이 쇼핑을 위해서 일본을 당일치기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일본이 가까운 거리다보니 아침 일찍 비행기로 가면 저녁에 돌아오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기에 몇 해에 걸쳐서 핫 아이템으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바오바오 백과 이세이 미야케의 옷 등을 구입하기 위해서 간다고 했다. 나는 몇 해 전 처음 그 바오바오 백을 봤을 때는 색감도 모양도 왠지 장난감 같기도 하고 장바구니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가방의 인기가 작년에 더해지더니 올 해들어 너도 나도 하나씩 주변에서 장만을 해서 색상별로 디자인별로 여러 개를 가진 사람들까지 그 인기가 식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나는 언젠가 그 가방의 인기가 시들해지기를 기다렸지만 인기가 더해지다 보니 이제는 그 가방이 정말 예쁜 건가하고 다시 보게 되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이 드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도 같고 다른 브랜드의 가방에 비해서 현지에서 구입하면 가격이 과하게 비싼 편이 아닌 것도 같고 다시 보니 왠지 가벼워서 여름에 들기 편할 것도 같아보였다. 게다가 모임을 같이하는 사람들 중에 그 가방이 없는 사람은 왠지 모를 소외감이 느껴지는 것은 나의 기분 탓일까.평소에는 그 가방이 있든 없든 별 상관이 없던 나였는데 함께하는 자리에서 남들 다 있는 그 가방이 없다는 것은 왠지 모르게 나도 하나 장만해야하는 건 아닌가하는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내가 그 가방이 내게 꼭 필요해서 나에게 어울리기 때문에 나의 필요에 의해서 구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 가방을 든 모습이 좋아보여서 유행하기에 따라 사는 것은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어서 지금은 최대한 사고 싶은 마음을 꾸역꾸역 누르고 있는 중이다.
에피소드 2. 오래되고 낡은 가방
인사청문회로 떠들썩했던 6월 초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 중인 가운데 그의 낡은 가방이 화제에 올랐다. 인사 청문회에 참석한 김상조 후보자는 낡은 갈색 가죽 가방을 들고 참석했고 그의 가방은 곳곳이 긁히고 색이 바래서 한눈에 봐도 오래된 흔적이 엿보였다. 그의 제자는 “내가 김 후보자에게 수업을 듣던 15년 전 그의 가방을 봤을 때 진짜 거적때기 같이 너덜너덜했다”며 “사회적 지위가 있는데 가방 꼴이 그게 뭐냐니까 웃으시면서 본인 사회적 지위가 뭐냐고 반문하시더라”라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경제개혁센터 소장이지 않느냐고 하니 껄껄 웃으시면서 맞긴 한데 가방은 그냥 대학원 때부터 쓰던 것이라 편해서 쓴다. 이 가방이 뭐 어떠냐고 하셨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낡은 가방이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낡은 가방이 주는 의미가 요즘 흔하게 사고 또 버리는 소비문화와 남들보다 더 특별하고 과시하기 위해서 필요이상의 것들을 구입하는 요즘의 현실과는 다른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피소드 3. 사랑꾼의 명품가방
한 모임에서 중년의 남자 분께서 요즘 명품가방은 얼마정도 하느냐고 물으셨다. 주위에 계시던 여자 분들이 상상하는 가방 가격에 “0 ”하나를 더 붙여야 할 거라고 했고 어떤 브랜드를 사느냐에 따라서 다르다는 분도 계셨다. 그 남자 분은 중학교 1학년 소년이던 시절에 같은 나이의 소녀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꼭 그 소녀와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그 소녀를 자신의 신부로 맞이하기 위해서 그 소년은 학창 시절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안정된 직장을 구하려고 노력을 했고 결국은 그 소녀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그 남자 분은 그 부인이 동창회에 나갈 정도의 나이가 되면 그 부인의 나이에 어울릴만한 누구나 알아주는 명품 가방하나는 사주기로 마음을 먹고 저축을 꾸준히 하셨다고 한다. 어느덧 동창회에 나갈 나이가 된 부인을 위해서 조만간 명품 가방을 사주려고 한다고 했다.
명품 가방도 필요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이 그 물건을 살만한 경제적인 능력이 가능한 경우라면 자신의 상황에 맞게 구입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자신의 경제적인 능력이나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것을 비싸다는 이유로 또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구입은 하지 말아야 될 것 같다.
에피소드 4. 닮은 꼴 디자인의 가방
지난 4월에 장바구니를 닮은 명품 가방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럭셔리 브랜드 발렌시아가가 2017년 봄∙여름 남성 컬렉션으로 출시한 ‘캐리 쇼퍼백’이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의 장바구니 ’프락타’를 닮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두 가방은 색상부터 형태, 크기까지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발렌시아가 가방은 양가죽(몸체)과 송아지 가죽(손잡이)으로 제작됐고, 이케아 가방은 폴리 프로필렌으로 제작됐다는 점, 그리고 가방의 손잡이에 이케아 로고가 있느냐 없느냐 정도다. 닮은꼴 디자인보다 더 논란이 된 것은 두 제품의 가격이었다. 이케아의 장바구니는 99센트(국내 판매가 1000원)인데 반해 발렌시아가의 가방은 2150달러, 국내에서는 285만5000원에 판매됐다(현재 이 제품은 품절됐다). 1000원짜리 물건이 2000배 이상의 사치품으로 탈바꿈했다는 사실에 대해 많은 언론과 네티즌들은 비판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패션계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 일상적인 것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건 많은 디자이너가 해왔던 방식”이라며 엉뚱하고 ‘B급’스러운 디자인이 주는 아이러니함과 재미가 사람들을 열광케 한다는 해석도 있다. 어이없지만 자꾸 생각나게 하는 매력이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동안 가구를 나르거나 분리수거 가방으로 이용되던 이케아의 프락타 가방은 이제 1000원짜리 장바구니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됐다.
- 인터넷 기사 인용 -
사실 나는 내가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케아의 프락타 가방과 닮은 꼴인 발렌시아가의 캐리 쇼퍼백을 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큰 가방이 가죽으로 되어있다면 무게감이 꽤 나갈 것이고 거기에 많은 짐을 넣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아서 가성비가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어떤 가방을 선택하느냐는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에피소드 5. 추억이 담긴 가방
2년 전에 친구들과 함께 간 스페인 여행에서 가죽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리의 마음에 드는 가죽 가방을 찾으려고 여러 가게를 기웃거렸다. 좀체 마음에 드는 가죽 가방을 발견하지 못하다가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우연히 들르게 된 벼룩시장에서 마음에 드는 가죽 가방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죽의 재질도 좋거니와 디자인 또한 마음에 들었고 게다가 가격까지 착했다. 우리는 각자의 가죽가방 하나와 선물용으로 가방을 더 사고 싶었는데 가죽 공예가가 만들어 온 가방의 개수가 많지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의 가방 하나씩만을 구입하게 되었다. 디자인도 가죽의 색깔도 제각기 다른 스타일의 가방을 우리는 만족스럽게 구입했고 그 가방은 누구도 들지 않는 나만의 가방이 되었다. 그 가방을 보게 되면 그 날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 가방은 단순한 가방이상의 의미로 내게 다가온다.
「명품이란 굳이 값비싼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 아니더라도, 명품은 믿을 수 있는 것이거나 오랜 세월을 두고 쓰면 쓸수록 빛을 발하고 질리지 않는 것, 희귀성이 있는 것,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개인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것 등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명품은 꼭 값비싼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값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가치를 가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패션과 명품, 2004. 12. 30., ㈜살림출판사}
유행한다거나 또는 명품이라고 이름 붙여진 값비싼 가방이 아니더라도 나에게 어울리고 나에게 어떠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의미가 있는 그런 가방이 나에게 있어 인생가방이 되어주지 않을까한다. 가방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면서 이제는 메말라 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던 우물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서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진다면 그 메마른 우물에서도 새롭게 물이 쏟아 나오듯 내 마음 속에 떠돌고 있는 생각들을 한데 모으고 느끼는 것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남들 앞에 내어놓기 부끄럽지만 꾸준히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를 계속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