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친구 (요15:13-15)
한국 TV 방송 프로그램 중에 옛날 어렸을 때 친구를 찾는 Happy Together Friends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연로한 연예인들의 어렸을 때 친구였지만 이제는 다 커서 알아볼 수 없는 친구를 알아맞히는 프로그램이네 연예인들이 알아맞히면 ‘친구야’ 그러면서 서로 포옹을 하며 옛 추억을 떠올립니다. 바로 우리들에게 어린 시절의 친구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좋은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요즘 시중에 ‘동주’라는 영화가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일생을 그린 영화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라는 시를 보면 시인이 별을 바라보며 옛날 초등학교 때 책상을 같이 썼던 친구들의 이름 즉 패, 경, 옥 등을 나열하며 그리움을 표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하여 어렸을 때 다정하게 지냈던 친구들을 보고 싶어합니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쓰신 함석헌 선생님의 시중에서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 시는 만 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랑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고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려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인생을 사는 동안 이런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축복이며 행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친구를 갖기는 어렵습니다.
시인 정채봉님은 또 만남이라는 시에서 만남의 형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만남
- 정채봉 -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이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 오니까.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이다.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고 힘이 다 닿았을 때는 던져 버리니까.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이다.
금방의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과 같은 만남이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니까.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는 이처럼 만남이 중요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공자는 사람의 만남에는 세 가지 만남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만남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익이 성취되면 그 만남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집니다. 다른 하나는, 꽃과 같은 만남입니다. 꽃의 아름다움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매우 좋다가 결말에는 서로에게 실망을 주는 만남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은 난초와 같은 만남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지속적으로 배려하는 그러한 만남을 의미합니다.
이 난초와 같은 만남에 기초하여 유안진 은 "芝蘭之交를 꿈꾸며"라는 산문시를 썼습니다. 이 시는 사람이라면 모두 다 동감할 가장 이상적인 친구상(The most idealistic image of friends)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이미지는 절대적인 신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이러한 이상적인 친구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성서는 말하기를 인간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고 언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톰 행크스가 주연한 영화 가운데 ‘Cast Away’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주인공 톰 행크스는 비행기 사고로 바다에 추락하게 됩니다. 그는 홀로 겨우 살아서 무인도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는 너무 외로워서 스포츠용품 wilson 회사 제품인 배구공을 사람모양으로 만들어서 그 이름을 ‘wilson’이라 명명하고 서로 친구가 됩니다.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주인공은 자기 삶의 모든 이야기를 그 wilson에게 다 이야기해줍니다. 그렇게 4년여 세월을 지내다가 뗏목을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만 항해하다가 친구인 그 배구공 wilson이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됩니다. 그는 목숨 걸고 찾아오려고 하지만 실패합니다. 4년 동안 친구역할을 한 wilson이었기 때문에 그는 하루종일 대성통곡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구조되어서 자기가 살던 도시로 갔는데 결혼하기로 한 여자 친구는 벌써 배신해서 다른 남자와 결혼했고 친구와 친척들도 그를 별로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인도에서 구출되어 사회로 왔는데 무인도보다는 더 고독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영화는 저에게 ‘친구’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역설을 잘 교훈해주었던 영화입니다.
사람들이 보통 친구에 대해 갖는 두 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친구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념입니다. 그러나 세상 만사가 다 변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다른 하나는 내 친구만큼은 내가 어떤 일을 해도 이해해 줄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이것 또한 이상적인 바램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를 성서에 나오는 욥과 그의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렇게 친했는데도 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영원히 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에서 1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친구이시기에 우리들에게 하늘의 비밀을 알게 하셨습니다. 친한 친구는 서로에게 비밀을 공유하는데 바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그러한 친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처지와 상황에 관계없이 항상 우리를 도와주시는 진정한 친구이십니다. (마 11장 19절)
구약성경에 보면 다윗과 요나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요나단의 아버지 사울은 언제나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나타나 다윗을 도와줍니다. 한 마디로 다윗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구원자인 요나단이 나타나 구해줍니다.
이 요나단은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을 다윗이라 한다면 예수님은 요나단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영원한 친구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친구 삼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수님을 만나야 됩니다. 만나야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나야 여러분의 삶에 의미와 질서가 성립합니다. 인간의 삶을 한국어의 자음과 모음이라면, 바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자음과 모음이 각각의 의미 있는 낱말(words)이 되는 것입니다.
카렌 암스트롱은 "마음의 진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존재와 내가 얼마나 가까이, 또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가 그 존재와의 관계를 결정짓지 못한다. 내 마음속에 그 존재가 얼마나 크게 자리잡고 있느냐가 그 존재와의 관계를 결정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친구로 생각하는데 우리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얼마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다 멸시한다 할지라도 세상 친구들이 다 변하고 우리를 배신한다 할 지라도 예수님은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를 이해하며 영원히 변하지 않은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늘 우리곁에 서서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412장 4절에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 땅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우리 모두 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이 땅에서 우리네 인생이 험한 길 가는 동안 예수님을 친구 삼아서 참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찬송가 369장 1절에 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옵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이 찬송을 작시한 분은 조셉 스크리븐이란 사람입니다. 그는 181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는데 어느 여인과 사랑을 나누게 되어 그 여인과 내일이면 결혼하게 되어있는데 그 날 자기 약혼녀가 그만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됩니다. 낙심한 그는 1845년 25세의 나이로 캐나다로 이민 가서 온타리오에 정착합니다. 거기서 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서 결혼하려 하는데 그 두 번째 약혼녀도 결핵으로 죽게 됩니다. 그때 조셉 스크리븐은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주님의 뜻을 묻게 됩니다. 그는 오로지 주님만을 친구로 삼고 남은 생애를 독신으로 살게 됩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어려운 사람을 위해 살다가 죽었습니다. 오로지 영원한 친구이신 예수님만 의지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평생 의지하며 살았던 영원한 친구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이 찬송을 작시한 것입니다.
우리들도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버리지시도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친구로 삼아 이 험난한 한 평생을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
김권사님 이모티콘 어디서,,,,~^
?
ㅎㅎㅎㅎㅎ
김 권사 님 왜 김 권사 님에게 이모티콘 어디서 났는지 안 가르쳐 주세요
네~~~~~^^박지현집사님께서 지난주일날에 찾아주셨어요.그래서 예쁘게. 잘~~~쓰고 있답니다. 목사님께서도 써 ~보세요.
간절히
감사합니다 권사 님
난초와 같은 만남 ....공감이 됩니다.
ㅋ~~~~ㅋ감사함다^^
피붙이 하나없는 이억만리 타국 벤쿠버에서 저희 가장 힘든시간에 저희곁에서 힘이 되어주시고 친구가 되어주신 목사님과 사모님 그렇게 훌쩍한국으로 떠나신후 텅비인것 같은 교회와 벤쿠버에서...저희들 많이 힙듭니다.예수님을 친구로 만나기 위해 많은기도와 노력하고 있습니다.
힘내세요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