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문학아카데미 시인들이 모여 흉허물 없이 쉬었다 가는, '문학의 창' 맞지요?
고백컨대, 제 가방끈은 짧습니다. 너무 가늘고 부실해서 남의 눈에 잘 띄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시가 좋아 끄적거리다가 시인의 마을 자투리 땅에 몇 알 시의 씨앗 뿌려 가꾸면서 삼류 시인행세로 살고 있습지요. 아무리 그렇듯 족보가 부실한 흑수저 출신이라고 해서 시론마저 없을 쏜가요. 몇 해 전 어느 잡지에선가 몇 마디 적어 달라기에 이렇게 썼던 기억이 납니다. “열 말의 바닷물 졸여서 겨우 한 줌 소금을 내놓듯 시는 언어를 갈아엎어 금강을 캐놓은 것. 소금은 양념의 시작이고 시는 문학의 뿌리다. 염수鹽水가 소금꽃을 피우듯 시는 높고 외로운 곳에서 천리향으로 빛난다. 소금은 출렁거렸던 파도의 위반이고 시는 중얼거렸던 언어의 배반이다. 햇볕과 바람이 소금을 내놓듯 지지한 삶에 간 맞춰주는 절정의 시 한 편, 당신에게 읽어주고 싶다. 바다와 해와 바람을 떠먹이고 싶다.” 그것도 모자라 시로 그려놓은 내 자화상 또한 필통 구석자리 몽당연필처럼 볼품이 없습니다요.
자화상
동란亂통―탄피처럼
흙바닥에 뚝 떨어진 연필 한 자루
침 발라서 꾹꾹 눌러쓰며 왔지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
볼펜과 만년필 틈에 뼈저리게 굴러
구더기 떼 들끓던 날들이여
밑그림만 그리다가 몽당해지고
바로서나 거꾸로 누워도
그게 거기인 시절 밖의 나이
아무짝에 쓸모없다 내팽개칠 때쯤
부러진 연필심처럼 먹먹한 울음 속으로
시가 왔다
별도 별사탕도 되지 않는
시, 외눈박이 사랑에 눈멀어서야
꽃도 좋고 가시도 좋았다
슬픔을 경작하느라
솔개그늘만한 밭 한 뙈기 품어 본 적 없으니
몽당연필 같은 시집 몇 권 달랑 메고
참 가볍게도 가겠다
―「자화상」(이영식) 전문
첫댓글 이영식선생님! 환영합니다. 긴 글로 제대로 가입인사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슬픔을 경작하느라
밭한뙈기 품어본적 없으니~
선생님. 처음에는 읽고 지금은 외웠습니다.
가장 멋진 인삿말! 다시 읽고 되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