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3. 양부(兩婦) 내관(來觀) 10월 5일
양부는 자부(子婦)인데 1은 장자 부(婦) 이영섭(李永燮)이오 2는 차자 부(婦) 조광윤(曺光潤)이다. 장자 덕영(悳永)은 선비(先妣) 재세(在世) 시에 포양(抱養)하시는 중 가정에서 한자를 배우고 신식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과거(寡居)하신 형수가 계시고 노모를 받드는 중 나는 경성에 올라와 쓸데없는 세상에 억매여 가정 일을 돌보지 못하였다. 선비(先妣)께서 집에 주장이 없는 것을 이유로 하여 신식교육을 허락하지 않으셨고 린숙(隣熟)에 보내어 한자를 배우게 하셨다. 선비(先妣)께서 별세하신 후에 덕영이 동경에 건너가 오래 돌아오지 않고 자부가 혼자 살림을 맡아 곤란과 싸워가며 생활고를 많이 겪었다. 부득이 동경에 있는 덕영을 불러오고 자부 영섭도 아이들을 데리고 경성으로 반이(搬移)를 시켰다. 역시 빈곤한 살림에 양모(養母) 화산부인(華山婦人)을 모시고 고생이 오직하랴.
화산부인의 성(性)은 경주(慶州) 이(李)씨요 백형(白兄) 진수(鎭洙) 씨와 결혼한지 4개월 만에 백형이 별세하고 과부가 되었다. 그 추상(秋霜)같은 정열(貞熱)은 사람이 다 흠모(欽慕)하였다. 선비(先妣)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담배가 소수물(消愁物)이라 하여 끽연(喫煙)을 허락하셨다. 시부모의 맘을 조금도 거스리지 않고 절대 순종하였으며 장자 덕영이 출생함에 당신이 데려다 기르겠다 하여 우으로 선비(先妣)를 모시고 아래로 자부와 손자를 데리시고 조금도 슬픈 빛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리고 또 주를 믿으시고 세례 받으시고 가장 안심하시고 계시다 탄달(憚怛)의 빛이 없이 별세하였으니 부인은 우리 가정에 절부(節婦)이시오 또 성자(聖者)이시다. 향년(享年) 75세시다. 나도 어릴 때 형수의 손 밑에 길러왔고 그의 자비하신 교육을 들은 고로 지금도 내 귀에 쟁쟁히 들려있는 것은 부인의 말씀이다. 나는 형수로가 아니라 자모(慈母)와 다름없이 생각된다.
자부(子婦) 영섭은 그런 노모의 슬하에 있으며 많이 배우고 부모에게 효할 줄 아는 것이다 화산부인의 음덕(蔭德)이다. 이태원(梨泰院)에 주거를 정하고 살다가 덕영이 생업을 고쳐 귀농업으로 경인선 소사(素砂) 역전으로 반이하였다. 차자 택영(澤永)은 가인이 서울로 오게 될 때 택영, 희영(喜永)이 다 같이 자모를 따라 상경하였다. 택영, 희영 만은 소학교도 중학을 마치고 희영은 경성고등공업(京城高等工業) 광산학(鑛山學)을 공부하였다. 택영은 의학을 시켜보려고 하였으나 3.1운동 때 피검 되여 몹시 왜경(倭警)의 구타를 입어 머리가 아파 공부를 더 할 수 없는 고로 관청 혹 학교에 취직을 다니다가 역시 생활방법을 고쳐 귀농하여 제 형을 따라 소사(素砂) 역전(驛前)에 반이하였다. 저들이 다 백면서생(白面書生)으로 농업에 우매하지만 팔고 치니 아니할 수 없다.
금년에 나의 나이 77세이라 떠날 때가 부달(不達)한 줄 아는 자식(들이 노부생전에 편히 모시고자 하나 다 사정이 허락이지 않고 또 노부의 성질이 괴벽(怪癖)하여 자손들에게 밥을 얻어먹고 가만히 있기를 원치 않고 또 호흡이 붙어 있는 동안 주의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것을 저들이 아는 고로 모시고 있겠다고 강청하지 못한다. 또 궁정동 교회 직원들이 늙고 병든 목사를 배척치 않고 돌아가실 때까지 모시겠다 하여 교회 사무실을 주택으로 정하고 노처(老妻)와 같이 사는 중이다.
내일은 우리 조선의 명절인 추석인 고로 양부(兩)婦)가 금년 농작물 중 처음 익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또 노부에게 가지고 와서 절하고 뵈인다. 영섭은 나이 임의 56이라. 제 자식들이 집에 있지 않고 다 동경에 가서 있고 돌아오지 않음으로 노모의 대접을 받을 곳이 없다. 그리운 자식들을 보려고 동경에 가려다가 비용 60만원 판출할 도리가 없어 중지하였다 하며 슬픈 빛을 보인다. 부모의 사랑은 저렇듯 간절하건만 부모의 사랑을 아는 자식이 별로 없으니 세상이 그러하다. 이것을 모르고 자식 없음을 슬퍼하는 자도 있다. 어느 효자의 아내가 절에 가서 불공(佛供)하기를 남편에게 청하니 효자 대답하기를 우리 집에 불(佛)이 있으니 불양(佛養)하라 한다. 아내가 묻되 우리 집에 무슨 부처가 있는가 하니 효자대답이 우리 모가 곧 부처이시니 우리 어머님에게 공양하라. 그러면 모든 복을 받으리라 하였다.
자부가 노부를 생각하고 고로반이라 칭하지 말고 아비에게 처음 익은 곡식을 가지고 왔으니 이것이 효심에서 나온 것이라. 나는 저희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빌었다. 덕영은 소사교회(素砂敎會)의 장로로 저의 부처(夫妻)가 진실히 봉사함은 감사하며 택영이도 제 형의 신앙에 피동(被動)되어 역시 저의 부처(가 잘 믿는다 하니 노부는 감사를 마지 않었다.
* 참조 : 양부(兩婦) - 김진호의 두 며느리