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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문우님들! 벚꽃이 안개했습니다. 벚꽃 나무 아래를 둘이 걸어 보세요!
< 봄밤 / 김수영 >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 - 봄밤 / 김수영 - - 무제,이원철 작, 사진예술,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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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고래(古來)의 명언이다. 인간 사는 세상에서 따스했던 날이 얼마나 있었던가. 서로 뜯어먹느라 약자에게는 늘 간난의 세월이었다. 올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안팎의 독재가 흥하는 게 보인다.
김수영 시인이 살아있다면 이 시대를 뭐라고 할까. 훨씬 화려하고 흥청거리는, 잠 못 들게 하는 봄밤이다. 누가 울리는 북소리인 줄도 모른 채 넋 빠진 춤을 추는 어릿광대들의 봄밤이다. '절제'와 '영감'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봄밤이다. 그래도 시인은 말할까,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
-관철동 아이, 시인이 되다 - 김수영은 일제 강점기인 1921년에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에서 태어났다. 여러 대에 걸쳐 벼슬을 한 것으로 확인되는 김수영의 집안은 부유한 편이었으나 일제 지배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해 가는 중이어서 종로 6가로 용두동으로 자주 거처를 옮겨야 하는 형편이었다.
김수영은 1928년에 어의동 공립 보통학교[현 서울 효제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6년간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 그런데 졸업을 앞둔 9월부터 그만 장질부사에 폐렴과 뇌막염까지 호되게 겹쳐 앓으면서 일 년여 공부를 놓는 바람에 원하는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였다. 이때의 투병 체험이 이후 김수영의 용모의 큰 틀을 결정한 것은 아닐까? 우리의 시선을 강렬히 사로잡는 김수영의 장년 이후의 정면 초상 사진들은, 대부분 기묘하리만치 선명한 고통의 느낌으로 우리에게 육박해 온다.
1935년 어렵게 선린 상업 학교 전수부[야간]로 진학한 김수영은 본과를 거쳐 1942년에야 학업을 마치게 되었다. 공식적 졸업으로 따지면 이것이 김수영의 최종 학력이다[일본의 한 고등 예비 학교에 잠깐, 해방 후 연희 전문학교에도 잠깐 적을 둔 적이 있다.].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 두 가지가 있다. 왜 하필 상업 학교일까 하는 점과 거기서 김수영이 주력한 공부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앞의 것은 김수영의 가계가 여러 대에 걸친 중인 집안이라는 점, 당시 김수영의 아버지도 지전(紙廛)을 하며 집안을 다시 일으키려 고군분투하고 있었다는 점 등과 관계있어 보인다. 뒤의 것은 학적부에 그 답이 있다. 영어, 주산, 상업 미술 등이 김수영이 마음을 기울인 과목들이었다. 6·25 전쟁 이후 김수영이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였을 때 선택한 영어 번역(飜譯)과 양계(養鷄)라는 수완은 이미 이때 싹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집안의 기대를 어깨에 얹고 대학 진학을 위해 건너간 일본에서 김수영의 내면에 당겨진 것은 예술혼이라는 불꽃이었다. 왜 그랬는지 전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김수영이 문득 대학 진학이라는 실리를 버리고 연극을 배우는 쪽으로 삶의 행로를 틀어 버렸던 것이다.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한 서울에서도, 가족과 합가하여 나아간 일제 말의 만주에서도 김수영의 관심은 오로지 연극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김수영이 해방과 함께 귀국하여 사람들 앞에 내놓은 것은 다름 아닌 「묘정의 노래」라는 시였다. 그로부터 23년간 김수영은 한국의 문학 판을 뒤흔든 문제적 시인으로, 그야말로 불꽃처럼 살다가 1968년 6월 16일 황망히 이승을 빠져나갔다. 참으로 쓸쓸하고 안타까운 퇴장이었다. 김수영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우리들 앞에 내놓은 작품이 바람 소리로 가득 찬 「풀」이었다. |
첫댓글 꽃피는 봄이 빠르다고
서둘지 말고(위 시의 '서둘지 말라' 의 문장과 뜻은 달라도)
느림의 미학으로 감상 하는 여유로운 마음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유유자적한 옛날 선비들을 닮고 싶네요! 느림의 미학이 꼭 필요한 대한민국 사람들입니다.
빨리 빨리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