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성(城)은 산위에 쌓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해미읍성은 읍내에 있다. 누굴 상대하기 위해 쌓았을까? '왜구'들의 노략질을 막기위해 세운 성이라고 한다. 왜구들이 이곳까지 왔다니 놀랍다. 이 성(城)이 호서좌영(湖西左營)이다.
돌탑군(群)이 보인다. 커다란 돌탑 언저리에는 이미 빼곡히 쌓은 돌탑들로 인해 자리가 없어 가장 낮은 곳의 돌 위에 6층 탑을 쌓았다. 무엇들을 염원하며 쌓았을까? 그저 무심하게 돌맹이 6개를 올려 놓았다.
동헌 내에 호서좌영(湖西左營)이 설치됐고, 이곳에서 작전회의가 열렸을 것이다. 오색 색동 옷으로 치장한 한 무리의 무장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스피커에선 실감나도록 상황이 흫러 나왔다.
성 내에 소머리국밥집이 있고 큰 가마솥에서 '소대가리'가 삶아지고 있다. 그래서 소머리국밥 두개와 파전 하나,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막걸리 한대접. 조금 신맛이 도는 막걸리, 분명히 누룩으로 만든 것 같다. 그래서 두대접. 삼분의 일은 마나님이 ... 소머리 국밥이 정말로 진국이다. 시중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진한 맛이 일품이다. (운전은 휴가에 모처럼 함께 온 아들에게)
해미읍성 내에 서산지역 부호의 집이 있는데, 그 소박하고 작음에 애잔함이 밀려온다. 틀림없이 작은 방에서 대 여섯 명이 한 이불을 덮고 잤을 터. 한반도의 유적들은 한결같이 작고 소박하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거대한 기념물을 만들지 않았다. 거대한 기념물은 인민의 피로 세워지고, 따라서 권력에 원한을 갖게 돼 적의 침입에 오히려 동조하게 된다. 이 좁은 한반도가 외침(外侵)에 굳굳이 버텨온 근본이다.
선조들의 손길만이 남은 해미읍성을 나와 시간을 건너 뛴 건축물을 뒤로 하며, 한 때는 긴박했던 곳을 여유만만하게 둘러보는 객(客)들의 무리에 섞여 귀로에 나섰다. 태양이 제법 따듯하다. (2021. 0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