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복도 남편 복도 없고. 이젠 아들 복 믿고 살래요!
신(神)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 신은 인간에게 상벌(賞罰) 잣대의 기준을 어떤 경전(輕典)에서 근거하는가..................
K시(市)에 사는 갑순이 일곱 살쯤 되던 해 어머니는 심근 경색증 및 합병증으로 44세의 젊은 나이에 아스팔트(asphalt)가 팥죽처럼 끓어 신발이 달라붙는 불 볕 더위 속에서 운명하셨다.
갑순이 위로는 언니 오빠 있는데 이들 삼남매는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어 처마 끝에 제비 새끼처럼 엄마가 물어다 주는 먹이만 받아먹고 살던 솜털도 노란 주둥이도 그대로인 제비 새끼 삼남매이다.
해가 지면 모든 어미는 새끼들의 둥지로 온다 던데 엄마는 이젠 오지 않고 어둠의 무서움만 집안 전체에 엄습해 온다.
아버지는 K시(市)에 근무하는 공직자이시다. 아버지는 집 살림은 전혀 상관없고 무관심을 넘어 돈키호테적 성격으로 애들 돌봄도 관여치 않았다.
재산이라고는 어머니가 생전에 소금 적삼 쥐여 짜가며 마련한 다섯 시구가 기거할 집 한 채 뿐이다. 아버지의 작은 월급으로는 지금까지 가정 살림을 겨우 알탕알탕 버텼다.
그 뒤 아버지는 재혼을 하게 되어 새엄마가 아기도 출산했고 작은 방에서 여섯 식구와 새엄마의 눈치 그리고 소 닭 보듯 하는 아버지 때문에 먹이 잡는 방법도 날개 짓도 몰랐던 삼남매는 이젠 따로 셋방살이를 하면서 이집 저집 전전하면서 절벽에 떨어져 유소년 시절을 살아야 했다. 세월은 흘러 언니는 집안의 친지 중매로 결혼을 했다. 혼수 예물과 혼례비용은 그간 언니가 직장에서 모은 돈으로 겨우 흉내만 내고 신혼을 시작 했다.
언니 시댁의 시집살이는 친정집의 열약한 가세를 얕잡아 보았는지 결국 언니를 별거로 내 몰았다. 오빠는 이모 댁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서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하여 그대로 편히 살고 있다. 이젠 갑순 이도 여고 졸업 후 방통대에 재학 중 서울에 취직하게 되었다. 직장에서 갑순 이의 불쌍한 어린 시절을 보듬아 주고 어루만져 주며 한겨울에 솜이불 같은 착한 남자 친구를 만났다. 날이 갈수록 남자 친구는 가정은 빈곤해도 진실하고 성실한 좋은 사람의 느낌이 외로움에 지쳤던 갑순이 에게는 평생 반려자로 충분했다.
갑순 이도 혼인 날짜를 정했다 이런 때 엄마가 옆에 계시면 얼마나 좋을까?!?!?!?!
옛 말에 혼인치레하지 말고 살림치례 하라는 말처럼 가진 것도 없지만 갑순 이는 혼례식은 정한수(靜寒水) 떠 놓고 하는 식의 약소하고 의례적 절차만 치렀다.
그 후 갑순 이는 떡두꺼비 같은 두 아들을 낳았다. 본인의 불우했던 유년 시절에 엄마 잃고 방황했던 것이 한이 맺혀 두 아들에게는 원 없이 먹이고, 입히고 마음을 주겠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그러나 운명은 또 장난을 쳤다 시댁이 워낙 어려워 남편의 월급에 의존하는 형평이라 시댁의 생활비를 떼 주고 나면 호의호식은커녕 굶지 않고 잠잘 집으로 감사해야 했다.
두 아들의 옷은 초등학교까지는 주위 지인들의 헌옷을 물려 입는 것으로 족했다.
양 명절 때 엄마 산소에 성묘하면서 야속한 세상을 원망도, 또 엄마에게 간절한 소망도 기도했으나 세상의 모든 어려움은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오직 갑순 이의 몫 이여서 머리는 갈기처럼 푸석푸석 해지고 손톱은 깍지 않아도 닳도록 일만 해야 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였다. 그렇게 한(恨)은 눈물을 말렸고 세월은 흘러 이젠 두 아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게 됐다. 이 세상에 낳아서 덩그러니 던져 준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아버지라 할지언정 언제나 마음의 한구석에는 그래도 나를 있게 해준 유일한 핏줄인데 생각하면서 때로는 원망 보다는 기대고 싶은 아버지시다. 그런데 아스팔트(asphalt)가 끈적거리는 여름날에 별세하셨다.
평소엔 원망으로 가득했던 아버지 이젠 그 이름 조 차 부를 수 도 볼 수도 없다 생각하니 천하에 고아 본인의 측은함이 더더욱 얄밉다. 북망산을 향해가는 운구 행렬이 너무 싫고 또 싫다. 그런데 또 거리에 아스팔트(asphalt)는 끓고 양철 지붕은 불볕으로 불내가 나는 여름에 남편은 기침이 그치질 않으며 식사도 제대로 못하며 체중이 감소하더니 목골이 확연히 야위어 갔다. 남편에게 “왜 몸이 그래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보자”고 했으나 남편은 직장에서 건강 검진했는데 이상이 없다고 했고 감기 증세이고 평상시 남편의 몸이 야윈 것이니 아무 탈 없다는 것이 남편의 반복된 답변 이였다. 그러나 남편의 차도는 없고 점점 악화 되어 가 길래 불연 듯 불길한 예감이 있어 하루는 억지로 남편을 데리고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하니 말기 위암에 그 암세포는 전신 장기에 전이되어 있다 했다. 순간 맑은 하늘에 날 벽락으로 세상 모든 것이 하얗고 나는 고공 속에 떨어지고 있었다.
남편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다 치료를 하면 엄청난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해야 하며 또 직장은 병가 휴직하면 식구들의 건사는 누가 해야 하는가 등의 고민 속에 자가 판단으로 자가 치료의 방법만 찾고 있었다. 죽을 때 직장 문턱에서 죽으면 상(喪)치룰 때 동료들이 와서 부조금이라도 줄게 아니냐 하며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미안해 ! 미안해!”하며 울어 댔다.
직장에서는 병가는 내지 안 해도 좋으니 항암 치료나 열심히 하고 필요한 것도 구입하면서 사용하라고 사장님은 개인 카드를 주시고 가셨다.
그래도 남편은 아랑곳 하지 않고 항암 주사와 치료 할 때만 병원에 있고 바로 비틀거리는 몸을 추스리고 직장에서 근무를 계속했다 직장에서는 사장님 및 사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몸으로 집에서 쉬면서 치료하지 어떻게 나왔어?”하는 것이 사람마다 입 인사였다.
남편은 그렇게 6개월 정도 버텼다. “하느님 저에게 3년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래야 큰놈이 학교 졸업 후 취직을 하여 제 엄마를 모실 테니까요?” 하면서 방구석에서 시도 때도 없이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병세는 점점 더 악화 되어 피골(皮骨)은 상접(相接)해 있고 오히려 기억력만 또렷 또럿 하였다. 이젠 회사 사장님은 우리 가정의 생활을 훤히 꽤 뚫고 계셨다.
부엌 찬장에는 무슨 반찬이 있고 ,안방 시렁에는 어떤 옷이 걸려 있으며, 섬돌에는 신발이 몇 켤레까지 알고 계신 지라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하시고 또 방문하시여 남편 치료와 우리 가정의 딱함을 모두 다 해결해 주셨다. 언젠가는 사장님이 남편의 최후를 예견 하셨는지 우리 4식구들이 오붓하게 다녀올 가족 여행지의 숙박 및 기타 경비에 해당하는 패키지 여행권을 구입하여 주시면서 주말에 온 식구가 꼭 다녀오라고 손에 쥐어 주셨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고마움과 성원에도 불구하고 갑순이 나이 44세에 남편은 세 식구를 남기고 눈 오는 새벽에 발자국도 없이 멀리 멀리 떠나갔다.
예견과 각오는 했지만 덩그러니 세 식구만 남겨 놓고 가버린 남편의 눈 위 발자국을 그려 보았다. 세 식구의 갈 길은 너무나 막막했고 전생 죄 값의 업보(業報)라면 숙명의 판결에 수긍 할 렵니다. 장례식은 망자(亡者)의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가족장으로 치룰 생각 이였으나 회사 사장님께서 전화가 왔다 아무 염려 말고 회사장(會社葬)으로 치러 드릴 테니 그렇게 하자 하시였다. 나는 그간 1년 동안 회사에게 너문 많은 부담을 드렸고 하니 그냥 가족장으로 치루 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더니 바로 장례식장에서 오셔서 장례식 빈소도 더 크고 원만한 곳으로 옮기시고 제반 사항도 원점에서 다시 하시는 것이다 사장님은 장례식장의 모든 경비와 영묘원(靈廟園) 사용 예치비 까지 회사의 부담으로 하시겠다 는 말씀이셨다 하도 여러 번 강요하시어 염치없이 그냥 승낙하였다. 사장님은 회사는 물론 계열사 그리고 협력 회사와 평소 사장님과 친분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까지 부고(訃告)도 보내시고 2박 3일 동안 사장님이 친히 호상(護喪)이 되셔서 어린 상주(喪主)의 뒤에 앉으셔서 장례 절차를 진두 지휘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문상객은 사장님의 부모님상(父母任喪)이상으로 많이 오셔서 위로의 격려가 줄을 이었다. 조의금은 전액 우리 세 식구한테 넘겨주시고 큰아들이 장성하여 본인이 원한다면 사장님의 회사에 특채하시겠다며 나와 큰 아들에게 위로 겸 약속의 말씀을 하시고 영묘원 남편의 영정(影幀)에 향(香)을 올리시고 고맙고 믿음직한 어께를 뒤로 하시며 자리를 뜨셨다.
..........................................................................
“엄마? 아빠? 그리고 여보? 이젠 갑순 이는 누굴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요”
70억의 인간들의 개개인 생애의 스케줄은 조물주가 프로그램을 작성 하여 입력되었다 하지만 갑순 이의 프로그램은 어느 몹쓸 인간이 바꿔치기 한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는......
전생에 무슨 죄 값의 대가라면 시지프스(Sisyphus)의 전설인처럼 돌짐을 등에 업고 쇠뭉치의 발목을 끌며 북망산이라 가겠으니 제발! 제 새끼들만은 무사하게 해 주세요 .........
신(神 )이시여 나에게 아직도 천벌(天罰)이 얼마나 더 남았습니까?
(2015.2.6 혜정아 미안해)
첫댓글 슬픈글 잘읽었습니다.
뒤에서 도움을 주신 사장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지네요.
든든한 아들의지 하시고 남은 시간은 행복하실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