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백제(百濟)의 건국(建國)
졸본왕(卒本王)의 딸 소서노(召西奴) 일찍 북부여(北扶餘) 사람 우태(優台)에게 시집가 아들을 낳으니 맏은 비류(沸流)요 다음은 온조(溫祚)라.
우태(優台)가 죽은 뒤에 졸본(卒本)에 거(居)하더니 및 주몽(朱蒙)이 졸본(卒本)에 이르매 다시 주몽왕(朱蒙王)의 후(后)가 되어 주몽왕(朱蒙王)의 사업(事業)을 도와 나라를 세움으로
주몽왕(朱蒙王)이 심히 사랑하고 또 두 아들을 자기 아들과 같이 사랑하더니 및 류이(類利)가 와서 태자(太子)가 됨에 서로 뜻이 맞지 못하여 친형(親兄) 비류(沸流)와 부하(部下) 조간(鳥干) 마려(馬黎) 등 18인(人)으로 더불어 모부인(母夫人)을 모시고 남(南)으로 달아나
형(兄) 비류(沸流)는 미추홀(彌鄒忽)(금 인천(仁川))에 거(居)하고 아우 온조(溫祚)는 하남(河南) 위례성(慰禮城)(한강남안야(漢江南岸也))에 거하여 나라 이름을 십제(十濟)라 칭(稱)하다가
그 후에 비류(沸流)가 죽거늘 온조(溫祚)가 미추홀(彌鄒忽)을 합(合)하여 다시 백제(百濟)라 칭(稱)하니 때는 서기전(西紀前) 18년 이러라.
마한(馬韓)으로부터 동북(東北) 백리(百里)의 땅을 얻어 국력(國力)이 차차 강성(强盛)하여지니 이에 서울을 한산(漢山) 아래 옮기고 또 마한(馬韓)의 어지러움을 타서 쳐 이기고 영토(領土)를 전부(全部) 차지 하니라.
<한글>
제6과 백제의 건국
졸본왕의 딸 소서노가 일찍 북부여 사람 우태에게 시집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맏이가 비류요 둘째가 온조였다.
우태가 죽은 뒤 소서노가 졸본에 거주하다가 주몽이 졸본에 이르자 주몽왕의 후궁이 되어 주몽왕의 사업을 도왔다.
주몽왕이 소서노를 매우 사랑하고 두 아들도 자기 아들처럼 사랑하였다.
그러나 유리가 와서 태자가 되자 뜻이 맞지 않아, 친형 비류와 부하 조간, 마려 등 18인을 데리고 모부인을 모시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비류는 미추홀(현 인천)에 거주하고 온조는 하남 위례성(한강 남안)에 거주하며 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다가 비류가 죽자 온조가 미추홀을 합쳐 백제라 칭하였다.
때는 기원전 18년이었다. 백제는 마한에서 동북쪽 100리 땅을 얻어 국력이 강성해지며 서울을 한산 아래로 옮기고 마한의 어지러움을 타서 쳐서 영토를 전부 차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